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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94화 (94/156)

94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고청수는 수염 사내와 김길우에게 양해를 구하고 곰탕집 바깥으로 나갔다.

“왜 하필 이 시간에.”

보고 올릴 거라 미리 일러두었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 했다.

무엇보다 김길우 삼촌 쪽 일을 처리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부길드장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건, 뭔가가 틀어졌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고청수는 약간 불길함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가게 안에서 그걸 지켜보던 수염 사내는 한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영웅문 길드라 했지? 쟤들 언제까지 저렇게 내버려 둘 거냐?”

“왜? 내 방식에 불만 있어?”

“사업체로 바꿔. 지금 같은 식이면 오래 못 가.”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김길우는 퉁명스럽게 내뱉더니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려는 모양이었다.

수염 사내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공소철 부길드장, 무서운 사람이다. 지금이야 너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눈 감고 있지만, 언제까지 봐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날 간부 후보까지 밀어 올린 게 부길드장이거든? 내치면 오히려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걸?”

“아직 어리군. 부길드장은 그런 거 연연 안 해. 그리고…….”

수염 사내는 잠시 뒷말을 삼켰다.

확실히 김길우는 대단한 능력자는 맞았다. 고작 각성 3년 차인 지금 순수 전투력만으로 길드 20위 안에 들고, 잠재력 또한 무시 못 할 수준이었으니까.

저 건방진 태도의 원인이 그것이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

최근 갈매기 길드는 확장을 결정했다.

이후 조직이 개편되면서 길드장, 부길드장에 이어 세 명의 고문과 여덟 명의 간부를 두기로 했다.

또, 평가원과 협력업체를 두는 식으로 외형을 키웠다.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지.’

공소철은 자신이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길드장과 같은 등급의 길드원들인 초창기 동료 일부를 고문으로 돌렸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자신이었다. 길드 내의 권한은 줄이고 방관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하는 역할로 바꾼 것이다.

반대로 김길우는 여덟 자리 밖에 없는 간부의 위치를 노리고 있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자리가 비면 다른 간부 후보들과 경합해 올라가는 식이었다. 공소철이 괜히 길드 자금을 맡겨서 수익 사업을 밀어주는 게 아닌 것이다.

차기에 김길우가 간부가 되면 자신의 파벌로 만들 수 있기에.

‘하지만, 그 그림이 방해가 된다면 다시 덧칠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

아직 어린 김길우는 거기까진 모를 거다.

그저 자신의 능력만으로 지금 자리를 꿰찼다고 생각할 테니까.

“충고 하나 하지. 너무 노골적으로 길드 이름을 팔고 다니는 건, 우리나 저쪽이나 좋지 않아. 영웅문 길드를 합법적인 사업체로 바꾸라고.”

“그럼 제약이 너무 많은데? 각종 경비 자료를 남겨야 하고 세금 신고도…… 아오~ 머리야.”

“적당한 금융 계열로 차리든, 경호업체로 껍데기를 바꾸든 하라고. 그럼 갈매기 길드는 협력업체 형식으로 안전하게 개입할 수 있지. 하지만…….”

수염 사내는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바깥을 쳐다봤다.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고청수가 당황해 하고 있었다.

“클랜을 조금 넘어서는 정도의 길드가 갈매기 길드의 이름을 팔아먹으면서 사업하는 걸, 부길드장은 오래 두고 볼 사람이 아니야.”

“이미 허락받고 하는 거거든?”

“그럼 너한테 거는 기대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거지.”

수염 사내가 슬쩍 웃는데, 김길우는 그걸 비웃음처럼 느꼈다.

“X발, 좀 쉽게 말해주면 안 돼!”

“어차피 내 말 들을 생각도 없지 않나?”

“들어, 듣는다고. 나도 뭐 생각 없이 사는 줄 아나?”

김길우도 길드 내의 분위기가 요상하게 돌아가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간부들끼리, 혹은 그들의 세력끼리 서로서로 몰래 손을 잡는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던 것이다.

고문 중의 한 명인 우현필과 이렇게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중립인 그라면 손해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대체 길드의 신사업이 뭐야? 왜 지금껏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세력을 확장하겠다고 이 새끼 저 새끼들을 마구 끌어들이냐고.”

“그래서 자리 뺏길까 봐 위기감을 느끼는 거구나.”

“훗, 잔챙이들 몇 들어온다고 내가 겁을 먹을까? 단지 돌아가는 상황이 엿 같아서 그런다.”

“밀어줬던 일문 길드가 날아가서 그런 건 아니고?”

순간 김길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문 길드의 성일태와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었다.

사업(?)적 파트너이기도 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갑자기 무너져 버렸다. 다른 간부들처럼 자신만의 지지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세력이 날아간 셈이었다.

특히나 김길우는 덩치(?) 면에서 약세였다.

영웅문 길드는 충성심은 강하나 숫자 면에서는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대체할 쓰레기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고.”

“그런 방식을 부길드장이 싫어한다는 말이다. 쯔, 국물 다 마셨네. 여기 소주 한…….”

우현필이 추가 주문을 하려는데, 고청수가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 그게…….”

고청수는 슬쩍 우현필을 쳐다봤다.

이걸 말해도 되는지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제야 김길우도 자신이 뭘 시켰는지 알아차렸다.

“미안,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

“뭐, 재밌는 일이라면 나도 좀 끼워주지 않겠나?”

“이건 집안일이라.”

김길우는 다급히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그 뒤통수를 보며 우현필은 씁쓸하게 웃었다.

“솔직히 부길드장이 오기 전까지는 좋았지. 지금 길드는…… 에휴.”

우현필은 몇 번이나 빈 소주병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참 성질 많이 죽었어.”

유현성은 가만히 쪼그려 앉아 골목 안쪽을 쳐다봤다.

일열횡대로 영웅문 길드 애들이 쭈욱 무릎 꿇은 채 두 팔을 들고 있었다. 제일 끝의 셋은 기절한 채 벽에 기댄 상태였고.

당연하게도 바로 앞에는 김창주였다.

다만 각성자도 아닌 터라 그냥 무릎만 꿇린 채였다.

“이상해.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홧김에 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끝나고 나니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이렇게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성격이었던가?

모르겠다.

감정적이 된 것도 이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폭력적이지도 않았다. 애초에 군대를 나온 이후 사람 상대로 마력을 사용한 적도 몇 번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각성자가 일반인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지도.’

그렇게 결론짓기에는 뭔가가 거슬리더라.

일문 길드, 영웅문 길드…… 어? 공교롭게도 비슷하긴 하네.

연결 고리는 역시 갈매기 길드인가?

‘분명 거슬리기는 하는데.’

아직 갈매기 길드와는 직접적인 충돌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러니 불필요한 싸움을 벌일 필요도 없었고, 도움을 청한 상대가 알려준 부분에서도 딱히 범죄와 연류된 부분은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 직감을 자극하는 게 분명 존재할 터. 그렇지 않고서야 먼저 도발했을 리가 없겠지.

“확실히 뭔가 있기는 있어.”

“예. 얌전히 있습니다.”

황당하게도, 내 혼잣말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한 건 김창주였다.

따지면 이번 일의 원흉은 이 인간이었지.

그냥 평범하게 장사하는 박정철을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될 걸, 괜히 키운 건 김창주의 욕심 때문이었다.

아니, 순순히 보증금 준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정은 생각하지 말자. 이미 벌어진 건 벌어진 거고. 수습은…….”

만일의 대한 준비는 해놨다.

사실 조금 억지를 부리면 이 녀석들 전부 감옥에 보내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나에게 정보를 준 상대가 바로 여기 경찰서장이었으니까.

솔직히 일문 길드 사건 이후 은근히 뭔가 기대하는 눈치더라.

하지만 이쪽은 거기와는 결이 달랐다.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시비 걸고 다니는 건 맞긴 하잖아.”

“아닙니다. 이번 일 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원래 저희는…….”

부길드장 오영국이라고 했던가?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변명하는데 믿음이 가질 않았다.

“어차피 잘못된 걸 알아도,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렇지만…… 악!”

손톱만한 돌을 튕겨 이마를 맞추자, 그제야 조용해졌다.

“그냥 입 다물어라. 아직 너희들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 중이니까.”

그나마 곽준열 삼촌에게 부탁해 박정철과 먼저 보낸 게 다행이었다.

아마 계속 있었다면 좋은 꼴은 못 봤겠지.

“그런데, 10분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

“시간 벌써 지난 것 같은데?”

“……악!”

“묻는 말엔 대답해야지.”

“죄, 죄송합니다. 입 다물라고 해서. 가까운 곳이라 금방 오신다고. 정말 저희는 심부름센터 같은 곳이 아니…… 악!”

“묻는 말에만 대답해야지.”

“……윽.”

“대답은 해야지.”

“예. 옙.”

오영국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부길드장이라는 것도 있지만, 제일 멀쩡하다는 이유로 대답과 구타당하는 걸 담당하게 되다니.

“궁금한 게 있는데, 너네 길드 없애 버리면 무슨 문제가 생기려나?”

“아무래도 밤에는 좀 어수선해질 겁니다. 여긴 경찰들도 위험하다고 순찰 잘 안 다닙니다.”

“왜지?”

“장사가 잘되면 사람들 많이 다닐 테니 적어도 눈치라도 볼 겁니다. 하지만 띄엄띄엄 다니면 뒷골목에서 누가 사고 쳐도 잘 모릅니다.”

“아니, 순찰을 왜 안 도냐고?”

“각성자가 ‘나, 각성자요’ 하고 술 마시고 돌아다니지는 않죠.”

“그러니까 각성자들이 사고를 친다는 거지?”

“싸움 말리다가 다친 경찰이 한둘이 아닙니다. 재수 없으면 불구 되는 경우도 있고, 지금처럼 저희가 자리 잡기 전에는 실종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미친 새끼들이네.”

아무리 게이트 터진 이후, 힘의 논리가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경찰을 공격하다니.

그런 내 감정을 읽었는지 오영국이 서둘러 말했다.

“당시에는 각성자 관련 법령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발적 폭력으로 분류되니 처벌도 과하지 않았고요. 비공식적으로 저희들에게 보호료를 내는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라는 거군.”

“예.”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이후 조폭들이 사라지고 뜻있는 각성자들이 세력을 규합해 길드를 만들었습니다.”

“너희도 그런 케이스다 이거지?”

“예.”

“그런 놈들이 사채놀이를 하냐?”

“헙! 그, 그게…….”

오영국이 화들짝 놀라는데, 더 크게 놀란 건 김창주였다.

심지어 한 술 더 떠서 오영국의 머리채까지 붙잡는 것 아닌가?

“네놈들이었냐? 엉? 너희들 때문에 이쪽 상권이 박살 난 거냐고!”

“아악,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이 새끼들아. 니들이 고리대금 놓는 바람에 다 망해 나갔는데, 아니라고. 이, X바랄!!”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대충 욕설 빼고 해석해 보면 이해가 되긴 하는데, 일단 싸움은 말리자.

“그만하세요. 그만.”

“이 씨…….”

김창주는 제풀에 풀썩 주저앉았고, 오영국은 길에 엎어져 있으면 동전 떨어질 정도로 거지꼴이 됐다.

머리카락이 한 줌이나 쥐어 뜯겼으니까.

잠시 진정시킨 뒤 조용히 물었다.

“그러니까 사채 이자 때문에 식당들이 망해 나갔다 이거죠?”

“악순환이지. 월세에 이자 내면 남는 게 없으니 다들 장사를 접고 나갔어. 건물주도 공실이 절반이 넘으면 은행 이자 내기도 빠듯하다고.”

월세를 올린 게 그래서란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건물주도 나름 고통이 있다고는 하는데 전혀 공감이 가질 않았다.

뭐, 지들끼리 알아서 싸우라지.

그때였다.

쩌쩡!

입구 위장용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성질도 급하네. 두드리면 그냥 열어줄 것을.”

와장창창!!

결계벽이 무너지고, 그 사이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행히도 미리 들었던 인상착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냐, 이 씨XXXX야~”

“허, 보자마자 욕부터 박아 버리는 걸 보니 인성교육부터 시작해야겠네.”

유현성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상대에게서 이질적인 기운이 맹렬히 뿜어지기 시작했다.

어라? 이거 마법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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