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이런 미친놈을 봤나?”
챙, 채채채챙!!
두 개의 단검이 사방을 휘젓고, 유현성의 손가락이 그 진로를 살짝 비틀었다.
그렇게 날카롭게 뻗어가던 직선이 유려한 곡선으로 바뀌며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카가가각-!!
그그극-
정말 수초 만에 벽과 담벼락에 수십 개의 칼자국이 남았다.
“히이익…….”
뒤에 있던 김창주는 화들짝 놀라며 기다시피 골목 안쪽으로 도망가려 했다.
유현성은 발을 뒤로 뻗어 김창주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 덕에 부웅 날다시피 골목 안쪽으로 굴러갔고, 가까스로 이어진 공격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건 오영국과 그 옆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로 김길우의 단검이 떨어졌으니까.
“야이, 미친놈아!”
빠악!
김길우의 턱이 훅 돌아갔다.
두 개의 단검 사이로 파고든 유현성의 주먹이 얼굴에 냅다 박힌 거다.
“으흠, 제법 치는데?”
공격이 약했는지, 통증이 덜한지 김길우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 직후, 아까의 그 기운이 다시 느껴졌다.
이번에는 유현성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김길우의 등 뒤에서 주먹만 한 회색빛 안개 같은 게 나오더니 머리 위를 한 바퀴 돌았다.
곧 모래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축복(?) 비슷한 걸 뿌려대는 게 아닌가.
그 직후 김길우의 눈에서 광기가 뿜어졌다.
“분명 마법은 아닌데?”
“큭큭. 맞춰봐. 맞추면 상을 주마.”
저 자신만만한 표정에 증폭되는 기운. 더군다나 거기서 악취가 느껴진다면?
잠시 착각했지만, 저건 차라리 정령이면 좋았을 뻔했다.
“빌어먹을…… 악령이군.”
“오~ 내 친구를 그렇게 부르다니. 용감한걸?”
“역시 미친놈 친구구나.”
“참고로 이 친구는 아주 날카롭지.”
번쩍!
두 개의 단검이 교차되자 먹빛이 뿜어졌다.
그건 안개와는 다른 뿌연 기운을 흩트렸는데, 순간 김길우의 신형이 사라졌다.
“하! 더럽게 바쁘게 하는 놈이네.”
순식간에 입구 위장용 결계를 펼치고, 뒤쪽 구석에 겹겹이 처박힌 녀석들한테도 막을 씌웠다.
눈먼 칼에 맞아 뒤지면 괜히 기분이 그럴까 봐서였다.
그 직후, 녀석의 공격이 시작됐다.
챙! 채채챙-
흐릿한 신형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어김없이 그 방향에서 단검이 날아왔다.
그게 정면과 좌우 세 방향에서 번갈아 쏘아졌는데, 유현성은 그걸 가뿐히 막아갔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
퍽, 팍, 파팍!!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손에 들린 벽돌이 푹푹 깎여 나갔고, 다른 대처를 찾기도 전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만하라고, 미친놈아!”
빠악. 퍼퍽. 퍽!!
유현성의 주먹이 또다시 단검 사이를 뚫고 김길영의 이마를 찍었다.
그 공격에 휘청거리자마자 연이어 펄쳐진 발차기.
김길우의 좌우 옆구리를 뭉개고 앞차기가 정확히 명치에 틀어박혔다.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푹 파인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
하지만 김길우의 육체는 조금 흐느적거릴 뿐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호오~ 이번 건 조금 영향이 있는걸? 너! 제법 강하네.”
“넌 인간이냐?”
“보시다시피?”
김길우는 가볍게 두 팔을 벌려 상태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
하지만 뭔가 수상쩍었다.
충격이 적을 수는 있지만 아주 없을 수는 없는 법.
한데 이어진 김길우의 공격은 오히려 매섭고 날카로워졌다.
맞기 전보다 더.
특히 황당한 건 이거였다.
“네 개?”
뿌연 안개 사이로 떠다니는 단검이 늘어났다.
그럼 양손만이 아닌 다른 뭔가가 있다는 건데?
“넌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것도 개의치 않는구나.”
“아니. 난 내가 베고 싶은 것만 갈라 버릴 수 있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헛.”
단검 두 개가 동시에 날아왔다.
상체를 틀어 가까스로 피했는데 이번에는 좌우에서 옆구리를 노렸다.
그대로 뒤로 뛰어 단검을 아래로 보냈는데.
“이런!”
아까 던진 두 개의 단검이 돌아오고 있었다. 마치 반대편 안개 속에서 두 개의 손이 나타나 휘두른 것처럼 급선회한 것이다.
유현성은 왼팔로 순식간에 원을 그렸다.
카캉!
그 회전에 휘말린 단검끼리 부딪혀 방향이 틀어졌고,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오호, 제법 한 수 있는걸?”
“넌 원래 다짜고짜 공격하는 게 취미냐?”
“네가 먼저 시비 걸고 길드원들과 싸움을 벌였다고 들었는데? 우리 당숙 아저씨도 괴롭혔잖아.”
유현성은 휙 고개를 돌려 오영국을 노려봤다.
찔리는 게 있는지 움찔하더니 슬쩍 시선을 피하더라.
“미리 말하지만 그건 사소한 오해고. 오해가 아니라고 해도 너처럼 보자마자 사람 죽일 듯 무기 휘두르는 행동은 하지 않지.”
“나도 사람은 안 죽여!”
“난 죽을 뻔했는데?”
“사람은 쉽게 안 죽더라고.”
역시, 악령과 친구 먹은 미친놈다운 말이었다.
어쨌든 지금 몸은 본체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만약 실체라 한다면 저 악령이 그 이상의 작용을 한다는 건데…….
이런 경우 제압이 우선이지 원리를 파악하는 건 나중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원하는 것만 갈라 버릴 수 있다고. 그리고 이런 것도 가능하지.”
네 개의 안개 덩어리가 나타나 김길우의 육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육체의 고통이 힘으로, 마음의 분노가 날카로움으로.”
어라? 이건…… 주술이잖아!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김길우가 다가왔다. 정말 활시위에 튕긴 것처럼 쏘아지는 듯 코앞에 이른 것이다.
좌우에서 단검이 날아들고 정면에서 두 개가 상하로 움직이더라.
하지만 유현성이 빨랐다.
텁! 카캉-!!
위에서 떨어지는 김길우의 왼쪽 손목을 붙잡아 우측의 단검을 쳐냈고, 다시 반대로 파고들어 좌측의 단검을 날려 버렸다.
왼팔이 몸 안쪽으로 들어가 있으니 오른손에 들린 단검이 솟구치지는 못할 터.
하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김길영의 단검 날은 자신의 왼쪽 팔꿈치를 그대로 가르고 사선으로 솟구쳤다.
그 끝에 유현성의 목이 있었다.
푸확!
피가 뿜어지며 벽 한 면을 거칠게 적셔 버렸다.
이윽고 뿌연 안개 사이로 한마디가 울렸다.
“미친놈!”
* * *
“정말 우리끼리만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박정철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하지만 곽준열은 그저 웃을 뿐, 걸음만 재촉할 따름이었다.
“현성이 정말 그렇게 싸움 잘해요?”
“흐음, 싸움이 아니라 그냥 강하데.”
“그거야 알지만…….”
먼저 제대한 이후, 게이트가 터진 건 알았다. 초창기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몬스터들을 상대했다는 것도 말이다.
그 선두에 유현성이 있었다고 듣기는 했지만,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길드를 상대하는 건 또 달랐다.
사람끼리의 싸움에 이골이 난 놈들이니까.
“참 걱정도 많네. 아무려면 생각 없이 혼자 남겠다고 했겠냐고.”
“그래도…….”
“전에 현성이가 취해서 장난삼아 묘기라고 하나 보여주더라고. 그러니까, 돈가스 칼 알지?”
“예. 톱날 비슷하게 달린 그거요.”
“녀석이 그걸로 과일 깎아준다고 하면서 뭘 든 줄 알아?”
“모, 모르죠.”
“콜라병.”
“예?”
박정철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데, 곽준열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녀석이 돈가스 칼로, 유리로 된 콜라병을 깎더라고. 사과 껍질 벗기듯이 아주 얇게.”
“헐.”
“나중에 일 때문에 톱급 헌터 몇 명 만날 기회가 있어서 물어봤거든. 다들 그걸 누가 할 수 있냐고, 농담하냐고 그러더라고.”
“그, 그게 진짜 가능하긴 해요?”
“내 눈으로 봤는데 무슨…… 하여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현성이 강하다. 그리고 죽자 살자 싸우려고 남은 것도 아니고, 따로 볼일 볼 게 있어서 어딜 다녀온다고 그랬잖아.”
곽준열은 박정철의 등을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물론 모르는 사람의 경우 커다란 팬더가 사람 학대(?)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런데 좀 불안해서.”
“야! 불안한 건 나야! 지금 실물 없이 사진만 보고 네 가게 벽체 조립을 해야 하는데, 머리가 뽀개지겠다. 이러다 회까닥 죽을까 불안해, 불안하다고!”
“아, 죄송합니다.”
“우리도 놀 시간 없다. 내일 당장 올라가서 뚝딱뚝딱 해야 하니까, 네 기억에 의존해서 번호 순서 맞추고 도면 뽑아야 하거든.”
아슬아슬하다는 게 이런 거였다.
일정에 여유가 생겨서 시간을 이틀 정도는 더 벌어놨다.
하지만 현장 일이라는 게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손발 한 번 맞춰본 적 없는 인부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철거 마감된 식당을 확인하면서 대략적인 측정을 마쳤으니 크게 어려울 건 없겠지만.
곽준열은 피식 웃으며 다시 박정철의 등을 팡 쳤다.
“으억!”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빨리 끝내고 소주나 한잔할 생각해. 내일부터는 그럴 시간도 없을 테니까.”
“아, 예에에~”
곽준열이 다시 중얼거렸다.
“그리고 현성이는 술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거든.”
* * *
“신기하네.”
“신기하지.”
좀 더 빨리 눈치챘어야 했다.
분명 녀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베어내고 싶은 것만 잘라낼 수 있다는 건 진실이었던 것이다.
단검은 분명 김길우의 왼쪽 팔꿈치 부분을 지나갔다.
한데 그 흔한 핏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마치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그대로 통과해 버린 것이다.
그런 뒤, 그대로 목을 노리고 뻗어왔다.
가까스로 피하긴 했는데, 살짝 긁히는 건 어쩔 수 없더라.
그건 깜짝 마술에 놀란 대가였다.
대신 비밀을 풀 수 있었으니 손해는 아닌 셈.
“안개화 능력이라고 보면 되려나?”
“흐음, 예리한걸?”
“굉장히 독특하기는 한데, 그게 원래 전투용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하, 능력에 그런 구분이 어디 있냐! 필요한 곳에 가져다 쓰면 그게 곧 스킬이고 힘인 거지.”
“그 말은 인정.”
유현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손에 들린 단검을 휙 던졌다.
하지만 단검은 김길우를 통과하고는 그대로 바닥에 박혀 버렸다.
본체의 일부가 깨어졌기에 그걸 받을 힘조차 없는 모양.
어쨌든 본질을 파악한 이상, 본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육체를 안개화한다는 건 실체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어딘가 다른 곳에 영혼이 있다는 거겠지.
그 부분에 집중하자 바로 답이 나왔다.
곧 김길우의 공격이 펼쳐졌고, 유현성은 단검 하나를 강제로 뺏어 버렸다. 그걸로 다른 단검을 갈라 버린 것이다.
놀랍게도 피가 뿜어진 건 거기서였다.
단검이 진짜 실체였던 것!
그랬기에 자신이 베어내고 싶은 것만 자를 수 있다는 말이 성립이 된다.
출혈이 일어나기 직전에 본체를 회수해 버리면 되니까.
“그나저나 상당히 독특한 능력이긴 하네.”
“겁나게 두들겨 맞다가 각성한 거니까.”
“참 별스럽게 생긴 능력도 다 있구만.”
이미 김길우를 제압했으니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했다.
필요한 정보만 캐내면 될 터.
슬쩍 주변을 돌아봤다.
김창주는 겁에 질려 있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보증금 빨리 달라고 하면 진짜 협박(?)이 된다.
영웅문 길드 애들은 이제 평범하게 장사하는 사람들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도 해놨고.
고리대금이야 법정 이자 안쪽이면 경찰서장이 손 비비며 부탁해도 내가 처리할 방법은 없었다.
아니, 한다면 하겠지만 거기까진 오바겠지.
이제 남은 건 이 녀석인데…….
“그냥 단검을 박살 내면 시체는 안 남겠네?”
“정말 죽이려고?”
“그냥 물건 파손이잖아.”
쩌정!
그때, 다시 위장용 결계에 금이 갔다.
“또 뭐야!”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는데,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유현성을 보며 손을 들었다.
“어이, 오랜만이야. 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