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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96화 (96/156)

96화

“엥? 아저씨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유현성도 익히 아는 인물, 바로 옆 부대 행보관이었던 상사 우현필이었다.

오다 가다 마주친 것도 많지만 어쩌다 보니 일도 여러 번 같이 하게 된 사이.

“사정이 좀 그렇게 됐어.”

“순환 보직 때문에 최전방으로 끌려갔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이 나이에 추운 곳에서 삽질하려니 힘들어서 바로 전역 신청해 버렸지.”

“그럼 튄 거죠?”

“큭, 그렇게 된 건가?”

우현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유현성은 뭔가가 생각난 듯 물었다.

“설마 아저씨도 갈매기 길드?”

“원래라면 그럴 생각은 없었지. 그냥 자그마한 클랜에서 소일거리 삼아 엉덩이 붙이고 뒷방 늙은이처럼 있으려고 했는데, 클랜장이 욕심이 많더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클랜하고 길드끼리 흡수 합병 몇 번 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갈매기 길드에 들어와 있더라고.”

“그럼 지금도?”

“어쩌다 보니 고문 역할을 맡게 됐지.”

유현성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잘 아는 사이끼리 껄끄러운 관계가 된다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게다가 우현필은 특무부 보좌 일도 제법 했기 때문에 전투 서포트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우현필이 손을 내저었다.

“워워. 싸울 생각으로 온 게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그리고 자네랑 붙으면 내가 깨지잖아.”

“그럼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저 단순무식한 녀석이 사고 칠까 봐서. 그런 뒤처리하는 것도 내 일이기도 하거든.”

“자주 있는가 봐요?”

“드물진 않지.”

몇 년을 봐왔으니 우현필의 성격에 대해선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입은 좀 험하지만 사람은 괜찮다는 것!

원만한 스타일에 격식을 크게 따지지 않아서 같이 일하기도 편했고.

“저놈, 나한테 넘겨주지 않겠나?”

“저한테 다짜고짜 단검을 휘두르는데, 맨입으로요?”

“사정을 듣고 싶은데?”

“서로 정보 교환하시죠?”

“나한테 뜯어갈 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다면 자리를 옮기지.”

아무래도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방금까지 흉흉하게 싸웠던 곳이니 대화할 기분이 나질 않았다.

또, 영웅문 길드 애들이 죽상을 하고 있으니 영 껄끄럽기도 했고.

“저 애들은 놔두고 간단하게 셋이서만 보는 걸로.”

우현필은 그렇게 말한 뒤, 김길우를 부축했다.

잠시 서로 욕이 오갔지만 못 들은 척 해야겠지?

“일단 나갑시다.”

“아! 그건 그렇다 치고 위장용 결계 코드는 바꾸는 게 좋을 거야.”

“예?”

우현필이 피식 웃었다.

“허허, 어째 군용 해제 코드랑 바뀐 게 없더라고.”

* * *

“자네가 분식집을 한다고?”

우현필의 눈이 커졌다.

아무래도 어이없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가볍게 자판기 믹스 커피를 한 모금 한 뒤, 유현성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세상에 집채만 한 마수들 때려잡던 칼로 채소 다듬고 있다니 놀랠 노 자군.”

“너무 아저씨 같은 말투 아닌가요?”

“겉보기에는 사십 대지만, 나도 곧 오십이야.”

“외모도 충분히 오십 대 같습니다만?”

“면도만 하면 깔끔하다네. 아직도 총각인 줄 알고 쫓아오는 아가씨도 있고.”

우현필이 웃는데, 옆에서 김길우가 투덜거렸다.

“총각은 개뿔. 사기나 치지 않으면 다행…… 악!”

김길우가 안개화를 펼치기도 전, 유현성의 주먹이 턱주가리에 박혔다.

“얘는 왜 이리 버릇이 없는 겁니까?”

“들어 보니 어릴 때 어른들한테 하도 처맞고 다녔다고 하더군. 그래서 반감이 강해. 각성 능력도 맞는 게 무서워서 생긴 거라고 하던데…… 자네도 봤나?”

“육체가 안개처럼 변하는 거 말이죠?”

“그래 봐야 반쪽짜리에 불과하지. 우리가 뱀파이어 무리 잡았을 때를 생각하면…….”

“떠올리기만 해도 짜증 나네요. 하필이면 은신처도 늪지라서 워낙 구분이 안 갔죠.”

“그래서 자네가 산 채로 홀라당 태워 버렸지?”

우현필의 말에 김길우가 움찔움찔했다.

피식 웃은 유현성은 경고하듯 말했다.

“게이트 안에서야 그래도 되지만, 여기서 그랬다간 피곤해집니다. 물론 못할 것도 없지만.”

“자네 살인 면허는 여전한가?”

“빌런들에 한해서는요. 그리고 각성자라고 함부로 일반인들 괴롭히면 적당히 다져도 괜찮습니다. 아까 그놈들처럼요.”

이제 김길우는 살짝 떨기까지 했다.

길드에 들어오기 전, 우현필이 군에서 상당히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들었다. 그걸 떠올렸더니 단순한 위협이 아닌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우현필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했으니 자신이 패배한 것도 당연하다 싶었다.

“무슨 군대에는 괴물만 있습니까?”

“아니지. 이 친구가 괴물이지. 영웅급 애들도 다 너보다는 강하고, 코드 번호 있으면 거의 병기 취급이라고 보면 된다.”

“대체 얼마나…….”

“글쎄?”

유현성의 경우 갈매기 길드 상위 랭커가 다 덤벼도 이길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오히려 군에 있을 때보다 마력이 깔끔해진 것이 더 강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이야기는 됐고요. 어쨌든 먼저 일을 벌인 건 그쪽이거든요?”

“사정을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유현성은 깔끔하게 요약했다.

친구를 만나러 왔는데, 영웅문 길드란 애들이 영업 방해를 했다.

원인은 건물주가 나가라고 한 거였다. 거기에 보증금 받으려면 완전 철거까지 해놓고 가란다.

“네 오촌 당숙이 그런 사람이었나?”

“그렇게까진 아닌데요? 돈하고 여자 밝히는 거 빼면요.”

“그게 문제인 거지.”

“그래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저 거둬준 분입니다.”

이 미친놈도 사연이 있구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가정폭력을 당했고, 3년 전에 각성을 했다.

그 직후, 아버지란 인간은 술에 취해 실족사.

결국 오촌 관계인 김창주가 자신을 거둬줬다고 하더라.

아까 열받아서 갑자기 달려든 게, 김창주가 무릎 꿇고 있어서라나.

“그건 그거고.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보증금은 제가 책임지고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은 그걸로 정리하도록 하죠.”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애들 병원비도 들어가니 그걸로 퉁 치죠.”

김길우의 말에 우현필이 나섰다.

“그 당숙한테 피해보상금도 제대로 챙겨주라고 해. 애초에 원인이 거기에 있으니까.”

“알겠…… 습니다.”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자 유현성도 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이쪽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

“아저씨. 이제 정보를 좀 받고 싶은데요?”

“궁금한 게 뭔데?”

“갈매기 길드요. 대체 거기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겁니까?”

“흐음, 설명하면 제법 긴데…… 소주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해도 되겠나? 아까 마시다가 중간에 나와서 말이야.”

“술 좋아하시는 것도 여전하시네요. 이렇게 된 거 저희 가게로 가시죠?”

“어? 그래도 되나?”

우현필이 당황해하는데, 유현성이 못을 박았다.

“대신 술값은 넉넉하게 받을 겁니다.”

* * *

“이걸 기억하고 있었나?”

우현필 앞에 놓인 건, 온면이었다.

잔치국수와 다르게 면이 더 탱글탱글했고 유부와 계란 지단, 야채 고명이 푸짐하게 올라가 예쁘게 보이는 게 특징이었다.

무엇보다 우현필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나이 들면 치아가 시리다고 따뜻한 국물 요리를 주로 찾았던 것이다.

곰탕, 설렁탕에 국수사리를 추가로 넣어 자주 먹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번 솜씨 부려봤습니다.”

육수야 늘 있는 거고, 비빔국수용 중면을 삶아 왕김밥 속 재료를 올리면 된다. 여기에 고춧가루, 깻가루, 김 가루도 푸짐하게 담아내면 끝이었다.

“이거 뇌물이 너무 과한데?”

“그만큼 정보를 주시면 되죠.”

“흠, 일단 맛부터 보고…… 크흐, 국물이 좋네. 속이 확 풀리는 게 해장에도 직빵이고.”

우현필은 순식간에 온면을 흡입하면서 소주를 글라스에 따랐다.

소주잔에 따라서 마시면 감질 난다나.

“이거 맛있네요.”

김길우까지 남김없이 그릇을 비우자 유현성은 피식 웃었다. 원래라면 데려올 생각이 없었는데 우현필이 반강제로 끌고 오다시피 하더라.

‘분명 이유가 있겠지?’

유현성이 감자채전과 파전까지 지글지글 부쳐서 가져오자 우현필은 소주 한 병을 더 꺼내왔다.

“그래, 궁금한 게 뭔데?”

“갈매기 길드, 거기 요즘 사업을 크게 벌인다고 들었습니다.”

“하는 건 많지. 요즘은 간부 후보들끼리 경쟁도 치열하고, 특히 부길드장이 의욕적이라서 좀 피곤해.”

김길우처럼 갈매기 길드의 돈으로 산하의 영웅문 길드를 시켜 고리대금을 한다든가, 대외적으로 양보했던 사업들을 다시 인수하기도 했단다.

그중 하나가 장어묵 덮밥으로 대상을 받았던 전포제였다. 요식업 대표들에게 압력을 가해 일부를 세금으로 받아 가고 있다는 거다.

“진짜 양아치네요.”

“그런데 애초에 갈매기 길드가 하던 거였어. 당시에는 그걸 감당할 만한 길드도 없었고, 거의 순수한 마음으로 했던 자원봉사였지.”

“그거 정말인가요?”

“잡음 없이 양보한 것만 보면 알잖아.”

그랬었나?

어쩌면 이 아저씨가 속사정을 모르는 건지도.

“사실 갈매기 길드도 여러 파벌이 있거든. 가령 나 같은 군부대 출신들이 초창기에 합류했는데, 부길드장이 탐탁지 않게 여기더라고.”

“그 공소철인가 하는 사람 말이죠?”

“자네도 아나?”

“조금 짜증 나는 소문이 있어서요.”

“야망이 무척 크지. 나름 수완도 좋은 편이라, 정부에서 하는 일을 많이 가져왔어.”

갈매기 길드를 크게 나누면 군 출신과 민간 헌터로 구분되는데, 서로 알력이 있다고 했다.

특히 사업 쪽은 부길드장 세력이 주도하는데, 그래서 잡음이 많단다. 너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데다 정치적으로 과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갈매기 길드는 전역한 군 출신들이 상당수였거든. 전투에 특화되어서 초기 게이트 진압에 많은 일을 했었지.”

“대충 그렇게 듣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각성자들이 생기면서 민간 헌터도 많이 받아들였어. 무력은 약한 편이지만 그쪽 세력은 더 커.”

“아무래도 그렇겠죠.”

민간 헌터들이 꾸준히 유입되는 이상 규모 면에서는 역전됐을 거다. 거기에 산하의 여러 길드와 손을 잡기도 했으니까.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 수익도 많이 필요한 법이거든. 그러니 부길드장에게 힘이 쏠리는 건 당연하지.”

“길드장은 뭐 하고 있습니까?”

“그 싸움 바보는 어디 심산유곡 같은 데서 수련하고 있을걸?”

“헐, 요즘도 그런 헌터 있어요?”

“부상 때문에 요양한다는 핑계를 대기는 했는데, 어디서 뒤지지 않았으면 지금쯤 곰하고 싸우고 있을지도 몰라.”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라 보면 되겠군요.”

“기념물이 아니라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이지.”

우현필은 그렇게 말한 뒤, 입을 쩝쩝 다셨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소주가 빠르게 위장 속으로 증발한 거였다.

“한 병 더 드시죠?”

“그래도 되겠나?”

“어차피 돈 내고 드시는 건데요. 대신 안주 하나는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대화 중에 자리를 길게 비우는 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양파 계란말이를 후다닥 준비했다.

다다다닥.

양파 두 개를 잘게 다지고, 계란 다섯 개를 깨 넣어 휘휘 섞었다.

여기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그걸 기름 두른 팬에 약한 불로 지지면 된다.

마지막은 역시 케첩으로 장식하면 끝!

이건 정말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안주 중 하나였다. 근데, 아저씨보다 김길우가 더 좋아해 만드는 것보다 빠르게 해치우더라.

결국 하나를 더 만들어 왔는데 우현필이 아삭아삭 씹으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자네 설마 길드랑 싸울 생각은 아니겠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조용히 장사나 할 겁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쪽에서 먼저 시비 걸 것 같은데요?”

“자네 혼자라면 모르겠는데, 가족이 있지 않나? 직원들도 있을 거니 가급적이면 피하는 게 좋아. 개인이 길드와 싸우는 건 불리하니까.”

“그거 충고입니까?”

“진심 어린 조언이라네.”

“근거가 뭡니까?”

홀짝, 홀짝.

우현필은 잔을 내려놓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공소철 부길드장의 목표가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는 거라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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