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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97화 (97/156)

97화

“미친놈 아닌가요? 대체 왕이 돼서 뭐 하려고?”

“그야 모르지. 뭔가 자신만의 꿈이 있을지도.”

물론 엘리스가 엘프 왕국을 선포했으니 공소철도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엘프들은 애초에 종족과 습성이 다르다.

동시에 대한민국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었고 사람들하고 교류도 활발하게 할 계획이었다.

싸우기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목표였으니까.

‘게다가 엘프 마을은 정치가들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

들어 보니 갈매기 길드는 방향이 좀 달랐다.

“무력으로 강한 세력을 만들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목표라더군.”

“그래서 뭐가 될 수 있다는 겁니까?”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될 수도 있고 기장 쪽에 특수 군부대를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더라고. 되기만 하면 왕처럼 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니까.”

확실히 불가능한 조건은 아니었다.

안정기에 접어들었다지만, 고요환이 말하길 그래도 부족한 게 헌터라고 하더라.

일본이나 동남아 쪽에 인력 수출도 가능하다나?

“참 꿈도 야무지군요.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러니까 가능하다니 거지. 헌터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이 최고점일 테니까.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지면 각성자는 예비 범죄자 수준으로 전락할지도 몰라.”

“저처럼 성실하게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막말로 치고받고 싸우는 게 뭐가 좋다고 그럽니까?”

“그런 사람이 길드 애들을 그렇게 팼나?”

“먼저 시비 걸은 건 그쪽이거든요.”

유현성은 다시금 안 좋은 기억이 나는지 김길우를 쳐다봤다.

“야. 네가 시켰냐?”

“아닙니다. 그냥 당숙네 잔심부름 정도만 하라고 보낸 겁니다. 그럴 줄은 몰랐어요.”

“단속 잘해라. 그리고 몇몇 길드에서 헌터용 각성제를 마약으로 유통하고 있다는데 그런 것도 조심하고.”

“마약은 안 합니다. 아니, 취해 있는 거 자체를 싫어합니다.”

아까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두들겨 팼다고 했었나? 그러니 질색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김길우가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일문 길드…….”

“몰라.”

“아, 예~”

“알아도 몰라. 그러니까 묻지 마.”

“알겠…… 습니다.”

저게 뭔가 눈치 깐 것 같아서 일단 원천봉쇄했다.

갈매기 길드의 다른 파벌과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해 주면 더 좋긴 하겠는데…….

방금 우현필이 일러주길 내부에서도 서로 정보 공유를 잘 안 한다고 했으니 가능성은 있었다.

“일단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건 거의 다 한 것 같고. 종종 놀러 와도 되나?”

“하하, 손님으로 오시는 거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진짜 분식집 사장이 다 됐군. 어째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칭찬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소주 세 병에 온면, 안주까지 딱 이만 오천 원만 받겠습니다.”

“역시 눈치 빠르군. 지인 할인 같은 건 없나?”

“분식집에서 할인을 논하면 곤란하죠.”

“역시 장사 잘하겠어.”

우현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로 카드를 꺼냈다. 그러면서 명함까지 건네주더라.

“별건 아니고, 종종 연락하면서 지내자고. 의외로 군 출신 헌터도 많으니까 언제 한 번 다 같이 보고.”

유현성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도 저희 가게로 모시겠습니다.”

* * *

“정보를 얻어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네.”

어쩌면 그게 당연하겠지.

난 헌터가 아니라 분식집 사장이니까.

“급한 건 역시 정철이네 식당이고, 구색 갖추기로 몇 군데 더 있었으면 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이예지가 정통 국숫집과 버거 샌드 가게 섭외를 성공했다는 점이었다.

근데 이 국숫집이 조금 특이하더라.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부탁했더니 실곤약 국수를 준비했단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다이어트식이라나.

확실히 칼로리가 낮고 포만감이 있으니 나름 수요층이 있을 것 같았다.

“시원한 동치미 육수에 실곤약을 말고, 식초와 겨자를 넣어 먹는 방식이라.”

부산 사람들은 밀면에 익숙하니까 비슷한 만큼 딱히 거부감은 없을 것 같았다.

물 밀면과 비빔까지는 합격.

하지만 그 외의 몇 가지 후보는 조금 난감했다.

“응? 이게 뭔가요?”

“살얼음 식혜요. 여기에 실곤약 말아먹으면 정말 맛있다니까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시식은 해야 하니 젓가락을 들었다.

달달하긴 한데 한마디로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라고 해야 할까? 두 번 정도 입안에 넣었는데 솔직히 시원한 느낌으로만 먹게 되더라.

“이건 또 뭐죠?”

“수정과 곤약 국수요. 생강을 좀 많이 넣고 우려낸 건데, 은근히 매콤하거든요. 실곤약면의 밋밋함을 잡아준다고 할까요.”

진한 계피 향에 강한 생강 맛, 정말 생각 없이 만든 메뉴 같았다.

“사장님. 실곤약 국수는 당분간 두 메뉴만 내고 전통 음료는 따로 만들어서 파세요.”

이렇게 결론을 내려주니 사장 아주머니는 약간 울상을 짓더라.

더 황당한 건 따로 있었다.

“이거 시장에서 어르신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인데요. 나름 잘 팔려요.”

“헐, 진짜 이런 국수를 드신다고요?”

그분들 미각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다.

더군다나 추천인이 2구역 대표 김병철이라고.

어쩌면 그 반백발 아저씨 취향이 그런 쪽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사장 아주머니가 좋아하는 스타일일지도.

그 외에도 몇 가지 후보가 더 나왔는데 대부분 전통스럽다는 느낌이 강했다.

계절 메뉴로 참외를 갈아서 만든 물비빔국수와 수박에 말아먹는 국수가 있었는데 방송에 나와서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하지만 일단 후보군으로 분류했다.

의외로 호평이었던 건 단호박 국수였다. 자극적이지 않은 달달한 맛에 아삭거리는 야채 고명, 여기에 치트키로 올라간 것이 구운 꽈리 고추였다.

다소 심심한 부분을 매운맛이 잡아주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렸던 것이다.

“이건 튀김 덮밥에 나오는 방식이네요. 튀김과 구이라는 게 다르긴 하지만.”

“어머, 젊은 사장님도 드셔보셨어요?”

그게 제가 개발한 겁니다만?

물론 레시피를 팔았으니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여러 번 먹어봤습니다.”

솔직히 지겹게 먹었지. 아니, 질리도록 맛을 봤다.

“저도 아는 동생이 추천해서 먹어봤는데, 꽈리 고추가 그렇게 괜찮더라고요.”

“예. 튀김의 느끼한 맛을 거의 잡아주니까요.”

유명 텐동집을 참고한 것도 있었지만 이게 설마 단호박 국수랑 어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맵단 맵단도 좋은 조합이긴 하지.

“단호박 국수는 잠시 보류하세요. 당분간은 장사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니까요.”

“예.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직원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남편이랑 사촌 동생이랑 셋이서 하기로 했어요.”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첫 면접은 무난히 넘어갔다.

그다음이 조금 난감했는데, 흐어, 이 아저씨 박력이 넘치네.

버거 샌드라고 하는데 그냥 토스트에 가까웠다.

문제는 특이한 조리 방식!

식빵에 햄 두 장과 치즈 한 장을 올린다.

그 위에 채 썬 양배추를 한 주먹이나 덮더니 소스를 잔뜩 뿌리더라.

여기에 식빵 한 장을 덮고 철판과 토치로 불 맛을 낸 큰 고기 패티와 채 썬 사과, 마지막으로 다시 소스를 바른 빵으로 마무리했다.

“유명한 3단 토스트 느낌이네요.”

“예. 여기에 스테이크 맛이 나게 불맛과 소스를 강하게 썼습니다.”

“너무 강렬해서 혀가 얼얼할 정도인데요?”

“사나이라면 이 정도는 과감하게 씹어줘야죠.”

으으, 조금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남자는 뭐, 다 매운 거 화끈한 거 잘 먹어야 하나?

하지만 엘리오스 마을 전용 스테이크 버거라고 했고,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일단 통과시켰다.

이 푸짐한 사이즈가 4,500원이라면 거의 은혜로운 음식에 가까웠으니까.

약간 놀란 건, 이 식당 역시 번화가에서 인기 있다는 점이었다.

추천한 건, 1구역 대표 이철구.

바로 이예지의 아버지였다.

‘이거 1구역하고 2구역하고 경쟁하는 건가?’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다. 애초에 국수랑 토스트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으니까.

어쨌든 다들 포지션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버거 샌드의 경우 누룽지 밥버거와 비교했을 때 거의 양식 쪽에 가까웠던 것이다.

어쨌든 식당 두 곳을 더 받자마자 곽준열 삼촌한테 일거리를 떠넘겼다.

마침 박정철의 가게 공사가 다 끝났기 때문이다.

* * *

“오오~ 깔끔하네.”

“생각보다 공사가 빨리 끝났거든. 그래서 이래저래 장식도 좀 했지.”

“장식치고는 너무 없는 거 아냐?”

한쪽 벽을 채운 건 가격이 적히지 않은 커다란 메뉴판이었다.

맞은편에는 족발과 뼈해장국 사진이 전부였고.

그 이유가 단순했는데, 밑에서 뜯어온 벽체를 박아서 조립을 하니 공간이 남아서란다.

“식당은 맛으로 승부해야지.”

“변명이 궁색하다! 그런데 메뉴는 정한 거냐?”

“점심에는 뼈해장국. 오후에는 온족발하고 막국수 할 거야.”

“확실히 족발에는 막국수긴 한데…….”

비빔 곤약 국수와 포지션이 약간 겹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통 국숫집은 비빔도 국물이 자작한 편이니 조금 결이 다르긴 했다.

“정 애매하다 싶으면 비빔국수는 국숫집에서 따로 주문하라고 해야지.”

“그래도 괜찮겠어?”

“돌아다니면서 다 먹어봤는데 겹치는 맛은 없더라고.”

“다 계산하면서 받았거든. 근데 족발은 언제부터 될 것 같은데?”

“뭐? 급해?”

박정철이 묻는데 솔직히 대답하기가 꺼려졌다. 아까도 라이노스 장로와 엘프 전사들이 찾아와 족발을 재촉한 것이다.

진짜 육식에 환장한 엘프들 같으니라고.

짬뽕 국밥으로는 성이 안 찬다며 고기 고기를 내놓으라더라.

어쨌든 박정철의 영입은 신의 한 수가 될 터.

확실히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보증금도 받았고 피해보상금으로 작년 리모델링 비용이 거의 다 들어왔다고 했다.

그걸로 식당을 좀 더 꾸미고, 좋은 재료를 준비하겠단다.

“걱정이 하나 있거든. 족발 가격을 못 정하겠더라고.”

“보통 소중대, 특대 이런 식으로 하지 않나? 그럼 만오천 원, 이만 원, 이만오천 원, 삼만 원 하면 될 것 같은데?”

“모르는 소리 하네. 요즘 족발 소자가 이만오천 원, 삼만 원 한다. 대자는 오만 원 받는 곳도 많고.”

“와! 물가 겁나게 비싸네. 그럼 그렇게 정하면 되지 않나?”

“그게, 여기서 정착도 해야 되고, 가게도 그냥 내준 데다가 공사비도 거의 안 들었고…… 좀 저렴하게 가도 될 것 같아서.”

박정철 이 자식.

은혜 갚은 족발집 사장이 되려는 건가?

아무래도 고맙다는 말이 민망해서 나오질 않는 모양이었다.

그걸 족발 가격을 낮춰서 갚겠다는 거겠지.

“아니, 그렇게 하지 말고. 가격은 제대로 받아.”

“그래도 될까?”

“차라리 쌈채소랑 겉절이 김치, 무말랭이 양을 늘리고, 막국수를 서비스로 주는 게 더 나을걸? 엘프들도 먹는 데는 진심이란 거지.”

매출이 오르는 만큼 수익 일부가 엘프들에게도 돌아가니 오히려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박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양을 늘리고 삼만, 사만, 오만으로 가면 되겠다. 막국수 포함해서 소자를 2.5인분 정도로 잡으면 되겠지.”

“그럼 언제부터 테스트해 보려고.”

“내일은 거래처 들러서 주문도 해야 하니, 족발은 모레부터 나올 것 같은데. 그날 와서 맛 좀 봐줄 수 있어?”

“어, 당연히 되지.”

거기에 맛봐 줄 사람, 아니, 엘프는 넘치도록 많았다.

벌써 군침 흘리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은 분명 착각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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