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족발.
한국인의 야식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음식이다.
다섯 살배기 아이도 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고, 인터넷 검색만 해도 관련 자료가 수백 페이지가 넘게 나올 정도였다.
쉽게 풀이하면 돼지 다리를 양념 된 국물에 삶는 요리다, 라고 나온다.
어떤 국물에 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최근에는 후처리, 다진 마늘을 올린다든가 간장에 볶거나 매운 양념에 버무리기도 했다.
“나는 거의 간장 족발에 가깝다고 해야겠지.”
박정철은 그렇게 말한 뒤 재료들을 꺼내 놨다.
간장, 맛술, 물엿, 흑설탕, 계피, 월계수 잎, 대파, 무, 마늘 등등, 정말 많은 재료들이 올라오더라.
“진짜 뭐가 이렇게 많냐?”
“족발은 거의 한 방 조리라고 보면 돼. 삶으면 거의 끝인 것도 있으니 다 때려 넣는 거지.”
“그건 이해했음.”
“그리고 씨간장이니 종갓집 간장이니 하는데, 일반 가정에선 그런 걸 구할 수 없잖아.”
“그렇긴 하지.”
“방송 같은 데는 편법으로 쌍화탕이나 배 음료 같은 걸 넣기도 하거든. 결국 포인트는 잡내 제거와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거지.”
“그럼 연육제 같은 것도 쓰나?”
“그런 가게도 있는데, 난 그렇게는 안 하지. 최대한 꼼꼼히 손질하는 옛날 방식에 압력솥 비슷한 걸 써. 연육도 과일을 넣는 편이고.”
박정철은 뚜껑 달린 커다란 들통을 화구에 올렸다. 크기가 상당해서 행복 분식에서 쓰는 육수통하고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소량으로 할 거면 그냥 압력솥에 하면 되는데 최소 스무 족 정도를 삶을 거거든. 그러니 이 정도 사이즈는 되어야지.”
“근데 뚜껑 완전히 덮으면 터지지 않나?”
“그래서 삼십 분 동안 열 번 정도 살짝 열어서 확인하지. 중간중간 화력도 보고 증기도 조금씩 빼주고 하면서.”
박정철이 설명하길 20분은 고화력으로, 또 15분은 중불로 삶다가 마지막에는 잔열로 뜸을 들인다더라. 약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압력솥의 특징상 그 정도가 적당하다면서 말이다.
안 그러면 너무 물러진다나?
“원래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리는 건 족발 손질이거든. 근데 우리는 육수부터 우릴 거야.”
“앵? 말이 앞뒤가 다른데?”
“첫 육수라서 다 골고루 녹아들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거든.”
“그럼 너도 삶은 물을 계속 쓰냐?”
“당연히 졸아드니까 계속은 못 쓰지. 기름 걷어내면서 빠지는 것도 있고.”
“보통 얼마 정도가 남는데?”
“절반 조금 더? 그래서 육수를 두 통을 만들어. 한 번 삶은 다음 조금씩 추가해서 간을 맞추는 식으로 작업하지.”
“그걸 매일 하는 거구나?”
“삶기 전에 한 번, 삶고 나서 불순물 건지고 한 번, 퇴근 전에 한 번, 이후 식혀서 대형 냉장고에 옮겨 넣고 또 출근해서 한 번 더 확인하지.”
유현성은 약간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충 삶기 전에 간을 맞춰서 끓이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꼼꼼히 관리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하아~ 이것도 더럽게 까다롭구나.”
“흐흐흐,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그렇게까진 안 하지. 아직 내가 실력이 부족하니까 섬세하게 맞추려고 그런 거야.”
“혹시 상할까 봐. 자주 끓이는 거야?”
“여름 같은 경우만 제외하면 한 3~40분 정도 천천히 식힌 다음 면포 덮고 뚜껑 닫아서 냉장 보관만 잘하면 어지간하면 변질될 일은 없어. 거기다 팔팔 끓이면 세균 같은 건 다 죽지.”
“확실히 나도 배울 때 알아보니까 식중독균 같은 건 30분 정도만 삶아도 거의 소독된다고 하더라. 그래도 조심하긴 해야 하니까, 난 당일 만들어서 그날 다 소진하면 영업 마치기로 했거든.”
“그게 제일 좋긴 하지.”
박정철은 뭔가 아쉽다는 얼굴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마솥으로 하려 했거든. 한 번에 많이 삶을 수 있고, 재료도 많이 넣을 수 있어서 육수도 잘 뺄 수 있단 말이지.”
“엉? 족발을 가마솥에 삶는다고?”
“대부분 공장에서는 그렇게 해. 그걸 식혀서 진공 포장한 다음 인터넷으로 파는 거야.”
“아! 대량 조리를 해야 하니까?”
“그렇지.”
개인 식당만 떠올렸지 공장식 제조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전기 가마솥의 경우는 온도 조절도 편하긴 한데, 그건 나중에 장사 잘되면 해보는 거고. 당분간은 번거롭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스무 족이면 보통 몇인 분이지?”
“당연히 족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한데 보통 족발집 가서 대자 시키면 큰 뼈 하나가 나오잖아. 뼈 무게 제외하고 살만 250g 정도 잡아.”
“그게 많은 건가?”
“삼겹살집 가면 1인분에 120g~150g 정도 되는데 성인이면 보통 2인분은 먹잖아. 다른 반찬을 먹는다고 해도 적은 양은 아니지. 거기다 뜯어먹는 단족 자투리도 몇 개 들어가니까 실제 중량은 더 많고.”
대충 이해가 가는 설명이었다.
편의점 1인 족발 도시락이 고기만 따졌을 때 200g 수준이라 했다. 여기에 비빔 막국수까지 추가라면 고기에 환장한 엘프들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닐 거다.
“일단 재료부터 넣고 육수를 우리자고.”
박정철은 액상류의 양념과 조미료는 그대로 물에 풀고, 채 썬 사과와 배, 그리고 파, 마늘 같은 종류는 망에 넣었다.
그것도 뭔가 순서가 있는 것 같았는데 설명해주진 않더라.
“이건 노두유, 커피 가루, 여기에 콜라를 추가해서 색을 내는 거야. 간장이나 흑설탕, 물엿만 쓰면 많이 자극적이거든.”
“캐러멜 색소는 안 쓰나?”
“색을 내는 데는 좋은데 한때 유해성 논란이 있어서 우리도 노두유로 바꿨어.”
“흐음, 확실히 대체할 게 있다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건 피하는 게 좋겠지.”
박정철은 들통에 육수가 우러나는 걸 확인한 뒤 한참이나 물에 담가둔 생족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최소 두 시간 이상 담가 놓고 중간에 물도 두 번 갈아야 잡내가 거의 안 나. 그리고 이거야 흔히 알려진 방법이니까, 면도칼로 털 다 깎고, 토치로 태우고…….”
근데 그걸 한 시간 가까이 꼼꼼하게 작업하더라.
옆에서 유현성이 도와주는 것도 계산하면 하루에도 두어 시간 이상은 매달려야 된다는 의미였다.
“이제 삶기만 하면 끝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헹궈낸 족발을 들통에 담고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거품이 올라올 때쯤 뚜껑을 덮고 걸쇠로 고정했다.
“으어, 이거 위험한 것 같은데?”
“안 터지니까 괜찮아.”
살짝 들썩들썩할 때마다 박정철은 뚜껑을 살짝 열어 압력을 뺐다. 그러면서 긴 스테인레스 포크로 족발을 찔러 익힘 정도를 확인하더라.
“이제 시간 다 됐다. 잠시 식혔다가 나가기 직전에 썰어놓고 육수통 위에서 증기 한 번 쐬어주면 끝나.”
“이게 내가 아는 방식은 아닌 것 같은데?”
“원래 족발은 가게마다 스타일이 다른 거야. 냄새 안 나고 부드럽고, 맛있게 삶기면 되는 거라고.”
박정철이 말하길, 자신이 돌아본 가게들만 열 곳이 넘는단다. 그런데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 같은 방식으로 조리하는 곳은 못 봤다는 것이다.
“아! 있기는 있다. 식품 회사에서 납품받는 데는 비슷하긴 하더라.”
“조리된 걸 받아서 썰어서 파는데?”
“그것도 그냥 포장하는 건 아니고, 조금씩 양념을 추가하더라고. 아니면 소스를 따로 판매하든가.”
“으음. 족발의 세계도 심오하구나. 네가 가르쳐준 차슈보다는 까다로울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이것도 제법 난이도가 있네.”
“원래 요리라는 게 깊게 파고들수록 더 어렵다고 하더라고. 일단 맛봐야 하니까 한쪽만 썰어볼까?”
박정철은 면장갑에 조리용 장갑을 덧낀 뒤 집게를 들었다.
그걸로 한쪽을 고정한 다음 끝에서부터 조금씩 썰어 가는데 확실히 속까지 잘 익었는지 색상이 먹음직하더라.
“진짜 압력솥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이 정말 야들야들하고 부드럽더라고.”
말 그대로였다.
탱글탱글보다는 쫀뜩쫀득하다고 해야 할까?
칼질을 했음에도 바깥의 비계 부분이 다시 달라붙을 정도였다.
특히 한방 족발과 다르게 약재 향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간장의 달짝지근함이 강하게 다가왔다.
“적당히 짭쪼롬한 게 술이랑 마시기 딱이겠는걸?”
“오! 눈치챘구나. 맞아. 주로 소주가 나가서 알코올에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하거든.”
“확실히 이 정도 간이라면 쌈으로 먹어도 괜찮을 것 같고.”
“그것도 있지만 중요한 건 2차, 3차 손님들도 온다는 거야. 너무 향이 약하면 싱겁다고 겉절이를 엄청 먹거든. 그럼 족발이 아니라 김치로 술 마시는 게 돼.”
흐음, 이런 부분이 포장 족발과의 차이 같았다. 족발로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안주로 먹는 셈이니까.
“당장은 아니지만 이걸 베이스로 시작할 거야. 어차피 마늘 족발이나 불족발도 약간의 양념 추가만으로 향을 만들 수 있거든.”
“여기에 양념까지 바르면 너무 강하지 않을까? 그냥 소스로 따로 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오!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괜…….”
갑자기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정면 유리쪽에 달라붙은 건 라이노스 장로, 그 뒤로 십수 명의 엘프들이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어제 지나가다 슬쩍 흘린 말이 떠올랐다.
분명 오늘 오후 정도라면 족발이 어느 정도 나올 것 같다고.
그건 고기에 대한 라이노스 장로의 집착 때문에 무심코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저들을 보니, 식지도 않은 족발조차 뼈째로 뜯어 먹을 것 같은 열망이 느껴졌다.
물론 그 무리 중에는 행복 분식과 인근 식당 식구들도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족발을 한 번 더 삶아야 할 것 같은데?
* * *
“지화자~ 좋구나.”
라이노스 장로는 족발과 소주에 흠뻑 빠지면서 정신까지 어디론가 빼 버린 것 같았다. 민속촌에서나 볼만한 춤을 덩실덩실 춰댔던 것이다.
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운 거지?
특히 놀란 건 손강희였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족발을 뜯는데, 마치 해부하는 듯한 눈빛에 가까웠다.
“왜? 족발 맛이 이상해?”
“아뇨. 우리 가게 신메뉴 고민하고 있었어요.”
“누룽지 밥버거에 족발을 넣자고?”
“그게 아니라 겨울 지나면 전포제 하잖아요.”
아! 생각해 보니 손강희도 나가보고 싶다고 했었지?
“안 그래도 목살 김치찌개 하나로는 좀 버거운 느낌이 있어서요. 저녁 안주용 메뉴를 추가해야 하는데 몇 개 뽑아놓은 게 있거든요.”
“설마 김치찌개에 족발을 넣겠다는 건 아니겠지?”
“찾아보니까 있기는 있더라고요. 그걸 좀 더 개량하면 될 것도 같고.”
“너무 모험 같은데 좀 위험하지 않을까?”
유현성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손강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스팸은 흔해서 패스, 그러다 순대 김치찌개를 해봤는데…….”
그게 될 리가 있나 싶다가 뭔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장사할 때, 매운 라면에 순대를 넣어 먹는 손님도 있었다.
분명 라면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한다고 그랬었지?
심지어 그걸 아주 맛있게 먹기까지 했었다. 물론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목살 김치찌개에 기름기만 좀 빼고 칼칼하게 하니까 제법 괜찮더라고요.”
“진짜?”
“부산 사람들이야 대부분 돼지국밥을 먹지만,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순댓국 많이 먹어요. 거기서 답을 찾긴 했는데 뭔가 임팩트가 약하더라고요.”
“근데 족발은 뼈에서 육수가 나올 텐데, 그럼 더 기름기가 많지 않나?”
“살 부분만 써야죠. 사실 한방 족발은 김치찌개랑 겉도는 느낌인데, 이 족발은 간이 강하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해서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그림이 되더라.
바닥에 김치를 깔고 한쪽에 두부, 한쪽에 목살, 한쪽에 족발을 올리면?
식사가 아닌 저녁 술안주로 본다면 전골에 가깝게 되겠지. 그럼 찌개 국물이 메인이 아니니 족발 살이 흐트러지지 않을 테니 먹기 불편하진 않겠지.
“족발 전골이라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죠?”
“도전해보는 거야 나쁘진 않지.”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자 손강희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거 배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