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03화 (103/156)

103화

“야, 네가 왜 여기서 족발을 썰고 있냐?”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김길우도 약간 지쳤는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도무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오히려 너무 생소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랄까.

쓱, 탁, 뽀각, 뽀각.

서걱, 서걱. 다다다다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족발 한 접시가 나오는 게 아닌가.

황당한 건 박정철보다 더 잘 자르는 것 같더라. 역시 칼잡이 출신은 다르긴 다르구나.

“오빠, 아는 사람?”

“일단은 아는 사이이긴 한데 족발을 썰고 있을 애는 아니지.”

엘리스에게 대답해 주자 김길우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족발 썰고 있을 사람은 아닌데 지금 썰고 있네요. 방금 이상한 사람이 왔다 갔으니까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아! 이상한 이상도겠지.”

엘리스에게 족발 좀 먹고 있으라고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더니 예상대로 이상도는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 김치와 무말랭이 같은 밑반찬만 던져놓고 뒷문으로 튀어 버린 것이다.

“하아…… 이놈, 어떻게 예상을 한 치도 안 벗어나냐.”

“어? 왔어?”

박정철이 손을 흔드는데 서너 시간 만에 팍삭 늙은 것 같았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거겠지.

하긴, 홀에 빈자리가 하나밖에 없었고 설거지거리가 한가득 쌓여 있었으니 정말 바빴던 모양이었다.

“근데 쟤는 왜 저기서 족발 썰고 있냐?”

“그게…… 사과하겠다고 손님으로 왔는데 같이 온 아저씨가 제대로 하라고, 한손이라도 거들어 주라고 하더라.”

아마 우현필이겠지?

“그럼 그 아저씨는?”

“소주 네 병 마시고 안쪽 창고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어.”

“뭐? 인당 한 병만 팔라고 했잖아?”

“둘이서 와서 맥주 한 병, 소주 한 병씩 시켰다가 맥주 반품하고 소주로 바꿔 간 거지.”

“오~ 그런 편법이.”

“종곤 형님이 알려주더라? 근데 그 아저씨 혼자 소주 네 병이나 마실 줄은 진짜 몰랐어.”

박정철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고작 소주 네 병에 쓰러질 사람이 절대 아닌데?”

“모르지.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고, 하여간 취해서 밖에 나가더니 우리 족발 맛있다고 고래고래 소리까지 지르더라니까.”

“에잉?”

“막 손님들 끌고 오는데 족발 미리 넉넉하게 삶아 놓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어라? 원래 나서고 그러는 스타일도 아닌데?

“그러더니 취해서 저 친구한테 여기 바쁘니까 족발 써는 거나 도와주라고 하고, 잘 곳 없냐고 물어보더라고.”

“대충 알겠다.”

아무리 봐도 이건 우현필의 장난(?)이었다.

대충 말로 때우는 성격이 아닌지라 고의로 취한 척 들어간 거겠지. 당연히 혼자 남아 뻘쭘해진 김길우는 뭐라도 거들겠다고 했을 테고.

“근데 족발 써는 거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잖아?”

“원래 칼 다루는 게 능숙했대.”

“……윽!”

나와 싸웠을 때 단검이 원래 본체였는데……! 그럼 자기 몸으로 족발을 썰고 있단 소리잖아?

갑자기 식욕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무슨 생각 하는지 아는데, 그런 거 아니거든요. 단검은 평소에도 이런저런 쪽으로 쓴다고요.”

김길우가 해명하듯 말하는데 솔직히 약간은 의심스러웠다.

“아, 씨~ 아니라고!”

“알았어. 알았다고.”

“하여간 대자 두 접시 다 썰었어요.”

김길우는 아직도 김이 올라오는 족발 접시 두 개를 주방에 넣고 돌아갔다.

거기에 박정철이 김치와 무말랭이를 올리고 쌈채소와 콩나물국을 더한 뒤 미리 준비한 마늘, 고추, 새우젓 등을 더해서 내밀었다.

그걸 서빙 알바하는 여자 엘프가 들고 나갔다.

“진짜 바빴겠네.”

“오늘은 날이 날인 만큼 족발도 미리 준비했지만, 앞으로 점심에는 뼈해장국만 할 거야. 아무래도 그게 맞겠더라고.”

“그래도 되려나?”

“하루 족발 두 번 삶는 거하고 밑반찬 준비하는 거 힘들어. 그리고…….”

박정철은 갑자기 목소리를 확 낮췄다. 뒷말은 거의 소곤거리듯 중얼거린 것이다.

“으으, 족발에 환장한 엘프들이라니 감당하기 어렵다고.”

“아! 그것도 있구나.”

“그래도 오늘 테스트해 봤으니, 직원도 좀 더 충원해야겠더라고.”

“오, 체크. 체크.”

그 직후, 갑자기 손강희가 생각났다.

“혹시 사람 뽑으면 족발 삶는 거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아는 동생이 배우고 싶어 한다는데.”

“흐음, 너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은 좀 그런데.”

“강희라고 2호점 하는 애가 있는데 음식도 조금 하거든.”

“아? 나도 알지. 근데 족발 배우고 싶대?”

“어, 자기 집 신메뉴에 응용하고 싶다 하더라고.”

대충 족발 전골에 대해 설명하니 박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소량 한정판매니까 상관없긴 한데, 근처에 다른 족발집 없어?”

“그쪽에도 있었는데, 지금은 접은 것 같더라고.”

이건 김요성 대표가 알려준 내용이었다.

원래 자기 건물에 족발집이 있었는데, 위생이 너무 개판이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도 잘 안 돼서 몇 번 주의를 줬다고 했다.

그럼에도 고쳐지지 않자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되냐고 물었더니 김요성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미친 족발집 사장이 건물에 입힌 피해가 너무 컸단다. 족발 기름기를 업체를 불러 처리하지 않고 하수구에 몰래 버리는 바람에 그거 뚫는다고 수백 깨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역류까지 하는 바람에 몇몇 식당은 며칠 장사도 못 했다고.

그걸 요리에 진심인 김요성 대표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현성아. 이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족발 골목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원래 족발집 근처에 또 족발집을 차리진 않거든.”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나도 아버지한테 들은 건데, 옛날에는 이쪽에도 계보가 있었대. 장충동 라인도 있고, 한방 족발 라인도 있고, 거의 알음알음 가족끼리만 전수했다더라고.”

“뭐 그때는 육수 비법도 몇천만 원에 팔리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래서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라고 비슷한 계열끼리는 피했거든.”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족발집 옆에 족발집은 피하는 게 좋아. 거의 반드시라 해도 좋을 만큼 한 곳은 망해서 나가니까.”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이해가 되더라.

박정철 본인도 그래서 가게 옮길 결심까지 한 거니까.

“일단 강희는 주방 직원으로 쓰면서 가르치면 될 거고. 혹시 주변에 칼 잘 쓰는 사람 있냐?”

“왜? 족발 자를 사람?”

“아무래도 주방하고 동시에 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저기 있네?”

김길우를 쳐다보자 박정철이 피식 웃었다.

각성자에, 갈매기 길드의 간부 자리를 노리는 사람을 족발 직원으로 쓰는 건 아니다 싶어서겠지.

“강희가 주방을 보고 네가 썰면 되잖아.”

“체력적으로 힘들 텐데? 무거운 거 많이 날라야 되거든. 제대로 사람 구할 때까지.”

“흐음, 확실히 그런 부분은 있지.”

어느새 나타난 우현필이 크게 하품을 했다.

술 냄새 하나 안 나는 걸 보니 역시 취한 척 한 건 연기였다.

“하아암~ 내가 적당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는데. 손이 좀 매서워. 그래도 괜찮겠나?”

“체력은 좀 되어야 합니다.”

“원래 도축 일하던 양반인데, 아무려면 그쪽보다는 족발이 여유로울 거야.”

“그럼 소개시켜 주세요.”

“단점이 딱 하나 있는데, 칼 들고 있을 때 말 걸면 안 돼.”

박정철은 조금 황당해했다. 식당에서 말 걸지 말라니.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대신 칼질 속도가 엄청나지. 붓으로 치면 일필휘지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좀…….”

그때 우현필이 턱짓으로 김길우를 가리켰다.

“저 녀석 칼질 사부거든.”

* * *

우물우물. 우걱우걱.

엘리스는 볼이 터져라 족발 쌈을 입에 넣었다.

“맛있어?”

끄덕끄덕.

“왜 엘프들은 그렇게 족발을 좋아하는 걸까?”

“족발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맛있는 걸 좋아하는 거야.”

“입에서 침 튄다.”

꿀꺽.

“이거 포장해 가도 돼?”

“삶아 놓은 게 있는가, 주방에 물어봐야지.”

정말 다행이었다.

박정철이 딱 대자 하나가 나올 양만큼은 남아 있단다. 그리고 여왕님 특전으로 비빔 막국수에 이것저것을 더 챙겨줬다.

이제 엘리스가 먹을 걸로 행복해하는 시간만큼 여유가 생겼다.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우웅, 우웅.”

가볍게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우현필을 찾았다.

또 김길우를 갈구고 있더라.

“예? 나보고 그 인간한테 연락하라고?”

“그래도 사부인데 그 인간이라니.”

“허, 내가 두들겨 맞은 것만 365일 곱하기 100대 정도 될걸.”

“그만큼 싸가지가 없었으니까.”

“못해요. 아니, 안 해요.”

김길우가 휙 고개를 돌리는데 우현필이 주먹을 가볍게 들었다.

“기왕 사과할 거면 제대로 하자.”

“그거랑 이거랑 다르죠.”

아무래도 뭔가 원한 같은 게 있는 모양인데, 중요한 건 내가 바쁘다는 거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까 말한 그 양반한테 전화하니까 안 받더라고. 나랑은 좀 앙금이 있어서.”

“싸웠…… 어요?”

“나한테 술 취해서 칼 장난하기에 그냥 몇 대 팼지. 결국 다른 길드랑 합칠 때 탈퇴하고 나가더라고.”

그때 김길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와! 몇 대 팼는데 사람이 반년을 입원해?”

“쯔, 그래서 니네가 어리다는 거야. 상대에게 칼붙이를 겨눈다는 건, 죽을 각오를 했다는 거다. 뭐, 그때는 나도 제대한 지 얼마 안 돼서 좀 거칠긴 했지만.”

“일주일 넘게 기절해 있었는데?”

“됐고, 내 연락은 안 받아도 이 녀석 연락은 꼬박꼬박 받거든.”

대충 무슨 이야기인 줄 알 것 같았다.

우현필도 돌려서 그 일을 사과하고 싶다는 거겠지. 그러니 적당한 핑계를 만든 것이고.

“그래서요?”

“이 녀석이 안 하겠다는 거야.”

“그럼 우리 식으로 해야죠.”

유현성과 우현필이 동시에 김길우를 노려봤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살기에 바로 폰을 꺼내 들더라.

역시 맞을 놈은 꼭 맞아야 일을 한다니까.

어쨌든 이 일은 그렇게 해결됐고.

“잠시 저랑 이야기하시죠.”

“안 그래도 나도 물어볼 게 좀 있어. 부길드장 왔다 갔지?”

“조용히 뒤로 가요.”

유현성이 앞서자 우현필도 천천히 뒤쫓았다.

식당가 뒤편에 작은 휴게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 자판기에서 믹스 커피 두 잔을 뽑았다.

“그 공소철인가 부길드장요.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던데요?”

“벌써…… 붙었나?”

“싸울 거리도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우현필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부길드장의 무서운 점은, 숙일 때를 잘 안다는 거야. 그리고 정보를 모아서 사람을 서서히 괴롭히는 거지. 가족이 갑자기 사고를 당한다든가.”

“제풀에 질려서 떨어지게 하는 방식이군요.”

“맞아. 저열하지.”

“이상하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

유현성은 아까의 일을 천천히 늘어놨다.

부산시장과 함께 투자 핑계로 들어오겠다고 했다고.

“정보를 모아 주변부터 압박해 들어가는 거지. 아마 자네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 순순히 물러갔을걸?”

“아, 굉장히 짜증 나는 스타일이네요.”

“내가 가족 이야기를 꺼낸 건 그래서야. 누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거기에 신경 쓰게 되니까.”

“그럼 어떤 방식이 좋을까요?”

우현필은 커피 한 모금 하면서 잠시 고민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타협하는 것도 괜찮지. 신중한 만큼 더 의심할 테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걸.”

“그건 싫은데요?”

“그럼 기반을 없애면 돼. 애초에 무력보다는 협상을 잘해서 부길드장이 됐으니까.”

“갈매기 길드를 박살 내라는 거죠?”

유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우현필은 크게 당황해했다.

“어? 이야기가 그렇게 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