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잠깐, 잠깐.”
우현필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
너무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에 유현성은 피식 웃고 말았다.
“왜요?”
“갈매기 길드는 부길드장 라인만 있는 게 아니야. 긴급히 게이트가 열릴 때를 대비해 수련에 임하고 있는 헌터들도 상당수라고.”
“그래서요?”
“그들과 함께하는 산하의 길드와 거기 딸린 식구들까지 포함하면 2만 명은 넘어.”
“포인트만 간단히.”
“그 많은 사람들을 전부 적으로 돌릴…… 아! 하긴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지.”
“에이, 누굴 학살자로 아나.”
맞잖아!
우현필은 그 말을 억지로 삼켰다.
자신은 행정보급관이었다. 당연히 게이트로 들어가는 군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는 임무도 겸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괜히 가장 무섭고 악랄한 부사관이 행보관이라 불리는 게 아닌 거다.
어쨌든 게이트 내부에서 소모되는 물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종종 동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게 됐다.
유현성은 실탄이 떨어지자 황당하게도 개머리판 하나로 수십 개체의 늑대형 마수를 압살했다.
그러다 부러지자 대검 하나 들고 나머지를 싹 쓸어버리더라.
지금은 비무장 상태지만 구했던 무기들 상당수가 국방연구소에 있었다.
또, 보고하지 않은 무기들도 제법 있다고 들었다.
그런 걸 들고 유현성이 살인을 하겠다고 난동을 부리면, 감히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우현필의 생각을 읽었는지 유현성이 말했다.
“여긴 사회예요. 살인은 큰 범죄고요.”
“어? 어어…… 그렇지.”
“박살 내겠다고 다 죽이는 미친 짓은 안 한다고요.”
그 말에 우현필은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냐, 유현성이 가진 수많은 별명 중에 하나가 ‘진지하게 미친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지.”
“예. 그래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일단 시간은 좀 있으니까 고민해보자고.”
“정말 당분간은 안 움직일까요?”
“음~ 그건 확실해. 원래 이상도 녀석처럼 찔리는 게 많을수록 잽싸게 몸부터 숨기잖아. 아마 쉽게 뭔가를 하기는 어려울 거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상도의 악명(?)이 옆 부대까지 퍼졌다니.
하여간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었다. 분명 은신술 스킬은 없는 걸로 아는데 숨으면 누구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전설로 남은 이야기가 있었다.
현재 아카데미 교장인, 당시 박순신 중령은 [야전 사령관]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소속 병사가 많을수록 전체 능력이 올라가는 반사기적인 능력.
때문에 머릿속으로 병사들의 배치와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는데, 황당하게도 이상도만은 찾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멧돼지 서너 마리를 나무에 묶어놓고 그 꼭대기 가지에 해먹을 매달고 잤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생물체 반응을 보고 수색했음에도 발견하지 못한 게 그래서란다.
‘하여간 그쪽으로는 정말 대단한 놈이야.’
그때가 생각나서 어이가 없어 웃는데 우현필이 물었다.
“근데 궁금한 게 있거든.”
“아! 예. 뭔데요?”
“아까도 봤지만, 정말 엘리스 여왕과…….”
“그만! 아니, 사람들이 왜 자꾸 그쪽으로 몰아가요? 아니라니까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그래, 알긴 알지.”
우현필도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유현성이 처음 엘프들을 데리고 나왔을 때 아주 난리가 났었다.
결국 이들은 편의상 ‘이종족’으로 분류했으며 협상이 완료되기 전까지 당분간 군부대 내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당시 유현성은 이끌고 나온 책임(?)으로 이들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때도 엘리스는 ‘오빠, 오빠’ 하며 꼬꼬마 동생처럼 쫓아다녔고, 유현성도 막내 여동생 생각난다면서 이것저것 많이 챙겨줬었다.
‘확실히 그때는 그랬었지. 하지만…….’
당시는 어린아이 같았으니 그런가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거의 성인의 외형에 가까웠다. 게다가 팔짱까지 끼고 돌아다니니까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현필은 엘리스의 진짜 나이를 알았다.
‘딸뻘로 보이는 애가 대충 100살 넘은 것 같다고 했을 때 정말 쓰러질 뻔했지.’
정작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거의 공식적으로 둘이 연애(?)한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정말!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정색하지 말고…… 그런 것치곤 여기 일에 너무 적극적이잖아. 그리고 부길드장을 그렇게 신경 쓰는 이유가 뭐냐?”
“일단 여기 식당가는 일종의 도전이죠. 사실 일 도와주면서 제가 요리 쪽으로 배운 것도 정말 많거든요.”
유현성은 그동안의 일을 최대한 간략하게 말했다.
각 식당을 선별하고 거기에 맞게 공사를 진행했으며 심지어 메뉴 개발까지 했다고.
하지만 우현필의 결론은 단순했다.
“돈이네, 결국 돈이야. 가게 월세도 안내, 다른 식당들이 버는 수익도 일부 가져가고, 이야~ 금방 부자 되겠어. 부럽다.”
“부럽긴요.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대신 평생 연금이잖아. 어느 정도만 갖춰놓으면 놀아도 돈이 나올 테고.”
“그래서 퇴직 이후 연금도 다 꼴아 박은 거죠.”
“얼마나? 그럼…… 나, 나도 좀 투자하면 안 되나?”
“저 2,000억 박았는데요?”
“미, 미친…….”
우현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짜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커피를 주르륵 흘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 * *
“2,000억이라…… 너무 세게 불렀나?”
사실 살짝 고민되긴 했는데, 고요환이 바로 OK를 불렀다.
그럼 충분히 된다는 말이었다.
일전에 잠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긴 했다.
아마 정부 지원금이 상당히 많이 나올 거라고.
그건 국무총리가 사심으로 적극 밀고 있어서란다. 부인이 엘프였으니까.
여기에 여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찬성했다.
지지율이 높은 소속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니까 눈치를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가 수백 번 이상 게이트로 들어가서 목숨 걸고 얻어낸 데이터가 있잖아.”
대한민국은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강했다.
막대한 데이트를 기반으로 정보 시스템화에 성공한 거다.
그걸 아직 준비가 안 된 여러 나라에 팔면서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상황이었다.
“뭐, 나는 그런 쪽으로는 전혀 모르니까. 군바리가 총질하고 게이트 들어가서 돌아보고 하다 보니, 그런 것만 알게 되는 거지.”
“에휴, 답답아. 미국 전략 위성의 설계도만 해도 최소 100억부터 시작해.”
“엄청나네.”
“그것도 달러다.”
잠시 계산을 해봤는데, 어질어질 하더라.
0이 세 개 더 붙으니 한국 돈으로 무려 10조나 됐으니까.
“그게, 그 설계도라는 게 그만한 가치가 있냐?”
“설계도만 완벽하면 제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아. 중국이나 인도 정도면 반년이면 충분할걸? 그리고 그렇게 만든 거 다른 나라한테 팔면 몇 배, 아니, 몇십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지.”
“그 정도나 되는 거야?”
“그것도 거의 최소치다. 유럽 쪽에 한번 돌리면 몇백조는 그냥 벌겠다. 아! 이것도 달러로.”
고요환은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게이트는 전 세계적으로 국가 재앙급 위기야. 나라가 망하거나 없어질 수 있는데 몇조 몇십조 쓰는 게 뭐가 문제겠냐.”
실상 내가 받아 가는 금액은 그리 큰 것도 아니란다.
미국의 시스템의 경우 우리보다 네 배 이상 비싸고, 개발자들 수익이 내 20배가 넘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네 경우는 오히려 정부에서 적게 주고 있다는 거지.”
우리나라가, 그리고 헌터청이 거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란다.
그 수익으로 헌터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으니까.
또, 그 돈으로 임무 중 사망한 군인들에게 몇 억씩 위로금을 줄 수 있으니 나라가 이만큼 버티고 있는 거라고.
해서 2,000억을 질렀다.
한동안 내 퇴직 연금 안 받아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불렀는데, 바로 됐던 게 그래서겠지.
* * *
“지, 진짜 2,000억을 박았다고?”
우현필의 목소리가 덜덜 떨려댔다.
반대로 유현성은 고개만 까딱 숙일 뿐이었다.
“미친 거 아냐?”
“전부 제 돈은 아니고요. 정부 사업! 그 한쪽에 슬쩍 걸친 거죠.”
“그, 그렇지?”
“참나, 분식집 하는 데 그런 큰돈이 어디 있어요?”
“왜, 너 정도면 게이트 수당만 몇십억 될 텐데?”
예에, 그 돈으로 빚 갚고, 우리 집 사고, 분식집 사고, 또 내 집도 샀답니다.
생각해 보니 진짜 목숨 걸고 번 돈이네?
“하여간 따지면 얼마 안 돼요.”
“그럼 나도 투자하면 안 될까? 아는 사람들하고 길드 애들 일부하고, 이래저래 모으면 4~50억 정도는 가능할 텐데.”
“안 됩니다!”
“왜 안 돼?”
“외부 투자 받으면 완전히 제 마음대로 못하잖아요.”
유현성이 단호하게 자르자, 우현필은 노골적으로 투덜댔다.
“쳇, 그래서 부길드장이 신경 쓰였던 거냐?”
“그런 것도 있는데, 아시잖아요. 제 직감요. 그게 자꾸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서요. 미친 척 강하게 나간 것도 그래서죠.”
이 ‘직감’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무수한 경험과 세월을 겪으면서 형성된 일종의 데이터가 보내는 경고에 가까웠다.
농담 삼아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좋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 역시도 그냥 기분으로 찍어대는 수준이 있는가 하면, 진짜 많은 사람을 만나서 쌓인 경험으로 나오는 게 있었다.
굳이 이건 이렇다 정의 내리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냥 느낌이 오는 거다.
특히 유현성의 직감은 언제나 정답에 가까웠다.
수천 년을 살아온 베나레스를 통해 얻게 된 경험 때문.
“이상하게 자꾸 찝찝해서 그러는 거죠.”
“그럼 이쪽은 내가 따로 알아보지. 그게 맞겠다.”
“그리고, 제가 엘리오스에 투자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뭐? 뭔데?”
우현필이 호기심을 드러내자 유현성이 씨익 웃었다.
“그건 비밀입니다.”
* * *
집 앞에 게이트가 생겼을 때.
뜬금없이 백곰족이 도움을 청했을 때.
뭔가 조금 불길했다.
분명 수도권을 중심으로는 대부분 안정화가 됐다.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조기 경보 체제로 인해 큰 불안감에 떨지 않게 된 것이다.
이후 광역시 주요 상업 지역, 혹은 인구 밀집 지역에 경보 체제가 도입되었다.
대기의 이상 현상과 특이 파장 발생 시 바로 출동 가능하게 된 거다.
여기에 막대한 데이터로 인해 게이트의 특징을 잡아 대략적이나마 어떤 형태의 몬스터들이 나올지도 예측할 수 있었다. 즉, 헌터들의 대응 방식이 보다 빨라졌기에 큰 피해를 줄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지.”
정말 고요환 말대로 3차 변이가 생길지도 모를 일.
문제는 예전과 다르게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거였다.
우리 강 여사님, 현지, 현아.
정호석, 임혜리, 임수원을 비롯한 행복 분식 식구들.
여기에 덕순 할머니와 태수, 그리고 같이 일하는 성남 삼촌과 혜진 이모, 딸 은희까지.
분명 내가 챙겨야 했다.
여기에 금치수와, 이제는 오다 가다 마주치면 인사하는 거기 식품회사 사람들.
매정하지만 민혁이는 자기가 알아서 할 거다.
그 외에도 고물상 박씨 아저씨네와 시장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렇게 사회로 나와서 새로 많은 인연을 맺게 됐다.
아마 그들 중 누군가 죽거나 다치면 분명 슬프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 혼자선 그들 전부를 지킬 수 없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안전한 대피소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