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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07화 (107/156)

107화

“으아~ 정말 지옥 같은 일정이었지.”

진짜 진저리가 날 정도로 지긋지긋했다.

첫날,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오면 씻고 장비 손질 등을 한 다음, 각종 서류를 작성하며 하루를 보낸다.

다음 날은 게이트에 들어갈 것을 대비해 또다시 준비를 한다. 이전 작전의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화기 부대를 편성, 마지막으로 장비 점검을 하는 것이다.

사흘째, 게이트 투입.

병사들과 함께 손발을 맞춰가며 조사반을 지켜내기 위해 마수들과 전투를 벌인다.

물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기는 했다.

게이트 안팎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였다.

하지만 그 역시 오차범위 이내.

통상 빠르든 늦든 네 배 이상 차이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그 지랄 같은 과정이 쉼 없이 반복된다고 생각해봐. 사람이 안 미치고 배기겠냐고.”

“진짜 일정이 그렇게 짜여졌다고요?”

“어. 시간, 날짜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구르고 굴렀다고. 그러니까 내가 전역하고, 그쪽으로는 오주…… 흠흠. 하여간 그랬지.”

그 정도의 강행군이면 당연히 감정의 마모가 극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특별 대우를 받는, 게다가 까라면 까야 하는 군인이기에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결국 절반 정도는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 많은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역을 신청하더라.

“하, 미친 거지. 정말 미친 짓이었어.”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강행군이었다.

더군다나 상당수가 최면에 걸린 듯, 자신들이 실패하면 가족들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적인 재난 상황을 수시로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옆 나라 일본은, 아주 온 사방이 펑펑 터져 나가는 중이었다.

자위대가 병신임을 전 세계가 알아 버릴 정도로 그냥 쓸려나가더라.

거기에 더해서 절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공무원들 특성상 게이트가 생기고도 출동까지 사흘이나 걸리는 어이없는 일까지 겹쳐 버렸다.

그 결과 게이트가 터져 버렸다.

방어선을 설치한 주요 도시를 제외하고 무수히 많은 외각 마을들 대부분이 소멸 직전까지 가버린 것이다.

“서일본 최대의 도시라는 오사카시가 무려 일주일이나 전기가 끊길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뭐.”

미국, 중국, 인도.

막강한 전투력을 가진 이들 국가 역시 초비상 상태였다. 어마어마한 땅덩어리를 가졌기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많았고, 결국 게이트가 터져 몬스터들이 쏟아지기 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사막 지형이 형성된 게이트의 경우 몬스터들이 이동하다 알아서 죽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대도시 인근에 생겼을 때는 달랐다.

미국은 전투기를 동원했고, 중국은 전차로 밀어 버렸으며, 인도는 그냥 미사일을 쏴 버렸다.

거의 화력으로 밀어붙여 버린 것이다.

유럽도 거의 비슷하게 대처했다.

강제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아예 인터넷 자체가 되지 않는 오지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지닌 마력만으로 미사일에도 버티는 정말 오버급의 몬스터들도 존재했으니까.

거기에 몬스터들도 진화를 하는지 보스들은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도 있었다.

“재앙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지. 그 최종 보스급의 몬스터가 도시에 들어서면 고화력을 쏟아부을 수 없으니까.”

도심에 들어선 몬스터에게 미사일을 쏜다?

그 말은 곧 그 일대 사람들의 생명을 포기하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특히 중국, 인도 같은 국가들을 제외하면 다들 인권을 강조하는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병사들을 동원하거나 이전보다 약한 화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사일 집중 타격을 이겨낸 몬스터에게 그게 얼마나 효력이 있겠는가?

유일한 대처는 미리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도시 내부에서 시간을 끄는 것밖에 없었다. 그사이 주변 국가들의 협조를 받아 각성자들을 모아 토벌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각국 정부가 아무리 은폐하려고 해도, 거의 준전쟁급의 사건이 벌어지면 그게 불가능해. 그리고 우리는 그런 영상을 거의 필수적으로 봐야 했거든.”

“일종의…… 세뇌네요.”

“표면상은 정보 교육이었지. 하여간 수시로 그런 걸 보다 보면 맨정신일 수가 없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 영상은 더 끔찍했다.

몬스터 무리, 혹은 거대 몬스터가 도시를 유린하면서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걸 고스란히 보여준다.

피륙이 갈가리 찢기고, 산 채로 먹히는 것까지 가감 없이.

그런 걸 볼 때마다 처음 게이트가 터졌을 때가 떠올랐다. 반쯤 정신이 나가 마구 총을 갈겼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말이다.

그때 엘리스가 가만히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당겨서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대려고 하더라.

순간 움찔해서 바로 손을 뺐다.

“엘리스, 갑자기 왜 그래?”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뭘, 하려는지 알겠는데, 그러지 마.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니까.”

자기 딴에는 공감해주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지만, 나조차 가까스로 묻어뒀던 기억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그 일부라도 본다면 아마도 반쯤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물론 엘리스는 전혀 평범하진 않지만.

그래도 굳이 위험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바로 말을 돌렸다.

“크흠, 하여간 빨리빨리의 민족 아니랄까 봐. 우리는 유독 게이트 발발 횟수가 많았거든. 그리고 군인은 까라면 까야 하는 터라서 진짜 잠도 못 자고 움직이는 경우도 생기더라고.”

정말 인간이길 초월해야 할 정도로 강행군이었다.

싸우고, 또 싸우고, 다시 싸운다.

게이트 하나를 소멸시키면 겨우 한숨 돌리고, 또다시 게이트로 들어가는 그런 일정이 무식하게 반복됐다.

거의 4년을 그렇게 움직였다. 그러니 내가 몇 번이나 나갔는지 어떤 각성자들과 토벌했는지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각성자들이 늘어났다는 거야. 거기에 헌터청은 그들을 대우했고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작전에 투입시켰지.”

그때부터 조금 널널해진다 싶었는데 어이없게도 게이트 난이도가 훌쩍 올라가더라.

“아마 전 세계 최초로 재앙급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 정도 수준의 게이트를 제일 먼저 토벌한 게 우리일걸?”

그때 난, 피를 거의 사발로 흘렸고, 고요환은 진짜 피똥 쌌다.

형 따라 지원한 고우환의 경우 죽다가 살아났고 그 외 대부분 부대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딱 한 명, 유일하게 멀쩡한 새끼가 바로 이상도였다.

아오, 가만히 생각하니 지금도 열받네.

하여간 가장 깊숙이 들어갔던 나는, 붕괴된 거기서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했었지.

다시 돌아오게 된 건 거의 천운이라고나 할까.

만약 거기서 베나레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난 아마 차원의 미아가 됐을지도.

아니면 게이트 어딘가를 무덤으로 삼았을 거다.

“그 뒤로 계속 그런 식이었지. 다른 나라에선 코드명 고블린 같은 애들이 나오면, 우린 한 단계가 아닌 두 단계 위의 오우거 같은 놈들이 나왔으니까.”

“우와~ 왜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요?”

“옆 나라, 일본에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여러 번 있거든. 자기들 말로는 오니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때거지로 출몰해서 아와지 섬인가, 하여간 거길 일부 점령했대.”

우리에게 대지진으로 유명한 고베 시와 도쿠시마를 바로 이어주는 큰 섬이었다. 교통, 물류 이동의 요충지였는데 오니 떼들이 중요한 도로를 점령했다는 것이다.

“당시 걔네 각성자들이 토벌하러 갔다가 세 번이나 실패했대. 결국 우리한테 지원 요청이 들어오더라고. 좀 도와달라고.”

정부에서 뭘 받기로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까라면 까라고 처음에는 보조 역할을 하기로 하고 날아갔다. 솔직히 얼마나 잘 싸우냐 보자는 심정으로 말이다.

“근데 가 보니까 완전 개판인 거야. 자위대 병신들이 사격을 하는데 오우거 정도로 큰데도 100m 거리도 못 맞히고, 근접 헌터들은 닥치고 돌격만 하다 쥐어 터지고, 보는데 아주 속 터지더라고.”

“그래서요?”

“너네 꺼지라고 했지. 그런 다음 우리 애들 시켜서 조준 사격, 그렇게 유인한 다음 그냥 썰어 버렸어. 걔들 보름 걸린 거, 우리가 한 시간 반 만에 해결해 버렸지.”

“으음, 게임으로 치면 그거네요. 다른 나라들이 저렙존에서 노는데, 한국만 이미 다 깨고 고렙존을 쓸고 다니는 거.”

“헐, 대체 그런 표현은 어디서 배운 거야?”

“조르시, 아니, 조온달이 그러더라고요.”

조온달은 일종의 선발대었다.

앞으로 살아갈 대한민국을 알기 위해 미리 투입된 정찰병이라 보면 된다나?

어째 가게에서 손님 대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더라더니.

물론 자신만의 방식이긴 하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대략적인 흐름이었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진짜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어쨌든 딱 3년 개고생하니까 게이트 파장에 대한 데이터가 어느 정도 모이더라고.”

대충 400회가 조금 못 되는 정도였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해도 파장 분석을 통해 내부 환경, 출몰할 몬스터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거다.

그걸 기반으로 작전 방식이 바뀌었다.

정글 지형, 고산 지대, 사막 지형 등등에 따라 무장이 달라졌고, 여기에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화기가 바뀌었다.

특히 중요한 포인트는 효율적인 게이트 소멸이었다.

빠르고 안정적인 토벌을 통해 세간에서 말하는 던전 브레이크, 몬스터 웨이브 같은 현상이 거의 생기지 않게 된 것이다.

지리산 깊숙한 곳, 강원도 산간 오지, 심지어 휴전선 안쪽에 게이트가 생겨도 이틀 만에 토벌했을 정도니까.

“그때부터 여러 나라에서 접근하기 시작한 거야. 우리가 가진 데이터의 효용성을 인정한 거지.”

실제 오차율 10% 내외.

특이변이종이 나오는 케이스와 급변한 내부의 환경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틀리지 않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것까지 감안해서 인원을 투입하기에 작전 실패는 많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째는 거의 임무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으니까.

고요환이 말하길, 지금에 와서는 수익이 제법 쏠쏠(?)하단다.

그 금액이 내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나.

파장 분석기 역시 제법 팔리고 있어 개발소나 연구소를 몇 개나 운영할 정도 투자할 수 있었다고.

특히나 초창기부터 조사반에 있던 이들은 높은 대우를 받고 취직했다. 목숨을 걸고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경력이 인정받게 된 것이다.

딱 석기찬이 그런 케이스였다.

그러니 대략 몇 억(?)자리 돌돌이와 어묵 빵틀, 최고급 슈트 같은 걸 그냥 보내준 거지.

“어쨌든 안정기에 들어가니까,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

삶의 회의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사나흘이 멀다 하고 마수들과 싸우고, 또 잠시 쉴 만하면 출동해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피와 살육으로 수년을 보냈다.

정말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에 대해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사명감, 그 뒷면이 보이기 시작한 거야.”

정부는 군인들을 소모품으로 보고, 그중 각성자는 이용하기 좋은 도구였다.

아카데미를 만든 게 그래서였다.

명목상 제대로 된 헌터를 키운다는 이유였지만, 길드에 팔아먹기도 했으니까.

그 외에도 각종 이권에 얽힌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헌터청이 커버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작전을 뛰는 각성자들 대부분이 눈치를 채게 된 것이다.

허무하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 뭐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전역을 결심한 게 그래서였다.

“이제 확실히 안정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오빠도요?”

“어?”

“아, 아니에요. 하여간 그래서요?”

“행복 분식을 하면서 이제 좀 사람이 사는 것 같다는 걸 느끼고 있어. 문제는 이 행복이 날아갈까 봐서, 솔직히 불안하더라고.”

우리 가족, 행복 분식 식구들, 그리고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난 무수한 인연들.

지켜야 할 사람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감이 더해진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자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최근 게이트를 몇 번 들어갔다 나왔더니 더 그렇더라고. 뭐, 이것도 일종의 트라우마라면 트라우마겠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속칭 PTSD라고 했던가.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생활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 수시로 두려움에 떠는 것도 하나의 증상이란다.

이게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심각한 것이고.

내가 한사코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쩌면 엘리오스 마을에 과도하게 공을 들이는 것도 그 일부일지도 몰랐다.

“엘리스, 그래서 하는 이야기…… 아, 부탁인데.”

“오빠가 왜 과거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아요.”

대화 맥락 점프.

엘리스의 특기 중 하나였다.

결국 난 한숨을 내쉬며 목적을 말했다.

“그래, 난 엘리오스 마을이 내 마음의 대피소가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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