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사, 사장님?”
정호석은 제대로 정신도 차리기 전에 반사적으로 말을 꺼냈다.
당연하게 바로 정정시켰다.
“가게 안에서는 사장님. 밖에서는 형!”
“아! 예. 형님.”
“하아. 그래, 일단 몸은 괜찮고?”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합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의사가 과로라고 하더라. 그거 쉽게 좋아지는 게 아니야. 며칠은 푹 쉬어야지.”
시선을 마주치고 말했더니, 정호석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게, 형님이 말한 신메뉴 있잖습니까? 그거에 열중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며칠 밤새웠습니다.”
“며칠이나?”
“한 나흘 정도요.”
“허! 설마 그동안 한잠도 안 잔 거야?”
“자긴 잤습니다. 사우나 가서 땀 빼고 한두 시간 정도 자다 나왔는데…… 갑자기 졸리더라고요.”
진짜 미련하기가 곰도 울고 갈 정도였다.
아니, 곰은 의외로 머리가 좋다고 했던가? 둔하게 보인다는 건 선입견이었다.
하지만 이놈이 느릿느릿한 건 사실이긴 하지.
“어이구, 이 새끼야. 너 진짜. 아오, 확 팰 수도 없고. 흐으, 지금 상태는 괜찮은 거 맞냐?”
거친 말에 오히려 정호석은 묘한 정감을 느꼈다. 정감에서 전해지는 투박한 감정이 고스란히 다가왔다고나 할까.
“예. 당장 주방에 서도…….”
“이 씨, 우리 분식집은 생각하지 마. 그것보다 너 몸 낫는 걸 우선으로 하라고.”
“형님이 믿고 맡겨서 그대로 유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러니.”
“야! 시끄러워! 내가 사장이야.”
솔직히 정호석에게는 좀 강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어중간하게 이야기하니까 의욕이 너무 앞서더라.
“호석아, 잘 들어. 난 즐겁고, 행복하게 살려고 장사를 하는 거야. 사실…….”
아버지가 장사하던 시절부터 말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
거기에 사심이 없다면 또 거짓말이겠지.
결국 짧게 털어놨다.
“장사가 잘되는 건 좋아. 하지만 잠시 정체되더라도 괜찮아. 내가 널 믿기 때문에 지금 이 일을 시작한 것도 맞고.”
“사, 사장…… 형님.”
“호칭 알아서 통일해라. 어쨌든 호석아, 너 갑자기 쓰러지면 네가 너 어머니를 얼굴을 어떻게 보겠니.”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인마! 내가 아프면 쉬라고 했지?”
“예. 그런데 매상이…….”
“줄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 봐야 뭐. 그게 뭐가 문제냐고. 이 자식아. 그건 사장이 고민할 영역이지 네가 신경 쓸 게 아니라고.”
슬쩍 손을 내밀어 정호석의 머리를 잡았다. 확실히 덩치만큼 크긴 겁나 크더라.
손이 작은 편도 아닌데 뭔가 꽉 찬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여간 쓰다듬어주며 문질러주며 다독여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책임감? 열심히. 그딴 건 필요 없어.”
“예? 그래도 형님이 믿고 맡겨주셨는데.”
“가장 중요한 건 너야. 일단 네가 멀쩡해야 내 믿음에 보답할 수 있는 거지. 다 죽어가면서 빌빌대며 죄송하다고 하면 내가 기분이 좋겠냐?”
“그건…….”
“그래, 그런 거야.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넌 너대로의 삶도 살아야 해. 나한테 너무 얽매일 필요 없다고.”
행복하고자 시작한 건데 불행한 사람을 만들면 뭐가 되겠는가?
때문에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즐겁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애들에게 원한다면 언제든 놓아주겠다는 단서를 덧붙인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 * *
“예? 불만이요? 으음, 그런 게 있나?”
엘리오스 마을에 올라가기 전, 진짜 직원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당시 임혜리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슬며시 말했다.
“간식이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너, 그거 좀 과하지 않니?”
“뭐가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아침, 점심, 간식, 저녁, 야식. 후우, 거기까지 먹으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새벽에도 냉장고에서 몰래 꺼내 먹는다면서?”
“히. 그게요.”
“당분간 케이크 금지다!”
“히잉! 그게 낙인데.”
“네가 조건 걸었잖아. 딱 10㎏만 빼면 다시 먹어도 돼.”
임혜리는 울상을 짓다가도 그나마 하루 식사 제한 없다는 거에서 환한 게 웃었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저렇게 먹긴 했다. 심지어 브레이크 타임에 먹는 간식조차 거의 한 끼 식사 칼로리에 가까웠던 것이다.
직원 복지?
후우, 이만한 가게가 얼마나 있겠냐고.
“헤헤, 하여간 사장 오빠님. 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요. 숙식 제공에 먹는 거 넘치게 나오지. 진짜 불만 같은 건 손톱에 때만큼도 없다고요. 그러니 자르지만 말아주세요.”
들어 보니, 이제는 그동안 신세 지었던 사람들에게 빚도 다 갚고 요리도 가져다주고, 가끔이지만 같이 맛난 음식도 먹으러 다닐 수 있게 됐단다.
그러면서 나름 꿈을 이루게 됐다나?
“그래서 앞으로는?”
“흐음, 그냥 당분간은 우리 가게 이대로 장사 잘되는 거요. 아직은 그 이상은 모르겠어요.”
그렇게 임혜리는 패스, 그다음은 임수원이었다.
“형, 슈트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은데 그래도 힘들어요.”
임혜리와 달리 주방에서 미친 듯 맛과 간을 보고 움직여야 하는 일인 만큼 갑갑할 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된다.
그냥 임혜리를 보면 답이 나왔다.
느닷없이 취해서 알몸으로 변신해 옥상에 올라가 괴성을 지르는데, 임수원은 더 과감한 자질(?)을 가졌다.
진짜 때려서 기절시키지 않았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아니!
어떤 미친놈이 술 마시고 전봇대를 올라가냐고!
“히~ 그래도요. 솔직히 아카데미에서 배운 기초 이론보다, 형이 알려준 실전형 교육이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단 한 번이어도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을 쓰러뜨린 경험치는 무시 못 한다. 그 전까지 갈구면서 뭐라 하면 약간의 반항기 같은 게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순종적인 개늑대가 된 것이다.
물론 더 굴리면 반응이 달라지겠지만.
“흠흠, 호영아. 넌 따로 불편한 게 없니?”
“전 모르겠어요. 그냥 일이 이런 거니 하니까,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느낌으로 하거든요.”
말과는 거리가 있지만, 확실히 이 녀석은 조금 애매하긴 했다.
처음에 몰랐는데 막상 일을 시켜 보니 멀티 플레이어 스타일이 강했다.
초기와 다르게, 하나를 100% 하기보다 다방면의 80%랄까. 열심히 노력해서 뭐든 평균 이상의 성과는 이루어냈다.
다만 장인 기질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래도 쓸 만한 인재라는 건 부정하긴 어려웠다.
친구 금치수를 갈궈서 식자재 단가 할인을 얻어낸 것만 해도 월급 올려주기 충분한 요인이었으니까.
거기에 가끔 바쁘면 임민혁과 친구들을 불러서 요령껏 부려먹더라.
어쨌든 만족도는…… 본인이 말하길 120%라고 했다. 하루하루가 다이나믹하고 즐겁다나 뭐라나.
“넌?”
“임무입니다.”
“그럼 패스?”
“그래도 시늉이라도…….”
“됐다.”
그렇게 조온달은 그냥 넘겼다.
사실 이 자식은 너무 잘해서 재수 없는 놈이었다.
대우는 제법 신경 써주기는 하는데 제일 말이 많고 불평이 곱빼기 플러스.
결론은 좋다는 건데, 왠 군더더기가 그렇게 많은지.
“하아, 직원 상담이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네.”
내 푸념에 김요성 대표는 피식 웃더라.
아예 연봉 협상 전에는 한 달 내내 상담만 한다고 할 정도로 피곤하다고.
대충 메인급만 천 명은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오히려 난 장난치는 정도라며 슬며시 웃기까지 했다. 앞으로 직원 뽑으면 더 힘들다나.
하여간 행복 분식 식구들은 저마다 개성적이었다.
다들 큰 불만이 없었고, 혹시나 싶어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그 전체를 아우르는 게 정호석이였다.
적이 되면 무시무시한 외형이었지만, 편이 되면 누구보다 안심이 되는 스타일이었으니까.
하여간 정호석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인재였다.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면, 음식?
메뉴얼만 제대로 만들어 놓고 그대로 시키면 된다.
손님들 대우하는 접객?
대부분 단골이라 큰 손도 안 가고, 특히 강한덕 선생 같은 이들이 많았다. 다른 손님이 가게에서 지랄하면 직원보다 먼저 나서서 지랄로 받아 버리면 된다.
거기에 수시로 여러 헌터들이 왔다 갔다 하니 사고 날 경우는 적었다.
아니, 애초에 정호석의 덩치와 위압감을 보고 난리 칠 손님이 없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서비스.
밥은 알아서 퍼 먹을 수 있는 셀프 시스템.
여기에 단무지나 양념 일부가 추가됐다. 그리고 정호석의 제안에 의해 허락한 부분도 있었다.
자투리 다진 고기 무료.
이건 진짜 고민 많이 했는데 정호석이 너무 원하더라. 밥 메뉴가 적으니 어쩔 수 없다면서 매달리는데, 결국 허락하고야 말았다.
다행히 단골 손님들 덕에 부작용은 사라지긴 했다.
앞에서 난리 치면 뒤에서 개지랄을 떨었으니까.
간단히 말하면, 베이컨을 썰면 끝에 애매한 부분이 남는다.
원래는 이걸 직원 식사에 활용했는데 이걸 다져서 튀긴 뒤에 서비스로 내자고 했다.
보통은 일반 라멘집에서는 챠슈 덮밥이니 하는 형태로 팔아 수익을 맞췄다.
하지만 정호석은 인식의 차이를 설명하더라.
“일본 라멘집은 객단가도 높고 서비스란 개념이 너무 접근성을 어렵게 하더라고요.”
“전 영업 방식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솔직히 자주 방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사장님. 매번 식사까진 아니더라도 한 번에 만 원 넘어가는 건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이드나 맥주 추가하면 거의 한 사람이 이만 원 돈 돼요.”
“저도 맛보러 다니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바꿨으면 하는데요.”
이유는 알았지만, 이건 일종의 독이었다.
손님층을 늘린다는 면에서는 좋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의 악화를 가져왔으니까.
“너, 진짜 그래도 괜찮다고 판단했던 거야?”
“예. 일단 사람들이 많이 와야 가게의 맛을 알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 다음에야 단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으로는 그게 맞기는 해. 그래, 당분간은 해 보자.”
살짝 고민됐지만 여기에 손강희의 조언이 추가되었다.
베이컨의 간을 강하게 해서, 그것만 먹기는 힘들게 한 것이다.
자투리 부위에 다진 마늘 간장을 추가하고서 라면이나 밥하고 같이 먹게끔 했다.
당연히 소비는 적당 수준으로 유지되더라.
물론 매출 하락에는 영향이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허락한 건, 우린 분식집이니까.
[부담 없이 편하게 와서 다소 자극적이더라도 한 끼 편하게 먹고 가는 곳!]
사실, 속옷 차림만 아니라면 느긋하게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와도 좋다는 말이었다. 격식이나 기타 등등을 신경 쓸 필요 없는 가게라는 뜻이다.
여기에 저렴한 가격.
나름의 푸짐한 양.
싼티가 나도 만족도가 높은 분식집.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된다, 라는 게 행복 분식의…… 일종의 모토였다.
하지만 그 시작은, 직원들이 즐거워야 한다.
일하는 사람이 우중충하면 그 감정이 전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쨌든 정호석의 제안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출이 소폭 상승하기는 했다. 대부분 다진 베이컨 튀김을 적당량 덜어 갔고, 그게 이슈가 되어 손님들이 늘긴 했으니 말이다.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호석은 앉은 자세에서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유현성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됐고. 메뉴 개발은 스탑. 그건 천천히 하기로 하고, 일단 쉬어.”
“근데 가게는요?”
“호영이가 당분간 주방을 맡기로 했어. 어차피 라면이야 수원이가 다 할 줄 아는데, 장사 스타일은 아니라서.”
사실 불라면이든 뭐든 임수원은 완벽했다.
중요한 건 그게 문제라는 거다.
어마어마한 후각 능력으로 진짜 제대로 만들기는 하지만, 우린 분식집이다.
라면 한 그릇 나가는데 면 삶는 시간 제외하고 한 그릇에 10분 이상 걸리면?
당연히 망한다.
섬세한 나머지 간을 맞추는 데 너무 공을 들이는 게 임수원 스타일이었다.
괜히 나름의 개국공신(?)임에도 알바 라인으로 돌리는 게 그런 이유에서였다.
대신 시간이 걸리더라도 밸런스를 제대로 맞춰야 하는 장어묵 덮밥과 김밥을 맡겼지만 거기까지는 허용 범위 이내였다.
대충 조온달이 말하길, 이호영은 정호석의 85% 수준이라 했다. 미각이 섬세한 사람이 아니면 차이를 못 느낄 정도였지만 매상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것이다.
‘차라리 문을 닫는 게 장기적으로는 나을지도.’
이호영 나름대로 매실꿀차를 서비스로 내고, 정호석에게 배운 대로 곱빼기 무료로 버티고 있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이참에 여름 휴가 못 간 거 가을 휴가라도 가자.”
“예? 휴, 휴가요?”
“멀리는 못 가더라도 휴식 정도는 되겠지. 맛집도 돌고 바람도 쐬고. 그냥 며칠 정도 아무 일도 없이 늘어지는 거.”
“그게 참…….”
“됐고. 한 이삼 일 입원해서 푹 쉬고, 어머니랑 어디 바람이나 쐬러 다녀와.”
정호석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끼, 그래도 염치는 있구나.
근데 오해였다.
“저, 형님.”
“어? 왜?”
“저희 어머니요.”
“응?”
정호석은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레 말했다.
“형님 어머님이랑 제주도 9박으로 여행 가셨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