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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10화 (110/156)

110화

아! 우리 강 여사님.

진짜 반장이나 통장 선거 나가면 바로 당선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덕순 할머니가 열심히 밀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아, 심심해.”

이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더니 아예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걸로 아주 저렴한 작은 창고를 얻고는, 평상을 놓고 아주 동네 사랑방을 만들더라.

아무래도 우리 분식집 다락방을 점유하다시피 한 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대충 짧게 설명하면.

덕순 할머니가 은퇴(?)를 선언한 이후,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소일거리 삼아 반찬을 만들었다.

그걸 나눠 먹던 이들이 다들 미안하다며 이거저거 챙겨와 먹기 시작했는데, 흐음, 막걸리가 압도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마트 아주머니가 극성.

덕순 할머니, 아! 마트 아주머니 기준에선 ‘이모 반찬 그냥 먹으면 안 된다’면서 막 이것저것 가져오기 시작했고, 다들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

그렇게 쌓인 음식들을 덕순 할머니가 기부하자고 했다.

쌀과 반찬이 넘치도록 쌓였다나 뭐라나.

그래서 그걸 근처 고아원이나 양로원 이런 데로 돌렸는데, 어째 그쪽 사람 한 명이 여름 성수기 지난 비수기라고 게스트 하우스를 그냥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울 강 여사랑 같이 가셨다고?”

“형님, 연락 못 받으셨습니까?”

“그냥 훌쩍 바람 쐬러 간다고만 이야기해서. 근데 제주도라고?”

“예, 저번에 서쪽 돌았다고 이번에는 표선 해수욕장 쪽으로 잡고 근처 도신다고. 조금 걷더라도 편의점 앞에 모텔 잡으셨다고 합니다.”

“설마 두 분이서만?”

“아뇨. 어머님들 여섯 분이 함께 가셨다고 합니다.”

하긴 그 정도 규모는 되어야 호석이 어머님이 움직이시겠지.

제법 친해졌다 하지만 아직은 어려워하시긴 하더라.

“그래,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잘 지내다 오시면 되지. 아니, 이참에 가게 일주일 정도 휴업할까?”

“예?”

“생각해 보니까, 우리 여름 무더위에 고생했잖아. 뭐, 냉라면 어마어마하게 판 건 좋긴 한데, 그래도 사람이 쉴 땐 쉬어야지.”

사실 신검 오로라를 가지게 되고 나서 냉라면 판매가 심각하게 급감했다.

상식적으로 연일 비가 퍼붓는데 누가 냉라면을 주문하겠냐고!

하지만 여전히 확장된 공간까지 연일 손님이 가득했다.

잠깐 줄어든다 싶었는데, 손강희의 블로그가 뒤늦게 터진 것이다.

여기에 뉴튜버까지 몰래 촬영한 게 올라와서 매상은 폭발하더라. 그렇게 손님들이 줄을 섰으니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분식집 영업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 강 여사님 여행 다니시라고 용돈 팍팍 드렸는데 설마 호석이 어머님이랑 같이 가실 줄은 몰랐네.

“그러니까, 제주도로 같이 가셨다고?”

“예. 이틀 전에요.”

“아니, 아들이 입원했는데?”

“그 전에 비행기 떴습니다. 괜한 걱정 끼칠 봐 연락 안 한 것도 있고요.”

이 새끼, 이런 놈이었지.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배앓이가 장염 돼서 터질 성격이었으니.

털썩 의자에 주저앉은 다음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너 스카우트 이야기는 뭐냐.”

“아, 그게…… 그 전부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정호석이 말하길, 내가 가게를 비운 동안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단다.

하지만 다 거절했다고.

근데 문제의 그 마성 분식에서 사장이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저 찾아서 가게까지 왔는데 그냥 보내는 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어쩌다 보니 한잔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바로 마시고 나왔습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봐 준다고 연락했다면서?”

“그게…… 형님. 솔직히 이야기드리겠습니다. 사실 잠깐 흔들린 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정호석이 이어 말하는데, 우와! 나라도 혹할 조건이었다.

일단 식당을 차려준단다.

여기에 일개 점장이 아닌 사장 대우였고, 가장 중요한 건 본인 의지로 점포 확장까지 가능하다는 거였다.

즉, 마성 분식 부산 지점으로 2호점, 3호점을 차려도 된다는 거다.

유일한 조건은 단 하나!

자신의 업체에서 식자재를 받아 쓸 것.

“흐음, 그 정도면 나도 살짝 흔들리겠는데?”

“형님. 저도 계산한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사실 어머니 가게까지 차려주겠다고 하니 자식 된 도리로 어찌 고민 안 하겠습니까?”

정호석이 다시금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데, 아차 싶었다.

이 녀석은 아주 지극한 효자였지. 그러니 어머니를 공략한 부분에서 흔들린 것이고.

“으음, 어머님 적적하시겠지. 아무래도 이 부분은 좀 생각해 봐야겠어.”

살짝 그림이 그려지긴 하더라.

덕순 할머니, 우리 강 여사, 호석이 어머님이랑 동네 아주머니들.

다들 소일거리 삼아 반찬 만들어 파는 것도 재미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찾고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는 하지만, 딱히 드러내놓고 말할 정도는 아닌 애매한 상황.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이 서면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금일봉 사장님하고도 이야기해 봐야겠지만.

“복잡한 건 됐고, 하여간 난 너 믿는다.”

“예, 제가 형님한테 입은 은혜가…….”

“아니, 그건 지나간 거고, 호석아!”

“예.”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가면 돼. 적어도 네가 그런 부담은 안 가졌으면 좋겠다.”

정호석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해를 못 한 모양이었다.

“내가 안 변하고 앞으로도 좋은 사장으로 있는다는 보장은 없어. 물론 그대로 지키고 싶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하잖아. 너한테는 계속 잘해주고 싶지만 그게 마음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야.”

이건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이었다.

막말로 월급을 천만 원씩 주고, 보너스로 억억 준다고 하는데 누가 회사를 안 옮기겠는가.

호석이가 그런 조건으로 간다고 하면 그걸 어떻게 잡겠느냐는 말이다.

인정이고 호소고 그것도 적당한 선이 있는 법이었다.

근데 이 새끼가…….

“형님. 제가 울 엄니 이야기 때문에 잠시 흔들렸지만 그런 이야기 하지 마세요. 전 죽어도 형님 옆에서 죽을 겁니다.”

“이 새끼야. 죽는 이야기 하지 마라.”

“그럼 같이 눕는 걸로 할까요? 하하, 하여간 형님이 뭐라 하던 갈 때까지 옆에 달라붙어 있을 겁니다.”

“야, 인마! 숨 막혀!”

갑자기 덥석 끌어안으니 진짜 갑갑했다.

연애를 이런 식으로 하면 거의 납치 수준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녀석은 진짜 평생 혼자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진 충격은 더했다.

“그리고 형님. 저 혜리한테 고백하려고 합니다.”

“어? 잠시만 귀가 막혔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정식으로 사귀자고 하려고요.”

“너 미쳤구나!”

어이가 없어서 버럭 했더니, 정호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저도 압니다. 기본적으로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끼리는 그런 거 접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오래 했는데, 일단은 좀 더 만나보고 싶습니다.”

“너! 진심이냐?”

“형님. 진심이 아니면 말도 안 꺼냈을 겁니다.”

아주 눈빛이 진지 그 자체였다.

이대로 혼인신고서 서명하고 유치원 예약할 기세라고나 할까.

“혜리는…… 뭐라고 해?”

“그게, 조금씩 다가가려 합니다.”

“엉? 둘이 뭐 있는 거 아니었어?”

“이제 만들어 가야죠.”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인간적으로 정호석이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너무 성실해서 문제지.

혜리는 같이 살고 있지만 임수원을 너무 아낀다는 게 조금 애매하더라.

근데 연애라.

“솔직히 그 부분에서는 내가 해줄 말이 없다. 다만 공사 구분은 확실하게 해.”

“저도 그게 고민돼서요.”

“혜리가 썩 예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빠지는 편은 아니지. 하지만, 절대! 중요한 건! 본인 의사다. 싫다고 하면 남자답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

“알겠습니다. 그래도 형님이 허락하신 걸로 봐도 될까요?”

“남녀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중요하지. 난 신경 쓰지 마. 내가 장인 장모도 아니잖아.”

“감사합니다.”

“차여도 난 모른다. 대신 일은 확실히 하라고.”

“예, 형님. 저는 진짜 형님 때문에 새 인생을 살게 된 것 같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따라갈 겁니다. 그냥 잔소리하면 치워 버리면 되죠.”

순간 섬뜩했다.

평범한 인간인데 각성자 아가리를 날려 버릴 정도였으니, 그 치운다는 게 그냥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으니까.

“일도, 연애도…… 거기에 빚 정리까지, 형님 안 만났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이제 조금만 더해서 아버지 땅만 찾으면, 여한이 없을 겁니다.”

미련 곰탱이, 순둥이, 일 바보.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욕하면서도 응원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일도 열심히 하고 노력까지 하는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다만 저 곰 같은 외모가 문제일 뿐.

이제 슬쩍 일어나면서 한마디를 더 꺼냈다.

“너 인마, 앞으로는 아픈 것도 허락 맡고 아파라. 그리고…… 3호점 고민해 봐.”

* * *

“우와!”

“진짜 여신…… 인가!”

“아! 아름다워.”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오는데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더라.

세계수 아래, 흩날리는 단풍 밑에서 엘리스가 손을 들고 있었다. 그 축복은 모두에게 평온함을 안겨주었고, 눈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솔직히 인정하지만, 엘리스의 모습은 여신 강림급이라 할 수 있었다.

반짝이는 금발에 새하얀 드레스, 이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모습 자체에서 광채가 났고, 더욱이 엘프들의 염원을 받아서인지 더욱 화사했다.

미루고 미루어졌던 대외적인 즉위식.

그 한가운데 엘리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후우, 방송국 카메라만 오십 대가 넘네. 하여간 미쳤어.”

이번 행사를 위해 정말 어마어마하게 준비했다.

일단 부산 시장, 김성우라고 했던가? 하여간 그 인간이 모든 연줄을 끌어들여서 국회의원과 시의원, 구의원까지 다 당겨 왔다.

갈매기 길드 공 뭐시기도 부산 쪽 인맥을 대거 동원했다.

그래, 뭐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고요환 이 썅놈의 새끼.

헌터청의 주요 인물이야 그렇다 치고, 근데 국무총리를 데려오면 어쩌라는 거냐고.

더 황당한 건, 국무총리가 엘리스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댄 뒤에 고개를 숙이더라.

이쪽 족보상 엘리스가 와이프 할머니가 된다나?

아오, 머리야.

일단 그쪽은 신경 끄기로 했다.

분식집 사장이 손님으로 총리를 맞을 일은 잘 없었으니까.

어쨌든 엘리스의 공식 즉위식은 남다른 행사가 분명했다.

치외법권.

대부분의 법은 대한민국의 법전을 따르지만, 판결은 엘프들이 한단다. 즉, 상황에 따라서 즉결 처형도 가능하는 말이다.

이걸 평번한 국민들이 이해를 할까 싶었는데…….

엘리스가 신호를 하자 커다란 스크린이 펼쳐졌다.

바로 엘프들이 게이트로 들어가 싸우는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처절한 죽음까지.

그 힘겹고 고난한 영상들이 거의 30여 분 가까이 틀어졌다.

특히 군인들과 같이 몬스터와 전투하며 합동으로 처리하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전국에 퍼진 것이다.

“저희들은 여러분과 대적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같이 공존하고 공생하는, 인류와 함께하는 이들로 받아들여 줬으면 합니다.”

엘리스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하얀 빛이 뿜어지더니 커다란 세계수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붉게 변한 잎들을 사방으로 뿌려지고, 미세한 진동으로 엘리스에게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분들이 우리만의 법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셨습니다. 예. 그런 부분에 대해 압니다.”

엘리스는 잠시 호흡을 고른 뒤에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의 목적은 종족의 보전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정부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해당되는 부분에 대해 일부 권한을 양도받았습니다.”

다시금 손을 이마로 가져가는 엘리스였다.

그런 뒤 앞으로 손을 내밀자, 엘프 일족 역시 손으로 이마를 짚은 다음 앞으로 내뻗었다.

“맹세하니, 부당한 집행은 없을 것이다. 다시 맹세하니, 일족의 모욕에 대한 용서는 없을 것이다. 또 맹세하니, 사욕에 물든 인간에 자비는 없다!”

엘리스의 선포에 엘프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나 역시 분위기에 맞게 고개를 숙였는데.

어라?

식당 사장들 대부분 아주 무릎을 꿇다 못해 바닥에 엎드리는 게 아닌가?

“저기, 정철아.”

“여왕님깨서 말씀하신다. 엎드려라. 불경한 놈아!”

억크.

이 새끼, 최면도 적당히 걸려야지.

황당해서 엘리스를 쳐다보는데 가볍게 씨익 웃더라.

더 어이없는 건.

내 주변의 전부가 대가리 박고 절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엘리스가 슬쩍 말했다.

“오빠. 최면이나 세뇌 같은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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