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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13화 (113/156)

113화

“엘리스는 역시?”

“예. 세계수의 힘을 좀 과하게 끌어 쓴 덕에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라이노스 장로의 대답은 잠들었다는 의미였다.

최대한 빨리 수면에 들어갈수록 회복도 빨라지기 때문에 바로 취한 조치란다.

하긴, 내가 봤을 때도 무리했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거의 동시에 수백 명에게 기력 회복의 축복을 걸었으니까.

“뒤처리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라이노스 장로가 고개를 숙인 직후, 엘프 전사들이 헌터들을 끌고 나갔다.

잠시 생각해 보니 조금 걸리는 게 있었다.

“CCTV 내용은 공개하실 거죠?”

“얼굴은 안 나오게, 대화도 적당히 편집할 거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때 고요환이 끼어들었다.

“전 나와도 됩니다. 헌터청에서도 헌터 자격 박탈에 대해 공식적으로 고지 할 것이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기왕이면 확실하게요.”

“예. 그러죠.”

고요환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문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 헌터와 각성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수백억의 홍보비를 들여 광고도 하고 각종 사회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에도 다들 꺼려했던 것이다.

그게 다 이렇게 한 번씩 사고 치는 놈들 때문이었다.

특히 요즘은 바로 방송이나 뉴튜브 같은 데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사건을 덮을 수도 없었다.

그때마다 각성자와 헌터들은 비난을 받았고, 헌터청의 입지는 조금씩 좁아졌다.

무엇보다 조금 있으면 이종족 관리부가 외교부로 넘어간다.

그에 대해 헌터청이 조심스레 협상 중이었으니, 엘프 마을에서의 사고는 더욱 좋지 못했다.

비난이 크면 클수록 발언권도 약해질 테니까.

“본보기라는 면에서 좀 과할 수도 있습니다만, 게이트 안에서 죽는 것보다는 낫겠죠.”

이런 짓을 태연히 벌이는 놈들은 다른 헌터들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게이트 사고의 일부가 이런 이유였다.

이들처럼 자체적으로 파티를 꾸려간다 하더라도 결국 위기 상황에서는 다른 헌터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때 거부당하면 거의 사망이지.

“그럼 엘리오스 마을에선 저 헌터들을 어떻게 처분할 계획입니까?”

“일단 상처부터 회복시킨 다음 선택권을 줄 겁니다. 강제노역 석 달이냐, 징역 반년이냐 중에서 고르게 되겠죠.”

“흐음, 과한 건가 아닌 건가 감을 못 잡겠네요.”

“인간들의 법률 기준으로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천만 원 전후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일족의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선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확실히 라이노스 장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번 일을 독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엘프 여성들을 쉽게 보게 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근데 강제 노역 석 달이면 가벼운 거 아닙니까?”

“허허, 글쎄요. 거의 노예 수준으로 일해야 하니 평생 기억에 남을 겁니다. 위대하신 분도 다시 석 달이나 강제로 군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이등병 신분으로요.”

“오우, 제발 끔찍한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어쨌든 그런 수준이라면 확실히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죠.”

“예. 구속구를 차고 생활해야 하니 실제로는 이등병보다 못한 신분이겠지만, 그리고 그 장면 일부도 공개할 예정입니다.”

“흐음…….”

그건 좀 우려스럽기는 했지만 뭐, 알아서 하겠지.

다시금 고요환이 나섰다.

족발집 전체를 둘러보며 손님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사과를 하더라.

그런 다음.

“오늘 여러분들이 드신 건, 제가 전부 계산하겠습니다. 추가로 더 드시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시키셔도 됩니다.”

고요환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아주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말이다.

다행히 손님들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역시 공짜 음식의 힘인가?

그렇게 사건이 수습되자 따로 박정철한테 나중에 연락한다 해주고 족발집을 나왔다.

그러다 입구 앞에서 족발을 썰다 잠시 쉬고 있는 이현식이 보였다.

가만?

“저기, 선생님.”

“왜 그러시오?”

“만약에 말입니다. 선생님이 나선다면 저 헌터들을 제압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야 당연하오만.”

“그런데 왜 나서지 않은 겁니까?”

“간단하오. 내가 일하는 가게 사장이라면 그 정도는 처리할 수 있다고 봤소. 확실히 무력은 약하지만 가게와 직원을 지키려는 용기는 가상하더군.”

“그건, 사장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런데 왜 도움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나서면 피를 보기 때문이라오. 적당히 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러면서 칼을 꺼내는데, 흔히 발골칼이라 불리는 것과 거의 비슷했다.

문제는 거기서 뿜어지는 예기였다.

날카롭다 못해 섬뜩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잘 손질되어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현식의 말도 맞기는 했다.

칼에서 귀곡성이 들릴 정도였으니, 저런 거에 맞았다간 순식간에 뼈와 살이 분리되겠지.

“허허, 앞으로 신경 써주길 바란다면 그렇게 하지요.”

와! 그냥 평범하게 씨익 웃는데 왜 덜컥 겁이 나는 건지 모르겠네.

물론 김길우에게 들은 내용도 있었다.

한때 사부 이현식은, 유명한 칼잡이였다고 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조폭들도 제법 썰었다나 뭐라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소란이 일어나면 사장하고 직원들, 그리고 손님들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는 문제없소. 이런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군.”

칼을 잡고 있을 때는 말 걸지 말라고 했던가. 그래서 주문은 주방에서 키오스크를 통해 보내고 있었다.

스마트 오더에서 용지가 출력되는 방식이었다.

이현식은 별도의 공간에서 그걸로 확인한 다음 족발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김길우와 다른 깔끔함이 있었다.

스윽, 서걱.

순식간에 힘줄 사이로 칼이 들어가며 큰 덩어리가 떨어졌다.

우두둑, 뚜둑.

그 사이로 손으로 몇 번 꺾자 뼈들이 분리가 됐으며.

사악, 스스스슥. 터터턱.

정말 얇다 싶을 정도로 살들이 썰려 나가더라.

그렇게 순식간에 한 접시가 만들어지자, 이현식은 칼을 놓았다.

정말이지 예술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우아함까지 있더라.

“사장이 그러더라고요. 요즘은 얇은 걸 선호한다고 그래서 이렇게 써는 거라요.”

“하긴, 많이 먹고 싶으면 두세 점씩 싸 먹으면 되니까요.”

“젊은 친구가 뭘 좀 아는군. 이런 또 주문이…….”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염려 놓으시오.”

분명 우현필과 비슷한 연배라고 했는데 말투가 너무 들어 보였다.

하지만 뭐라 이야기하기도 전에 칼을 들어 버렸으니.

결국 다른 가게들도 둘러보고 들어가기로 했다.

* * *

영업 일주일째.

“정말 손이 달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네.”

정말이지 장사가 미친 듯이 잘됐다.

특히 누룽지 버거는 만들면 팔리고, 포장하자마자 주문 들어오는 식이라 현지 역시 퍼지려고 하더라.

“오후 3시 정도에 재료가 다 떨어지다니. 아무래도 좀 더 늘려야 되겠는데?”

자신도 추가 투입, 손강희도 삶는 게 끝나면 종종 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들 슬슬 지치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이런 식이라며 오래 유지하기 어렵겠어. 아무래도 엘리스랑 이야기를 해봐야겠는데?”

다행이도 엘리스는 사흘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 직후, 수십 군데에서 연락을 받았다는데 진심으로 황당하더라.

패션 잡지 1~4위까지가 화보 촬영을 신청했고, 방송국 놈들의 출연 요청도 열 곳이 넘었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건 유명 연예 기획사였다.

걸 그룹을 만든다면서 비주얼 센터 자리를 주겠다고 했다.

여신 미모라 춤이나 노래는 못해도 된다고.

그 외 기타 취재 연락도 수십 곳에서나 왔다더라.

특히 뉴투브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는 댓글만 수십만이나 된다나.

-진짜 전설의 엘프 등장.

-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미모임.

-아님, 저건 수백억짜리 CG라고.

-크허, 여신이 현세에 존재하긴 하는구나.

이 정도가 수위가 낮은 편이었는데, 나머지는 차마 못 읽겠더라. 자신과 결혼해주면 빌딩도 몇 개나 사준다는 글도 달릴 정도였으니까.

더욱 어이없는 건, 내 관련 글들이었다.

여신 옆의 말린 오징어라고.

아니, 이 정도면 나름 준수한 편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댓글에 ‘좋아요’만 수천 개였다.

거기에 현지가 그러더라.

반박이 불가능하다나.

저건 동생인지 원수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안쪽 마을로 가는데, 역시나 통로가 자동으로 열리더라.

“오빠! 상담할 게 있다고요?”

“엉? 나 마중 나온 거야? 어떻게 알고?”

“같이 산책하려고요. 우리 호수 쪽으로 올라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는데 왠지 거북스러웠다. 내가 말린 오징어가 된 건, 엘리스의 과다하다 싶을 정도의 외모였으니까.

“헤헤, 걱정 말아요. 방송 같은 데는 안 나갈 거니까.”

“어? 나, 아무 말 안 했는데?”

“장로님이 그러던데요? 뉴튜브 보면서 질투 많이 했다고요.”

내 댓글에 대한 분노를 그런 식으로 왜곡하다니, 솔직히 억울하더라.

결국 대화의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다름 아니라 지금 식당가 대부분 한계가 온 것 같더라고. 이대로라면 누군가 과로로 쓰러질지도 몰라.”

“인원을 더 늘렸으면 하는 거죠?”

“어, 그래 줬으면 좋겠어.”

“확실히 보고 받은 매출이 우리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더라고요. 장로님이 이참에 확 늘리자고도 했어요.”

“확장까지? 흐음, 물리적으로 가능하려나? 아! 그래 뒤편 휴게 공간 있으니까 되긴 되겠다.”

잠시 구상에 들어갔다.

어차피 뒤쪽의 수풀을 정리하고 가게마다 있는 창고 공간을 뒤에 만들면, 당연하게도 내부는 훨씬 넓어진다.

그 정도 수준의 확장이라면 하루 이틀에도 가능하니 잘하면 될 것도 같더라.

“확실히 식당가 매출이 우리 일족의 수익과 직결되니까 엘프들을 동원해도 불만은 없을 거예요.”

“그건 그렇지.”

식당가에서 나오는 수익, 카페테라스의 매출과 엘프 직원들의 월급만 계산해도 엘프족들이 벌어들이는 액수는 적지 않았다.

여기에 가게들이 확장되고 엘프 직원을 더 쓰게 된다면 엘리스로써는 만족할만 했다.

특히 중요한 건, 엘프들이 제대로 배운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인간들과의 교류도 더해지니 사회성 측면에서도 이득인 것이다.

“근데 행복 분식 2호점이 대박이라면서요?”

“어, 그래서 죽을 것 같아. 아무래도 누룽지 굽는 판을 늘리고 직원도 더 뽑아야겠어.”

대충 계획은 이러했다.

계산은 판을 두 배로 하고, 직원도 네 명 정도 뽑는다. 그러면 한두 명 정도 여유가 생기니 돌아가면서 쉴 수 있는 것이다.

“엘프 네 명이나요?”

“체력 좋은 남자 둘에, 판매 쪽에 여자 둘이면 좋겠는데.”

“그 정도면 금방 지원자가 있을 거예요. 의외로 누룽지 버거를 배우고 싶다는 엘프들도 제법 되니까요?”

“어? 나는 못 들었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줄서서 사고, 조기 판매 마감을 하니까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이들이 많거든요.”

“아!”

확실히 팔리는 양을 조금씩 늘렸음에도 재료가 다 떨어지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러니 배워서 해 먹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럼 부탁할게.”

“예. 라이노스 장로님에게 일러둘게요.”

“그거 참. 어르신은 그만 부려먹어.”

“헤헤, 그러라고 장로직을 맡긴 거랍니다. 전 세계수만 관리하기도 벅차다고요. 왜요? 라이노스 장로님이 불편해요?”

“아니, 조금 부담스러워서.”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이제 큰 이벤트는 다 끝났으니 엘리스와 혼인만 해달라고 조르더라.

그게 일족에게는 축복이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엘프 전사들을 마구 이끌고 왔는데, 진심으로 협박에 가까웠다.

결국 그날은, 족발에 소주 잔뜩 먹여서 재워 버린 뒤 튀었다.

하여간 생각하기도 싫네.

“흐음, 그리고 다른 가게들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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