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계산을, 계산을 해보자.”
일단 이예리가 국숫집을 추천했다.
당연히 내가 정한 기준에 적당히 맞는 가게였다.
물론 그건 외형적인 것이고.
이철구 대표가 말하길 아마도 여사장 입장에서는 평생 처음 만져보는 큰돈이었을 거라 했다.
이전까지는 남편이 직접 관리해 알뜰하게 모아서 자그마한 3층 건물을 샀단다. 거기에 그동안 모은 돈을 다 털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게 되면서 받은 퇴직금까지 전부를 밀어 넣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야 여사장한테 경제권을 넘겨줬다고.
어쨌든 남편은 현재 소일거리 삼아 잡다한 일을 하면서 용돈벌이를 하던 중이라고 한다.
“좀 어이가 없는 상황이긴 한데, 그 시대 어른들도 상당수는 그렇게 살았다고 하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고.”
우리 강 여사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쪽으로는 신경도 안 썼다고 하더라.
그냥 제때 생활비만 가져다주면 만사 OK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데, 부부 중에 돈 관리 잘하는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게 오히려 맞다고 했다.
하긴, 울 강 여사가 경제권을 가졌다면 분식집은 벌써 거덜 났겠지.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긴 해.”
여사장은 목돈을 쥐자마자 돌변해 버렸다.
어쩌면 남편도 그 사실을 진즉 알았기에 직접 돈 관리를 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랬으니 노후 대비로 건물까지 산 거겠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 결정을 내렸다.
“수습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마무리 짓는 게 더 나을지도.”
저 국숫집 일을 거들어봤기에 알게 되는 점도 있었다.
오히려 의외일 정도로 다들 사이가 좋았다는 것.
다만 그건, 여사장이 돌변하기 전까지였다.
어느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지면서 매상이 주춤하더니 결국 6위로 마무리 짓게 되었으니까.
“역시 내보내는 게 정답인가?”
손강희가 뛰어 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 * *
“야 이, 여편네야.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욕심 좀 그만 부리라고.”
“뭐? 당신이 뭔데? 언제 한번 나 제대로 호강시켜 준 적 있었어?”
여사장이 서슬 퍼렇게 버럭버럭 대들고 나서자 누구도 끼어들지 못했다. 거의 악다구니에 가까워서 눈치 보기 바빴던 것이다.
반대로 남편 박동선은 달래듯 차분하게 말했다.
“재호 엄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뭐, 남들만큼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담배도 한 갑으로 한 달을 피우는 사람이야.”
“흥, 그게 자랑이야?”
“아니, 또 있지. 내가 계집질을 하냐, 바람이라도 폈나. 새벽부터 나가서 오후 늦게까지 일하고, 마치면 국숫집 설거지에 청소까지. 그렇게 30년을 살았다고.”
차마 박동선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알뜰살뜰 평생 모은 돈으로 월세 적당히 나오는 작은 건물을 사기까지, 자신도 죽을 만큼 고생했으니까.
“그럼 나는…… 당신 출근하면 애들 밥 먹이고 가게 나가서 육수 끓이고, 시장 봐 오고. 그렇게 종일 식당 일만 25년이야.”
“안다고. 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한테 뭐라 한 적 있어? 재호 엄마, 나 진짜 당신이 그렇게 바가지 긁어도 잔소리 한 번 안 했잖아!”
“그래, 당신 잘났다. 진짜 남편이라는 사람이 마누라 편 한 번 못 들어주냐?”
“들어주지. 골백번이라도 들어주지. 근데 그게 사리에 맞아야 대신 욕이라도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냐. 이번 경우는 당신이 잘못한 게 맞아!”
씩씩거리는 여사장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반대로 박동선은 연신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이제 3년만 지나면 마누라도 환갑이었다. 힘들게 장사하면서도 꾸준히 봉사도 했기에, 이제는 좀 너그러워지나 싶었다.
노후 대비까지가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해 그걸 이루자마자 경제권을 넘긴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고작 두어 달 수익으로 이렇게 바뀌다니.
하긴. 국숫집 하면서 달에 200만 원 이상 남긴 적이 없었고, 때로는 크게 적자를 보기도 했었으니까.
“하여간 난 괜찮으니까 동생하고, 내 친구하고 다들 월급이나 넉넉히 챙겨줘. 평생 욕심이라고 모르던 사람이, 후우……”
박동선은 그 말을 끝으로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한 달에 한 갑 수준이라면 흡연자들 기준으로는 거의 안 피우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끝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게 이래서겠지.
그 직후, 가게 안에서 내지르는 고성이 바깥까지 울렸다.
-야이, 도둑년아. 빨리 돈 안 내놔!
-언니가 먼저 약속도 안 지켰잖아요. 소일거리 삼아 하라고 해놓고 하루 종일 부려먹고. 겨우 월급이라고 백오십 주는데 화 안 나요?
-이게 방구석에서 놀고먹는 년 불쌍해서 겨우 데려왔더니.
-진짜, 돈 앞에서 본성 나온다더니. 언니, 요즘 왜 그래요.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정신 좀 차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엉! 수익 정산되면 다음 달부터 제대로 준다고 했잖아.
-다음 달은 무슨 다음 달이야. 그럼 또 그때 가서 다음 달 소리 할 거면서.
-야, 이년아. 분위기 좀 봐라. 지금 돈타령할 때야! 우리 경고 먹었다고.
-그게 다 언니 탓이죠. 갑자기 가격 올리자고 하지 않나, 뜬금없이 이것저것 더 팔라고 하지 않나. 그러니 메뉴가 늘어나고 손님 밀리는 거잖아!
-이게 말이면 단 줄 아나.
-형부 친구도 내 친구도 다들 실망했다고. 전부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뭐?
-그리고 이제 줄 돈도 없어.
엿듣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박동선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동생은 그렇게 마누라 몰래 조금씩 모은 돈을 직원 수대로 나눴다.
안 그랬다면 다들 진즉 그만뒀을 테니까.
쨍그랑.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울리자 남편은 다급히 담배를 비벼 껐다.
-그거 내 돈이야. 내 돈이라고!
-왜 전부 나를 무시한 거야!! 내가 여기 사장이라고! 사장!
얼마나 악을 썼는지 가게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남편이 안으로 다시 들어간 순간, 마침 유현성도 입구로 들어섰다.
“안 돼!”
정말 위험천만하게도 마누라 손에 칼이 쥐여져 있었다.
눈이 살짝 돌아간 것이 반쯤 실성한 것처럼 보였고, 정말 이대로 누구 하나 찌를 것 같았다.
“재호 엄마!”
박동선이 앞을 막는데, 여사장의 손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갔다.
푹.
정말로 칼이 배를 파고들었다.
그제야 눈빛이 돌아온 여사장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자신이 뭘 했는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정말 늦지 않아 다행이네.”
그게 박동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거기에는 혼절하는 마누라의 모습도 포함되었다.
* * *
“헉!”
박동선은 깨어나자마자 반사적으로 배로 손을 가져갔다.
셔츠를 걷어서 상처 부위를 확인했는데, 황당하게도 흔적 하나 없었다.
“설마…… 꿈이었나?”
“아이고, 그런 꿈이면 저라도 사양 합니다.”
“아……? 현성아, 그게 그럼…….”
“예. 찔린 건 맞고요. 다행히 깊이 들어가기 전이었죠.”
실제로는 유현성이 바로 뒤에서 박동선의 허리 쪽을 잡아당겼다.
동시에 마력을 불어넣어 살짝 박히는 정도로 끝난 것이다.
그 직후, 바로 치료를 해버렸기에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으니 흔적이 없을 수밖에.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는 꺼내지 않았다.
뭐 좋은 일이라고.
“우, 우리 재호 엄마는 어떻게 됐어?”
“그게…… 큰 충격 때문인지 기절했더라고요. 특별한 외상은 없는데, 넘어질 때 머리를 조금 다친 모양입니다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엘프들도 의사가 있기는 했다.
이들은 긴급 시 외상을 치료하는 쪽이 대부분이었다.
어지간한 병은 세계수의 힘을 빌려 자연 치유력을 올리는 식이었으니까.
하여간 그쪽에서 진단한 결과, 큰 상처는 없다고 했다.
엘리스 역시 축복을 걸어주고 갔으니 몇 시간 뒤면 깨어나겠지.
결국 사달이 나긴 했군.
그 전에 조짐도 있었다.
국숫집 여사장이 각 가게를 돌면서 나에 대해 물었고, 그러다 박정철과 시비가 붙었다나.
또 다른 원인은 족발집에서 나오는 국수사리 때문이었다.
원래 뼈해장국은 한때 점심 장사의 메인 메뉴였지만, 이젠 족발에 밀려 사이드가 됐다. 결국 애매한 포지션 때문에 식사 메뉴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손님들이 간혹 존재해 사리 추가로 커버하기로 했단다.
단돈 오백 원에 일반 국수 3분의 1 정도의 양을 제공하기로 한 것.
여사장이 그걸 트집 잡아 몇 번이나 고성을 내지르고 갔다고 했다.
이미 사장단 톡방에 올린 내용인데, 이제 와서 따지니 당연히 박정철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었고.
만약 이현식이 칼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실랑이가 몇 시간이고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 직후, 국숫집에서 고성이 들리자 손강희가 바로 나를 찾아 뛰어 들어왔다.
눈빛이랑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나.
실제로 손강희네 가게에서는 가끔 술 취한 진상들이 출몰했다.
무덤에서 기어 나온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살짝 맛탱이가 간 눈빛으로 헛소리를 삑삑 하는 것이다.
그때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끝내 사고로 이어진다.
아마도 그 경험 때문에 나를 찾은 걸 테고.
“근데 원인이 뭡니까? 설마 제가 했던 이야기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스트레스 때문일 거야. 안 그래도 집에 오면 뭐가 잘 안 풀리는지 갑자기 화를 내곤 했거든.”
살짝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일단은 말을 아꼈다.
“설마 돈 때문에?”
“그게 큰 부분일 수도 있어.”
박동선은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며 여러 기억들을 떠올렸다.
잠시 기다린 뒤에야 유현성이 물었다.
“지금 본점은 누가 운영하고 있습니까?”
“내 여동생하고 우리 재호가 하고 있어. 가끔 친구분들 오신다고 하면 어머니도 가서 거들고. 재희도 학교 마치면 홀 서빙을 하러 오지.”
대충, 10여 년 동안 같이 일한 여동생이 육수를 만들고, 아들이 주방 보조로 요리를 배우고 있었으며, 딸이 학교 마치고 돕는다는 식이었다.
물론 직원도 둘이나 된단다.
“이거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그냥 해. 어차피 우리 사이에…….”
“어쩌다 보니 그, 경제권 이야기를 살짝 들었거든요. 얼마 전에 여사장님한테 넘기셨다고. 혹시…….”
돈에 대한 집착이 거기에서 나왔나 싶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사람이 이렇게 바뀔 리가 없었으니까.
“허,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 하긴…… 그때도 조금 그렇긴 했지.”
“언제요?”
“내가 통장 관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박동선은 약간 서글픔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도 짧은 표정 변화에 묵직함이 전해졌다.
“우리 국숫집이 잘 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야.”
“저도 대충은 들어서 압니다.”
“국숫집 수익은 그냥저냥 생활비 버는 수준에 불과해. 확실히 벌기는 많이 벌었지만, 마누라가 곳곳에 퍼 주는 것도 상당하거든.”
“아. 좋은 일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르신들 무료 봉사라든가 그런 쪽으로요.”
“차라리 그쪽으로만 갔으면 좋겠는데, 꼭 그게 아니라는 게 문제지.”
박동선은 담담히 이야기를 늘어놨다.
“첫 시작은 곗돈을 떼인 거였어. 하필 욕심 부리는 바람에 뒤늦게 목돈 들고 끼어들었거든.”
늦게 들어간 만큼 당연히 순서상 마지막이 될 터.
다 돌고 돈 다음에야 받게 되겠지.
“알고 보니 짜고 친 사기더라고. 언니 동생 하던 사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는데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더라고 하더라고.”
피해자는 열두 명 중에 네 명, 20년 전 여사장이 부은 것만 천만 원이 조금 넘었다고 했으니 상당한 액수라 할 수 있었다.
“그래, 사람이 한 번은 실수할 수 있어. 그랬는데, 적어도 그 정도에서 그쳤어야 하는데 귀가 너무 얇아서 문제였지.”
“그게 어느 정도였길래.”
박동선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지금 기준이라면 십억은 넘게 날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