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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18화 (118/156)

118화

“헐, 십억이라면…….”

지금 잘 버는 나라도 그 돈이 한순간에 날아갔다면 그냥 손이 떨리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거다.

가족이 아니라면 패 죽였을지도.

“사실 내가 가정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야. 그때는 다니던 회사가 한창 커나가고 있었고, 나름 중책을 맡아서 정신 없이 뛰어다닐 때였거든.”

새벽부터 움직이는 남편.

결국 대화 상대는 주로 주변 사람들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학부모들과 동네 사람들, 그리고 단골 손님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돌아가면서 여사장한테 접근했단다.

그렇게 날린 돈만 수천만 원.

“사실 그때는 눈앞이 캄캄하더라고. 그게 이사 갈 집의 전세금이었거든. 졸지에 다섯 식구가 길바닥에 나앉게 됐지.”

“그, 그래서요.”

“다행히 사장이 나를 잘 봐줬는지 회사 신용으로 대출을 받아줬어. 그걸로 겨우 빌어서 전셋집에 들어간 거지. 부족한 부분은 버는 대로 메우겠다고 사정하고.”

“집주인이 괜찮았나 봐요.”

“나이 많으신 할머니라 크게 돈 욕심이 없다고 하시더라고. 그래도 얼마나 미안한지 수시로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했거든.”

박동선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짧은 한숨과 함께 떴다.

아무래도 뭔가를 추억하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나 몰래 마누라가 신용 대출받은 것까지 뒤늦게 터졌으니…… 하여간 더는 통장을 못 맡기겠더라고.”

이래저래 다 합쳐서 날아간 돈만 일억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여기에 회사 대출에 마누라 신용 대출까지 추가됐으니.

진짜 나 같았으면 미치고 환장했겠지.

“그런데 어떻게 계속 같이…….”

이상하게도 이혼이란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돌려서 물었는데 박동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쫓고 싶었지만, 아들 재호도 어렸고 둘째 딸도 막 태어난 직후였거든. 자식 보고 산다고 한 번만 참기로 했어. 대신 조건을 걸었지. 통장은 내가 관리하겠다고.”

“아, 일이 그렇게 된 거군요.”

“허, 지금이야 지나가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 그걸로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 하여간 어머니도 여동생도 다 내 편이었으니 마지못해 죽는시늉해서 그걸로 넘어간 거지.”

당시에는 일단 여사장 빚을 정리하고, 대출을 다 갚을 때까지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걸로 안 될 것 같았다.

“가끔 보이는 돈에 대한 집착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오늘 일만 해도 그래. 그냥 이전처럼 화내고, 좀 진정되면 다시 사과하고 넘어갈 줄 알았거든.”

“원래 평소에도 자주 그러셨나요?”

“그렇진 않았지. 나이가 들수록 무던해진 건지 최근에 화를 낸 건 딱 한 번뿐이야.”

아주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건물을 샀다.

좋은 매물이 나왔기에 어찌어찌 대출까지 받았다고.

하지만 그 비율은 겨우 20%도 안 되어 전혀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 건물을 아들 명의로 돌렸어.”

“아.”

“그때, 재호 엄마가 눈이 휙 돌아가는데, 정말 사고 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마침 여기 점포를 내달라는 제의가 들어오는 바람에 적당히 넘어간 거지.”

“타이밍이 좋았네요.”

“꼭 그렇다고만 할 수 없는 게, 여기 권리를 전부 자신이 가지겠다고 하더라고. 이건 자기한테 들어온 제안이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 싶어서 하라고 했지.”

“아마, 안 그랬으면 건물 가지고 또 싸웠을지도 모르겠네요.”

둘러 말했지만, 분명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이 아저씨도 그걸 느꼈기에 허락한 것일 테고.

“이젠 그런가 보다 싶어서 그러라고 했는데…… 대체 이 나이에 뭘 그렇게 조급해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역시나 짐작이 맞다면, 이건 이거대로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아직 말을 꺼내기는 이르다 싶었다.

“어쨌든 자네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터질 일이었으니 너무 부담 가지지 말게나.”

“어억, 그게 더 부담스러운데요.”

“아니야. 오늘 마누라가 한 건, 이전에도 있었어. 내가 통장 관리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때와 거의 비슷했다고. 단지 칼을 들고 안 들고의 차이일 뿐이지.”

“아!”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는가?”

“예. 뭐든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범위 내라면요.”

“나도 일 때문에 조금은 법에 대해 알고 있다네. 하지만 여기는 조금 다르다고 했지.”

“그렇긴 합니다만.”

사실 이게 참 미묘하긴 하다.

바뀐 부분은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행위에만 적용하기로 했으니까.

그 외에는 대부분 대한민국 법령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니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고.

근데, 그 영상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상당히 많이 오해하고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지만, 무리해서 적용하고자 하면 살인 미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네.”

“굳이 따지자면 그럴 수 있긴 합니다만.”

순간 섬뜩하더라.

정말 내가 거의 날아오듯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엘리오스 마을 최초의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수도 있으니까.

“그, 그럼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 건가? 설마 고작 이런 일로 강제 노역을 해야 하나?”

고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했지만, 나가도 너무 나가 버렸다.

“하, 하하. 아뇨. 설마요.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정말인가?”

“당연하죠. 여기가 무슨 중세시대도 아니고, 아저씨가 지체 높은 귀족도 아닌데요. 그런 시답잖은 건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오늘은 쉬세요.”

“허허, 자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는군. 갑자기 졸립기도 하고.”

“그냥 아저씨는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세요.”

그 직후 유현성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게 신호라도 되는 양, 박동식의 눈이 서서히 감기더라.

아마도 자고 깨어나면 신체적인 부분은 거의 회복되어 있겠지.

“제발 내 판단이 틀렸으면 좋겠군.”

* * *

“진짜 이런 걸, 왜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가만히 노트북을 덮었다.

사실 박동식 입장에서는 충분히 걱정할 만한 일이긴 했다. 이 영상이 퍼지면서 엘리오스 마을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그때를 떠올리면 솔직히 짜릿하기도 했다.

영상 속은 어딘지도 모를 어두운 동굴.

희미한 불빛만이 여섯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깡, 깡, 깡.

스억, 서억.

들리는 소리는 오직 이것뿐이었다.

그 직후, 자막이 나왔다.

엘프 마을이 내건 조건.

그리고 이들은 강제노역을 선택했다고.

그 결과, 손에 삽과 곡괭이가 들렸다.

다시.

깡, 깡, 깡.

스윽, 사악.

누군가 곡괭이로 동굴 벽을 내리찍고.

그 잔해를 다른 이가 삽으로 펐으며.

그걸 받기 위해 또 바퀴 하나인 리어카가 다가왔다 사라졌다.

그 같은 행위가 거의 4시간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중간에 잠시 5분 정도 휴식을 취하는 걸 제외하면 거의 장면의 반복뿐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누구도 반항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

전신에서 쏟아지는 땀이 옷을 적셨다. 마치 찜질방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도 다들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거의 기계 같은 움직임으로 굴만 팠던 거다.

간간이 들리는 신음을 제외하면 일절 대화조차 없었다.

마치 등 뒤에 악마라도 있는 것처럼.

-와~ 보고만 있는데 숨이 다 막히네.

-저거 너무하는 거 아냐. 그래도 사람인데, 고문이라도 당한 건가?

-어우, 가혹 행위 같아!“

-최면에 걸린 것 같기도 하고, 저러다 당장 죽을지도 몰라.

-정부는 뭐 하는 거야.

-어쩌면 살해 협박을 당했을지도.

초기에는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급변하고 말았다.

-야, 그냥 이런 거 하지 말고. 어때, 나랑 사귀는 거.

이어진 건 여자 엘프의 허리를 팔로 휘감더니 강제로 옆에 앉히고, 몸을 더듬는 장면이었다.

-자, 여기 술이나 한 잔 따라봐.

-이씨, 손님은 왕이거든.

이후 강제로 술을 따르게 하고, 맥주컵 가득한 소주를 내밀며 마시라고 했었다.

곧이어 사장에게 욕설과 협박한 게 나왔고.

-난 대한민국 헌터라고, 재판을 받아도 여기선 안 받아. 그냥 벌금 조금 나오고 말겠지.

그 장면부터 댓글 반응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동료들과 주변 손님들을 위협하고 사장을 폭행하는 영상이 반복해서 이어졌다.

-와! ㅅㅂ 미친 새끼.

-아무리 헌터라도 그렇지. 어지간히 돌지 않고서야 저럴 수 있어?

-이게 다 법이 ㅈ같아서 그런 거다.

-우리 누나도 당할 뻔해서 암. 작은 밥집 하는데 ㅇㅈㅅ이란 헌터 새끼 있거든. 밥 네 공기나 처먹고 공깃밥 값도 안 주고, 수시로 외상해. 그러면서 올 때마다 우리 누나한테 저 지랄해서 나오지 말라고 함.

-울 식당도 마찬가지. 진짜 헌터 새끼들, 내가 힘만 있다면 다 때려 죽여 버리고 싶음.

-나도 마찬가지. 다 처먹고 맛없다면서 우리 엄마한테 욕하더라고. ㅅㅂ 그래놓고 밥값도 안 내고 그냥 감.

-님. 신고는 했어요?

-경찰이 헌터청에 서류 넘긴다고 했는데, 석 달이 넘게 걸린다고 포기하라고.

-헐.

-근데 빡쳐서 헌터청 직접 찾아감. 바로 접수했는데 그 새끼 이틀 뒤에 찾아와서 가게 다 박살 냈음.

-아이고, ㅠ0ㅠ

-근데 결과적으로는 잘 됨. 고요환 헌터가 직접 그놈 뚜들겨 패서 감옥에 집어넣고, 자기 돈으로 우리 가게 새로 지어줌. 심지어 울 가족들하고 사진까지 찍어서 벽에 걸어주고 감. ㅋㅋㅋㅋ

-아! 그 사건이군요. 이후 헌터들도 피하는 가게라고. ㅎㅎㅎ

-괜히 고요환이 영웅이라는 말 듣는 게 아님!

-나, 직통 전화번호도 받음. 물론 한 적은 없지만.

-오오~ 진짜 잘됐네요. 진짜. 나도 하! 헌터청 가서 접수할걸. 병신 같이.

-앞으로 무조건 신고.

-그러면 뭐 함? 우리나라 개판사 ㅅㄲ들이 판결을 ㅈ 같이 하는데.

-맞지. 가해자한테 너무 관대함.

-인권이고 나발이고 피해자만 손해임.

-특히 헌터들한테 유리한 판결이 너무 많음. 지들도 죽을까 봐서.

-하여간 저 ㅅㄲ들 삽질하는 거 보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

-ㅋㅋㅋㅋ

-나도 개쓰비 위장약 아저씨 생각나네.

-하여간 우리도 저래야 함. ㅅㅂ 헌터가 천룡인도 아니고.

-다들 이거 보고 응원하러 가요. 링크, www.hunter.go.kr/xxx/ooo

-오, 공식 발표다.

뭔가 해서 나 역시 링크를 따라가 봤다.

위에 것과 비슷한 짧은 영상이 떴다.

나온 부분은 공개되지 않은 그 뒷부분이었다.

-헌터 자격증을 박탈한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우는 헌터들의 명예에 먹칠을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벌금을 청구한다.

등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솔직히 멋지게 편집된 그 장면을 보니 약간 부아가 치밀더라.

실제로 뚜까 패서 제압한 건 나였으니까.

하여간 예전부터 잘난 역할은 저놈이 다했지. 아오!

이후 고요환이 헌터청의 공식 발표를 읽어나갔다.

대충 내용은 이랬다.

-헌터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다 적발되면 이전보다 처벌을 더욱 강화하겠다.

-즉시 자격 박탈에 헌터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만큼의 벌금을 물리겠다.

-아울러 최악의 경우 국외추방도 고려한다.

흐음, 저거 문제가 안 되려나?

분명 예전 같으면 소중한 전력인 헌터들을 외국으로 보낸다고 난리가 날 텐데 말이다.

그 당시 언론들은 그런 여론을 만들었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정작 게이트가 생기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싸우는 게 그들이었으니까.

“이거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려나. 짐작이 안 되네.”

역시나 예상대로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포털 메인에 각종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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