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흐음, 과하다라.”
일부는 이해가 간다.
사실 좀 너무하다 싶은 부분도 있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냉정하게 따졌을 때, 저건 오히려 많이 봐주는 편이었다.
엘프, 사실 진짜 일반적인 인식으로 엘프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어쨌든 가장 이해하기 쉬운 단어이기는 했다.
정말 자치적인 법으로 강하게 처벌하지 않았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인신매매, 납치, 강간, 노예 등등…… 그리고 그 이상으로 노려질 게 분명했으니까.
솔직히 시범 케이스로 교수형이라도 시켰으면 했지만, 그건 또 국내법상 역풍이 불 가능성이 컸지.
어쨌든 포털 기사 대부분이 이 지랄이었다.
고작 족발집에서 여직원과 농담 좀 했다고 자격증 박탈이라니.
또, 강제 노역 장면 일부를 캡처해서 당장 헌터들이 구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부추겼다. 대한민국 주권이니 인권이니 들먹이면서 말이다.
결국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에휴, 애쓴다. 기레기들.”
헌터 길드를 만든 대기업들이 나선 게 분명했다.
광고를 빌미로, 보다 정확히 말하면 돈으로 압력을 넣었겠지.
아마도 자신들의 영향력이 축소될까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게다가 일부 개쓰레기 같은 기업가들은 헌터들을 동원해 불법적인 일도 하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헌터들의 권한이 축소된다는 건 그들에게는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사 아래 달린 댓글 반응은 욕설 폭풍이었다.
-ㅆㅂ, 기레기 ㅅㄲ들이 돌았나. 대체 얼마나 받아 처먹었기에 지랄이냐.
-국외 좋지. 엘프 마을로 보내라.
-추천X10000000
-강제 노역 적극 찬성, 국내 도입 시급.
-가짜 기사 올리면 기레기도 노역시켜라.
-묻고 따블로 가.
“오! 분위기 장난 아닌데.”
정말이지 상위 댓글 ‘좋아요’만 1만 넘게 찍더라.
그건 상당히 드문 케이스였고, 포털에서는 보다 못해 댓글 자체를 막아 버렸다.
“어? 이건 또 뭐야?”
포털 메인에 속보로 올라온 건, 나도 알 법한 유명한 국회의원 사진이었다. 강경한 발언으로 TV에도 자주 나왔던 걸로 기억하니까.
-국민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폐해가 말도 아니었다는 의미일 겁니다. 저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강제적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경찰들도 외면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법을 제정해서 명확한 규정 사항을 정했으면 합니다.
발언 하나하나가 거의 폭탄급이었다.
헌터청의 공식 발표로 끝내지 말고 이참에 그동안 미뤘던 헌터 관련 법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
기본부터 과중처벌.
부당한 압력 행사 시 무조건 집행유예 금지.
폭행의 경우, 기존 법보다 3배 이상 형량을 구형할 것.
기여도와 국가 공적치 기준으로 감형은 가능하나 그래도 무조건 감옥행.
등등 아주 강하게 때리긴 했다.
물론 실제로 법 재정 관련해선 쉽게 통과될 것 같진 않지만, 여당 대표로서 아주 세게 때린 건 맞았다.
“우와! 이거 미쳤네.”
동시에 그걸 지지하는 여야 국회의원들 명단까지 공개했는데, 그 숫자만 3분의 1이 넘더라.
“확실히 충분한 이슈 몰이는 될 것 같구만.”
막 그렇게 생각하며 넘기려는데, 또 속보가 뜨더라.
“헐, 국무총리 긴급 담화문.”
나름 준비해서 근엄하게 말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법안 상정은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생각합니다.
혹여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더라도, 국무총리 행정 시행령으로 어느 정도 보조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연일 급증하는 각성자들의 범죄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일상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하고, 일선 경찰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보다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볼 만하다고 봅니다.
“허, 진짜 폭탄 발언이네.”
언론이 개병신 지랄해도 여론은 적극 지지였다. 바로 다음 날, 국민들의 성원이 폭발했던 것이다.
지금껏 쉬쉬했을 뿐, 헌터 혹은 각성자들이 워낙 난리를 쳤고 그 피해자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거겠지.
“어쨌든 요환이 녀석, 대응을 잘하긴 했네.”
고요환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포털에 뜨는데, 순간 모니터를 부서 버릴 뻔했다. 아무리 화장발, 조명발이라고 해도 거의 남자 아이돌급으로 포장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뭐, 그건 그거고.
어쨌든 이후의 대처는 제법 괜찮았다.
개인정보법 위반이기는 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손님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과를 하고, 선물도 건넸으며, 사진까지 찍어서 SNS에 올렸으니까.
“이 새끼, 지가 만능 부적도 아니고.”
일단 고요환과 함께 찍은 사진은 효과가 좋았다.
어지간한 하급 헌터들은 감히 깽판을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섬뜩해했던 것이다.
거기에, 만약을 대비해 부당한 압력이 들어오면 자신한테 연락하라고 개인 번호까지 돌렸단다.
심지어 헌터 관련으로 법 관련 전문 인원까지 붙여주겠다면서 조금이라도 억울하면 직접(?)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고.
이 새끼 기준으로 직접이면 최소 전치 16주일 텐데?
하여간, 월권이긴 해도 일단 사람들의 만족도는 최상이더라.
치, 이런 AS센터 같은 놈이 친구라니.
“나름대로 노력하는 거니 뭐라 하기도 참 그러네.”
확실히 영웅 흉내도 쉬운 건 아니었다.
문제는 이번 일로 한 발 더 나아갔다는 거다.
특히 국무총리 발표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헌터 관련 전문 부서를 신설하겠습니다.
기존 경찰들이 각성자 관련, 체포, 구금에 대해 어려움을 겪은 바. 상위급 헌터들로 구성된 전문 인력을 배치할 예정입니다.
일단 수도권 광역시부터 시작하여…….
한마디로 기존 경찰서 내의 헌터 대응팀을 하나로 묶어 전문 제압(?)을 전제로 또 하나의 경찰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흐음, 당연히 헌터청 소관이 되긴 할 텐데. 설마 여기까지 큰 그림을 그렸던 건가?”
아마도 이종족 관리부를 떼는 대신 정치적인 조건으로 헌터청에서 제안한 것 같았다.
그걸 분위기를 타고 밀어붙이는 거겠지.
어쨌든 실제로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직접 엘프들과 생활하는 이들의 경우 불안감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박동선이 그런 과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가 되더라.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공표해야 할 것 같은데. 엘리스와 상담해야 하나.’
그때, 조달수가 찾아왔다.
조금 황당하기까지 한 조건으로.
* * *
“그러니까, 명의를 돌려달라는 거지?”
“예. 형님. 아무래도 세금이나 여러 가지 혜택을 생각하면 그게 좋을 해서, 조심스레 여쭙습니다.”
모습은 소년인데, 말투는 할아버지 느낌이었다.
하긴, 나보다 거의 스무 살은 많으니 그게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솔직히 이야기해.”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일반인이 운영하는 것보다 부족 내에서 엘프가 영업하는 게 각종 이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절하듯 고개를 숙이는데, 살짝 의심이 들었다.
따지면 내 가게를 날로 먹는 거 같아서였다.
말이 좋아 명의 변경이지, 돌려 표현하면 소유권 자체를 달라는 거 아니겠는가.
“날 설득시켜 봐.”
“예. 저는 엘프 일족의 장로 가문의 손자로 최소 백 년 이내로 가문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 중책을 맡으려면 후임도 뽑아야 하고, 가게 시스템을 이해할 만한 직원을 키워야 합니다.”
“일단 여기까진 OK.”
“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제가 인사권이 없습니다. 직원도 제 마음대로 못 뽑는데 어떻게 제 뒤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럼 인사권만 주면 되는 문제 아닌가?”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일족에게는 나름 규정이 있는지라, 지금 식당가에 한해 한시적으로 허용하고는 있지만 그에 반발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흐음, 좀 고민되는걸?”
조달수가 열심히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뭔가 근본적으로 부족하다 싶었다.
괜히 핵심을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불편하시다면 그냥 잊어주셔도 됩니다. 어쨌든 일반인이 영업하는 것보다, 일족이 장사하는 부분에 대해 혜택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너 바보냐?”
“예?”
“내가 왜 식당가를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그건……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최고 회의에 들어갈 능력이 안 되서 깊은 내용은 모릅니다만.”
“그러니까…….”
“예. 엘리스 여왕님과 장래를 약속한 사이…….”
“야!”
순간 조달수가 움찔했다.
아니, 왜. 엘프들과 이야기하면 자꾸 결론이 그쪽으로 향햐냐고!
“아니다. 크흠. 미래는 모르지만.”
떼쟁이 아이일 때는 그냥 그런가 했다.
하지만 요즘 엘리스는 진짜 여신 포스였다. 심지어 손강희랑 현지가 직접 나서서 화장까지 가르치고 있는데 나날이 예뻐지는 것도 사실이었던 것.
그런 외모로 하루 두세 번씩 마을을 도니 관광객들, 특히 남자들은 환장할 수밖에.
때문에 청혼 메일만 하루에 수백 통이 온다더라.
“어쨌든 지금은 무조건 아니야. 됐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대가로 방금 네가 말한 모든 혜택이 적용되거든.”
“아!”
“그러니까 솔직히 까놓고 말하라고.”
“죄, 죄송합니다.”
이어진 이야기를 들으니, 이 새끼…… 진심이었네.
“저희 일족 남자들은 혼인 전에 증명을 해야 합니다. 부의 크기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것이죠.”
전사라면 사냥 실력을.
상인이라면 재산을.
관리라면 상관의 신임을.
뭐, 기타 등등 들어보니 많긴 하는데, 조달수의 입장에선 참 애매했다.
애초에 전사 라인이 아니라 공부만 했으며, 가문은 좋으나 물려받은 재산은 없고, 관리로 지원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한마디로 빈털터리라는 거지.
근데 내년에 결혼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자기 앞으로 뭐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단다.
그게 몰래 날 찾아온 이유였다.
근데 왜…… 슬며시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네.
“일단 고려해 보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까지 하는 대로만 하면 괜찮아.”
“무례한 부탁임에도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 녀석 보면 정호석이 생각났다.
손강희를 통해 아주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다, 라는 정도를 넘어 가게 직원인 엘프들까지 제대로 통솔하고 있었으니까.
거의 목숨 걸듯 누룽지를 만든다고나 할까.
뭔가, 언밸런스한 느낌이긴 하지만 열심히 한다니 굳이 잔소리할 필요는 없겠지.
동시에 그만큼 우리 현지를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그런데 형님, 그 외에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엉?”
잠깐 어이가 없어서 조달수를 쳐다봤다.
확실히 여심을 자극하는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에 금발과 눈빛이 거의 인형 같았다.
심지어 뽀얀 피부는 진짜 도자기 같고.
농담 삼아 저런 동생 있으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는 느낌이랄까.
결국 본심이 튀어나오더라.
“넌, 그냥…… 그대로만 있어 줘라.”
* * *
“예. 일어났다고 합니다. 근데 문제가…….”
라이노스 장로가 보낸 엘프가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는데 진짜였네.
사실 사람의 행동이 갑자기 돌변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특정한 계기가 있든가, 혹은 누군가가 최면이나 사주를 했을 때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그 외의 경우도 존재하긴 했지만.
바로 ‘병’이였다.
“사장님은 그럼 어디 계십니까?”
“일단 가게로 돌아가겠다고 하시더군요. 근데…….”
엘리오스 마을의 식당가가 아닌, 내려가는 길을 선택했단다.
원래의 본점을 떠올린 거겠지.
“남편분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박동선 아저씨의 성격상 붙잡고 말릴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손잡고 같이 내려가지 않았을까?
“예. 자신이 책임 지겠다면서 함께 마을을 벗어났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내가 예상하는 바가 맞다면, 당분간은 국수집 문을 닫아야겠지.
가능하면 초기 상태라면 좋으련만.
내가 예측한 여사장님의 병명은.
‘치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