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바로 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더라.
아니,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나보고 추가로 들어갈 재료를 고르란다.
사실 지금까지의 과정도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물론 재료들을 넣고 밥을 볶겠지.
그럼 이게 그 위에 올라갈 계란이라는 건데?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너 좋아하는 거 있을 거 아냐.”
“게맛…… 살?”
“오, 그것도 괜찮겠다. 확실히 빨간색이 식욕을 올려주는 게 있어. 그러면 호석아, 맛살하고 홍고추도 두 개.”
유현성이 부르자마자 재료가 도착했다.
홍고추는 반으로 가른 뒤 씨를 빼고, 다시 어긋 썰었고, 게맛살도 채를 쳐서 믹싱볼에 들어갔다.
“여기에 물을 소주 두 컵 정도 넣고, 살살살 섞어. 승우 네가 부칠 거니까. 좀 뻑뻑하다 싶으면 물 좀 더 넣고.”
“예, 알겠습니다.”
오승우가 막상 저어 보니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하긴 계란이 여섯 개에 흰자가 두 개나 더해졌다. 이것만으로 충분한데 물까지 들어가니 이대로 부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 이게 제일 작은 팬이거든. 너 속도 보니까 큰 팬에 두 개씩 부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딱 사이즈 대로만 중약불로 부치면 돼.”
“몇 개 나요?”
“아까 8인분이라 그랬잖아. 그럼 당연히 네 개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오승우는 곧 이해했다.
“형님. 그럼 좀 두꺼워지지 않을까요?”
“어. 밥을 다 덮을 정도인데, 약간 두껍게. 거의 파전 느낌 비슷하게 하려는 거야.”
엥? 볶음밥에 파전이라고?
“이게 놀랄 일이야?”
“그야…….”
“일단 믿고 한 번 해봐. 내가 먹을 건데 괜히 이상하게 만들 리는 없잖아.”
“알겠습니다.”
“나야 한 번에 가능하니까 괜찮지만 너는 어려우니까. 밥공기 네 개를 가져와. 그리고 적당히 네 등분 나눠서 약간 두꺼운 전 부친다 생각하고 해 봐.”
“예.”
“기름 두르고.”
센 불로 태우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잠시 계란 부치는 걸 살펴봤는데, 뒤집다 실패하고 말았다. 밑이 다 붙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뒤집다 보니 한쪽이 찢어진 거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 이건 네가 먹으면 되니까.”
오승우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안에서의 실수는 항상 본인이 책임지는 법이었으니까.
“잘 봐. 어떻게 수습하는가.”
유현성은 뒤집개로 슬쩍슬쩍 밀어서 붙이더니 다른 그릇에서 가져온 계란물을 한 수저 부었다.
“잠시 이렇게 잡고 있으면 돼. 장사하는 사람이 조금 실수했다고 모두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예.”
“중요한 건 같은 실수를 안 하는 법이고, 했다고 해서 위축되면 안 돼.”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둔 뒤,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
확실히 표정이 밝아져 있더라.
거기에 조금 더 팬에 집중한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느낌까지 들 정도로 바뀐 것이다.
짜식! 이젠 맡겨도 되겠지.
* * *
솔직히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변고웅 점장과의 경험이 조금은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짜다.”
변고웅이 인상을 썼고, 주방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거냐?”
“실수로 했던 걸 까먹고 소금 간을 더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죠? 새로 할까요?”
직원이 당황해하는데, 변고웅은 입술만 살짝 씰룩였다.
“흐음. 몇 번 테이블인데?”
“주문서에는 3번으로 나옵니다. 근데 라면 먼저 나간 지 4분 정도 됐습니다.”
“철판 볶음밥 다른 주문은 없어?”
“예. 볶음밥은 라스트 오더라. 이제 비빔밥”
그러자 변고웅은 밖을 슬쩍 보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황당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미 조리가 다 된 걸 철판에 엎어버린 것이다.
“불 올리고 밥 한 주걱 더해라.”
이미 된 건 한쪽으로 밀고 기름을 뿌리자 치이익 소리가 올라왔다.
거기에 다진 야채들이 들어간 뒤, 맨밥 투하.
고화력에 순식간에 타들어 가기 직전, 옆으로 밀어 넣은 걸 더해 단숨에 볶음밥 곱빼기를 만들어 버렸다.
사실 기술적으로는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후의 일.
변고웅은 직접 들고 주문한 테이블로 가서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말했다.
“주문을 잘못 받아서 곱빼기가 됐습니다. 저희 실수인데 새로 만들어 드릴까요?”
진짜 소식하거나 잘 못 먹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누가 그걸 거부하랴.
다행히 남자 손님 둘은 오히려 괜찮다면서 고개까지 숙이며 받아들었다.
그렇게 웃으며 몇 마디가 오가고 변고웅이 돌아섰다.
확실히 포스가 있네.
내가 봐도 손님들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다시 주방으로 온 변고웅은 실수한 조리사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밥하고 야채 조금 더 나가는 게 뭐라고. 그 얼마 안 되는 금액 때문에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 잘하면 되는 거다.”
“감사합니다.”
조리사는 거의 허리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과하게 몸을 숙였다.
그 직후 과하게 열정적으로 다른 일에 매달렸다.
설거지를 도우면서 그걸 직접 봤다.
해서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슬쩍 물었다.
“원래 그렇게 해요?”
“뭐가?”
“아까 실수한 거요.”
“아아, 그거. 솔직히 간이 짠 건 맞아. 근데 짜게 먹는 사람이라면 못 먹을 정도는 아니더라고.”
“그래서 밥을 더 넣고 볶은 거군요.”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더라.
“근데 실수는 지적해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허허,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법이거든.”
갑자기 몰아치는 손님들.
다소 복잡한 주문.
마지막으로 익숙하지 않은 주방.
“아무리 3년차 프로라도 하루 이틀 만에 적응하는 건 무리란 말이지.”
“아, 예행 연습도 안 하고 바로 투입인 겁니까?”
“앞에 하던 녀석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당장 가용할 만한 사람이 없더라고. 들어 보니 이 친구는 타 지점 신청하고 잠시 쉬는 중이었데.”
“타이밍이 좋았네요. 근데 어떻게?”
“허허, 김 대표님이 사기를 친 거지. 조리사는 주방에 서는 감을 잃으면 안 된다고. 잠깐 도와주는 셈 올라가라 한 거지.”
“헐.”
“김 대표님 성격에 맨입으로 하진 않을 테고. 아마 다음번 이동할 때 우선권을 주든, 직급을 올리든, 아니면 보너스라도 주겠지.”
확실히 이런 부분에선 칼 같은 사람이긴 했다.
적어도 계산은 확실해야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으니까.
“아마 그 친구도 자기 가게였으면 나처럼 했을 거야. 단지 위축되는 바람에 실수한 거지.”
“으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막 들어왔으면 오히려 잘 보여야 하는데 그랬다면요.”
“허허. 그리고, 나야 이제 나이도 있으니 욕심은 없지만, 아직 젊은 친구 아닌가. 혹시 아나? 아주 잘 돼서 높음 직급까지 올라갈지?”
“예? 설마…….”
진짜 그걸 노렸나?
에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런 속물 아니니 걱정 말게. 어쨌든 내가 최종 책임자이니 안심시켜야지. 그래야 앞으로도 더 내 지시를 잘 들을 게 아닌가.”
“아! 그렇죠.”
“자네도 누가 옆에서 보듬어 주고 책임진다고 하면, 따라갈 마음이 저절로 생길 걸세.”
“맞는 것 같습니다.”
순간 정호석이 떠올랐다.
좀 과하긴 했지만, 나에 대한 믿음은 거의 철벽같은 녀석이었다.
아니, 새로 뽑았다는 알바들을 제외하면 행복 분식 식구들 대부분이 그랬다.
잠시 웃던 변고웅이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자네가 사장이니까.”
* * *
“자, 나머지도 같은 요령으로 살살살. 그리고 뒤집기 전에 살짝 들어서 색을 먼저 봐. 약간 노릇노릇하다 싶어야 뒤집을 때 잘 안 떨어지거든.”
“예.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커진 걸 보니 이대로 놔둬도 되겠다 싶었다.
이제 내 차례였다.
“호석아, 밥 가져와.”
기다리고 있었는지 정호석은 이미 냉동고 앞에 있더라.
은색 트레이에 펼쳐진 밥은 완전하진 않았지만 상당히 식어 있었다.
겨우 10여 분 정도지만 볶음밥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것이다.
사실 행복 분식은 도정기를 가져다 놓고 쓴다.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아침마다 나락을 깎아 밥을 짓는 것이다.
때문에 갓 지은 밥은 수분 함량이 높으면서 탄성이 좋았다.
맛도 거의 일품이었고.
하지만 볶음밥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아 냉동고에서 급하게 식힌 거다.
먼저 트레이의 밥을 반으로 나눴다.
그걸, 계란 여덟 개가 들어간 곳에 쪼개 부시듯 넣고 조물조물 문질렀다.
그다음 갖은 야채와 재료 투하.
“이건 이대로면 되겠군.”
이제 제대로 볶을 차례였다.
화르르르륵.
화력을 최대한 올리고, 중화 냄비를 달구듯 올렸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파, 다진 마늘부터 넣었다.
전 국민이 다 안다는 파기름을 내기 위해서라 보면 된다.
그렇게 기름이 넉넉하게 나오면 당근부터 시작해 준비한 재료들을 순서대로 투하.
다시 살살 볶다가 소금, 굴소스 등으로 살짝 간을 한 다음 마지막으로 케첩 네 수저를 넣었다.
딱 이렇게 하면, 싱겁다.
“호석아. 비장의 무기.”
“예.”
미리 준비했는지 먹음직한 김치통이 옆에 놓였다. 실제로 안에 든 건 김치가 아닌 깍두기였다.
이제 불을 약하게 하고 먼저 깍두기 국물을 두 국자 넣었다.
바글바글 끓듯이 바뀌는 동안, 재빨리 깍두기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다져서 웍에 넣었다.
그 직후 불을 최대한 올리고.
화르르르륵.
일명 웍질이라고 하는 방식으로 볶아 버렸다.
팬을 흔들 때마다 날리는 재료들.
농담 삼아 모 만화에서 표현되는 황금빛 광채가 실제로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초 단위로 흔들다 불을 껐다.
웍질한 시간은 고작 30초 전후.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흔히들 불맛이라고 하는 약간의 그을림이 전체에 입혀진다.
이건 강종곤 형님한테 배운 방식이었다.
그 형도 나름 유명하다는 곳에서 배웠다며 가르쳐 주는데, 이름이 ‘대천하 반점’이란다.
살짝 웃기긴 했는데 거기 주방장이 나름 유명한 사람이라나?
어쨌든 그렇게 순식간에 뚝딱 네 그릇이 만들어지는데, 옆에서 보던 오승우가 입을 쩍 벌리더라.
하긴, 신기하겠지.
“자, 네가 만든 계란을 살살 올려.”
덜어서 옮기는데도 두툼했기에 찢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중약불로 시간을 들였기에 속까지 충분히 다 익었을 것이고.
“와! 진짜 예쁘고 좋습니다.”
“크흠, 대단하네요.”
오승호, 오승우가 진심으로 감탄하더라.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승우야. 이거 케첩이거든, 네가 한 번 그려봐라. 어떻게 해야 예쁜가 고민해 보고.”
내가 내민 건 케첩통 뚜껑을 교체한 거였다.
이 역시 핫도그 사장님께 얻은 아이디어인데, 3홀 뚜껑이라고 이걸로 뿌리면 아주 가늘게 세 줄이 나온다.
같은 양으로도 좀 더 예쁘게 넓은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거다.
“아! 소스 뿌리기 전에는 반드시 흔들어서 아래로 모이게 하고. 중간에 끊기면 이상해지니까.”
“예. 일단 흔들고, 이렇게 이렇게.”
아무래도 센스가 없는 건 형제가 같은 모양이었다.
그저 좌우로 지그재그일 뿐이었으니까.
다만 얇게 세 줄로 그어진 덕분에 오승호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그다음은 나름 변형해보겠다고 X자로 뿌렸고, 또 하나는 O자 안에 숫자 8을 넣었다.
순간 뒤통수를 확 후려갈기고 싶었다.
무슨 음식 가지고 장난치나?
“오우~ 이제 감 잡았습니다.”
오승우는 자신 있게 말하면서 네 번째 접시를 잡았다.
그렇게 그려진 건 별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 고생했다.”
사실 맛의 중심 포인트는 이미 잡혀 있기에 이건 그저 시선을 잡아 끄는 것에 불과했다.
다행인 건, 점점 자신감이 붙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 이제 다음 볶음밥 들어간다.”
“이미 준비 다 해놨습니다.”
호석이는 내가 잡을 순서대로 재료를 늘어놓았다.
아이구, 예쁜 녀석 같으니라고.
씨익 웃으며 팬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간단하지만 어마어마한.
전설의 황금알 볶음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