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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24화 (124/156)

124화

“일단 이거부터.”

처음 손에든 건, 계란이 무려 여덟 개나 들어간 믹싱 볼이었다.

이 안에는 밥뿐만 아니라 그냥 때려 넣은 야채들 역시 가득했다.

원래 집에서 해서 먹는다면 밥만 계란물에 적셔서 하겠지만 영업하는 집은 그 나름의 효율성도 생각해야 하니까.

어쨌든 여기에 우유를 한 컵 정도 붓고, 정성껏 곱게 뒤섞은 다음 채에 걸렀다. 그러자 약간은 걸쭉한 노란 액체가 천천히 떨어졌다.

그렇게 거의 두 컵 분량이 나왔는데 일단 그걸 옆으로 밀어 놨다.

웍에 파, 다진 마늘과 베이컨을 넣고 살짝 볶다 기름을 넣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할 수 방식.

“호석아,”

“그릇 네 개 옆에 있습니다.”

난 바로 베이컨만 빼서 사발면처럼 생긴 그릇에 깔았다. 그 직후, 정호석이 거기에 모짜렐라 치즈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다음 계란에 적셔진 밥과 야채를 웍에 투하, 강한 화력으로 볶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불길이 치솟고, 밥알과 각종 야채, 햄, 기타 등등이 뿌려지듯 펼쳐졌다.

약간의 소금 간, 그리고 다시 웍을 흔들고 희석한 굴 소스를 넣었다.

굳이 이렇게 나눠서 하는 이유는 계란물을 먹은 밥알과 재료들이 아직 뭉쳐진 상태여서였다. 그러니 웍질로 수분을 날려 알알이 펼쳐지게 한 다음 간을 해야 보다 골고루 베이는 것이다.

“후우~ 호석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까의 그 그릇이 다가왔다.

균등하게 네 그릇의 밥을 담고 웍을 재빨리 닦아냈다. 표면이 매끈해야 다음 과정에서 실수가 없는 법이니까.

그사이 정호석은 그릇의 밥을 접시에 엎어버렸다. 그리고 조리용 장갑으로 아래쪽부터 안으로 밀더니 살살 굴리더라.

“된 것 같냐?”

“예. 일단, 하나.”

“OK. 간다.”

아까 옆으로 밀어 놓았던 컵을 들더니 절반 정도를 웍에 부었다.

“어? 어어!”

“서, 설마?”

오승호와 오승우는 자신이 본 걸 믿기 어려웠다.

계란물이 웍에 뿌려지자마자 순식간에 색이 변했다.

유현성이 손목을 좌우로 돌리며 동시에 앞뒤로도 흔드는데 순식간에 넓은 계란 지단으로 변한 것이다.

더 황당한 건 정말 눈 깜짝할 사이라는 것.

한 2초나 되려나 싶었다.

그걸 곧바로 둥글게 말린 밥 위에 턱 얹는데, 진짜 색달라 보였다.

정호석은 다시 다른 접시를 내놓고 섬세하게 계란 지단을 밀어 넣어 대략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이후 그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사실 방식이야 간단했다.

하지만 누가 감히 저런 기교를 부릴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소스인데, 아주 간단해.”

정석대로라면 전분물을 만들어야겠지.

붉은색을 내려고 케첩 같은 걸 쓰기도 하고, 일반적인 소스 색이라면 간장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분식집에서 그렇게까진 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이건 우리끼리 맛있게 먹으려고 하는 거기 때문에 이것저것 해보다가 나온 음식이니까.

“설탕에 약간의 물을 넣고 끓이면서 저으면 설탕물. 여기에 식초 조금. 끝!”

진짜 맑은 설탕물이었다.

그걸 단순히 계란 절반 정도에만 뿌린 게 전부였다.

“이게 황금알 볶음밥이다. 봤냐?”

“확실히 알 모양이긴 합니다.”

“예. 그런데 조리 과정을 다 봤는데도, 가르면 뭔가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휙 고개를 돌려 노려보니 오승우가 바로 몸을 움츠렸다.

“이제 그 안에서의 일은 잊어라. 너희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이쪽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럼 여기 규칙에 맞게 살아야 하는 법!”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쌍둥이가 느끼기에는 실로 무시무시한 기운이었다.

유현성은 그들을 지나치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자, 뒤에 테이블을…… 가자.”

어느새 이호영이 충분히 앉을 수 있게 4인 좌석 두 개를 붙어놨더라.

그때였다.

“저희 다녀왔어요!”

“예. 다녀왔습니다.”

안으로 들어선 건, 임혜리와 임수원이었다.

양손 가득 비닐 봉투를 든 채로.

* * *

“나이스 타이밍이네.”

임혜리의 눈빛이 달라졌다.

분명 이전에도 몇 번이나 먹었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미묘한 변화를 순식간에 느껴졌다. 뭔가 한 단계 품위가 올라간 것처럼 말이다.

바로 수저를 들고 달려들려는데 손바닥 하나가 얼굴 앞을 막아섰다.

“잠깐. 그 전에 다들 이것부터 한 번…… 아니, 아니다. 황금알 볶음밥부터 먹자.”

“형님. 이거 오므라이스…… 아닙니까?”

오승호가 그렇게 묻는 게 당연했다.

울 가게 사람들이야 몇 번 먹어봤으니 별말 않하지만 쌍둥이에게는 다르게 보일 테니까.

“일단 계란을 덮었으니 그렇게 봐도 되긴 하는데…… 뭐, 팔 것도 아니고 인터넷 보면 기본 레시피는 다 나와 있으니 몇 번 해보면 다 하겠지.”

동시에 유현성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내저었다.

“뭐야? 포털 검색에 황금 볶음밥이라고 치면 대충 수백 개가 나올 거야. 거기에 몇 가지를 응용한 거라고.”

“형님, 저희는 이렇게는 못 합니다.”

“그럼 저렇게 해보든가. 됐고 먹자!”

나, 정호석, 이호영, 임혜리, 임수원, 그리고 떨거지 둘.

전부 7명. 근데 나 왜 8인분을 만든 거지?

“어? 근데 호석아 전에 알바 쓴다고 하지 않았나?”

“제가 이야기드렸는데, 계속 사고 쳐서 잘랐습니다.”

“아! 그랬었나?”

하도 정신이 없었더니 까먹은 모양이었다.

“지금은 금토 이틀만 알바를 쓰고 있습니다.”

“으음. 뭐, 네가 그렇게 정했다면 맞겠지. 아! 그럼 조온달은?”

“퇴근했죠. 요즘은 점심 피크만 보고 위로 올라갑니다. 가끔 저녁 예약이 밀리면 와서 돕고요.”

이 망할 놈이!

어째 묘한 시선이 자꾸 느껴진다 싶었다. 게다가 종종 마을에서 보이기도 했었고.

솔직히 그때는 엘리스나 장로들이 뭔가를 시킨 건줄 알았다.

그런가, 하고 넘긴 것도 그래서였고.

“이놈 월급 삭감이다. 아니, 쫓아낼 거야.”

“형님이 그렇다면 그런 건데, 매출 하락이 예상되거든요.”

“뭐라고?”

“솔직히 그 친구 보러 오는 손님들이 제법 돼서요.”

“흐음, 그래. 그럼 당분간 지켜보고.”

“감사합니다.”

정호석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건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우리 행복 분식은 주 5일 근무였다. 토~일, 이렇게 쉬는 구조였던 것이다.

시작은…… 크흠, 내가 놀고 싶어서였지.

살짝 찔리지만 뭐, 장사는 잘됐잖아.

근데 어느 날 정호석이 그러더라.

일요일하고 월요일을 쉬잖다. 대신 토요일은 브레이크 타임을 없애고 일찍 마치는 쪽으로.

정중하게 이야기하기에 일단 해봐라, 라고 했었지.

어차피 우리는 한정 수량 판매 후 마감이었으니까.

근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오후 여섯 시에 마감이었다.

이주 뒤, 다섯 시 마감,

한 달 뒤에는 네 시 전후로 마치게 된 것이다.

황당해서 저녁에 쉴 때 이것저것 알아봤다.

한때 환상이라 불렸던 라면이란다.

평일 점심 때 조금만 늦어도 먹을 수 없었고, 주말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

심지어 저녁 장사는 일주일에 세 번 하는데 예약만 받는다고.

즉, 평범한 직장인의 경우 먹고 싶어도 못 먹으니 환장하게 된다는 거다.

특히 장어묵 덮밥은 더욱 그러했고.

근데 그랬던 분식집이 토요일 장사를 개시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미친 듯 달려와 먹게 된 이유가 그거라나?

결국 주말에는 주문 수량을 늘리기로 했는데, 어느 정도 부작용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다들 일찍 퇴근하고 월요일까지 논다는 것에 엄청난 힘을 냈단다.

기진맥진해 쓰러져 그 자리가 무덤이 되더라도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나 뭐라나.

어쨌든 또 한 번 SNS상에서 이슈가 되는 바람에 평일에 한두 번씩 완판이 안 되던 것들까지 모조리 작살 나 버렸다.

매출 14% 상승.

무엇보다 식자재 대량 매입에는 그에 맞는 할인까지 들어온다. 단돈 십 원, 백 원이라도 깎을 수 있는 것이다.

거래처 입장에서도 더 많이 팔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니었고, 오히려 훨씬 남는 법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특별히 이상한 경우만 아니면 정호석의 말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충성 포인트가 만렙을 찍은 것도 있었고.

뚝- 뚝- 뚝-

갑자기 옆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엑!”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는 게, 그게 임혜리의 침이어서였다.

“뭐, 뭐야?”

“우리 안 먹어요?”

“아니. 안 먹고 있었어?”

“식사는 다 같이해야 맛있는 거라 그랬잖아요. 근데 둘이서 일 이야기만 하고 있고.”

“미안. 자, 먹자, 아니 나부터…….”

숟가락을 들고 내가 처음 만든 걸 한가득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힐끗 시계를 봤는데…… 1분도 안 지났더라. 아니 길어봐야 2분인가?

뭐, 예민한 임혜리나 임수원 입장에서 음식을 앞에 놓고 그 정도 기다리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일이겠지.

특히 강아지한테 앞에 맛있는 간식을 놓고, ‘멈춰’ 명령을 내린 것처럼.

“흐음, 내가 만들었지만 밸런스 괜찮네.”

역시나 예상대로의 맛이었다.

일단, 계란에서는 케첩 맛이 희미했다.

약간의 산미가 오히려 식욕을 올렸다고나 할까?

두툼하게 부친 계란의 고소한 맛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식감도 나무랄 게 없었다.

당근, 양파 등의 야채와 그리고 희미하지만 게맛살의 향까지 느껴졌다.

“어때, 혜리야?”

“진짜 좀 빨리, 아니면 자주라도 내려오지 그랬어요. 흐엉, 어어엉.”

정말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 것 같은 기세였다.

얘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니…… 무슨 일 있어?”

그러면서 슬쩍 정호석을 쳐다봤는데 입으로 숟가락을 문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더라.

그때 터져 나오는 한마디.

“너무 맛있잖아요. 으엉.”

“그래. 많이 먹어. 앞으로 자주 해줄게, 뚝!”

“뚝.”

“그래, 혜리 네가 안 먹으면 수원이가 다 먹을 거니까.”

순간 옆으로 휙 고개를 돌리는데, 눈빛이 살벌했다.

임수원이 바로 깨갱하더니 바닥에 엎드릴 듯 몸을 움츠렸다.

어쨌든 첫 버전을 다들 나눠 먹는 가운데, 오승호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넌 왜 그러냐?”

“아닙니다. 그냥 제가 만든 게 너무, 뭐랄까. 음식물 쓰레기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좀…… 그러네요.”

“당연하지. 넌 아마추어고, 난 프로야.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마저 다 먹고 이야기하자.”

“예.”

약간 풀이 죽어 있는 걸 보니 약간 미안하기도 하네.

그렇게 첫 오므라이스가 사샥 하고 정리되었다.

다들 맛이 괜찮았는지 밥알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다 먹고 접시를 치우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4분.

4인분이지만 그 상대는 배고픈 7명이었다. 그러니 1라운드 만에 KO시킨 게 당연했다.

“다음 건 내가 이것저것 보다가 알게 된 거야. 한라산 볶음밥이란 게 있고, 일본에도 화산 볶음밥 같은 게 있더라고.”

“예? 이전부터 황금알 볶음밥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걸 좀 응용한 건데, 어쨌든 동그랗게 만들어서 말면 되겠더라고.”

내 설명의 방향은 맞은편의 쌍둥이였다.

아까 잠시 나갔다 왔던 임혜리는 상황을 아직 모르니까.

“일단 혜리야. 딱 가운데를 갈라봐.”

“오, 안 그래도 이 묘한 향 때문에 미칠 것 같았어요.”

얘는 몇 달 제대로 못 본 사이에 더 어려진 것 같았다.

하지만 길냥이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 같은, 그런 두려움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너도 많이 밝아졌구나.

다소 흐뭇해하면서 보는데, 순식간에 얇은 계란막이 벗겨졌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녹아서 찐득찐득해진 치즈였다. 그 사이에 있어서 존재감을 뽐내야 할 베이컨조차도 반쯤 묻힐 정도였던 것이다.

“우와! 폭발하는 향이…… 으으으.”

“진짜 맛있겠다.”

다들 감탄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비록 숙련도가 지금보다는 부족했지만, 분명 전에도 거의 같은 걸 만들어줬다.

다만 식초가 들어간 끓인 설탕물을 끼얹은 게 추가였고 계란 지단이 더 얇아진 정도?

“이, 이렇게 반응이 폭발적이다니. 호석아 무슨…… 너, 우냐?”

“아닙니다. 그냥 울컥해서요.”

조금 전 임혜리의 경우가 있기에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래, 나 없는 동안 고생 많았지?”

“형님. 그게 아니라. 제가 한 열 번 정도 시도했거든요. 다들 해달라고 해서요.”

“뭐?”

“단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해 본 적 없어요.”

“레시피 다 가르쳐 줬잖아. 근데도 안 돼?”

“예. 안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해보니까 깨닫게 되는 게 있어요.”

정호석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말이 더 황당했다.

“이건 다른 의미로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그런 음식이라고요!”

순간, 뇌리에 번개가 꽂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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