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25화 (125/156)

125화

추구하는 길이 있었다.

내 가게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함.

어디에나 있을 것처럼 비슷하지만 결코 따라할 수 없기에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이걸 다른 말로 독보적이라 하던가.

그럼 절대 망할 일은 없을 거다.

아니, 잠깐?

이거 분명 누구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

확실히 그랬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틈만 나면 이런저런 음식들을 만들었다.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걸로 분식집을 되살리자고 했지.

그나마 유일하게 성공한 게 어묵 국물이 첨가된 라면이었다.

실제로 가게 수익의 절반이 훌쩍 넘었으니까.

어쨌든 아버지는 독창적인 시도를 많이 하셨다.

그 대부분이 괴랄하긴 했지.

따라 할 수 없지만, 따라 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으니까.

순대 카레밥.

이름 그대로 분식집 순대를 썰어 3분 카레를 얹은 밥과 함께 먹는 요리였다.

진심으로, 한 입 먹고 접시를 집어던질 뻔했다.

편육 햄버거.

지금도 있는 학교 앞 토스트집에서 영감을 받았단다. 햄버거 패티 대신 편육을 넣자고.

질감과 누린내가 입안에서 탭댄스를 추더라.

간장 호떡.

그냥 호떡인 줄 알고 살살 불어서 한입 물었는데, 달달한 흑설탕 꿀이 아닌 비린내 폭탄이었다.

간장게장이 맛있어서 그 간장을 섞은 소스를 개발했다고.

이후 일주일 동안은 뭘 먹어도 비린내가 느껴졌다.

진심으로 난 미각을 상실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지금의 나라면 어떤 식으로든 먹을 만하게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15년 전의 나에게는 거의 고문이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아버지 생각을 하는데 뭔가 크게 울컥하진 않네.

많이 담담해진 건지, 그만큼 내가 성장한 건지 모르겠다.

그냥…….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았다.

어쨌든 그런 영재 교육(?)의 영향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행복 분식을 시작하면서부터 뭔가 남들이 못하는 걸 추구하게 됐으니까.

“형님. 형님?”

“어? 어, 맞다.”

“괜찮으세요? 갑자기 눈 감고…….”

“왜? 나, 뭐 이상했어?”

“그냥 고문이라도 당하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실실 웃다가 그랬습니다.”

“에이, 아니겠지.”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하던데요?”

“크흠, 됐고. 하여간 네 덕분에 영감이란 걸 받은 모양이다. 어쨌든 네가 실패한 이유는 나중에 알려줄게.”

“예.”

슬쩍 고개를 돌려 임혜리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랐다.

살짝 고개를 치켜든 채 향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그 옆의 임수원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유일한 차이는 입속의 뭔가를 꿀꺽 삼키는 것.

저건 아마 침이겠지?

“먹자니까?”

“아앗!”

“후르릅.”

화들짝 놀라는 임혜리와 눈을 번뜩이는 임수원의 반응에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

“일단 맛보고 이야기하자고.”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임혜리는 적당히 4등분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걸 각자의 접시에 덜어주는데 뭔가 손을 부르르 떨더라.

다들 먹는 걸 보면서 나 역시 한 수저를 떠 입으로 가져갔다.

확실히 이전보다 맛의 일체감이 더욱 올라갔다.

완성도로 치면 한 3~5% 정도?

물론 더 보강할 수 있지만 노력 대비 맛은 그다지…… 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분식집인 이상 높은 가격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생각해 봐라.

번화가도 아니고, 그 구석 주택가의 경계에 자리 잡은 분식집이다.

공간이 널찍하거나 혹은 조경이 잘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SNS용 사진을 찍을 만한 장식도 없었다.

근데 오므라이스 하나가 8~9,000원이면?

쉽게 손이 가진 않을 거다.

그건 적어도 안정적인 판매량이 보장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거겠지.

또, 밑준비에 필요한 재료들 역시 버려야 한다는 의미였고.

때문에 분식집은 적당한 노동력과 가격에 맞는 조리법을 갖추는 것이 필수였다.

“하음, 맛있어요.”

임혜리는 눈을 감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고, 임수원은 접시 바닥의 설탕물을 핥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까지의 반응을 보일 맛인가 싶긴 했다.

하지만 정호석까지 아주 밥알 하나하나 음미할 기세였다. 누구보다 신중한 표정으로 거의 해부하듯이 알알이 살피며 먹었던 것이다.

맞은편의 쌍둥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에 홀린 듯 입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특히 오승호는 얼굴이 벌게진 채였다.

아무래도 뭔가 느낀 거겠지.

“어, 어엇.”

갑자기 임혜리가 달려들어 날 끌어았다.

바로 옆자리였고 내 시선이 정면이었기에 기습을 막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을 애라 미리 생각해서겠지.

어쨌든 크게 휘청거렸지만 재빨리 발을 뒤로 빼서 지탱했기에 넘어지진 않았다.

“오빠, 사랑해요!”

* * *

오해를 살 만한 발언.

당연하게도 누구도 오해하지 않았다.

흐음. 이거 뭔가 수상한지만.

일단 그건 그거고.

아직도 얼이 빠져 있는 쌍둥이보고 아직 시간이 있으니 차나 마시고 있으라 했다.

이제 저녁 영업까지 20여 분밖에 남지 않아서였다.

오늘 예약은 네 팀.

한 팀은 무려 12명이나 돼서 다락방을 선택했고, 바에 한 팀, 메인홀에 한 팀, 바깥 홀에 한 팀이었다.

총 인원 38명이란다.

이 역시 운영 방식도 정호석에게 맡겼다.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하지만, 녀석이 두어 번 정중하게 부탁해서였다.

그 모든 게 매출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라니 어찌 허락하지 않을까.

인원수에 맞게 메인 메뉴 서너 개와 사이드가 나가는 식이었고, 무조건 예약만 받기로 했단다.

처음에는 혼자서 하는 게 부담되지 않겠냐 싶었다.

근데 녀석 특유의 포용력 때문인지 이호영부터 자발적으로 배우겠다고 남았고, 어쩌다 임혜리가 남게 되면서 옵션으로 임수원이 붙었다고.

그런 수순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만 받았는데 최고 50명은 넘기지 않았다.

가끔 바쁘다 싶으면 조온달이 남아주기도 했고.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부분.

정호석의 짧은 보고 역시도 거의 차이 나지 않더라.

“일단 운영 방식은 맡겼으니까 당분간 그대로 가자.”

“감사합니다.”

“아냐. 네가 고생한 건데. 잘했어.”

“아닙니다. 형님이 절 믿어주셔서 어떻게든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순간 변고웅 점장의 말이 다시금 떠오르더라.

사장이 책임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따라갈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거라고.

“솔직히 나도 내 고집대로 밀어붙인 게 많기는 해. 결과가 좋으니 별말 없지만, 조금은 여유를 가지는 게 맞다고 봐.”

정호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카리스마 넘치던 이전의 모습이 조금은 누그러진 느낌이었다.

이전보다 부드럽고 여유가 더 보인다고나 할까.

때문에 약간의 상실감과 미묘한 감정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곧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형님이니,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냥 그렇게 결론을 내려 버린 것이다.

“아까 그 황금알 볶음밥. 그거 왜 나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야? 분명 들어가는 재료나 기본 베이스는 다 알려줬잖아.”

“예. 꼼꼼히 메모 다 해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깨달은 게 있더라고요.”

“그게 뭔데?”

잠시 심호흡을 한 뒤에야 정호석이 말했다.

“보는 눈입니다.”

“엥? 눈하고 음식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일종의 감각이라는 거죠. 형님이 알려주신 분, 초 단위로 계산해서 하는데 어떨 때는 깔깔하고, 어떨 때는 타고. 심지어 달고, 짜고 하는 것조차 미묘하게 다르더라고요.”

“그건 어쩔 수 없지. 결국은 경험의 차이니까. 그래서 그 기준점을 잡는 게 레시피라는 거야. 하지만 그걸 절대적으로 맹신하면 안 돼.”

“아!”

“당연히 음식은 계절, 날씨, 기온, 습도에 영향을 받는 거라고. 괜히 주방에 온도, 습도계가 있는 게 아니잖아.”

“그렇군요.”

“결국은 감각이긴 한데…… 음, 일단 누적된 경험에서 쌓인 데이터가 많아야 돼. 그건 겉으로는 수치적으로 증명하기가 어려워.”

정호석은 잠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결국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실제로 조작이니 뭐니 말은 많지만, 모 방송에서 초밥의 명인이라고 나온 적 있거든. 스시를 내놓으면서 밥알의 개수를 맞추더라고.”

“밥알의 개수요?”

“어. 그냥 밥통에서 스윽 쥐는데, PD가 물어보더라고. 혹시 몇 알이나 쥐는지 아느냐고. 근데 그 명인이 그러더라. 계통에 따라 다르나 저희 쪽은 보통 81개에서 82개 사이로만 쥔다고.”

“헉! 그게 돼요?”

“일단 방송인 걸 감안하더라도, 실제로 세어 보니 81개 딱 떨어지더라고. 중요한 건 그 결과를 내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대. 그것도 자격증을 따고 밑바닥부터 몇 년 올라간 다음에 칼을 잡는 걸 허락받은 시점부터.”

“그, 그럼 대체 몇 년을…….”

“아마 최소 20년 경력 이상이라는 거지.”

순간 정호석의 얼굴에 어둠이 깃들었다.

“혀, 형님은 혹시 해보셨습니까?”

“밥알은 아니고 쌀로는 해봤는데, 역시 쉽지 않더라고.”

“어느 정도입니까?”

“별거 아냐. 그냥 80개 잡겠다 생각하고 했는데 76개에서 83개 전후로 나오더라. 한 백 번 하니 한두 번 정도 맞더라고.”

“허어!”

이 자식, 여기서 더 놀라게 하면 또 쓰러질지도 몰랐다.

물론 병명은 심장 마비겠지?

“자! 그 정도 차이면 평범한 사람들은 거의 못 느껴. 즉, 80개란 숫자가 레시피란 거지. 최대한 근접하게 하는 게 노력이고.”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겁니까?”

“아니지. 항상 생각하면서 해야지. 그래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맞출 수 있는 거고. 그걸 경력, 혹은 노련미라 부른다고.”

“단순히 반복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거군요.”

“그래. 넌 너무 정직하고 올곧아서 그런 거야. 아!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적어도 음식을 할 때는 조금 생각을 유연하게 가져.”

이게 진짜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어째 대화가 조금씩 돌긴 돌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테니까.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다.

내가 한 말이니까, 머리로는 몰라도 적어도 몸으로는 최선을 다할 녀석이 아니던가?

그렇게 따지면 우리 아버지는 창의적인 센스는 꽝이었다.

하지만 사고의 유연함은 가지고 계셨지.

“형님. 이해했습니다. 일단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지금처럼 영업 방식을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도 돼. 단,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게 뭡니까?”

“내가 저녁 장사를 허락한 건, 빨리 경험을 쌓아 실력을 키우라는 의미에서야.”

“전에도 그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일단 호석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라는 의미로.

“우린 분식집이다. 술집이 아니란 걸 잊지 말라고.”

* * *

오승호, 오승우.

정호석을 시켜 불렀는데, 마치 죄인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야!”

“예. 조장. 시키십시오.”

“옙. 부르셨습니까?”

쯔, 여전히 옛날 버릇 나온다.

나온 지 대충 반년 정도 됐다고 했나?

그럼에도 그때의 습관이 여전한 모양이었다.

이걸 써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긴, 당장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겠지.

“승호야. 승우야.”

“예. 조…… 윽!”

“옙. 부…… 악!”

두 녀석의 정강이를 동시에 까버렸다.

그 즉시 주저앉더니 곧바로 벌떡 일어나더라.

“명심해라. 여긴 군대가 아니다. 막말로 폭행죄로 신고해서 경찰 불러도 돼.”

“아닙니…… 컥.”

“괜찮습…… 큭.”

둘 다 동시에 복부를 움켜쥐었다.

곧 고통을 참으려는 듯 이를 악물더니,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행인 건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

“이제 정신이 좀 드냐?”

둘 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얼굴만 붉게 물들일 뿐이었다.

“오늘 먹어본 오므라이스…… 그래, 거기에 가격을 매긴다면 얼마를 받아야 될까? 셋 하면 동시에 말해봐. 하나, 둘, 셋.”

“만 이천 원.”

“만 원입니다.”

그 직후, 내 어깨가 움찔거렸다.

둘 다 질린다는 표정이었지만 자세를 풀지는 않더라.

“둘 다 틀렸다. 그건 호화로운 레스토랑이나 호텔 같은 특별한 곳이 아니면 만 원 이상은 못 받아. 더욱이 분식집이면 아마도 팔구천 원이 한계겠지?”

“말도 안 됩니다. 정말 제가 만든 거 하고 차원이 달랐습니다.”

“예. 정말 맛있었다고요. 옆에서 조리할 때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헙.”

오승우는 잽싸게 입을 닫았다.

앞에서 주먹을 우드득거리며 씨익 웃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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