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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27화 (127/156)

127화

“아아, 좋아.”

엘리스는 아주 그냥 평상에 드러누웠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끝에서 끝까지 뒹굴뒹굴 데구루루루 굴러가더니 중앙에서 팔다리를 활짝 폈다.

“흐아아아, 자유다. 자유야!”

아주 그냥 널찍한 평상 전체를 마구 구르며 휘젓는데, 진짜 떼쓰는 아이랑 다를 바 없었다.

나름 귀엽기는 하네.

“좋아?”

“아주, 아아주, 아주 좋아요.”

“너 말투가 수시로 바뀐다?”

“장로가 그러더라고요. 대한민국은 옛날부터 지아비를 모실 때는 존칭을 쓰는 게…….”

“좀! 적당히 해라. 시대가 바뀐 게 언제인데.”

“히잉, 나름 노력한 건데.”

노력은 개뿔.

저거 분명히 나 엿 먹이려는 장난이 분명했다.

엄살 겸 연기가 이젠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였으니까.

근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

뭐, 이것도 나쁘진 않겠지?

가만히 평상에 누웠다.

뭔가 나른해지는 기운이 주변에서 슬금슬금 피어 나온다고 해야 할까?

그저 호흡만 해도 뭔가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 박살이 옆에 있었으니.

“으아아, 좋아. 좋아. 히으, 좋다고.”

엘리스는 출처 불명의 신음까지 흘리며 평상을 마구 뒹굴다가 나에게 착 달라붙었다.

“히히, 좋아.”

“야, 덥다. 더워.”

“히잉, 난 따뜻한걸요. 잠깐만 이대로 있어 줘요.”

결국 어리광을 받아들였다. 팔베개를 빌려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넘어오기 전에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했었나?

거기에 라이노스 장로가 신신당부를 하며 부탁했다고…… 조온달 이 썅노무 새끼가 말했다.

한마디로 내가 호위를 겸해야 한다는 거지.

“엘리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진짜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자연과 벗하는 엘프, 헌터청에서 멋대로 붙인 거지만 어쨌든 엘리스는 진심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나 이상으로 힐링은 만끽한다고 해야 하나.

“그래! 힐링이 별게 있겠어?”

사방이 숲이었다.

지극히 고요하기도 해서, 마치 산림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찌를 듯 솟아오른 나무가 한아름이었고, 그 너머에 펼쳐진 푸른 하늘도 무척 평온했다.

마치…….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뭐?”

“그냥 지금 이대로…….”

어? 어라?

엘리스는 그대로 다시 잠들어 버렸다.

버스 옆자리에 앉아서 쉴 틈 없이 조잘거린 게 무색할 정도로 다시 눈을 감은 것이다.

그런대로 괜찮다 싶어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하아.”

뭔가 모를 속박을 벗어던진 느낌이었다.

눈감기 싫을 정도로 맑은 하늘.

항상 긴장해야 했던 게이트 내부와 다르게 울창한 산림이 부쩍 다가오는 듯했다.

가만히 누워 생각해 보니.

진짜 정말, 일만 했구나.

제대하고, 바로 분식집을 물려받고, 리모델링 공사에 메뉴 개발에 정신이 없었다.

전포제 요리 대회에 참여해서 우승하고, 엘리스 때문에 떠밀리듯 세계수를 가져왔다. 그러다 튀김 덮밥도 만들고…… 식당가까지 맡아서 개고생했다.

이게 일 년 반만에 할 수 있는 일인가.

더불어 군 시절과 다른 무수히 많은 이들과 인간관계를 맺기도 했다.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으음, 마치 꿈만 같기도 하네.”

막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흐름에 어쩌다 탑승했다고나 해야 할까?

갑자기 엘리스의 손이 근데 손은 부자연스럽게 날 확 끌어안았다. 곰 인형이라도 되는 양 더듬더듬하더니 숫제 머리를 파묻고 도리도리하더라.

순간 밀쳐내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려면 어때.”

살며시 토닥토닥하면서 정말 간만에 자유를 만끽했다.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둥실 뜬구름 역시 그저 무심한 듯 흘러갈 즈음,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들아, 저녁 준비해야지?”

우리 강은하 여사님이 살포시 웃고 있었다.

벌떡 엘리스를 안은 채 일어났더니, 갑자기 말이 없다가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엄마는 아들딸 상관없단다.”

* * *

“자, 먹고 마시고, 죽자!”

짜악!

아오, 등짝에 다시금 불이 났다.

“죽긴 왜 죽어. 아주 펑펑 놀아야지.”

하아,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강 여사는 활기가 넘쳤다.

자꾸 엘리스에게 밀어붙이는 것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마구 돌아다니더라. 거의 태수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다시피 움직였던 것이다.

“흐음, 진짜 이거 이대로 좋으려나 모르겠네.”

내년 4월 마지막 주.

당황스럽게도 진짜 예식장을 잡아 버렸다. 태수 이 자식이 혼인 의사를 밝혔고, 강 여사가 바로 허락해 버린 것이다.

짐작하고 예상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일이 진행될지 상상도 못 했다.

“너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좋다는 사람 있을 때 빨리 가.”

“헐, 강 여사님. 저마저 떠나면 누가…….”

“엄마는 알아서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들이 그렇게 싫으세요?”

“야! 손주가 더 좋아!”

진짜 쿨럭하고 기침하면 입에서 피가 나올 것 같았다. 아니,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걸까?

강은하 여사님께선 흐뭇한 표정만 지을 따름이었다.

물론 그 시선의 끝은 정태수와 현아였다. 그런 상황에서 덕순 할머니까지 가세했으니.

“신혼집은 가게 옆에 몇 군데 알아보긴 했는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어머, 저희 쪽에서는…….”

벌써 살림살이부터 손주 방까지 계획하고 계시더라.

설마 이게 상견례는 아니겠지?

“아! 형님. 고기 좀 드시죠?”

“그, 그래.”

얼떨떨한 상황에서 정호석이 불렀고, 접시 가득 고기를 올려줬다.

크흠, 근데 인간적으로 좀 썰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주 그냥 애들 주먹만 한 부위를 통으로 턱 올리는데 이게 씹히기는 하려나 싶더라.

“형님. 주먹 구이입니다.”

“저, 호석아. 내가 아는 주먹 구이는 이게 아니거든?”

“하하, 소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오늘을 대비해 야심차게 준비한 거죠.”

“후, 그래. 고생했다.”

정호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테이블에 앉았다. 나이프로 잘랐더니 정말 가볍게 썰리더라.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진짜 맛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육즙이 팍팍 터지는 게 일품.

“저거 3호점이 아니라 스테이크 가게를 차려줘야 하나?”

진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끝내줬다.

말로는 저온 숙성 조리법이니 뭐니 하는데, 결론은 이틀 전부터 준비했다고.

하여간 조각조각 음미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남자 친구(?)와 연락하는 현아가 있었고, 정태수 옆에서 가만히 고기를 썰고 있는 현지가 보였다.

정호석은 고기를 굽고, 이호영은 그 옆에서 열심히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겉절이도 맛있네.

아마 호영이가 한 거겠지?

살짝 머리가 복잡해지긴 했다.

확실히 3호점을 내기는 해야 할 정도이긴 했는데, 인적 구성과 메뉴, 그 외 여러 가지가 쉽게 마음에 정해지지 않았다.

뭐, 급할 건 없겠지.

지금처럼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기는 게 우선이었고.

특히 조온달마저 신나서 나무를 타고 십수 미터 올라가서 해먹을 설치할 정도였으니.

어? 야! 그거 불법이라고!

어쨌든 이런 일상이 얼마 만일까?

정말 평온하다는 말조차 안 나올 정도로 느긋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컹컹, 으르르르. 크허헝.

“허어, 우리 예삐, 가만히 있어.”

바로 옆 동에서 들린 소리였는데, 이상하게 거기서부터 싸늘한 기운이 몰려왔다.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열여 명 정도가 우리랑 비슷하게 야외 바비큐를 즐기고 있었다.

문제는 사람 가슴까지 오는 대형견이 네 마리나 된다는 거였다. 입마개는 없었고 탄성 있는 목줄만이 전부여서 제약 없이 근처를 뛰어다녔던 것이다.

“흠. 애완동물 출입 금지 아니었나?”

살짝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가능하면 신경을 끄려 했다.

막상 안으로 들였다면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근데 직감이 그러더라.

저건 아니라고.

“에휴,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남은 주먹구이, 정호석 스타일의 스테이크를 입에 쓸어 담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천천히 움직여 숙소에 있는 인터폰을 들고 호출을 했다.

“저기 관리실이죠?”

-예. 이야기하세요.

“바로 옆 동에 대형견이 보이던데…….”

희한하게도 잠시간 말이 없다가 갑자기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과 바꾼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예?”

-규정상 애완동물 출입 금지이긴 합니다만, 아직 펫에 대한 조항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예? 저 개들이 펫이라고요?”

-일단 헌터들이 그렇게 말하니…….

들어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일단 애완동물, 보통 이 경우는 개를 뜻한다. 산책을 함께할 수 있는 고양이는 아주 드물었으니까.

헌터들 중에 폣을 키우는 경우는 드물지만 없지는 않았다. 단순한 전투를 떠나 일상에서도 함께하기에 강제적으로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저희 쪽에서는 철저하게 단속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일반인의 경우 애완동물과 동반 출입이 불가였다. 다른 문제는 둘째 치고 배변 처리가 상당히 힘드니까.

대부분의 견주들은 다 준비해서 온다.

애들이 볼일을 보면 휴지로 거두고, 물티슈로 닦고, 다시 마른 휴지로 정리하고, 그걸 비닐에 담아서 깔끔하게 치운단다.

하지만 일부가 개똥만도 못한 새끼…… 라고.

대충 이 부분에서부터 상대편에게서 분노가 느껴졌다.

어쨌든 애초부터 금지인데, 그걸 어기고 막무가내로 데리고 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기는 치유의 숲이었다.

개똥 하나 치운다고 뒤지기에는 너무 넓었고, 그럴 인력조차 없었다.

그래서 받지 않았는데 이 경우는 난감하더라고 하더라.

“그래도 그렇지. 여긴 국립공원인데. 좀 아닌 건 아닌 거잖아.”

다시금 살펴보니 네 마리 중 둘은 사냥개에 가까웠다.

섬뜩한 눈빛에 날카로운 이빨.

당장 신호만 주면 튀어나갈 듯한 분위기.

바닥을 박차고 뛰어 목줄기를 문다면, 어지간한 사람은 몇 분도 안 되어 쓰러지겠지.

그런 녀석들이 입마개도 없이 공원을 돌아다닌다?

솔직히 기분이 좀 그랬다.

“근데 아무리 봐도 그냥 개란 말이지. 전혀 펫으로 보이질 않아.”

아주 그냥 활개를 치면서 짖어대는데, 그걸 저들 일행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엉덩이를 두드리는 게, 오히려 더욱 힘차게 개 짓을 하라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특히 저 너머 동에서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라.

하지만 개 주인이 헌터라니 참는 느낌이랄까.

“하아, 얌전히만 있으…….”

컹컹. 그르르릉-!!

“조용히 그냥…….”

크어엉, 킁, 으르릉. 컹컹.

“쟤들이 지금 날 시험…….”

왈, 왈왈왈!!

갑자기 평온했던 오후가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었다.

개소리가 너무 울리는데, 그마저도 신경을 거슬리는 기분이랄까.

뭐, 나만 그러면 모르겠는데 우리 식구들도 불편해하더라.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엘리스가 붙잡았다.

“오빠.”

“어? 왜…… 뭐, 있어?”

“혜리랑 수원이 데려가요.”

“아!”

저쪽은 펫이지만, 우리는…… 진짜 애완동물이긴 하네.

아니, 아니다.

그저 마수화가 가능한 귀여운 동생들이었다. 가끔 현아가 조련하면 임수원이 배 까고 구르기는 하지만 엄연히 사람인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엘리스, 고마워.”

씨익 웃으며 엘리스의 머리를 살짝 끌어안았다.

그 직후, 임혜리와 임수원에게 손짓을 했다. 그냥 말없이 뒤에 붙으라는 신호였다.

“하여간 참교육이 필요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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