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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31화 (131/156)

131화

“이젠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흐릿하네.”

유현성은 말없이 밤하늘을 쳐다봤다.

과거의 그때는 절망이었으나, 지금은 묘한 설렘이었다.

각성하고 최소 일여 년 후.

대충 백여 번 가까이 게이트에 진입하면서 거의 임무가 고정되었다.

조장으로서 솔선수범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었다.

탐색, 탐지, 전진, 기록.

이후 선발대가 자리 잡고 주변을 수색한다.

안전이 확보되면 본진을 호출하고, 진지를 구축할 때까지 대기.

어느 정도 전투 대형이 자리 잡으면 다시 순서를 반복하는 것이다.

결국 최전방에 홀로 서는 게 내 일이었다.

가속이란 능력 때문이었다.

마수들과 마주쳐도 나 혼자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대신 위험한 만큼 운용 부대 내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었다.

누구도 날 대신할 수 없었기에.

선발대와 본진이 대략 게이트의 중심에 완전히 자리를 잡을 무렵, 또다시 단신으로 수색에 나섰다.

“설마? 여기가 끝인가?”

뭔가 허무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주친 마수들이라 해봐야 스무 정도의 늑대 무리 다섯이었고, 혼자라도 처리할 수 있을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본진에 호출을 했다.

게이트의 끝을 확인했다고.

뒤늦게 돌아온 연락은 이러했다.

입구 쪽에 대량의 마수들이 나타나 지원을 요청해서 본진이 돌아가는 중이라는 것.

“참 나, 그걸 이제야 연락하나? 아니면 통신 장비가 또 말썽을 부린 건가.”

그때까지는 게이트 내부의 파장과 통신 장비의 주파수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이미 수십 차례나 테스트했음에도 말이다.

그건 게이트마다 내뿜는 기운이 미묘하게 달라서 생긴 문제였다.

“통신병을 갈궈야 하나. 연구팀을 쪼아야 되나?”

단독 임무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통신은 목숨줄과 같은 신호.

그게 수시로 늦어지고 끊기면 차질이 심각해진다.

-마수 소멸 완료. 전원 귀환하라.

“뭐?”

X발! 속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게이트 끝에서 입구까지 가려면 한참이나 걸리는데, 심지어 이것도 지연된 통신이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본능적으로 가속을 발동시켰다.

동시에.

쩡-!!

쩌저저적-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계에 시커먼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게이트의 붕괴의 징조였다.

“하아, 하아.”

미친놈처럼 달리고 달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진행된 붕괴는 내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검은 선들이 면을 형성하는 순간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너머에 있는 건 시커먼 공간이었다.

마치 SF영화의 우주를 보는 듯, 한계가 없는 아득함.

쩌저저저정-

무너지는 현상이 점점 빨라졌고, 마찬가지로 몸속의 마나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이트의 중심을 지났을 땐 이미 외벽의 상당수가 떨어져 나갔고, 뒤에서는 시커먼 우주가 잡아먹을 듯 달려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게이트 입구가 보이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순간.

바닥이 퍽 주저앉았다.

허공에 떠버린 순간 깨달았다.

그렇게 무너져 내린 세계와 함께 난 어둠에 삼켜졌다.

끝없는 추락.

마치 어딘가로 빨려들듯 한참이나 떨어지던 나는 그대로 의식이 꺼져 버렸다.

* * *

“오빠. 무슨 생각 해요?”

엘리스의 말에 곧 정신이 돌아왔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빨려들듯 밤하늘을 보다 옛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마치 그때의 일이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확실히 그땐 그랬었지.”

그때는 진짜 죽는가 싶었는데, 운이 좋아 돌아오긴 했다.

어쨌든 통신 사고의 원인은 이러했다.

게이트 이동 중에 생긴 파장 변화와 함께 멀어진 거리 문제라고.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통신병과를 병신 만들었고, 연구소를 아작 내버렸다.

전자는 정신적으로, 후자는 물리적으로.

그렇게 사흘의 소란으로 화풀이를 했음에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죽다 살아온 놈이니 상부에서도 눈을 감아준 것이다.

그렇게 절대적인 권한을 얻자마자 지침을 바꿨다.

이중 통신.

최소 파장이 다른 두 개의 통신기를 필수적으로 운용하게 했고, 상대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대기였다.

하지만 위험성도 있었다.

수색대가 함정에 빠져 몰살될 경우, 본대는 기습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해서 대응책으로 통신기에 생체 반응을 체크할 수 있는 장치를 달기로 했다.

최소 3분 이상 심박수가 울리지 않으면 사망으로 보고 작전을 진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외에도 연구원들을 괴롭혀서 여러 가지를 개발하게 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탐색 기록을 영상으로, 그것도 삼 중으로 저장하는 장치였다.

각각 아날로그, 물리 기록, 암호화 방식.

간단히 설명하면 카세트테이프, 하드디스크, 통신 전송이라고 이해하면 될 거다.

크흠, 솔직히 나도 전문적인 건 모른다.

그저 연구원들을 공돌이처럼 굴리고 굴려서 뽑아낸 거고 대충 저렇게 들은 게 전부라는 거지.

어쨌든 그 기록들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참 잘한 일이지.

“엘리스,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졌어.”

“정말요?”

“확실히 세상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게 맞는 말 같아.”

“으음. 그게 무슨…….”

“나 죽다가 살아난 적 있거든. 잠시 그때 생각을 떠올리니까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싶은 거야.”

나도 모르게 엘리스의 손을 붙잡았다.

확실히 살아 있다는 실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더라.

진짜 다들 이런 마음으로 힐링하러 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

“좋다.”

크게 숨을 들이키고 후련하게 내뱉었다.

알 수 없는 충족감이 가슴을 채우는 것 같았다.

“후으읍, 하아아. 후으읍, 하아아.”

엘리스가 날 따라하는 게 유독 귀엽게 보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돌아갈까?”

“예. 가요.”

* * *

아수라장!

딱 이 말이 맞는 표현이었다.

“끄어어, 국밥이라니까.”

“하오, 밥국이라고요!”

정호석과 이호영은 아직도 이 이야기 중이었다.

대충 정리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얘들아, 잘 들어.”

“어, 형님 오셨습니까?”

“형, 언제 왔어요?”

이미 눈이 반쯤 풀려 있길래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국밥. 알겠지? 밥을 넣고 같이 끓이면 밥국. 됐냐?”

이게 명확한 분류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어려웠다.

돼지국밥만 봐도 그렇지 않나?

뚝배기에 밥 넣고 끓여서 나오는 집도 있고, 어떤 가게는 토렴으로 밥을 데우기도 한다. 게다가 아예 밥이 따로 나오는 ‘따로 국밥’ 메뉴도 흔하다.

하지만 전부 국밥이라고 하는 거다.

밥국 역시 마찬가지.

육수를 만든 뒤, 재료와 밥을 넣고 끓여서 먹는 음식이었다.

단지 죽과 다른 건 커다란 덩어리와 밥알이 좀 더 살아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일반 사람들은 밥국이란 명칭이 생소할 거다.

대충 경상도나 부산 사람들, 그것도 일부만 조금 익숙할 뿐이니까.

어쨌든 이 동네에서 밥국은 멸치 육수를 내고, 김치와 밥을 함께 넣고 끓인 음식을 뜻했다.

가장 비슷한 건, 김치 콩나물국밥 정도로 보면 된다.

하지만 다른 재료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냥 그 집 스타일대로 이것저것 넣어서 해먹으면 그게 정답이니까.

어쨌든 뚜렷이 경계를 나누기는 애매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눈 건, 이 생산적이지 못한 대화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정호석이 먼저 말했다.

“확실히 그렇게 분류하면 간단하긴 하네요.”

“꺼억. 그럼 우리 음식은 어떻게 해야 돼요?”

이호영과 정호석을 돌아본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서야 뭐라 불러도 상관없지. 하지만 우린 음식 장사 하는 입장이잖아.”

“그, 그렇죠.”

“그럼 당연히 손님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써야지. 어쨌든 ‘국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흐으음.”

정호석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뒤에 이호영도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당한 건, 결론이 난 직후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졌다는 거다.

심지어 바로 코까지 골면서.

“……나 무시당한 건가?”

“아니요. 참 잘했어요.”

엘리스가 갑자기 내 엉덩이를 손으로 팡팡 쳤다.

이거 참 기분이 거시기하네.

* * *

“하아, 진짜 많이 퍼 마신 모양이네.”

일단 이부자리를 폈다.

임혜리를 구석에, 그다음 임수원, 이호영, 정호석 순으로 옮겨 눕혔다.

조온달은 취해서 사라진 줄 알았더니 산책 한 바퀴 돌고 왔다더라. 그 뒤 친구 옆에 자겠다며 정호석 옆에 눕자, 짜증 나서 이불로 확 덮어버렸다.

특히 얼굴을 중심으로.

하여간 다섯 명이 들어가니 방이 꽉 차더라.

일단 엘리스와 함께 밖으로 나왔는데.

“이게 무슨 냄새야?”

뭔가 고소한 향이 코로 훅 들어왔다.

거기에 이끌려서 주방으로 갔는데, 덕순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전을 부치고 있었다.

“아니, 이 시간에 무슨 전이에요? 내일이 추석도 아닌데.”

“오빵. 아직 열두우~~ 시도 안 됐다.”

“아오, 술 냄새. 너 대체 얼마나 마신 거냐? 어우, 떨어져, 떨어져.”

현지 저 독한 년이 갑자기 끌어안겠다고 달려드는데 솔직히 무섭더라.

결국 살포시 붙잡아 메쳐 버렸다.

물론 안 아프게 살살.

“히잉, 엄마는 때리고, 오빠는 집어던지고…….”

“이년아, 육전 나오는 족족 집어 먹으니 맞을 짓 한 거지.”

강 여사의 손에 다 마신 막걸리 병이 있었다.

때론 저게 어떤 흉기보다 매섭기도 하지. 불시에 뒤통수로 날아오면 피하기도 어려웠고.

그리고 추가로 터엉 하는 소리가 울렸다.

빈병 때문에 울리는 건지, 내 머리통이 텅 빈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현성아, 넌 현지 좀 재우고 와!”

“아야야, 예. 우리 여사님 분부 받드옵니다.”

“엘리스는 내 옆에 앉고.”

“예. 엄마-”

어? 뭐지? 이 시추에이션은?

살짝 불안했지만 일단 현지부터 데려다 눕히기로 했다.

“싫어. 나 아직, 안 잘래.”

“맞고 잘래, 그냥 잘래?”

“때려 봐. 때려…….”

딱콩.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마나를 흘리자, 현지는 바로 스스륵 눈을 감았다.

그 물건(?)을 포대 자루 들 듯 어깨에 지고 가족 방으로 들어갔다. 대충 발로 이불을 펼친 뒤 내려놨는데, 이불까지 덮어주긴 귀찮더라.

어차피 잠버릇과 술주정이 더해지면 걷어찰 게 분명했으니까.

“에휴, 술 냄새.”

“헤헤, 히히히- 우웅.”

설마? 벌써 꿈나라로 간 건가?

갑자기 두통이 생겨 저절로 고개가 저어지는데, 그러다 현지의 다시 보게 되었다.

취해서 발그레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음…… 적어도 오늘 하루는 행복했다는 거겠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가자마자 강 여사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그러면서 바닥을 툭툭 치는 것이, 옆에 앉으라는 거겠지.

“흠흠. 우리 아들. 엄마가 부탁할 게 있는데…….”

그러면서 엘리스를 보는데, 선수를 치기로 했다.

“저 아직 결혼 생각 없는데요.”

“슬슬 생각해 봐도 되지 않니?”

“어우, 우리 여사님. 일단 동생들 다 보낸 뒤에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넙죽 숙였다.

이렇게까지 하면 우리 강 여사님은 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물론 매달 주는 용돈이 줄어들까 봐서는 아니었다.

아암, 그게 맞겠지.

“그게 아니라 우리 동네 어르신 행사하는 데 와서 음식 한번 해주면 안 돼?”

“예에?”

이게 또 무슨 퀘스트란 말인가?

근데 들어보니 너무도 황당하더라.

여기서 국숫집 여사장님이 왜 나오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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