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오~ 왔냐?”
“예, 형님.”
박영식.
얼굴로만 치면 부대 최강의 전력.
하지만 이상도와 다르게 다소 순둥순둥한 성격이었다.
나보다는 두어 살인가 어린데 외모는 이미 30대 후반에 다다른, 극강의 노안을 가졌다. 게다가 우락부락한 얼굴 때문에 어디 몬스터가 탈출한 것처럼 섬뜩했었지.
부대 내에서는 코리아 헬보이라 불렸다. 딱 얼굴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고요환은 박영식을 처음 보자마자 우렁차게 경례를 올렸다.
그 직후, 하사 계급장을 보고 당황해하다 실제 나이를 듣고는 공황에 빠지기도 했었지.
“여전하네.”
“앞으로 40대까지는 그대로일 겁니다.”
“야, 뱀파이어도 아니고, 그 말이 더 무섭다.”
“어쩔 수 없습니다. 유전이니까요.”
박영식이 그러더라.
돌아가신 부친도 노안이었는데 무려 20년 동안 외모가 그대로였다고.
“하긴, 처음 봤을 때는 어디서 고위 간부가 전출 왔나 오해했었지.”
“그런 시선에는 익숙합니다.”
“근데 부대를 완전히 나온 거냐?”
“예.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전역 신청을 했습니다. 몇 가지 조건이 붙긴 했지만 형님 케이스도 있고, 여기 지역 특성도 있어서요.”
“지역 특성이라고?”
“예. 근데 쟤들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박영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1호, 2호, 3호는 밥그릇에 머리를 거의 처박듯이 숙였다.
시선을 피하고 싶다는 거겠지.
“아는 애들이냐?”
“예. 제 밑에서 굴렀던 애들입니다.”
박영식의 설명은 간단했다.
남해와 이 일대 예비군 부대장을 맡기로 하고 전역 허가를 받은 것. 그러면서 일손이 부족하면 간간이 나서서 애들을 훈련시키기로 했다는 거다.
더불어 게이트 발견 시 출동하기로 했단다.
하긴 군으로서 이런 인재를 쉽게 놓아주긴 아쉽겠지. 녀석은 A급 헌터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가졌으니까.
“그럼 시간 여유는 충분하겠네?”
“호출은 거의 달에 두어 번 정도입니다. 실제로 하는 일도 가서 무게만 잡아주면 되니까요.”
“그럼, 너 여기 관리 안 해볼래?”
아까 잠시 경비 책임자 이영환과 대화를 나눴다.
사람 손이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수익이 턱없이 적어서 잘 안 오려 한다고.
대신 다른 혜택이 있는데, 비수기 때는 펜션 한 동을 무료로 쓸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산림욕장도 마음대로 출입 가능하다더라.
기억하기로, 어머님이 폐가 안 좋다고 들었으니 오히려 좋은 기회겠지.
“여기가 참 마음에 드는데…….”
“저도 어머니하고 종종 들릅니다. 달에 두세 번은 꼭 들르죠.”
역시 예상이 맞았네.
“근데 말이야. 동네 양아치들이 좀 많은 것 같더라고. 괜히 소란스럽기도 하고.”
1호, 2호, 3호는 갑자기 부들부들 떨더니 더욱 머리를 숙였다.
저러다 그릇 속으로 들어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역시 이놈들이 문제군요. 평소 소문도 안 좋았는데, 교육 단단히 해두겠습니다.”
“그래도 되는 거냐?”
“게이트 경보가 울리면 이 지역 헌터들은 제 소속이 됩니다. 예비군도 마찬가지고요.”
아! 어제 같이 술 마시다 들은 기억이 났다.
군 복무를 반년으로 줄이는 대신 일반 헌터들이 꺼리는 이곳 외지 방어를 하기로 했다고.
“그럼 영식이 네가 대장이구나.”
“제 위에 상관 한 분 계십니다.”
“나도 아는?”
“예. 함상호 대령님입니다.”
“엥? 그 아저씨 아직도 살아 있나? 술병이 심하게 나서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박영식이 씨익 웃는데, 나도 순간 섬뜩하더라.
“병원에서 반년, 여기서 한 석 달간 요양하다 복귀하셨죠. 문제는 역시 회복되자마자 술부터 찾으시더군요. 공기 맑은 곳에서 마시는 음주는 금방 깬다고요.”
“그럼 실무는 네가 다 보겠네?”
“부하들이 다 하죠. 전 그냥 임원급에 가까우니까요.”
“그럼 여기도 관리하면서 용돈 정도 벌면 되겠네.”
그러면서 직원 혜택에 대해 알려주니 박영식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군요. 저도 최근에 딱히 일이 없어서 무료하던 참이기도 하고. 애들이나 굴리면서 보내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요.”
“역시 그럴 것 같았는데 잘됐네.”
박영식이 여길 소개해줄 때도 정말 자랑을 많이 했었지. 어떨 때는 이계에 온 느낌도 든다며 마음이 치유가 되는 기분이라고도 하더라.
막상 와 보니 진짜였다.
특히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커다란 달빛과 은하수는 감동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진짜 별세계라는 게 실감이 났으니까.
“그럼 대충 정리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네가 말한 그 등산이라는 걸 해보고 싶거든.”
“알겠습니다. 전, 교육이나 시키고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1호, 2호, 3호를 쳐다보는데 나도 살짝 무서울 정도였다.
진짜 지옥에서 악마가 돌아온 것 같았으니까.
잠시 후, 곡소리가 울리더라.
당연히 목소리에 주인은 1호, 2호, 3호겠지.
확인해보니 치약 뚜껑에 머리 박아를 시키더라.
확실히 저건 너무하네.
* * *
“등산로는 여러 개가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시겠습니까?”
“깊고 울창해서 사람들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아무래도 그게 편할 것 같아서.”
“예. 그럼 이쪽을 가로질러서 가는 게 나을 겁니다. 보통 등산객들에게는 험하고 난이도가 있어서요.”
“좋아.”
이쪽으로 정한 건 이유가 있었다.
임혜리와 임수원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오빠. 정말 괜찮을까요?”
임혜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살짝 고개를 끄덕여 줬다. 박영식의 말대로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오늘 하루, 이럴 때 마음껏 달려보는 거지.”
난 배낭을 내밀었다.
임혜리와 임수원이 트레이닝복을 벗어서 넣었고, 이내 슈트 차림이 되었다.
그 직후, 마수화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깊을 숲속이니만큼 변신 상태로 신나게 달려도 된다고 했으니까.
실제로 둘은 도심에서는 이렇게 해볼 수 없었을 거다.
아마도 하는 순간, 경찰들이 오든가 헌터들이 모일 테니까.
“정상까지 마음껏 뛰다 와.”
“알았어요. 끼야호!”
임혜리가 괴성을 지르며 작은 호랑이 느낌으로 숲을 달렸다.
그 뒤를 늑대로 변신해 뒤쫓는 임수원이었다.
둘은 숲속을 신나게 달리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걸 본 조온달도 말을 꺼냈다.
“저도 숲속을 달리다 오겠습니다.”
역시 엘프족이 맞는지, 조온달은 나무를 박차고 아득한 높이까지 사라졌다.
거기서 나무 사이로 움직이는데 정말 빠르더라.
“확실히 도시에서 하고 움직임이 다르네. 엘리스는 괜찮아?”
“헤헤, 전 오빠 옆에서 걷는 게 좋아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팔짱을 끼는데, 가벼운 산책 기분으로 받아주었다.
박영식은 이미 익숙한 광경인지 슬쩍 시선을 돌렸고, 뒤따르던 정호석과 이호영이 헛기침을 했다.
이게 뭐가 부끄럽다고 그러는 건지.
그렇게 나무 사이를 지나며 정상으로 향했다.
그사이 임혜리와 임수원은 무척이나 신이 나는지 순식간에 세 번이나 왕복했고, 그제야 마수화를 풀어버렸다.
“후아, 개운하다.”
“정말 처음 겪는 경험이긴 하네요. 막 후련한 느낌이랄까.”
임혜리와 임수원이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확실히 신비한 경험이겠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렇게 마음껏 뛰어논 적은 처음일 테니까.
“다음에도 데려와 줄게.”
“정말요?”
“음, 대충 3호점 오픈 전에는 한 번 가능할 거야.”
대충 인원 구상을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직원들을 더 뽑아야 할 거다. 3호점의 메인은 정호석과 이호영, 그리고 임혜리와 임수원이었으니까.
그럼 본점은 어떻게 하느냐?
엘리스에게 부탁해 엘프들로 운영을 할 계획이었다.
의외로 식당가 지원자가 넘쳐서 일하겠다는 이들이 많다고 했으니까.
“여기만 지나면 정상입니다.”
대충 4~50분 정도 걸은 것 같은데 의외로 길게 느껴지지는 않더라.
그냥 편하게 산책하는 기분이랄까.
물론 이호영은 한참 헥헥대기는 했지만, 그 외 대부분은 체력에 문제가 없었다.
“와! 진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네.”
푸른 바다였다.
군데군데 수심이 깊은지 일부는 검게 보이기는 했지만, 바다 향의 청량함만은 확연히 느껴졌다.
“아, 심장 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네요.”
엘리스의 말에 동감한 듯 다들 고개를 끄덕이더라.
더 깊이 숨을 들이켜려고 심호흡을 하는데, 어느샌가 다들 날 따라 했다.
이거 확실히 힐링이 되네.
“여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장소입니다. 지대가 높기도 하지만 대부분 유명 관광지 쪽으로 가더라고요.”
박영식이 설명하는데, 작은 어촌 마을을 중심으로 몇 개의 몽돌 해수욕장도 있고 유명한 사찰도 있단다.
이 아래쪽의 해변가도 힐링 포인트라고.
“다음에는 좀 더 여유 있게 와야겠네.”
바닷바람을 쐬면서 여유 있게 돌아보는데, 곧 조온달이 나타났다.
녀석은 한쪽에 넓은 돗자리를 깔더니 나와 엘리스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그런 뒤, 어디서 구했는지 잔과 주전자를 꺼내 차를 따랐다.
“적어도 여왕님이시라면 이 정도는 즐기셔야죠.”
“어? 어어.”
무슨 중세 귀족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근데 저 녀석은 진짜 집사처럼 보이기는 했다.
조온달은 정호석과 이호영에게는 취향대로 탄산 음료를, 임혜리와 임수원에게는 이온 음료를 주더라.
박영식에게는 조금 황당하게도 수정과였다.
“으하, 시원하네요.”
나와 엘리스가 시원한 차를 즐기는 가운데, 다들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가만히 앉아서 바닷바람을 맞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을 돌아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네.
그래. 이런 게 진짜 힐링이지.
* * *
역시 박영식은 일을 잘한다.
뭔가 통화를 하더니 뚝딱뚝딱 관리사무소에 등록을 하더라.
이름 올렸다고 무조건 정식 근무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순찰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하지만 주 임무는 가끔 들려서 양아치 정도만 훈계해서 보내면 된다.
그렇게 여기 일을 처리하고 돌아와 보니 시체가 뒹구네.
바로 숙취로 쓰러진 현지였다.
“하이고, 어제 그렇게 마시더니, 참 너랑 잘 어울린다.”
“으으…… 난 오빠처럼 순식간에 해장하는 능력은 없다고.”
현지는 슬쩍 일어나려다 다시 엎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부분 일어나 끓여놓은 누룽지로 해장을 했다는 점이었다.
“확실히 하루 만에 돌아가긴 서운하네.”
그래도 퇴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리해야지.
경비 책임자 이영환이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돌아갈 시간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러다 뭔가가 궁금해지더라.
“제 후임 중에 이영환이라고 동명이인이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어! 혹시 군인 말씀하십니까?”
“예.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어딘가 비슷해 보이기도 해서요.”
“환 자 돌림에 동명이라면 일본 사는 사촌 형네 애일 겁니다. 한동안 연락이 안 됐는데 그사이에 혼인했다더군요. 돌림자만 기억하고 있어서 이름을 지었는데 우연히 저하고 동명이 됐습니다.”
연락 끊긴 사이 사촌형은 덜컥 사고(?)를 쳤고, 여기 이영환은 늦둥이로 엄마 배 속에 있었다고.
“하, 하하. 그런 우연이…….”
“그 조카 애는 한국 국적을 선택해서 군대에 갔다는데, 잘 아시나 봐요?”
“예. 한때 같은 부대에 있기도 했고, 그 친구가 막내처럼 싹싹해서요.”
행복 분식 개업할 때 화환도 보내주기도 했었지.
“일단 짐 정리 끝나고 퇴실할 때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아, 후임하고 박영식 그 친구랑도 인연이 있으니 소식 물어보시면 될 겁니다.”
“제 조카랑요?”
“예. 그러니 여기 적응 잘 할 수 있게 많이 도와주십시오.”
“아니죠. 오히려 저희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이영환과 인사를 마무리 짓고 엘리스 버스에 짐을 실었다.
막상 차에 오르니 떠난다는 게 실감이 되더라.
“그럼 출발합니다.”
조온달이 시동을 걸고, 다들 피곤한지 눈을 감았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그때 엘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아, 깜빡했는데…… 겨울 전에 한 번 회동하기로 했어요.”
“엉? 누구랑?”
엘리스가 살짝 기대면서 귓속말을 했다.
“여섯 종족 대표들이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