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과연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정태수는 그런 생각하며 하얀 밀폐용기를 싱크대에 올렸다.
그런 뒤, 뚜껑을 열고 티스푼으로 한 번씩 각각의 그릇에 뭔가를 넣었다.
유현성을 그걸 봤음에도 별말 하지 않았다.
이내 정태수가 쟁반에 칼국수 여섯 그릇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아서였다.
“몇 번 저어서 국물 맛을 본 다음 양념장을 추가하면 돼요. 취향에 따라 다진 마늘을 더 넣든가 해도 되고요.”
정태수가 나름 목소리에 힘을 주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랬기에 굳이 더 뭐라 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음식은 맛이었으니까.
일단 젓가락으로 살살 저어봤다.
최소한의 기본 양념장이 들어갔기에 국물이 간장 색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어라?
“라면?”
“헉!”
고개 들어 정태수를 쳐다봤다.
녀석은 다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혀엉. 일단 먹어보고요. 이야기해주세요.”
“아, 알았어.”
표정을 보니 슬쩍 울려 하더라.
결국 살살 저어서 국물부터 맛을 봤다.
역시나 마지막에 넣은 것 중에 라면 스프가 확실히 존재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어서 맛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라면 스프의 감칠맛, 제법 좋은 고춧가루를 썼는지 깔끔한 매콤함과 더불어 적당히 깔린 후추와…… 뭐가 두어 개 더 들어간 것 같았다.
한 번 더 약간을 마시고 나니 대충 감이 오더라.
“기본 육수만 해도 괜찮은데, 너무 많은 게 들어간 거 아냐?”
“예?”
“일단 좋은 고춧가루에 통후추를 갈아서 넣었네.”
“아. 예.”
슬쩍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이 자식이 차돌박이 육전을 까먹은 모양이다.
나름 미각에 자신 있는 사람이 난데.
“물론 메인 베이스는 라면 스프고.”
“헙, 그걸 어떻게?”
“야! 절반이 스프 맛인데 모르면 이상하지. 형, 분식집 메인 메뉴가 라면이잖아. 확, 그냥! 장난치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칠맛을 내는 것 중에 하나는 버섯 가루네. 이거야 뭐 다들 익숙한 그 라면의 표고일 테고. 마지막 하나는…… 너무 적게 들어가서 긴가민가한데 새우?”
“헐.”
정태수는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럼 죽어, 이 자식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동안 고생한 게 읽히더라.
하지만 최후의 반항인지 정태수는 다시금 눈을 부릅뜨고 강하게 말했다.
“맛으로 평가해 주세요!”
“그래. 그래야 더 구박해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그러면서 씨익 웃으니까, 정태수의 얼굴이 하얗게 바뀌었다.
다시 한 번 국물을 살짝 입에 머금고 5초 정도 느낌을 살폈다.
역시 내 취향은 다진 마늘 팍팍이었다.
다진 청양고추는 반 티스푼.
아무래도 그 이상 넣으면 미묘하고 복잡한 맛을 해칠 것 같아서였다.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본 다음 살살 저어가며 내용물을 살폈다.
기본 칼국수에 떡이 일고여덟, 만두가 네 개나 들어 있더라.
“이거 가격은?”
“일단 6,000원 잡고 있습니다.”
양은 짜장 곱배기보다는 조금 적은 정도?
하지만 평범한 성인 남자로써는 충분히 배부를 수준이었다.
하나하나 맛을 봤는데 충분히 평균 이상, 동시에 이 녀석이 무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 마지막까지 확인해 보기 위해 면을 후룹 먹으며 숟가락으로 떡을 입으로 가져갔다.
확실히 손칼국수 특유의 탄력과 쌀떡의 쫀득함이 조화롭게 이어지긴 하더라.
다음은 칼국수 면발과 만두였다.
“흐음, 이것도 괜찮네.”
다소 두꺼울 수 있는 피였다.
하지만 만두속 자체가 풍부하다 보니 쫀득하면서 육향이 코를 터치하고 육즙이 확 혀를 흥분시키더라.
동시에 국물에 섞인 마법의 가루(?)가 만들어낸 감칠맛까지 더해지니 훅 올라오는 게 있었다.
“익숙함을 넘어선 당기는 맛이네. 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지가 무슨 임수원도 아니고, 막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꼬리 흔드는 눈빛이었다.
아직 아니다. 이 녀석아!
일단 천천히 하나하나 조합을 맞추며 맛을 살폈다. 그리고 한 그릇을 바닥까지 보이게 깨끗이 비웠다.
역시나 확신이 들더라.
내 첫 말은 이거였다.
“넘치게 진하네.”
“예? 그게 무슨…….”
손가락을 까딱거린 뒤 정태수를 옆자리에 앉혔다.
고개를 돌려 이호영을 쳐다봤다. 제일 공정하게 이야기 못 할 것 같은 녀석이라서 말이다.
“맛은 어때?”
“형, 이 정도면 꽤 맛있는데요? 칼국수에서 약간 라면 맛이 나는…… 그러니까 흐음, 라면 회사 중에서 파는 멸치 칼국수 맛? 거기에 만두하고 떡이 이만큼 들어가는데, 이게 훨씬 고급스러운 맛 같습니다.”
“OK. 호영이는 패스하고, 호석아. 너는 어떠냐?”
“예. 형님. 확실히 맛은 흠잡을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래의 칼국수 맛보다 좀 많이 무겁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째서?”
“이게 정확한 표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저야 괜찮은데 과연 다른 손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맛입니다.”
“판단의 근거는?”
“그야 이 칼국숫집은 저희 가게보다 단골 비율이 아주 높지 않습니까? 그리고 연령대도 최소 열…… 에서 스물 이상이나 차이가 나니까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확실히…… 본질은 모르지만 감으로는 느끼는 것 같았다.
동시에 레시피만 따라가지 말라는 가르침이 효과를 보이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성남과 혜진 이모를 쳐다봤다.
“저…… 삼촌하고 숙모…… 는요?”
확실히 이 부분은 나도 아직 어색했다. 손님들한테야 가식적인 미소를 지을 수 있지만 이상하게 쉽게 말이 툭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두 사람도 그걸 충분히 이해해 준다는 걸 알고 있기도 했다.
“하하, 일단 나는 괜찮아. 원래 좀 먹기도 했고, 이게 보기보다 든든하다는 느낌이더라고.”
확실히 육체적으로 많은 일을 하는 편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에는?
모르겠다.
“좀 한숨 돌려야 내려가는 느낌이 들긴 해. 그런데 이 말이 도움이 될까?”
“하하, 당연하죠.”
난 웃으며 정태수를 쳐다봤다.
녀석도 뭔가를 느낀 걸까? 약간은 떨리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묻더라.
가볍게 포인트를 찔렀다.
“넌, 맛 가리기를 한 거야.”
* * *
“형. 나 담배 한 대만 펴도 돼요?”
“엉? 너 담배 피우냐?”
“가끔, 아주 가끔 힘들 때요.”
정태수가 고개를 푹 숙이는데, 흐음, 너무 심하게 심장에 팩폭, 아니…… 핵폭을 날린 것 같았다.
하지만 확인할 건 확인해야지.
“너 언제부터 피우기 시작했냐?”
“그게…… 가게 맡고 나서요.”
“얼마나?”
“한 갑 정도요.”
“엉?”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 예민한 후각으로 봤을 때 이 녀석은 절대 흡연자가 아니었으니까.
“그, 그래. 펴라.”
“예.”
풀죽은 목소리로 가게 뒤편의 공간으로 가더니, 기둥 틈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근데 황당한 것이, 담배가 비닐에 싸여 있는 게 아닌가?
갑이 꼬질꼬질한 걸 보니 많이 쥐었다 편 것 같은 느낌도 확 들었다.
“한 갑?”
“예. 한 달에 한 갑 정도…….”
갑자기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보통 음식 하는 사람, 아니, 요리의 길로 철저하게 자신을 내모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속상하면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담배도 피울 수 있다.
특히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이면 어떤 방식으로든 스트레스를 풀어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일 또다시 웃으며 손님을 맞을 수 있으니까.
한 달에 담배 한 갑.
장사 마치고 겨우 하나 피우는 정도, 그 이상 늘어나지만 않는다면 참 뭐라 말하기 애매한 정도였다.
“태수야!”
“예. 형.”
“힘들면 피워도 돼. 아직 너는 젊고…… 그래, 미숙해.”
“예.”
아주 목소리가 지하철 그 아래로 뚫고 들어갈 것 같았다.
“힘들지?”
“예.”
어라, 지하 밑에서 더 한참 밑으로 내려가네.
내가 너무 심하게 한 건가 싶었다.
동시에 괜히 악당이라도 된 느낌까지 들더라.
“형이 커피 가져올 테니까 피우고 있어.”
비록 자판기 믹스지만 그 달달함은 잠시나마의 위안이 되기 충분했다.
가지고 왔더니 이미 담배는 꺼지고 없더라.
한 서너 모금 빨고 바로 정리한 뒤 심호흡을 하는 것 같았다.
바로 커피를 전해준 뒤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짜식. 왜 속상해?”
“부끄러워서요.”
“뭐가?”
“그게…… 제가 뭘 했는지를 모르고 한 건 맞아요. 근데 형 말을 들으니까, 핑계 대고 도망쳤다는 기분이…… 확 들더라고요.”
“속이 까발려진 기분?”
“에이~ 진짜, 장난치지 마요.”
커피를 마시며 툭툭 대자 이내 태수가 웃었다.
하긴 대충 잡아도 15년 이상을 봤었고, 반쯤은 가족처럼 지내기도 한 사이였으니까.
얼마 뒤에는……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고.
“근데 그…… 맛 가리기가 뭐예요?”
“흐음. 이게 참 범위가 넓어서 쉽게 설명하긴 어려운데…… 손님을 속이는 거라고 해야 할까?”
“예?”
“일단 최악부터 이야기하면, 안 좋은 재료…… 아니, 팔아선 안 되는 재료를 양념으로 덮는 걸 말해.”
“그, 그게 무슨…….”
“그러니까, 유통기한…… 아니, 이렇게 설명하면 좀 어렵겠지. 일례로 순대를 이야기하자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노점에서 파는 순대 대부분은 공장제를 받아 오잖아. 직접 만들지 못하니까.”
“그야 당연하죠.”
“자, 떡볶이, 어묵, 순대가 세트다. 근데 사람들이 세트를 안 먹어. 그냥 순대만 빼고 계속 팔린다는 거지. 그럼 어떻게 될까?”
“당연히 남은 건 버려야죠.”
“맞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계속 찜통 위에 있는 순대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니?”
“먼저 냄새부터 올라오고 퍽퍽해지겠죠.”
“근데 순대 볶음 메뉴가 있다면?”
갑자기 태수가 입을 닫았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툭 내뱉더라.
“설마, 양념 범벅?”
“맞아. 어묵 국물을 조금 섞어서 매운 떡볶이 양념과 버무리고 내주면, 정말 역한 경우가 아니면 잘 몰라. 특히 포장해 가서 시간 많이 지나 먹으면 본인 실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
“와. 진짜 그건 너무하다.”
“노점으로 비유해서 그렇지만, 요즘은 그런 가게들은 거의 없어. 왜냐면 서로 경쟁자니까. 괜히 꼬투리라도 잡히면 망하는 건 한순간이거든.”
“그, 그렇겠죠.”
족발 골목, 순대 골목, 감자탕 골목 등등.
이런 식으로 형성된 거리에서는 더욱 심하다.
극히 일부의 경우는 지인을 돈 주고 경쟁 가게에 취직시킨다. 그리고 약점을 캐내 오라고 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근데 유통기한 지나고 상하기 직전의 음식을 쓴다?
그건 망해서 간판 내리겠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의 시대.
가게를 지키기 위해선 당연히 기준을 지키는 게 오히려 현명한 선택인 거다.
“요즘이야 엄격하니 그럴 일은 거의 없지. 진짜 비양심적인 일부 쓰레기 사장 새끼들만 그 지랄을 하는 거거든.”
“형, 그럼 저는 어떤 경우예요?”
정태수가 조심스럽게 묻는데, 이거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하나?
가능하면 스스로 깨닫는 게 좋은데.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힌트 줄게. 할머니가 왜 너한테 봉사활동을 시켰는지 고민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