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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40화 (140/156)

140화

솔직히 너무 어려운 미션을 줬나 싶었다.

하지만 본인도 분명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랬으니 저런 방향으로 음식이 변한 거겠지.

맛, 의외로 괜찮다.

양, 더는 필요 없을 정도.

가격, 이건 누구도 트집 못 잡을 거다.

문제는 이걸 먹는 사람을 고려하지 못했다. 의외로 정호석이 핵심을 짚은 것이다.

“태수야. 맛 가리기. 이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그만큼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거든.”

“예?”

“그런 말 있잖아. 냉면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은 없다고.”

지금에서야 많이 사그라졌지만 한때 냉면 논란이 인터넷상에서 크게 터진 적이 있었다.

냉면은 나온 그대로 순수하게 먹어야 한다.

그게 진짜 제대로 된 맛이며, 이것저것 넣어 먹으면 음식의 본 맛을 느낄 수 없다.

반대로 취향껏 입맛에 맞게 먹으면 된다.

그냥 먹는 게 진짜 제대로 된 맛이라면, 왜 냉면집에서 식초와 겨자를 내어주겠는가!

“그때는 정말 시끄러웠지. 온갖 커뮤니티마다 열을 올려가며 싸우는데, 그러다 상대방 부모 안부를 묻는 비방으로도 이어지기도 했거든.”

“아, 저도 몇 번 본 적은 있어요.”

“너, 솔직히 냉면 맛있냐?”

“글쎄요. 비싼 냉면집에서 그냥 몇 번 먹어봤는데, 인터넷 표현처럼 걸레 빤 물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그냥 싱숭생숭한 맛이라고나 할까. 뭐가 하나 빠진 느낌을 받았거든요.”

“나 역시 그렇더라. 밀면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영~ 입에 맞지 않더라고. 솔직히 냉면은 고깃집 후식 냉면이 최고지.”

“그건 인정!”

후식 냉면.

딱 그 이름 그대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음식이었다.

기름진 고기를 먹고 시원한 물냉면을 마시고 나면 속이 쑥 가라앉는 느낌까지 든다.

매콤달콤한 비빔 냉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극적인 맛으로 입안을 휘저어준다고나 할까?

어쨌든 느끼함을 싹 날려 버린다. 다 먹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의 식사가 마무리 됐다는 기분까지 드는 것이다.

어쨌든 정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살짝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손님 바글바글한 냉면집을 가봤는데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약간 실망하고 말았다.

저 논란대로 한번 먹어보자고 아무런 양념을 더하지 않았는데 처음엔 이게 뭔가 싶더라.

몇 번이나 육수를 마시면서 깊은 맛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내 입이 싸구려인지 별다른 감명을 받지 못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식초만 넣으니 그나마 먹을 만해졌다고나 할까.

여기에 겨자를 추가하니 괜찮은 맛으로 바뀌더라.

“그럼 양념장과 식초, 겨자를 넣는 게 맞는 걸까? 틀린 걸까?”

“그야…… 넣어서 맛있게 먹는 게 맞는 거죠.”

“그게 냉면 본연의 맛이라는 걸 가린 건데도?”

순간 정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충 내 말이 의미하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맛 가리기, 이게 참 부정적인 표현일 수 있어. 아까 순대 이야기한 건 정말 비정상적인 것이고, 결국 먹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거지.”

누가 그러더라.

스테이크 본연의 맛을 즐기려면 최소한의 양념에 레어로 먹어야 한다고.

그래, 그 사람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취향이니까.

하지만 찐득한 소스를 잔뜩 뿌려 바짝 구워 먹는 게 더 맛있다는 사람도 분명 존재했다.

그걸 정통파가 아니라느니 맛을 제대로 모른다느니 매도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맛 가리기라고는 하지만, 본연의 맛이 입에 안 맞는 사람도 존재하거든. ‘먹는 사람’이 자신의 취향대로 맛있게 먹는다! 이게 우선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정태수의 표정을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결국 몸으로 깨닫게 해줘야겠지?

“후우. 너 내일 새벽에 나랑 어딜 좀 가자!”

* * *

푸덜- 털털털털.

애마 돌돌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새벽잠에서 깼다.

요란한 시동을 마친 뒤 다시 잠잠해졌지만, 오늘 컨디션이 나쁜지 평소보다 진동이 요란했다.

“타라.”

“대체 어디 가는데요?”

“가보면 알아!”

최고 시속 25㎞.

하지만 새벽에 막히지 않는 걸 계산하면 30분도 채 안 걸린다.

전포 아파트 단지를 지나 송상현 광장으로, 여기서 시청 뒤편 길로 쭈욱 달리면 교대역까지 순식간이었다.

다시 여기서 동래 경찰서 방향으로 틀고 조금만 올라가면 목적지가 나온다.

“동래 시장이네요.”

“그래, 여기가 첫 번째 코스야.”

순간 정태수는 귀를 의심했다.

첫 번째란 말은 두 번째, 세 번째도 있다는 의미를 깨달아서였다.

“아직 해도 안 떴는데…….”

“원래 시장은 새벽부터 분주하거든. 그리고 너도 빠듯하잖아.”

장사야 점심부터 시작한다지만 준비를 하려면 오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특히 영업 전에 육수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에 서둘러야 했던 거다.

일단 돌돌이를 근처 만세 거리 근처 구석에 세웠다. 그런 뒤, 천천히 걸어서 시장 상가 입구로 향했다.

“흐음, 보자. 어디를 가야 하나.”

후보지는 몇 군데가 있었다.

제일 손님이 많은 자매분식이나, 그 옆의 신금, 찐하고 칼칼하다는 엄마손도 있었고 도령님도 괜찮다더라.

결론은 금방 나왔다.

대부분의 칼국숫집들은 한창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고, 한 곳만이 손님을 받고 있었다.

나루 칼국수라 적힌 간판 아래, 아저씨 둘이서 머리를 박고 있었던 것.

“이쪽으로 가자.”

“형, 전에 여기 와봤어요?”

“어, 주말 짬짬이 대여섯 번 정도? 왜, 이상해?”

“그건 아닌데, 너무 익숙한 것 같아서요.”

정태수가 주저하는 걸 보니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어차피 그러라고 데려온 것도 있고.

“됐고, 따라와.”

칼국숫집은 주방을 중심으로 ㄷ 자형 스테인리스 테이블 형식이었다.

그건 대부분의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

후딱 먹고 일어나기에는 이 방식이 제일 편했고, 면적 대비 많은 손님들을 받을 수 있었다.

주방에서 만들어 바로 건네주면 되니까.

내가 대뜸 주방 맞은편에 앉자 정태수가 옆에 자리했다.

“이모, 칼국수 하나, 수제비 하나요.”

“김밥은 필요 없고요?”

“예. 괜찮습니다.”

여기 말고도 가볼 데가 있으니 위장 계산을 철저히 해야 한다. 칼국수에 김밥 조합이 군침을 돌게 했지만, 참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음식 나오는 속도는 정말 뚝딱이었다.

슥슥슥, 가볍게 칼질하더니 면발이 나왔고 이내 끓는 물에 들어가 탱글탱글한 칼국수로 재탄생했다.

여기에 멸치 육수를 붓고, 양념장과 고춧가루, 깻가루와 김이 올라가면 끝.

그건 수제비도 마찬가지였다.

“자, 먹자.”

정태수에게 칼국수를 밀어주고 수제비도 적당히 덜어줬다.

“이거 양이 많은데요?”

“다 안 먹어도 되니까 먹을 만큼만 먹어. 대신 신중히 맛을 보도록.”

“아! 예.”

정태수는 조심스레 면발을 들어 형태를 살폈다.

아무래도 자신이 만드는 것과 차이를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으음,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인 것을.

나 역시 숟가락을 들어 수제비를 입으로 가져갔다.

찔깃, 탱글, 부드드들.

역시나 정석적인, 하지만 찰진 반죽에 숙련된 손길에서 나오는 적당한 크기가 상당한 식감을 만들었다.

치아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탄력이 있었고 의외로 부드럽게 넘어가더라.

“으음. 맛있네.”

다소 투박한 맛이기도 했지만 멸치 육수의 적당한 간이 입맛을 슬며시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한 그릇, 후루룹 하고 마셔 넘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여 분.

슬쩍 돌아보니 정태수도 거의 비워가고 있었다.

“후우, 이거 맛있네요.”

“오, 다행이네. 칼국숫집 아들내미라 질겁할 줄 알았더니.”

“매일 먹든, 가끔 먹든 괜찮은 건 괜찮은 거죠.”

씨익 웃는 걸 보니 입에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녀석의 어깨를 툭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계산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 뒤 조용히 속삭였다.

“일단 주위를 쭉 둘러봐.”

“예?”

“상가 안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란 말이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듯, 정태수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부터 몰려들었는지 잠깐 한 그릇 먹은 사이에 칼국숫집마다 손님이 꽉 찼다.

잠시 빈자리가 생기면 틈을 메꾸듯 꾸역꾸역 채워졌다.

거기에 익숙한 듯, 주방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이모들의 모습까지 더해지니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5분여간 상가 식당들을 돌아본 뒤, 밖으로 나갔다.

“아직 호떡집은 문을 안 열었네?”

“해도 안 떴는데 벌써 호떡집이 문을 열어요?”

“아! 그렇긴 하다. 당연한 코스라 생각했는데, 이르긴 이르네. 아, 그리고 신기한 거 이야기해 줄까?”

“뭔데요?”

“여기가 무슨 동인 줄 모르지?”

“여기…… 온천동 아니에요? 동래구 온천장…… 은 아니구나.”

상가 입구에서 30초도 안 걸리는 호떡집 앞.

위쪽과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을 경계로 이쪽이 복천동, 아래로 수안동이야. 우리가 왔던 데는 동래 시장, 여긴 수안 인정시장이지.”

“예? 여기서 저기까지 몇 초 걸리지도 않는데요?”

“더 재밌는 건, 여기 수안 시장, 옛날 이름이 동래읍 시장이었다는 거지.”

“허, 신기하네요.”

유래니 뭐니 하는 설명은 대충 생략하고, 태수한테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라고 했다. 두 곳 다 물하고 관련이 있고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면서 말이다.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아는 것도 얼마 안 된다는 것.

하지만 형으로써 뭔가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 차 막히기 전에 서두르자.”

그렇게 도착한 지 40분도 되지 않아 정태수를 다시 돌돌이에 태웠다.

이번 목적지는 거제 시장이었다.

* * *

“헐, 아직 여섯 시도 안 됐는데.”

정태수가 놀라는 이유가 있었다.

칼국숫집 앞, 벌써 배달 오토바이 여러 대가 분주하게 움직여 댔으니까.

“지금은 뜸하지만, 예전에는 여기 새벽 5시부터 배달됐거든.”

“에이. 누가 그 시간에 칼국수 배달시켜 먹어요. 그리고 칼국수는 애초에 배달 음식도 아닌데요. 아무리 면발이 탱글탱글하다 해도 면이니까 퍼지잖아요.”

“넌 저 옆에 주전자 안 보이냐?”

“어, 정말이네?”

“여긴, 그릇에 면하고 양념장만 담고 배달 가서 육수만 따로 부어주거든. 그래야 퍼지지 않으니까.”

짜장면처럼 소스가 부어져 나가는 형식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또, 그릇에 랩을 씌울 필요가 없기에 면도 적당히 미적지근한 상태가 되니 불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일단 주문할 때 전부 이야기해야 해. 양 많이, 혹은 양 적게. 깍두기도 넉넉히 달라고 해야 하고. 맵게, 마늘 많이, 고춧가루 빼고 등등. 같은 거 말이야.”

“그, 그렇게 까다롭게 주문하는 사람도 있어요?”

“흐흐, 원래 배달이 100곳이면 주문도 100가지라 봐야지. 하여간 이쪽으로 들어가자.”

바깥의 가게가 아닌 시장 상가 안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훅 하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더라.

“어? 이런 데가 다 있었네요.”

정태수는 신기한 듯 좌우를 둘러봤다.

상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길을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에 칼국숫집이 쭈욱 이어져 있었다.

원조집, 할매집, 이모집 등등 간판이 달랐는데 여기도 동래 시장하고 비슷했다. 주방을 중심으로 ㄷ 자 형태의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크게 세 가게가 운영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여섯 곳이었다고 하더라고.”

솔직히 나도 한 다리 건너 들은 거라 자세한 건 몰랐다.

어떤 데는 할머니가 나이 들어서 옆 가게에 넘겼다고도 하고, 어떤 데는 다른 가게에서 사서 합쳤다고도 하더라.

당연히 사실 유무는 모른다. 그냥 카더라만 있을 뿐이었으니까.

“자, 이쪽에 앉자.”

내 선택은 입구 바로 옆, 그것도 주방이 훤히 보이는 우측 자리였다.

바로 정태수에게 공부를 시켜주기 위해.

역시나 주문은 간단했다.

“이모, 칼국수 하나랑 칼제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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