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41화 (141/156)

141화

“예? 칼제비요?”

“어, 한 번씩 먹으면 별미거든.”

손칼국수의 장점은 면에 의한 일정하지 않음이 있다. 미묘한 두께 차이에서 오는 입체적인 식감이 맛을 배가시키는 거다.

덕분에 쫀득한 부분은 더욱 찰기 있게, 미끈한 부분은 더욱 부드럽게 느껴진다.

여기에 수제비 반죽이 더해지면 씹는 감촉이 더욱 다채로워지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후우, 여긴 칼제비뿐만 아니라 칼당면도 가능하거든.”

“칼국수하고 당면이요? 그게 같이 돼요?”

“음. 당연하지. 중요한 건 메뉴판에 없는 걸 주문할 때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자 정태수는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 이렇게 손님 많을 때는 주문도 다양해지거든. 누가 수제비를 주문했다 싶을 땐, 슬며시 칼제비를 달라고 하고, 또 다른 손님이 당면을 주문했다 하면 칼당면을 주문하는 거지.”

“으음. 그런 거였어요?”

“아, 원래 그냥 주문해도 해주긴 해준다고. 근데 우리도 장사 하는 입장이잖아. 바쁜 시간에는 눈치 보이니 적당히 봐서 하는 거지.”

칼제비는 언제든 그냥 해준다.

왜냐면 수제비가 500원이 더 비싸니 그 가격으로 받을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칼당면은 같은 가격인데 한 번이라도 손이 더 가니 적당히 눈치껏 시키는 게 좋았다. 애초에 메뉴에 없으니 주문을 안 받아도 그만인 것이다.

그 외, 몰래 주문이 가능한 것도 있었다.

비빔 칼국수의 다른 버전인 비빔 수제비도 안 바쁠 때는 해준다더라.

“근데, 형. 아까 수제비 먹지 않았어요?”

“어허! 어딜 감히 비교를. 수제비랑 칼제비는 엄연히 다른 음식이거든?”

“그만큼 차이가 커요?”

“궁금하면 너도 다음에 와서 따로 먹어보든가. 자, 잡담은 그만하고 먹을 준비하자. 옆에 물병 보이지?”

“아, 예.”

손가락으로 까딱 신호를 하자 정태수는 큰 PET병에 담긴 물을 컵에 따랐다.

나는 깍두기를 한가득 접시에 덜어 담은 다음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매운 고추가 든 스테인리스 통을 앞에 놨다.

여기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필요한 거 다 앞에 있으니 알아서 챙겨 먹어라. 거의 이런 느낌이랄까.

그건 가게 구조상 주방에서 손님 주문 때마다 일일이 하나씩 해주기가 까다로워서였다.

슬쩍 옆을 돌아보는데 정태수의 눈빛이 점점 흐리멍덩해지더라.

사람은 많지, 정신없이 북적이지.

출근 시간도 한참 전에 우르르, 우당탕탕! 이모, 이모. 할매, 할매. 배달 어디 소리가 온 사방에서 두서없이 울리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확실히 정태수에게는 신세계가 분명했다.

“너 여기 와본 적 없어?”

“아! 뒤편에 친구 따라 몇 번 와봤어요. 유명한 통닭집 있다고 해서요.”

“아, 통닭 골목 말하는구나.”

거제시장 통닭 골목.

진주부터 시작해서 너무 많은 가게들이 있어 어디가 딱 좋다 하기 겁났다. 인근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유명했고, 늘 사람들이 넘치기 때문이었다.

“흐음.”

좁은 시장길.

좌우로 여러 통닭집들이 쭈욱 늘어서 있다.

맛도 맛이지만 그 양이 제법 괜찮은 걸로 나름 알려져 있었다.

소중대인데, 유명 프랜차이즈 두 마리 치킨 양이 여기 중자보다 적다고 보면 될 거다. 그러니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 종종 모임을 가지기도 했고, 인근 사람들도 부담 없이 한잔하기 좋겠지.

여기서 통닭 골목 한쪽이 시장 상가에 붙어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횟집이 쭈욱 있고, 더 안쪽에 여기 칼국수 라인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어쨌든 구구절절은 여기까지.

시장의 흥취, 그게 남은 몇 안 되는 동네라고나 할까.

당장 라인 벗어나면 유흥가였다. 주택가로 가기 전까지 맛집들이 즐비한 것이다.

“흐음. 확실히 시장 자생 기준으로는 잘되긴 했지.”

시청이 들어서고, 인근 재개발이 이어지고…… 그런 이야기가 쭈욱 있었다.

그 과정에서의 흥망성쇠를 누가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슬쩍 보니 정태수는 여전히 꾸벅거렸다.

이른 새벽부터 돌았던 것도 있지만 아까 먹은 칼국수의 포만감 때문인 것도 같았다.

“마! 태수야.”

“예엡,”

아오, 침 닦는 게 일상적이네.

“야. 너도 인마, 기다리는 동안 멍 때리지 말고 주변 좀 돌아봐. 어떻게 손님 받고 나가는지, 주로 무얼 주문하는지, 어디가 손님이 많고 적은지 같은 걸 생각하면서 살피라고.”

“으헉, 아! 알았어요.”

“우리 놀러 나온 거 아니다. 특히 넌 현장학습이니까 긴장 풀지 말라고!”

“옙.”

때마침 바로 앞 이모가 그릇을 받아 들고 있었다.

그걸 옆에 툭 놓더니 무심한 듯 고춧가루와 깻가루를 뿌렸고 김 가루까지 툭툭 하더라.

그때 잽싸게 끼어들었다.

“이모, 다진 마늘 많이요.”

“뭐? 넣지 말라고?”

“아뇨. 많이 넣어달라고요.”

“이만큼?”

숟가락 한가득 올라간 걸 보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는 시크하게 툭 털어 넣고 말했다.

“뜨겁다.”

그러곤 내 앞에 칼제비를, 태수 앞에 칼국수를 가져다 놓았다.

이것도 이 집만의 방식이었다.

보통 바 형식의 식당 같은 경우, 주방에서 바로 손님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릇을 위쪽에 올려놓으면 직접 가져가 먹는 거다.

하지만 이 칼국숫집은 그런 거 없었다.

그릇이 무척 뜨겁기 때문에 이모들이 직접 바로 앞에까지 놔주는 것이다.

때문에 괜히 도와준답시고 받으려 하면 이모들은 극구 말린다.

아마도 손님들이 받다가 여러 번 엎었겠지.

“모자라면 말해.”

“예. 이모.”

툭 반말을 들었지만 딱히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여기에 이모뻘 되시는 분은 없었다. 식당 뒤쪽에 서빙하는 아가씨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당한 연배로 보였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할머님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아마 환갑 정도면 막내 소리는 안 들을 정도라 해야 할까?

여하튼 적당히 칼국수를 섞은 뒤, 후각을 끌어당기는 국물부터 맛을 봤다.

후우, 후우-

후루룹, 후루루룹.

숟가락이 한 번 움직이다 서너 번이 되더니 홀린 것처럼 미각이 살아났다.

진한 멸치 국물의 감칠맛이 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이제 필요한 건 양손 신공이었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숟가락으로 수제비를 떠서 번갈아 먹는데, 역시나 식감이 상당했다.

탱글탱글한 탄력에 육수를 잔뜩 머금은 얇은 부분까지 뒤섞여 입안에서 휘몰아치는 느낌이랄까.

이걸 보통 먹방 관련 만화에선 이렇게 표현하더라.

식감의 오케스트라, 라고.

솔직히 그 정도 감동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5,000원이란 가격으로 따지면 상당한 퀄리티의 손칼국수 정도였다.

거기에 30년이 넘는 세월이 덧대어져 있어 깊고 진한 여운이 남았는데, 만약 외관이 깔끔했다면 이런 감성은 느끼지 못하겠지.

“태수야. 어때?”

“보기보다 진하네요. 뭐랄까, 겉으로는 투박한 느낌인데 의외로 맛이 알차다고 해야 하나. 낭비 없이 조화롭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 의외로 나물 고명에 김 가루 뿐인데도 부족함이 안 느껴지는 게 이 집 매력이야. 그만큼 진한 국물이 전체적인 밸런스를 꽉 잡고 있다고 보면 돼.”

그렇게 정태수에게 조심스레 말하는데, 앞의 이모가 불쑥 물었다.

“뭐? 국물 더 줘?”

“아, 예. 국물만 조금 더요.”

“잠시만.”

이내 커다란 계량 국자가 육수를 잔뜩 싣고 다가왔다.

대충 3분의 2는 내 그릇에, 나머지는 정태수 그릇을 채우고 사라지더라.

“모자라면 말해.”

“옙.”

다시금 거의 새로 나온 상태가 됐다.

다만 양념장이 부족했는지 색이 좀 연해졌는데, 정태수가 슬쩍 물었다.

“형, 이러면 싱거워지지 않아요? 맛이 변할 텐데?”

정태수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처음 나올 때, 양념이 들어간다. 그걸 풀어서 국물과 마신 상황에서 국물만 더 들어가면 자칫 싱거워질 수도 있는 거다.

“왜? 양념장이 부족한 것 같아? 그럼 더 달라고 하면 되는데?”

“아니요. 괜찮아요.”

“필요하면 말해. 여기 이모님들 대부분 몇십 년씩 한 분들이라 딱 보면 알거든.”

“뭘…… 요?”

“양념장을 더 달라고 하면, 풀린 국물 색을 보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게 알아서 넣어줘.”

“아, 그래요? 그럼 형은요?”

“난 이거.”

미리 가져다 놓은 통에서 다져놓은 매운 고추를 덜었다. 이걸 국물에 넣고 다시 저으니 산뜻한 칼칼함이 훅 올라오더라.

아까와 다르게 이번에는 진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크하! 이게 지대로지.”

그렇게 매콤하면서도 진한 멸치 육수, 그 덕에 칼제비 한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비울 수 있었다.

그건 정태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아, 배부르다. 진짜 양이 많네요. 배가 터질 것 같은데요?”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예? 뭐가요.”

“이 집 칼국수 특징이 있는데…….”

“이, 있는데?”

정태수를 향해 씨익 웃었다.

녀석은 순간 소름이 돋는지 움찔하더라.

그래도 알고 당하는 게 낫겠지?

“이거, 배 속에서 계속 불어.”

* * *

다음 코스는 서면 시장.

사실 대부분은 모르는데 시장 밖에도, 안에도 칼국숫집이 여럿 있었다.

다만 너무 유명한 집이 있어서 묻혔지만 나름 내공 가득한 가게들이 적지 않았다.

일단 입구 쪽에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온 칼국숫집이 있었다.

여기 특징은 정말 회전이 빠르다는 것. 그리고 연휴 기간이나 밀릴 때 가면 깍두기가 좀 딱딱하다는 거다.

무엇보다 시장 특성상 위생에 민감하면 쉽게 엄두가 안 난다는 거지.

주방이 바깥에 있으니까.

“형, 여기는 너무 유명한 가게잖아요.”

“아니, 배가 불러서 더 안 들어가잖아. 여긴 둘러보는 게 목적이거든.”

정호석이나 이호영 같은 경우 옆에 두고 가르칠 수 있지만, 태수는 좀처럼 기회가 나질 않았다. 그러니 이참에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 들더라.

이제는 진짜 가족이니까.

무엇보다 여기는 통닭 골목이 있고, 돼지국밥 라인도 있었다. 지금이야 많이 줄었지만, 떡볶이 리어커도 하나의 골목을 형성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칼국수는 묻히게 된 것이다.

정태수를 데리고 상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너도 여기는 안 와보지?”

“저, 처음인데요? 여기 이런 데가 있었구나.”

“의외로 숨은 맛집들 많다.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만.”

대충 알려줬다.

저기 누님 가게는 불백이 맛있고, 저쪽 어머님 가게는 갈치찌개가 괜찮다.

이쪽 집은 밑반찬 간이 어르신들 입맛에 잘 맞더라.

그렇게 설명하며 시장 내부를 돌았다.

“진짜 신기하네요.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마치 안에는 다른 세상 같아요.”

정태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중요한 건 칼국숫집을 보라는 거야. 어떤 느낌이 드니?”

“동래 시장이나 거제 시장보다는 소박하긴 한데, 의외로 손님들이 많네요.”

“아니, 주변을 돌아보라고.”

“예?”

“태수야. 왜 시장 상가 안 칼국숫집 여러 곳을 돌아봤을까? 생각해 봤니?”

뭔가 허를 찔린 듯 주춤하더니 정태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 골목에서 여러 가게가 경쟁을 해. 그럼 손님 입장에서 어디를 선택할까?”

“그야 입맛에 맞는…….”

“그래. 각각의 가게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 나름의 경쟁력이 있다는 거지. 그럼 할머니 칼국숫집을 찾는 손님들은 뭘 원해서 가는 걸까?”

이건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녀석도 알고 있는데 막상 입으로는 내뱉지 못하더라.

“차이점. 차별점이라고 하지. 너도 알고는 있잖아. 할머니 국물 맛이 뭔가 다르다는 걸. 손님들도 그걸 원해서 오는 거고.”

“아!”

“근데 네가 신메뉴라고 만든 건, 그 맛과 전혀 다른 방향이라고. 너도 그걸 아니까 이런저런 편법으로 맛을 낸 거고.”

정태수는 잠시 굳어 있더니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역시. 제가 착각한 게 아니군요.”

“뭔가 새로운 걸 해보려는 시도는 좋아. 그런데 의욕이 앞서서 너무 멀리 가버린 거지.”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라면 스프맛 칼국수도 나쁘진 않았다.

문제는 가게 손님들이 원하지 않는, 그런 맛이라는 거다.

할머니네 칼국수 손님들은 평균 연령이 최소 50대 이상이었다. 이들이 그렇게 무거운 양념이 들어간 음식을 소화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덕순 할머니는 봉사 활동을 이유로 정태수가 추구하는 본질을 다시 되짚었는지 모른다.

연령대가 거의 비슷하니까.

“근데 태수야.”

“예. 형.”

녀석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툭 내뱉었다.

“그거. 나쁘지 않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