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자, 복기해 보자.”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마 태수는 이렇게 다닐 기회가 드물 거다. 가게에 매달려 있어야 하고 곧 군대도 가야 하니까.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녀석을 끌고 다녀야 했다.
“시장 상가를 쭈욱 돌아본 감상은 어때?”
“상가 숫자는 동래 시장이 제일 많았던 것 같아요. 뭔가 안정적인 느낌이고, 거제 시장은 좀 많이 활기찬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시청 뒤편이고, 최근 재개발로 아파트나 이런 게 엄청 들어섰거든.”
“반대로 서면 시장은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지. 바깥에서 손님들 대부분을 가져가니까.”
지금이야 한풀 꺾였다지만 통닭 골목도 유명했고, 돼지국밥집도 몰려 있었다. 먹거리가 바깥에 넘치는데 상가 안까지 들어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나 칼국숫집의 경우 방송을 많이 탄 가게가 있어서 굳이 안이나 옆에까지 찾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막상 가보니까 어때?”
“확실히 형 말 듣고 생각해 보니까, 다들 조금씩 특색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당연하지. 천편일률적으로 장사하면, 특별히 거기 찾아갈 기분이 나겠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 정태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묻더라.
“형은, 어떻게 이런 걸 아는 거예요?”
“내가 왜 주 5일만 영업하고 주말 장사를 안 했을까?”
정태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먹으러 다니고, 공부하러 다니고, 연구해야지. 한참 부족한 실력이니 노력이라도 죽어라 해야 할 거 아냐.”
사회와 거의 격리된 7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만큼 따라가려면 지금 고생하는 것도 부족했다.
식당가를 맡으면서 정말 여러 사장님들한테 이것저것 배우기도 했지만, 결국 느껴지는 건 부족한 실력이었다.
신체적인 조건으로 대부분 커버한다고 하지만 경험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니까.
때문에 주말 틈틈이 맛집 탐방을 했고, 손강희가 많이 도와줬다. 그럼에도 세월이 주는 영향을 메꾸기가 쉽지 않더라.
결국은 노력밖에 없는 거지.
“특히 나는 거제 시장 칼국숫집 주방 옆자리에 앉는 걸 좋아하거든. 그러면서 내 칼국수 나올 타이밍에 말하지. ‘이모, 마늘 많이요’ 하고.”
“형, 진짜 마늘 많이 좋아하네.”
“우린 마늘의 민족이다.”
“아니죠. 사람 되려고 찾는…… 크흠.”
방금까지 기죽어 있던 놈이 대화가 트이자마자 기어오르려 하네?
이럴 땐 응징이 필요하다.
씨익 웃으며 가볍게 헤드록을 걸었다.
오른팔로 녀석의 턱 부위를 감고, 왼손으로 입을 막아 버린 거다.
근데 이 녀석. 생각보다 힘이 좋다.
하지만 차이가 역력했으니, 금방 반항하기를 포기하더라.
“웁, 웁. 스…… 하…….”
열심히 탭을 쳐서, 딱 5초만 더 세고 풀어줬다.
“후아, 후아아. 죽는 줄 알았…….”
“아까 말했지.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는다고.”
“혀엉. 우,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더 무섭다고요.”
“아니지. 웃을 때가 좋은 거지. 정색하면 진짜 지옥일걸?”
그러면서 얼굴에 빡! 힘을 줬다.
“헉, 형님! 제발 살려만 주십쇼.”
“그래. 우리 현아한테 하는 거 봐서.”
그제야 내 의도를 눈치챈 정태수는 연신 꾸벅거렸다.
“형님,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됐고, 쭈욱 돌아봤는데 시장 상가 칼국숫집들의 단점은 뭐 같아?”
“으으음. 그게 위생이 아무래도 좀 꺼려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긴 하더라고요.”
정태수도 처음에는 시장 상가 안으로 향하는 걸 본능적으로 주저했다.
아무래도 겪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환경에 쉽게 발이 나가지 않았겠지.
“대충은 맞아. 사실 그분들도 바지런하거든. 영업 전에 청소하고, 마치고 또 하고, 수시로 닦고. 그런 부분에선 솔직히 대단하지. 문제는 환경이야.”
일단 시설 대부분이 오래됐다.
20년, 30년이 넘은 가게들이 대부분이라 묵은 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바닥을 열심히 쓸고 닦아도 쌓인 얼룩은 여전했고, 공간이 협소한 만큼 더 자주 설거지를 하는데도 손님 몰릴 시간이면 쌓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칸막이 없는 넓은 공간에 여러 가게가 모여 있다 보니 한 곳만 실수해도 냄새가 퍼진다.
때문에 주변 가게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식당들만 이용하는 사람들은 걸음 하기가 꺼려지는 거야.”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기는 했어요. 칼국숫집 옆에 정식집, 그 옆에는 청과물 상회도 있고, 미싱집에 불교용품점. 막 이렇게 몰려 있는데 정신이 없더라고요.”
잠시 생각한 뒤, 태수에게 말했다.
“넌 뭔가 특별한 걸 하려고 하는데……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그런 칼국숫집. 그게 할머니가 항상 하던 말이야.”
갑자기 녀석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가게를 맡게 되면서 가지게 된 부담이 훌쩍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무 잘하려고…… 무리하지 마. 이대로도 넌 잘 해내고 있으니까.”
* * *
동네 사랑방 같은 칼국숫집.
마트 아줌마도 막걸리를 들고 찾아오고, 우리 강 여사도 편하게 놀러 간다. 가서 마늘도 까고 양파도 다듬고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 없는 가게였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서로 서로 알아갔던 건데, 리모델링 이후 정태수는 힘겹게 버텨가더라.
말로는 다들 도와줘서 괜찮다고 하는데, 아니다 싶었다.
손님들이 아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으니까.
“진짜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정태수는 자신이 만들어놓고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할머니한테 배운 육수 그대로 ‘마법의 가루’ 빼고 넣으라고 했는데 뭔가 내키지 않는 표정이랄까.
“태수야. 가게의 맛은 사장인 네가 정하는 거야. 문제는 너무 확 바뀌면 기존 단골들도 오기가 꺼려지는 거지.”
새로운 맛도 좋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손님들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낸다는 건 주객전도였다. 대부분 나이대가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음식을 피하는 것이다.
“그럼 신메뉴는 실패한 거네요?”
“아니, 둘 다 올리면 되지.”
“둘…… 다요?”
고민 끝에 해법을 찾기는 했다.
기존 단골들을 위한 깔끔한 칼국수.
여기에 젊은 층을 겨냥해 새로운 맛도 추가한다. 솔직히 MSG가 맛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아주 단순해. 그냥 원하는 손님에 한해서 양념장을 넣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거지. 평소에도 곱배기 양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 보거든.”
시장 칼국수 투어를 갔다 와서 많이 고민했는지 정태수는 다시 메뉴를 정리했다.
일단 메인은 역시 손칼국수였다.
여기에 손만두가 더해지고, 만둣국과 떡국이 추가되었다.
이건 신메뉴 역시 마찬가지.
칼국수와 만두만 넣은 칼만두, 그리고 만두를 넣은 떡만둣국을 하는 걸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베이스로 쓰는 육수는 같았다. 따로 조리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으니 효율이 더욱 올라가는 것이다.
후루룹!
확실히 원래 덕순 할머니 스타일의 국물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조금 심심한 감은 있지만 감칠맛이 더해져서인지 부담 없이 넘어가더라.
“흐음, 확실히 이게 더 나아.”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왜? 불안해?”
“너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아서요.”
“그건 넌 아직 젊어서 그럴 수도 있어. 맛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너무 익숙해져서지. 너한테는 이 칼국수가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정태수는 다시 칼국수 그릇을 보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칼국숫집을 함께 다니면서 깨닫기를 원한 건, 꾸준히 오래가 가는 가게들은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는 거거든.”
“아!”
“여기도 40년이 넘었잖아. 그 본래의 맛을 해치면서까지 신메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그런 거군요.”
“자! 강의는 여기까지.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면 되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그리고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잖아.”
잠시 머뭇거리던 정태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진짜 원하는 건, 바로…… 덕순 할머니의 ‘인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충분하다고 보는데도 뭔가 불안감 같은 게 가슴에 남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메뉴를 만들면 믿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리고 그게 꼭 칼국수일 필요도 없는 거야.”
“예? 뭐가요?”
“이미 미션을 받았잖아. 어르신들 식사 봉사.”
“아!”
이번 칼국수 투어의 목적 일부에는 녀석의 자신감을 올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남해에서 태수가 고백했을 때, 내 짐작보다 고민이 더 크더라.
“그, 서양식 장조림 덮밥이라고 했죠? 대체 그게 뭐예요?”
“수비드, 폴드 포크. 그리고 여기에 비밀 무기 하나가 더해질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네가 고생 좀 해야겠다.”
“에엑? 제가요?”
정태수는 이게 고난의 시작임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고기는 내가 담당. 국물은 네가 담당이다.”
* * *
폴드 포크.
대충 포털에 검색해 보면 이렇게 나온다.
미국식 바비큐 요리 중의 하나.
천천히 익혀서 부드러워진 고기 덩어리를 결대로 찢어서 먹는 음식.
“이 방식이라면 치아가 불편한 어르신들도 먹기 편하겠지. 부위는 돼지 앞다리를 쓰면 될 테고 단가가 싸니까 큰 부담도 없지.”
이미 족발집 박정철을 통해 소개를 받았다.
일반 소비자가 사는 것보다 업자 가격으로 훨씬 저렴하게 해준다고 하더라.
“여기에 자작한 국물을 곁들이면 끝.”
그 때문에 정태수는 졸지에 특훈(?)을 받아야 했다. 박정철의 족발집에서 비법 육수를 배워오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특히 새벽에 족발을 삶기에 정태수는 한동안 개고생을 해야겠지.
“사실 내가 해도 되긴 되는데 그럼 수련이 안 되잖아.”
이건 절대 태수를 괴롭히려고 벌인 일이 아니다.
정말이다.
어쨌든 녀석도 이번 일로 깨닫는 게 있을 거다. 체력도 정신력도 부쩍 올라갈 테니까.
“이틀 전에 진공 압축 포장을 해서 하루 동안 조리하면 충분히 부드러워지겠지. 그걸 통째로 들고 가서 끓는 물에 데우기만 하면 될 거고.”
그런 뒤, 포장을 풀고 눈앞에서 고기를 찢어 밥 위에 올려주면 그림은 잘 나올 거다.
아울러 족발 덮밥처럼 자작한 소스만 더 해주면 기본적인 조건은 통과겠지.
수분기가 있는 밥.
결대로 찢어 부드러운 고기.
씹기도 편하고 위에 부담스럽지도 않다.
“테스트 삼아 몇 개 만들어 볼까?”
마당에서 숯을 피우기는 그래서 수비드로 조리하기로 결정했다.
방법은 뉴튜브에 많이 올라와 있더라.
대충 몇 가지를 체크 한 뒤, 조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앞다리살 2㎏ 정도면 충분하겠지.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하고, 진공포장이라.”
냄비에 물을 끓인 뒤, 가스를 중약불로 하고 온도계로 확인했다. 혹시나 비닐이 들러붙을까 봐 바닥에 철망을 까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대로 서너 시간 끓이면 끝.
다시 꺼내서 바비큐 소스를 바르고 구워주면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상당히 손쉬운 것 같다.
하지만 손질도 해야 하고, 온도도 잘 맞춰야 되며 시간도 많이 걸리는 약간은 번거로운 음식이었다.
“몇 번 테스트해 보고 방식을 조금씩 바꿔보면 적당한 답을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만들어진 폴드 포크는…… 예상 이상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