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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44화 (144/156)

144화

“태수 이놈. 진짜 나한테 다 맡긴 건가.”

하긴 녀석도 정신없을 테지.

새벽부터 올라가서 족발 삶는 거 배우고, 또 덮밥 소스까지 공부했다. 따로 일러주긴 했지만 이참에 제대로 익히는 것도 좋다고 더 열심히 해보겠다더라.

역시 칼국숫집 투어 약발이 제대로 든 모양이었다.

어쨌든 배우고 내려와서 점심 장사.

브레이크 타임에는 잠시 쉬면서 만두를 빚었고 저녁 장사 마치고 바로 기절이었다.

오죽 힘들었으면, 현아가 나한테 한소리 하더라.

현아야. 오빠가 깊은 뜻이 있단다.

크흑, 근데 왜 눈물이 나는지.

그래, 용돈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렴.

“그나저나 예산만 따지면 어떻게 될 것도 같긴 한데…….”

“형님. 부르셨습니까?”

“오오, 치수 왔구나. 그래, 덥지? 아이스커피?”

“밖에 찬바람 쌩쌩 부는데요? 그래도 믹스는 좋아합니다.”

서둘러 믹스 두 잔을 타서 가져왔다.

그 직후, 금치수가 묻더라.

“형님. 오늘따라 비굴해 보입니다만?”

“너 영업 다니면서 눈치는 늘었는데 분위기 파악은 못 하는 것 같다?”

“하,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우리 사이에 뭐…….”

“진담 같은 농담이면 처맞는 거고, 농담 같은 진담이면 죽는 거지.”

“아! 이거 믹스 맛있네요.”

슬쩍 딴청을 피우는데, 후. 급한 사람이 참아야지.

어쨌든 이 녀석도 대충은 알고 온 모양이었다. 그러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자, 총 예산 150만 원, 300인분이고, 밑반찬으로 김치나 깍두기는 기본이겠지? 여기에 단무지나 양파 절임 정도가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쌀 100㎏ 있다. 얼마나 나오겠냐?”

“절임 배추 30포기, 무치는 양념 원가로 하면 깔끔하게 25만 원입니다.”

“직접 담그라고?”

“저희 인건비 들어가면 40만 원 넘게 나오는데요? 세척한 다음, 양념까지 버무려서 나가면 그 비용도 무시 못 해요.”

“그럼 한 포기로 열 명 먹는다는 이야기네?”

“김치 비빔밥도 아니고, 반찬이니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으음, 근데 너무 비싸다.”

아무리 계산해도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근데 금치수가 한숨을 내쉬더라.

“형, 열흘 뒤면 김장철이에요.”

“아, 그, 그렇지. 근데 요즘 집에서는 잘 안 해 먹지 않나?”

“그거랑 식품 회사는 다르죠. 지금은 배추 확보에 나름대로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요.”

“흐음, 확실히 그렇긴 하네.”

“문제는 올해 기후가 완전 개판이었잖아요. 미친 듯이 더워서 가뭄도 심했고, 그러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작황도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순간 뜨끔했다.

신검 오로라!

그걸로 기후가 엉망이 됐고, 아주 난장판이 벌어졌다. 직접 나서서 해결하긴 했지만 후폭풍도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근데 따지면 내 잘못은 아니잖아.

아니, 오히려 해결해 준 사람이 난데!

밝힐 수 없으니 약간 답답했지만, 믹스로 가슴을 씻어 내렸다.

일단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절임 배추로 받아서 자원봉사 아주머니들 도움받으면 반나절이면 될 거다. 반찬이니까 양 조절도 가능하겠지. 김치만 먹을 건 아니니까.

아! 깜빡한 게 있었다.

태수 녀석도 3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더라.

족발 6개 정도를 푹 우리고 각종 양념 재료까지 넣고 삶아야 육수에 그 맛이 나온다나 뭐라나.

진짜 기적이긴 하다.

비록 우려낸 다음 살점까지 벗겨서 곱게 갈아 만드는 거지만 족발 하나로 50명이 먹는다니.

그걸 가져와 새벽에 다시 각종 야채 넣고 졸이면 완성이라고 했지.

“그럼 300인분 쌀은 얼마나 필요하겠냐?”

“근데 형님. 진짜 300인분 맞아요? 자원 봉사자들 식사도 챙겨야 할 텐데요?”

“그래서 여유 있게 잡은 것도 있어. 한 100㎏면 충분하겠지?”

“조금 남을 수도 있겠죠. 요즘 밥 한 공기가 230~250g 수준이니까요. 햇밥보다 한두 수저 정도 많은 정도가 그래요. 근데 맛있다고 많이 먹으면 모자랄 수도 있고.”

“그럼, 깔끔하게 100㎏.”

“품질에 따라 다른데요. 대충 상이 40만 원, 중이 30만 원, 하가 20만 원이요.”

“밥맛은 무조건 좋아야 되니까 상으로 가자.”

수분기 날아간 묵은쌀로 지으면 밥에 윤기가 덜하다.

아무리 반찬이 맛있어도 퍽퍽한 밥과 먹으면 식사 만족도가 바닥을 친다.

그럼 욕만 먹겠지.

“다른 반찬은?”

“깍두기 10㎏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이건 8만 원에도 가능한데요.”

“무가 그렇게 비쌌나?”

“물가가 많이 올랐죠. 요즘 계란 한 알이 500원 하는 시대인데요. 그리고 양념하고 인건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받아야죠. 숙성시켜서 배송까지 해주잖아요.”

“일단 생각해 보자.”

120만 원에서 절임 배추와 쌀만 65만 원이다.

이제 남은 건 55만 원.

깍두기까지 치면 46만 원이 남는데 문제는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였다.

아, 머리 아파.

포장 용기에 비닐에, 운반비는 몸으로 때운다 치고…… 뭐 이래저래 계산할 게 많았다.

대체 국숫집 사장님은 이런 걸 십여 년 동안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수익도 안 남고 머리만 빠개지는 건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걸까.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금치수랑 현실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대충 뚝딱 이것저것 하니 남는 건 20만 원 전후.

이건 예비 비용이라 하는 게 맞을 거다.

“근데 너, 이거 많이 남기는 거 같은데?”

“형님. 솔직히 이야기하지만 진짜 남는 거 없습니다.”

“흐음, 이럴 땐 사실 곤란하단 말이지. 김요성 대표님도 연락 달라고 하긴 했는데.”

“예?”

그냥 떠본 말에 금치수의 표정이 달라졌다.

김요괴, 아니, 김요성 대표 역시 본성 푸드가를 비롯, 몇몇 식품 회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SF푸드의 경우, 절반 즈음 주인이라고 할 수 있었지.

그쪽의 도움을 받는다면 뭐, 내가 후려치는 가격이 거래 가격이 될 가능성도 컸다.

“하하, 형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거긴 기본 거래가 최소 톤 단위에요.”

금치수가 진땀을 흘리며 말하는데, 살짝 가소롭게 느껴지더라.

“뭔 개소리야. 나 김 대표님하고 동업 중이거든. 더군다나 내가 갑이다.”

이건 내가 우긴 사실이었다.

근데 김요성 대표도 당연하다시피 응원(?)했고 어쩌다 보니 식당가와 기타 등등을…….

어? 가만 생각하니 이상하네.

확실히 김요성 대표는 ‘물심양면’ 으로 지원해 준 건 맞다.

근데 개고생은 내가 하는 느낌이랄까.

특히 이번 일도…….

이런 쪽으로는 그만 생각하자.

“근데 형님. 솔직히 저 태수 돕고 싶어요.”

“엉?”

“후우, 친구끼리 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애가 힘든데 뭐라도 해주고 싶은 그런 거 있잖아요.”

임민혁은 열심히 칼국수 가게를 홍보 중이라고 했다.

특히 본인 스스로 아주 격한 하드 코스를 지원해 훈련을 받으면서도 최소 달에 한 번 이상은 지인들을 우르르 데리고 방문한다더라.

이호영은 가게 쉬는 시간 잠시나마 와서 돕는다고 했다.

물론 나도 알지만 쉬다 온다 생각해 묵인해 버렸다.

대신 정호석에게 일러주긴 했다. 가게 일에 지장만 주지 않는다면 적당히 넘어가라고 해버린 것이다.

친구끼리는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곧 금치수의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형, 진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우리 아부지한테 삭삭 빌어서 허락까지 받고 왔고요.”

“그…… 그랬어?”

“이거, 영업 이익 다 뺀 가격입니다. 그 이하로 뺄 수 있기는 한데, 그러면 문제가 생겨요.”

금치수가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제야 나도 모르던 뭔가를 깨달았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타당한 이유라면 가격을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걸 수많은 거래처에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는 이 가격에, 누구는 저 가격에!

당연히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고, 결국 신용을 잃어버리게 된다.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치수는 자신의 영업 이익을 다 내려놓고 특별히 금일봉 사장님한테 사정사정해서 가져온 게 이 가격이라고 했다.

아니, 애초에 이 시기에 배추를 계약이나 예정 없이 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단다. 겨울에도 정기 납품인 상황이라 김장철 배추 가격이 폭등해도 거기에 많이 반영할 수 없다는 거다.

즉, 반쯤은 서비스인 게 김장철이란다.

그걸로 거래처를 유지해서 해를 넘기는 것이 장기적인 이익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업체에 대한 방어이기도 했고.

“이번 케이스야 형하고 칼국숫집이 오랜 거래처이고, 일시적인 물량 증가라 조금 할인해 줬다고 하면 해명이 되거든요.”

금치수는 금액을 강조하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그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

이거 하고 나서 소문이 안 나면 다행이긴 한데, 혹시 몰라 퍼지게 되면 거래처마다 해명하러 다녀야 한다고.

대기업이면 배짱으로 니들이 어쩔 건데 해버리면 되겠지.

하지만 치수 식품은 그럴 스타일도, 규모도 아니었다.

“그래. 나름 배운 놈이 낫다고. 네 말대로 하자.”

“예. 저도 차질 없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금치수가 웃으며 이미 다 식은 믹스 커피를 마셨다.

녀석의 표정에서 뭔가 느껴지더라.

한 건 했다는 개운함이 아닌, 뭐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감정이랄까.

누가 그러더라.

인생을 정말 잘 살았다는 증표는, 죽었을 때 관짝을 들어줄 수 있는 친구의 숫자라고.

뭐 친구들 먼저 다 보내면 어쩔 수 없지만, 일부는 친구 자식들이 들어준다고도 했다.

그만큼 가까운 조카 삼촌 사이라는 거겠지.

흐음, 내가 죽으면 누가 내 관짝을 들어주려나.

왜 갑자기 엘리스 얼굴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네. 아니, 라이노스 장로님은 좀 그렇잖아.

조온달 저 새끼는 좀 빼고. 호석이는 오래 살아야지.

호영이는 나보다 먼저 갈 것 같은데?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태수인데, 이 녀석은 울다가 놓칠 것 같았다.

아오, 갑자기 무슨 개상상인지 모르겠다.

크흠…… 결국 툭 한마디를 뱉고 말았다.

“새끼, 친구 잘 뒀네.”

* * *

“자, 최종 테스트.”

폴드 포크.

그 스타일의 돼지 앞다리 덩어리를 툭 내어놨다.

꿀도 넣어보고 맥주도 넣어보고, 별의별 지랄을 다 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물론 그 희생양(?)은 임혜리와 임수원이었다.

정호석과 이호영, 그리고 정규 알바 셋과 추가로 뽑은 임시 알바 둘이 가게를 다시 청소하고 영업 준비를 시작했다. 거기서 빼는 대신 맛 테스트 중노동을 해야 했던 거다.

처음에는 좋다고 하더라.

대충 두 녀석이 먹은 고기만 100㎏는 가뿐히 넘었으니까.

그때부터 죽는다는 소리가 나왔다.

왜? 언제는? 수시로 고기가 모자라다면서?

많이 먹여줘도 난리야.

크흠, 오해하지 마라.

다 같이 먹고사는 한 식구를 생각해서 한 노력일 뿐이다.

어쨌든 최종 버전이 나왔다.

뉴튜브랑 블로그 보면서 연구한 건데, 추가로 연육 작용을 하는 과일을 갈아 넣은 스타일이었다.

배랑 키위랑 기타 등등.

갈비 재우듯 만든 양념을, 커다란 덩어리 중간을 갈라 김장하듯이 속에 넣었다.

그걸 진공 포장해 수비드를 하니 시간 단축이 되더라.

단지 너무 지나치다 할 정도로 부드러워진다고나 할까.

동시에 깨달았다.

거의 국수 가락 정도의 두께이니만큼 밥 전체에 촘촘히 깔아도 실제 중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때문에 푸짐하게 올려도 가격 면에서 방어력이 상당했다.

“일단 해보자고.”

널찍한 접시에 밥을 3분의 2 정도 채웠다.

그걸 넘기자 정태수가 신중한 표정으로 나머지 부분에 소스를 부었다.

달큰한 양파, 묵직한 감자에 포인트로 들어간 색색이 당근이 존재감을 자랑했다.

마지막으로 정호석이 큼직한 손으로 뭉텅 쥔 폴드 포크 장조림(?)을 접시 가득 뿌렸다.

“크흐.”

먹지도 않았는데 이성남이 탄성을 내질렀다.

어쨌든 그걸 반복해서 테이블마다 그득그득 내놨는데 다들 맛보기도 전에 환호성을 내더라.

“흐음~”

“하아!”

“오! 이건…….”

하긴 올라오는 향부터 미치겠지.

정태수가 심혈을 기울인 육수 자체가 어마어마한 비주얼을 만들어냈으니까.

그때 말했다.

“자, 시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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