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미쳤다.”
“이게 단가 오천 원도 안 되는 음식이라고?”
“하~ 이게 고기가 진짜 다 접시를 덮네.”
“이거 카레? 아니, 장조림? 하여간 소스가 장난 아닌데?”
“야, 헛소리 꺼라. 그냥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다.”
예상 이상의 반응이었다.
이 정도면 정규 메뉴로 올려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불가능하지. 들어가는 공에 비해 수익은 터무니없이 낮을 테니까.
땅.
숟가락 하나가 테이블을 치고, 맹렬한 울음을 토했다.
순간, 그 하나로 모든 소리를 멈췄다.
우리 어사 박문수 크흠, 아저씨였다.
“이것들이 우리 현성이가 특별히 챙겨 줘서 불렀으면 맛을 보고 일러야지. 뭔 헛소리야. 그리고 거기 박씨부터, 너네 막걸리 찾는다는 소리 하지 마라.”
“아따 형님. 이게 진짜 입에 쩍쩍 달라붙는데 한두 잔은 괜찮지 않습니까?”
“시끄러. 니가 우리 현성이 가게 좋아하는 거 아는데,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 이건 냉정하게 평가하는 자리야. 술 처먹고 맛있다고 하면 신용도가 떨어져.”
박문수 아저씨가 직원들을 타박하는데, 어우, 위용이 폭풍 펑펑 으로 넘치더라.
하긴. 맛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때문에 가까운 지인 제외.
혹여나 편파적일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서 박문수 아저씨한테 냉정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 아저씨네 식구들이 너도나도 참여 하겠다고 해서 초청했다.
최소 대기자가 200명이 넘는다나 뭐라나.
하지만 서른 그릇 한정이라 조심스럽게 모셔야만 했다.
일단 최고령자라고 소개받은 송씨 아저씨가 웃으며 말하더라.
“내가…… 단골 설렁탕집이 있는데, 거기 사장이 고등학교 후배여.”
엥? 서면 복개천 곰탕집. 거기 60년 넘은 전통 가게 아니었나?
그럼 이 어르신 연배가…….
“허, 허허. 내가 당시에 거기 사장한테 삼촌 선배라 불렀다니까?”
“아, 예. 그러시군요.”
“이후로도 일 땜시 지방 많이 다녔는데, 곰탕 설렁탕 많이 먹었거든. 대충은 다 알아.”
“그, 그럼 오늘 맛있게 드셨습니까?”
“다들 말하는 맛은 모르겠고, 하여간 내 입에는 쩍쩍 달라붙는 게 좋더라고. 자네가 만들어 준 차슈인가 포크인가도 좋았는데. 이건 그 위네.”
“흐흑,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 지었다.
근데 언제나 경험하듯, 딴지 거는 개싸가지가 있었지.
“이게 뭐여, 개밥이야?”
“크흐음, 음, 예. 배우는 입장에서 진지하게 듣고 싶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야! 그냥 이도 저도 아니라고, 뭐 X발, 끓는 물에 고기 넣고 흔드는 것도 아니고. 야채랑 뭐랑 다 짬뽕이네. 거기에 3분 짜장에 곰탕 말아먹는 것도 아니고. 이걸 내와?”
“죄송합니다. 개인에 따라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긴 합니다.”
“개인이고 나발이고, X발 놈아. 사람을 오라 가라 했는데 이걸 먹으라고?”
“죄, 죄송합니다.”
“하아, X바.”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지만 예외적인 반응은 대비하고 있었다.
트집과 아집과 땡깡이 최소 5%는 된다고 하니까.
때문에 무시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는 것 같아서 벌떡 일어섰다.
어라?
근데요. 이게요. 아재요. 훅 넘어가네?
“야 이 십잡것들아! 그 지랄 하려면 싹 숟가락 놔!”
“아이고, 형님 또 이러실까?”
“아니, 우리가 뭐라 했다고.”
“괜찮다고요. 그냥 이게…….”
박문수 아저씨의 호통에 다들 한두 마디씩 하다가 분위기와 눈치를 봐서 시선을 돌렸다.
“이런 개씹잡풀X 같은 새끼들이 돌았나. 조카 손주 같은 애가…… 엉? 기껏 우리 같은 아재들 불러서 해 줬더니. 야이~ 뭔 개소리야. 무조건 편 들라는 게 아니고 좀 더 잘하게 도와달라잖아!”
“그, 그건 맞죠.”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순간 박문수가 마지막 말을 했던 인간을 쏘아봤다.
그런 뒤, 툭 던지더라.
“꺼져. 십장생 조옻도 안 되는 새끼야.”
* * *
소란은 있었다.
예상을 좀 많이 넘어서긴 한데, 대충 감이 오긴 하더라.
어느 무리나 사사건건 반대하는 인간들이 존재했다.
애초부터 싫으면 참석 안 해도 된다 했는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끼어든 케이스.
그럼에도 비협조적인 스타일이라 해야 하나.
초장부터 불평불만에 지랄 쌈을 마구 퍼 먹더니 아주 난리 부르스를 치려고 측근과 계획했다더라. 개밥이니 어쩌니 하면서 칼국수집 테이블을 엎고 난장을 피울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X발, 애새끼들. 나이 환갑이나 처먹고 아직도 그 지랄이야.”
“크, 그, 그렇습니까.”
“눈치 보지 말고 욕해. 나이는 개똥으로 처먹은 새끼라고.”
박문수 아저씨가 이렇게 열받아 할 줄은 몰랐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친한 단골 가게 애들이 자원 봉사를 한다고 하더라.
혹시나 음식이 맛이 없을까 지인들 불러서 테스트하려고 한다니 아는 사람들 우르르 불렀겠지.
근데 그네들이 깽판을 쳤다.
대놓고 티를 내기는 힘들고 속으로 삭히는 부분도 있지만, 콧김으로 나오는 열기는 어쩔 수 없었다.
“나이 처먹었다고 다 좋은 새끼들이 아니야. 환갑 넘어도 개새끼는 개새끼고, 씹…… 에휴~ 내가 애들 놓고 뭔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괜찮습니다.”
“그냥 귀 씻고 못 들었다 생각해.”
박문수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옮겨갔다.
거기에 있는 건 정태수였다.
나야 뭐, 그렇다 치자.
정태수는 짧은 기간이지만 하루하루 숨넘어가듯 움직이며 배워왔고, 음식으로 냈다.
개밥!
열심히 요리한 게 그런 소리를 들었다.
순간 울컥하더니 주방 뒤편으로 사라졌고, 다시금 나왔는데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아주 그냥 멘탈이 나간 거겠지.
개인적으로, 나도 그 새끼 죽통에 주먹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싶었다.
다행히 박문수 아저씨가 미리 눈치를 채고 정리했다.
결과. 송씨 할아버지는 정태수 눈에 최고 단골 선정.
주 1회 무상 칼국수에 어쨌든 오시면 극진 대접이란 케이스로 정리됐다.
그거야 말만 그렇지만 그 이상 해주겠지.
그리고 일부에 해당되는 이들은 가차 없을 터.
거기에 어사 박문수 아저씨가 한 손을 거들었다.
“어, 안 볼 거야.”
짧은 한마디지만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적어도 전포동 구역 라인에서는 고물 거래가 원활치 않을 거라는 의미였다.
아마 뭘 수거하든 이 근처에선 처분이 불가능할 거다. 상상 이상으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으니까.
일부에서는 이걸 불합리로 볼 수 있겠지.
근데 공연히 트집 잡으려는 손님을 억지로 참고 받는 건 장기적으로 좋지 않았다.
사장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니까!
“어쨌든 미안타.”
“괜찮습니다. 뭐 이런 손님 저런 손님도 다 있는데요.”
“근데 내가 데리고 왔다 아이가.”
“그래도 대체적으로 평이 좋아서 감사한 거죠. 사실 이건 저도 처음 도전하는 거라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했거든요.”
이게 진짜 중요한 부분이었다.
만들다 실패(?)는 아니지만, 크흠. 어쨌든 대부분을 입으로 처리했던 임혜리 임수원은 끝내 손을 들어 버렸다.
맛의 문제가 아니라 위장의 문제라고.
어쨌든 열심히 청소 정리, 장사 다시 하기 위해 뛰고 있는 애들한테도 폴드 포크 먹였는데!
그게 하루 이틀 이상은 안 가더라.
물린다 질린다를 넘어서, 고문 같다나.
그렇게 고민하는데 어둠 속을 스윽 스윽 다니는 박문수 아저씨가 나타났다.
해서 간곡히 부탁하니 사람들 알아서 모집하겠다더라.
뭐, 어려운 일이라고 하면서 시식 겸 대접을 했다. 근데 거기 일부가, 정말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더라.
이건 박문수 아저씨도 예상 못 한 상황.
“그, 저, 그러니까, 깔끔하게 이야기하마. 새로운 시도, 동네 아재들도 좋게 볼 거다. 너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항상 고마워한다.”
“정말 괜찮을까요?”
“현성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근데 오늘맨치로, 줘도 개소리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그거 어쩔 수 없는 거다.”
“아!”
“나이 처먹는다고 지혜로워지니 똑똑해지니 같은 말은 믿지 마라. 그저 사람은, 잘 안 변하고, 그대로 늙을 뿐이다. 다만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있지.”
박문수 아저씨는 틈틈이 가게에 와서 조언을 해주고 갔다. 더구나 우리 아버지와의 인연 때문인지 몰라도 자잘한 거 정말 잘 챙겨 줬다.
이런 분이 나한테 안 좋은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순간 과거의 일이 떠오르더라.
“인마야. 이게 뭐고. 다리 다 빠짔네.”
“아, 의자 바꿔야 하는데 벽 쪽에 앉으세요.”
“시바. 이것도 후아짔네. 니 이래가 장사 하것나?”
“좀 벌면 바꾼다 했는데 그대로 좀 됐네요.”
“됐다. 일단 라면부터 도.”
그렇게 아버지랑 투닥투닥거리고, 며칠 뒤 의자가 바뀌어 있었다.
박문수 아저씨 말로는 비록 망한 가게에서 가져왔지만 양초 하나 피우고 기원했다더라. 그러니 나쁜 기운은 없을 거라고.
대신 여기는 자기 지정석이라나 뭐라나.
그렇게 우리 분식집 의자는 알록달록(?)해졌다.
“니가 봉사 돕는다 하니 우리도 한 손 거든 거고, 공짜로 한 끼 때운 거 아니냐. 거 호석인가 그 친구도 우리가 예약하고 저녁에 한잔하면 그리도 잘 챙겨 주더라.”
“아, 애가 참 착합니다.”
“그래. 그걸 아는데, 그래도 냉정하게 평가한다고 고민했다. 근데 메뉴에는 안 올린다면서?”
“그건 제가 고민할 게 아니라서요.”
애써 웃음을 지었는데, 박문수 아저씨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메뉴가 안 되면 요리로 올리면 된다. 그래도 찾아 먹을 사람은 찾아 먹을 거니, 이번만으로 생각하지 마라.”
“요…… 리요?”
“니가 보기엔 칼국수집에서 이걸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냐?”
흐음, 아무리 냉정하게 봐도 불가능하겠지.
그렇다고 우리 가게에서 취급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물론 못할 것도 없겠지만.
“여튼 저 병신들 쉰 소리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해. 내가 태수한테 바로 이야기 하면 좀 그래서.”
그렇게 박문수 아저씨는 취한 아재들 몰고 사라졌다.
역시나 우려대로 정태수는 반쯤 멘탈이 나가 있더라. 나 이외에, 아마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음식에 대해 평가를 받은 영향이었다.
“혀어어엉.”
“왜?”
“진짜 제가 조리 잘못한 거예요?”
“엉? 아주 아주 아주 잘했는데.”
“근데 왜 그분들이…….”
순간 짜증이 확 나더라.
그래, 먹는 손님 입장에서 불평할 수 있다. 가격을 지불하니 당연한 권리지.
이번 케이스는 그게 아니었다.
무료로, 그냥 지인들을 모시고, 맛을 좀 봐달라고 한 거다.
“흐음, 태수야. 그냥 무작정 극복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근데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많아.”
“저도 알기는 하는데요.”
“아니, 좀 다를 거야. 지금까지야…….”
냉정히 따지면, 이 녀석이 겪는 육체 노동은 매운맛이었다.
하지만 손님 접대 관련해선, 순한 맛 정도가 아니라 노 스프 맛에 가까웠다. 거의 단골 위주의 장사였기에 어떤 병신이 지랄하면 주변 손님들이 나서서 같이 편들어 줬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거다.
문제는 이번 케이스.
처음으로 음식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자리였다. 여기게 악의적인 인간들이 들어와서 개밥, 케밥, 죽밥 소리를 놓으니 맛이 간 거다.
“일로 와.”
“예?”
가만히 태수를 꽉 끌어안아 줬다.
그런 다음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네가 봤을 때, 우리 음식이 맛이 없었니?”
“아니요.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우리고 조린 육수만 해도 혀에 짭짭거리면 막 입에서 침이 나오고 그랬거든요. 거기에 형이 만든 고기는…….”
살짝 민망해지려 했다.
“크흠, 그러니까 결국은 좋았다?”
“형, 진짜 좋았어요.”
“근데 왜 자신감이 없어?”
“그, 그게…….”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정태수의 눈을 쳐다봤다.
“세상은 말이다.”
녀석이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손으로 턱을 붙잡아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암시하듯 노려보며 말했다.
“맛이 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