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큰 허점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작업 방식을 손봤다고 생각했는데, 강만식이 두 손까지 번쩍 들자 살짝 섬뜩하더라.
“이야기해 봐요.”
“예. 먼저 음식이 나오는 게요. 면을 담고 국물 붓고, 양념장이 올라가잖아요. 그런 다음에 여기서 취향대로 다진 마늘이나 청양고추 올리고 말아먹는 식이잖아요.”
“예. 그래서요?”
“그냥 한 방에 다 해서 나오면 안 되는 건가요?”
순간 짜증 나서 고추통 뚜껑을 열었다.
알싸한 매운 향이 퍼졌고 그걸 코앞으로 가져갔더니 기겁을 하더라.
“한 방에. 다 먹으면. 되겠네요.”
“아! 바로 이해했습니다. 그게 안 맞는 거네요.”
“여기는 40년이 넘는 칼국숫집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손님들이 온다는 거죠. 할머니 때야 대부분 손님들을 기억해서 맞춰줬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역사가 긴 만큼 다양한 취향이 존재했다.
그걸 강제하는 건 아무래도 맞지 않다 싶었다. 아직 태수에게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춰서 먹는 게 이 가게만의 스타일입니다. 한 번에 다져서 양념장으로 해버리면 조리하는 사람은 편하겠죠. 하지만 음식의 개성을 잃어버립니다.”
그때 강만식이 변명하듯 말했다.
“저희 쪽에는 변함없는 맛을 위해서 양념장을 미리 계량해 놓거든요. 그게 좀 이상해서 물어본 겁니다.”
“그 방식도 맞을 수 있죠. 다만 어디서 음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여기는 호텔이 아니니까요.”
호텔 조리장이 연구한 레시피대로 만드는 것도 엄연한 배움의 길이었다.
완성된 맛을 느끼며 그걸 참고로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호텔 레스토랑은 편하게 자주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분위기 자체가 뭐가 격식을 갖춰야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당연히 자연적으로 출입이 뜸할 수밖에 없는 거지.
“여기 칼국숫집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일종의 편안한 분위기라 보면 되겠군요. 조금 실수해도 되니까, 자. 이제 뒷정리하시면 될 겁니다.”
딱 보니까 강만식은 뭔가 불만이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배웠던 것과 다른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겠지.
반대로 김부성과 이보영은 열의가 괜찮아 보였다.
정아름은 아직 미지수.
메모는 열심히 하는데 뭔가 엉성해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뭐, 일 시켜보면 알겠지?
“태수야, 학생들 설거지 끝나고 뒷정리만 도와줘라. 난 테이블 정리하고 작업 들어갈 거니까.”
오늘 작업은 족발 소스 만들기였다.
물론 그 전에는 점심 장사를 준비해야겠지?
짝짝짝!
잠시 틈을 두고 가볍게 박수를 쳤다.
“자! 점심 영업 들어갑니다.”
* * *
넷 다 생각보다 잘해주더라.
이성남 삼촌이랑 혜진 이모가 잠시 빠진 자리를 능숙하게 메운 것이다.
특히 놀라운 건 강만식이었다.
불퉁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뚝딱해치우는데 손놀림이 숙련자 같았다.
근데 조금 이상한 게 육수 맛을 너무 자주 봤다. 이미 들어간 재료에 대해서 다 일러줬음에도 말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상품(上品)을 쓴다는 거 정도?
또, 멸치와 디포리가 상당히 많이 들어갔다.
대충 지나가면서 본 것만 해도 크게 한 국자 이상은 맛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뒤 틈틈이 메모를 했고, 가끔 김부성이 썬 재료를 체크하기도 했으며 정아름을 거들었다.
단지 이보영과는 조금 거리를 두더라.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나가는 투로 자신들은 장래를 고민하는데, 이보영은 물려받을 가게가 있었다.
나름 퓨전 족발로 유명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한식집이라더라.
역시 질투인가?
으음, 실력은 좋지만 강만식은 아무래도 사람들 사이에 잘 녹아들지 못하는 성격 같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김부성을 가르치는 게 나을 것 같더라. 벌써 태수랑 형 동생 하며 살살 장난까지 쳤고 이보영, 정아름과도 격의 없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일단 열의는 있으니까 두고 본다 치고.
“자, 점심 장사 마무리합니다. 잠깐 쉬고 두 팀으로 나눌 거예요.”
“예?”
“강만식과 이보영은 저와 같은 손만두 파트입니다. 나머지 두 분은 태수 셰프를 따라 소스 만드는 일을 할 겁니다.”
강만식은 당황했다는 얼굴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보영도 약간은 미묘한 표정이었다.
“이유가 있어요. 일단 두 사람의 손은 실력만큼이나 계량이 나름 정확합니다. 그리고 소스 만드는 일은 노동에 가까워요.”
먼저 태수 자리에 들어갔다.
만두피를 내가 빚고 강만식과 이보영이 가르쳐 준 양만큼 속을 채운 뒤 마는 것이다.
그사이 정태수와 김부성은 뒤편 창고에서 커다란 생족 여섯 개를 들고 왔다.
씻고 핏물 빼고 면도기로 족발 털을 다 깎고, 마지막으로 토치로 지져주기까지, 거의 힘쓰는 일에 가까웠다.
그걸 본 강만식과 이보영은 안도의 표정을 짓더라.
“족발 소스 레시피는 알려주긴 할 거예요. 근데 농도는 감으로 잡아야 하니까 그건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대충 셋이서 바삐 움직였더니 두 시간도 안 되어서 손만두 200개가 빚어졌다.
확실히 능숙하고 손이 빠른 둘이었다.
서로 성격만 맞으면 괜찮을 텐데 거의 몇 마디 하지 않더라.
괜히 끼어들까 하다가 참았다.
어차피 며칠만 볼 사이이기도 했고, 강만식의 표정도 무척이나 진지해 보였으니까.
“오~ 냄새 좋은데?”
어느새 다 익은 족발이 나왔다.
“이거 살코기는 다져서 내일 넣을 거고요. 비계 부분은 저녁까지 끓이려고요.”
“역시나 완전히 녹이는 거네요?”
“예. 그래야 깊은 맛이 나니까요.”
정태수의 말에 김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정아름도 따로 메모를 하더라.
그걸 지켜보다 강만식과 이보영도 불렀다. 당연히 레시피를 적고 소스 맛을 보라는 의미였다.
“이거 생각보다 색이 무척 진하네요. 간장 맛이 나는 돈코츠 소유 라멘 같은 걸 예상했는데…… 간은 생각보다 삼삼합니다.”
강만식은 그렇게 나름대로 분석을 하다가 살코기만 따로 분류하는 정태수를 쳐다봤다.
“그거는 내일 넣을 건가요?”
“예. 덮밥 바닥에 깔리는 건더기용이죠. 내일은 감자와 당근, 양파를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일 거고 하루 식힌 뒤, 가져가서 데울 겁니다.”
“이거 거의 카레 느낌이군요. 아니, 일본식 간장 카레 스타일인가? 아니면 카레 찜닭 느낌?”
강만식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음식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다.
그때 김부성이 말했다.
“그걸 뭘 고민해? 맛만 있으면 되지.”
“너는 고민을 좀 해라. 음식에 대한 정체성을 잡아야 접근하는 방식이 쉽게 나온다고. 같은 요리라도 인도 카레와 일본 카레가 다른 것처럼.”
“둘 다 맛있으면 상관없는 거 아냐?”
“요리 연구는 음식을 분해하고 해부해서 그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그게 조리사의 본분이란 말이야.”
강만식의 말투가 거칠지는 느낌이라, 재빨리 말렸다.
“그 말도 맞기는 한데, 우린 그렇게 심오하게 접근하진 않아요. 분식집 라면도 노하우가 있긴 하지만, 예산과 시간 때문이라도 호텔 조리처럼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여긴 칼국숫집이죠. 그렇다고 요리를 대충 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깜빡하는 것 같은데 자신이 서 있는 자리부터 확인하는 것도 조리사의 본분입니다.”
이건 변고웅 아저씨가 해준 말이었다.
일식을 하다가 본성 푸드가에 스카우트됐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더라. 너무나 빠른 시스템에 당황했고 음식 회전율이 어마어마했으니까.
결국 초반에는 적응을 못 해서 조금 겉돌았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가 직장이라고 깨닫는 순간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흐음, 확실히 식당가를 만들고 겪으면서 참 많은 걸 배우기는 했네.
“서 있는 자리요?”
“능숙한 조리사라면 분식집에선 분식집답게, 호텔에선 호텔답게 움직여야 된다는 거죠. 경직된 사고는 결코 길게 봤을 때는 이득이 아니라는 겁니다.”
솔직히 강만식은 너무 호텔이라는 생각에 매몰된 것 같았다.
그 부분만 좀 유연해진다면 괜찮을 텐데.
오송해 선생님도 그런 점을 보고 이 친구를 보낸 건가 싶기도 했고.
“중요한 건, 여기는 전쟁터가 아니라는 거죠. 괜히 흥분해서 날 세울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아마 손님들이 있었으면 전 당장 내보냈을 거예요.”
“예?”
“언성을 높이지 말 것. 그게 이 가게만의 최대한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대화하는 방법이죠.”
“아! 죄송합니다.”
“반대로 김부성은 요리에 성의를 가지세요.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조금은 고민해 볼 부분입니다. 그리고 절대 주방 안에서는 장난치지 말 것.”
순간 뜨끔했는지 김부성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주방 안에는 칼과 불이 있어요. 밖에서라면 어느 정도는 넘어갈 수 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면 어떤 사장도 고용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가벼운 협박이었다.
고용(?)당하고 싶으면 알아서 잘하라는 거다.
어라, 눈치를 챈 건가?
갑자기 김부성의 눈빛이 달라졌다.
“장난 안 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단 하는 걸 보죠.”
그 정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강만식이 표정이 너무 안 좋았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여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태수야. 우리 믹스나 한잔할까?”
* * *
“표정이 달라졌네.”
슬쩍 보는데 강만식의 눈에 생기가 돌더라.
확실히 전날 깨달은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보영과는 어색했다. 둘이 사귀다 헤어지기라도 한 건가 싶더라.
근데, 그 설마가…….
“쟤들 둘이 왜 저래? 진짜 사귀다 헤어진 것처럼.”
“맞는데요? 만식이가 군대 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죠. 둘이 사귀면서 싸우기도 많이 했고.”
맞았다. 어우, 소름 끼쳐!
“이유가 그거야?”
“보영이 어머니가 만식이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집안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다가, 실력이 있어 반쯤은 데릴사위로 생각했는데 쟤는 자기 아버지 모셔야 된다고 한 것도 있고요.”
한참 어린 걸로 알고 있는데 벌써?
“보영이 외동딸로 알고 있거든요. 결국 가게 물려받을 건데 가능하면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좋죠. 아! 제가 이런 이야기 한 건 비밀입니다. 근데 어차피 우리 학과에선 다 아는 거라…….”
음, 딱히 비밀도 아니라는 거네.
그렇지만 괜히 뒷담화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긴 하다.
나중에 우리 분식집 견학이나 시켜줘야지.
“자! 점심 장사 전에 내일 쓸 고기부터 준비해보자.”
여러 번 테스트해 본 결과, 대충 맛은 잡을 수 있겠더라.
앞다리살만 무려 100㎏.
이걸 5㎏ 단위로 소분하니 20덩어리가 나왔다.
흔하게 말하는 기본 간, 소금, 후추에 올리브 오일과 꿀을 적당히 섞었다. 마지막으로 허브 솔트에 지퍼백에 넣고 진공 포장을 한 다음 내일 아침을 예상하며 타이머를 맞췄다.
이러면 기본 작업은 끝이다.
커다란 육수통 바닥에 철망을 깔고 고기를 넣고, 또 망을 깔고 그렇게 40㎏가 들어갔다. 그러다 너무 많다 싶어 다시 빼서 딱 세 통에 양을 맞췄다.
“근데 태수야. 이래도 되겠냐? 주방 반 넘게 쓰는데 칼국수 할 때 힘들지 않아?”
“어차피 면이야 저기서 나가고, 손만두도 따로 찜기 쓰는데요.”
“그럼 육수는?”
정태수가 가볍게 웃더라.
“어제 소분해서 얼려놨어요. 작은 냄비에 바로 데우면 되고요. 다 떨어지면 장사 마치려고요.”
녀석도 확실히 해볼 모양이었다. 그래도 밤늦게 혼자 남아서 작업했다니 조금 짠하기도 하네.
“자, 그럼 점심 장사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