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후우~ 끝났다.”
“저도 이게 마지막입니다.”
정태수가 라스트 오더로 들어온 칼국수 두 개를 내왔다.
진짜 육수 100인분 넘던 게 다 떨어진 거다.
그걸 정아름이 테이블로 가져가고, 그사이 이보영은 남은 자리를 정리했다.
“강만식은 쉬고, 김부성은 설거지.”
“옙.”
“알겠습니다.”
정태수 옆에서 강만식이 재료 손질을 거들었다. 뜨거운 불 옆에서 이기도 했지만 나름 체력 소모가 컸던 거다.
김부성은 한동안 뒷정리만 했으니, 마무리 설거지를 맡기는 게 맞겠지.
확실히 장사가 궤도에 오른 게 느껴졌다.
비록 점심 장사에만 거의 만두를 포함해 거의 백이십 인분 가까이가 나갔으니까.
동시에 정태수는 그 지랄 같은 할배들의 깽판에 입은 상처를 거의 극복한 모양이었다.
‘맛이 갑이다.’
그걸 증명하듯 손님들은 꾸준히 들어왔고, 다들 잘 먹었다며 돌아갔으니까.
나중에 박문수 아저씨를 통해 들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소문이 다 났다더라.
그런 식으로 깽판을 친 뒤, 다음에 또 가면 밥값, 술값을 아낄 수 있다고. 그래서 몇 명이서 짜고 괜한 트집을 잡으며 돌아다녔다고.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어쩌면 콩밥을 좋아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정태수가 불을 끈 뒤, 강만식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그 직후 땀을 닦고 한숨을 내쉬는데 아직 어젯밤 피로가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안에 들어가서 잠시 쉴래?”
“괜찮아요. 형도 많이 바빴잖아요.”
칼잡이 헌터한테 칼국수 써는 게 무슨 대수라고.
가볍게 웃으며 김부성을 쳐다봤다. 이보영과 정아름이 거들어주니 뒷정리는 금방 마무리되더라.
이거 너무 부려먹는 것 같은데?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형, 분식집요?”
“겸사겸사.”
오늘 장사는 분명 마무리됐을 거다.
이제 정호석은 자신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소신껏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테리어도 했고, 메뉴 조정까지 끝나서 다시 가오픈을 했다.
당분간 올리기 전 가격으로 손님을 받자고 해서 허락했는데, 칼국수 썰면서 봐도 줄이 제법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능숙하게 처리하더라.
행복 분식의 문을 여는데, 임혜리가 폴짝거리며 다가왔다.
확실히 각성자인만큼 체력은 무시 못 하겠네.
이호영이 다 죽어가는 모습에 비하면 다들 쌩쌩해 보였다.
“어때. 괜찮아?”
“후훗. 사장님. 오늘도 점심은 거의 매진이에요.”
“흐으음. 그럼 조금씩 수량을 늘려도 되겠네?”
“그건 여유 두고요.”
임혜리의 시선이 슬쩍 주방으로 향했다.
노예 1호 오승호. 노예 2호 오승우.
오승호는 조리대 주변을 열심히 닦았고, 오승우는 설거지에 집중했다.
“아직은 좀…… 후후후.”
아무래도 저 두 사람이 아직 적응 못 하는 것 같다는 눈치더라.
하긴. 행복 분식은 진짜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이니 시간이 필요하겠지.
“뭐, 급할 건 없으니까.”
“근데 진짜 이번 주 놀러 가는 거 맞아요?”
“어. 이미 펜션 예약은 해놨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커다란 숙소를 구했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면 도저히 시간이 날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것도 내년 봄까지 말이다.
특히 보름 정도 뒤에 겨울 방학이 되면 학생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다. 크리스마스에 연말, 새해, 설날 또 졸업, 입학 시즌까지 거의 콤보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마 그때나 되어야 주위를 한 번 돌아볼 수 있겠지.
“호석아. 매출은 얼마나 나왔는데?”
“점심 영업은 백이 조금 넘습니다.”
“나름 괜찮네.”
행복 분식도 거의 안정되고 있었다.
2호점 수익도 조금 줄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5~10% 정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수준이랄까.
아무래도 단풍 시즌 끝물이니 그렇겠지.
하지만 주말에 몰린 손님들이 메워줘서 한 달로 치면 크게 차이는 없더라.
“아!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에이, 그게 무슨 부탁입니까. 그냥 하는 건데. 하하.”
“근데, 재료는 여유 있지?”
“옙.”
정호석이 씩씩하게 말했는데, 내 뒷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라.
“그거 쟤 둘한테 시켜봐.”
“예? 그게 아직…….”
“네가 옆에서 가르쳐 주면서 하면 되잖아.”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짓기는 했는데 곧 고개를 끄덕이더라.
“음식을 잘하는 데는 자신감도 필요한 법이니까.”
* * *
“배달 왔습니다.”
오승호와 오승우가 칼국숫집으로 들어섰다.
당연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매운 라면과 김밥을 챙겨서.
곧 테이블에 라면 여섯 그릇과 김밥 다섯 줄이 놓였다. 2ℓ 패트 병에 담긴 매실꿀차까지 말이다.
그런 뒤, 나름 밝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어때, 해보니까?”
오승호는 주먹을 쥔 채 의수를 살짝 내밀었다.
“의외로 실제 영업이 힘들기는 했지만, 만들어보는데 뭔가 좀 뿌듯했습니다.”
“전 재밌더라고요.”
“그래. 고생했다. 돌아가서 식사해.”
쌍둥이가 나가자, 난 실습생 넷을 돌아봤다.
“오늘 우리 점심은 이거야. 고생했으니까 다들 맛있게 먹어.”
김부성과 정아름, 이보영은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강만식만이 크게 놀라더라.
“이, 이걸 어디서.”
“맞은편 내 가게.”
“저기가 형님네 분식집이었어요?”
진심으로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게 더 황당해서 조용히 물었다.
“진짜 몰랐니?”
“예. 전 다들 사장님, 사장님 하길래 여기 사장님인 줄 알았습니다.”
“오송해 선생님이 이야기 안 하셨어?”
“그냥 여기 가서 배우고만 오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옆에서 김부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멍청아. 요리만 보지 말고 주변을 좀 보라고.”
“아니, 그럼 너희들은 다 알고 있었단 말이야?”
“원래도 알았고, 눈치도 있었거든. 근데 너는 계속 음식만 파니까 몰랐던 거지.”
동시에 이보영과 정아름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 보면 강만식은 진짜 요리 바본가 싶었다. 몇 번이나 정태수가 눈치를 줬는데, 그걸 몰랐다니.
동시에 김부성에게 지적을 받았다는 것에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됐고. 퍼지기 전에 먹자.”
강만식은 진짜 복잡미묘한 얼굴로 몇 번이나 날 쳐다보더라.
그러다 결국 젓가락을 들었다.
후루루룹!
크허-
“이거 매콤하네요.”
“전에 먹어본 것보다 맵긴 한데 김밥이랑 먹으면 딱인걸요.”
이보영과 정아름의 말이 이어지고, 김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예전에는 2단계. 지금은 아마 3단계죠?”
“오오, 잘 아네?”
“제가 사실 몰래 구석에서 먹기는 했는데, 이것만 열 번은 넘게 먹었을 겁니다.”
“엥? 근데 왜 난 몰랐지?”
“그때 사장님. 2호점 때문에 올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거의 모든 메뉴를 다 섭렵했죠. 후후후.”
“아!”
이 자식. 진짜 나한테 고용당하고 싶다는 게 농담이 아니었구나.
“저희도 초창기에 둘이서 여러 번 왔어요. 그러다 한 번씩 밀리면 칼국수집에 들렀죠.”
정아름의 말에 이보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여기 칼국수도 좋아한다고 했구나.
그렇게 이어진 대화에 강만식만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배, 배신자들.”
“네가 멍청한 거다. 닥치고 먹어.”
그러면서 김부성이 한 번에 김밥 두 개를 집어 가자 다들 살짝 눈치를 줬다. 하지만 아랑곳 않고 국물에 적셔서 숟가락으로 후룹 하고 떠먹더라.
슬쩍 보니까, 배가 많이 고팠는지 라면이 3분의 1도 안 남아 있었다.
“모자라면 밥 가져다 말아 먹어.”
“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김부성은 라면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 반 공기 정도 퍼 왔다.
그다음 양념장을 조금 넣고 매운 고추와 다진 마늘을 추가하더니 살살 비비기 시작했다.
“딱 이 정도가 제 입에 맞더라고요. 국물은 적어 자작하지만, 고추 넣고 비비면 매콤하거든요.”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
동시에 약간 섬뜩하기도 했다. 저게, 다음에 내놓을 메뉴에 가까웠으니까.
“크흐- 이 맛이지.”
김부성이 탄성을 터트리자 강만식도 밥을 담아 왔다.
그런 뒤, 따라서 추가 양념을 더하고 비볐는데 표정을 보니 알겠다.
비주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겠지.
아무래도 비빔밥도 아주 정갈하게 내올 스타일이었으니까.
진짜 호텔병에 걸렸나?
“오! 이거 맛…… 흐음, 괜찮네.”
“진짜 맛있다니까. 하긴 언제 이런 걸 먹어봤어야 알지. 그놈의 미각이 어쩌고, 인스턴트는 혀가 어쩌고. 쯔,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김부성의 타박에 강만식의 시선이 슬쩍 돌아갔다.
거기에는 거의 코를 박듯이 라면을 흡입하고 있는 이보영이 있었다.
어제 슬쩍 물어봤는데, 가리는 음식은 없다더라.
자기네 한식집에 인기 반찬도 후추 떡볶이라고.
특히 가족끼리 많이 오기에 두 접시는 기본으로 나간단다.
어떨 때는 순대를 떡볶이에 볶아서 내 가기도 한다고.
확실히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보영아. 라면 맛있어?”
“예. 가격 대비 퀄리티로 이만한 음식이 없어요. 이번에 조금 올릴 거죠?”
“글쎄. 아직 고민 중이긴 하다.”
들어오는 식자재 가격이 갑자기 올랐다.
금치수 말로는 물가 상승폭이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나름 저렴하다는 식당 정식 가격이 7,000원, 여기에 제육이 추가되면 9,000원, 10,000원씩 받았다.
라면이 아무리 원가가 적게 들어간다지만, 육수 쓰는 이상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더라.
“올려도 괜찮을걸요? 이 옆에 라멘집은 이제 기본이 만 원이나 하는데요. 차슈밥 세트에 토핑 추가하면 만오천 원이나 된다고요.”
“그렇게 많이 올랐나?”
“저희도 원래 공깃밥은 안 받았는데, 이번에는 추가만 천 원씩 더 받기로 했어요. 쌀값도 무시 못 하고요.”
이보영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진짜 고민되더라.
사실 정호석이 가오픈 동안 이전 가격으로 받겠다고 한 게 그래서였다.
정말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니까.
특히 물가는 오르면 올랐지 내리는 경우는 없었다.
그걸 감안하면 지금이 적당한 시점이기는 한데, 분식집 음식이 그렇게 비싸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더라.
라면 6,000원, 매운 라면 6,500원, 김밥 2,500원.
장어묵덮밥이 8,000원이면 이건 거의 식당 수준인데 말이다.
“형! 이제 다 먹었는데, 치울게요. 테이블 정리도 해야 하니까요.”
“아! 그렇지.”
가오픈 기간 끝나기 전까지만 정하면 된다.
어차피 대부분 스마트 패드로 주문할 거니 변경은 어렵지도 않을 터.
까짓거 곽준열 삼촌한테 식사 한 그릇 사 주고 프린트 한 장만 더 해달라고 하면 된다.
후루루룹-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매실꿀차를 한 잔 크게 들이켰다.
어우~ 살얼음 때문인지 겁나게 시원하네. 뭔가 가슴을 쑤욱 쓸고 내려가는 느낌까지 들더라.
“자, 다 먹었으면 우리 정리하자.”
* * *
“살살 들어.”
“조심조심.”
테이블과 의자를 한쪽으로 밀었다.
그다음 바닥을 한 번 쓸고 닦고, 커다란 비닐을 펼쳤다.
일명 촌스러운 파란색, 바로 그 비닐 말이다.
“주방 정리도 끝났고, 다른 큰 문제는 없겠네.”
폴드 포크용 고기도 서서히 표면 색이 바뀌더라.
이걸 내일 아침 일찍 작업만 하면 끝이었다.
드드드륵.
그때 문이 열리고 아주머니 네 분이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총각, 우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