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으음.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러운 거지?”
김요성 대표의 말에 황무기 실장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적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황 실장. 나 의외로 계산은 깔끔한 사람이야.”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이란 게 딱 돈으로만 정리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
김요성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창밖의 나무에 시선이 잠시 멈췄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모습.
거기서 묘한 기시감 같은 게 느껴졌다.
“확실히 오래되긴 오랜된 모양이야.”
대충 계산해도 30년은 훌쩍 넘었다.
SF푸드의 초창기를 시작으로. 나와서 자신만의 가게를 했으니 요식업에서 나름 오래됐다 할 수 있겠지.
그러면서 온갖 다사다난했던 세월을 겼었다.
가장 큰 위기는 역시나 게이트가 터지면서 발생된 문제였다.
사람들이 식당을 찾지 않는다.
솔직히 집이라도 안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극도로 외출을 꺼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김요성이 선택한 건, 사람들이 직접 오게 만들 수 있는 가게였다.
본성 푸드가.
쉽게 말하면 김밥 천국이라 칭하는 식당들의 상위 버전이었다.
가격은 같은 메뉴라도 500원에서 1,000원 정도 더 받는다.
하지만 맛과 데코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손님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가게가 되었다.
나쁘게 표현하면 고급 식당의 하향평준화라 볼 수 있겠지. 반대로 좋게 말하면 일반 분식집의 퀄리티를 한층 높였다고도 봐도 된다.
메뉴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으며, 유능한 셰프들을 모집했다. 철저한 교육을 통해 접객 수준을 높였으며 손님들의 만족도를 상당히 끌어올렸다.
그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
가서 먹나 집에서 먹나의 차이를 극복해 저렴한 분식임에도 찾아오게 만든 거다.
그 외에도 여러 사업에 진출해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김요성의 가게는 어디를 가든 아쉽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이런 기준을 철저하게 지켜서 어딜 가든 실패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아, 모르겠군.”
그럼에도 드는 허망함 같은 게 있었다.
아니, 알고 있고 억지로 덮어뒀지만 끝내 비집고 나오더라.
유현성. 행복 분식.
정말 이건 규격 외였다.
이 미친놈은 사업, 혹은 수익이 아니라 다른 걸 보고 있었다.
그게 묘하게 거슬렸는데……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
난, 사업.
녀석은 즐거움.
거기서 오는 차이가 묘하게 신경을 거슬렸고, 자꾸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확실히 지향점이 다르다는 게 판단에 미스를 가져오더라고.”
“예? 그게 무슨…….”
“아니네. 그냥 혼잣말이야.”
“근데 요즘 부쩍 느신 것 같습니다.”
“하, 자네도 그렇게 느꼈는가?”
“이전의 일은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뭔가 조금은 힘이 빠진 듯한 느낌입니다.”
김요성은 고개를 들어 황무기의 눈을 쳐다봤다.
확실히 호위로서, 보좌로서는 과하게 넘치는 사람이었다.
순간의 욕심으로 데려왔지만 든든함으로 채워주는, 때문에 조금 과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대들보 같은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허튼소리는 안 한다는 거다.
김요성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앙상한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
“이제 곧…… 겨울이군.”
“어차피 부산은 금방 지나가지 않습니까?”
“그건 맞네. 하지만 겨울을 겪어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지 않는가?”
“정 힘 드신다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서 잠시 쉬시면 되지 않습니까?”
황무기의 말은, 제주도를 뜻했다.
거기에도 지사가 비슷한 게 있었으며 여름, 겨울 성수기 전에는 반드시 들렸었다.
그렇게 황무기가 웃으며 말하는데, 김요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올 한해는 유달리 격정적이어서 일 거다.
동시에 일도 많았고, 벌이는 것도 있었으니 직접 나서야 하는 게 맞았다.
잠시 생각해 보면 최근 몇 년, 아니 몇십 년 사이에 이렇게 일이 많았던 적이 드물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자.
봄부터 시작된 전포제.
그 직전부터 마주친 한 건방진 청년이 떠올랐다.
다행히 뒤끝이 없는지 혹은 아직 세상에 젖어 들지 못했는지, 자신의 제안을 애매(?)하게 받아들였다.
이후 동업까지 하게 됐고, 어어 하는 사이에 커다란 사업을 던져주고 갔다.
덕분에 올 한해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지.
“확실히 열정이 많이 사그라지기는 했지. 그러고 보면, 나도 늙은 셈인가?”
자조적인 중얼거림.
하지만 황무기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원래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걸 알기에.
심지어 그의 별명은 김요괴가 아닌가.
때문에 말을 망설이다 끝에서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황무기의 귀에 들린 마지막 말은 이거였다.
“슬슬 후계자를 찾아야 할지도.”
* * *
“아오,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럽지?”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김부성이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왈칵 짜증이 나서 결국 툭 내뱉었다.
“내 죄를 아는 애들은 이미 다 죽었거든.”
“그 무슨 살벌한…… 흡.”
역시 녀석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순간 흐트러진 마력에서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됐고. 슬슬 마무리하자.”
“옙.”
주방은 진짜 난장판이었다.
설거지 꺼리는 둘째 치고 정아름이 만든 비둘기 식사에다, 기타 등등이 아주 그냥 적나라하게 떠 있었다.
후우, 김장을 하면 그게 날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머니들이 열을 올리는 바람에 결국 수육까지 삶고 말았다.
바로 담근 김치가 생각보다 맛있어서였다.
금치수가 자랑을 했던 것도 있고, 양념 자체가 숙성되어 있어서 당기는 맛이 강하기도 했다. 거기에 배추가 아주 그냥 실하게 들어와서 부족할 것 같은 걱정까지 덜었다.
결국 겉절이에 수육, 더불어 막걸리까지.
아주 환장판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 그것 때문에 살짝 긴장감을 놓기도 했고.
아니, 속이 상하고 미안하기도 해서였다.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떠는데, 거기에 그 이야기도 끼어 있었으니까.
“근데 재호 엄마는 왜 갑자기 그만둔 거래?”
“아이고, 치매라잖아. 치매.”
“진짜? 병원에서 그랬대? 왜? 멀쩡하게 장사 잘하던 애가 왜 그런 거야? 막 저 위에 가게 차린다고 좋아했잖아.”
“그게 문제였던 거래. 원래 이 옆에서 하던 것처럼 손님들하고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느긋하게 했어야 했는데…….”
“좀 답답하게 하지 말고. 빨리 좀 말해봐.”
“그게 참…… 돈이 벌리긴 하는데, 사람들한테 계속 치였다나 봐.”
“무슨 소리야?”
귀가 솔깃한 것 이때부터였다.
보조로 거들면서 이런저런 심부름을 했는데 여기서부터 꼼짝도 하기 힘들더라.
“원래, 재호 엄마가 국수집 할 때는 손님들하고 농담도 하고, 애들 오면 막 이런 거 저런 거 챙기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냈잖아.”
“근데?”
“거기선 손님들하고 말할 시간도 없었데. 그냥 계속 오면 국수만 말고, 쉴 틈도 없이 일만 하니까 성격에 안 맞았던 거지.”
“하긴 재호 엄마는 좀 느긋하긴 했지.”
“맞아. 사람이 참 순하기도 했고.”
“저번에는 김치도 담가 줘서 나도 시골에서 보낸 포도 주고 그랬지.”
“우리도 막 노나 먹고,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씩 같이 바람도 쐬러 가고 그랬는데.”
순간 가슴이 훅 답답해 오더라.
아직 아주머니들은 모를 거다. 그 시스템을 만든 게 자신이라는 것을.
사실 묘하게 걸리는 게 있어서인지, 거의 매주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박동식 아저씨는 괜찮다, 좋다, 호전되고 있다는 식으로 내가 안심할 말만 하더라.
직접 가보고도 싶었는데, 괜히 날 보면 문제가 생길까 싶어서 연락만 하고 자제했다.
근데 뭔가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엊그제 통화했을 때는 아주 크게 웃기까지 했었으니까.
그 여사장님이, 직접 국수를 말아줬단다.
고작 그건데, 듣다가 울컥하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별거 아닌데, 그냥 사소한 건데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다르게 다가왔다.
이제는 어느 정도 극복한 거겠지.
“지금은, 지금은 괜찮대?”
“의사가 그러더라고. 초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아이고, 운이 좋았네.”
“좋기는, 애초에 병도 없던 애가 몇 달도 안 돼서 사람들한테 시달리다가 훅 갔는데.”
“에휴, 그래서, 요즘은 뭐 하고 지낸다는데? 시골 생활은 할 만하대?”
“아주 촌구석도 아닌데 무슨. 한 십 분만 나가면 병원하고 시장하고 마트도 다 있구먼.”
“그런 거 말고.”
“호강하며 산단다. 남편이 지극정성이랴.”
“호호호. 그 나이에 정성 받아서 뭐 할라고.”
“모르지. 여튼간 남편이 삼시 세 끼 다 차려 주고, 취미 생활하라고 그림 도구도 사다 주고. 오후에는 꼬박 산책도 다녀준대.”
“아이구야. 진짜 호강이네.”
“병원도 주에 한 번씩 다녀도 될 정도로 건강해졌다더라. 뭐,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기대 수명이 10년도 훨씬 넘는다네. 어쩌면 우리보다 오래 살 수도 있고.”
아주머니들끼리 농담하면서 웃는데, 뭔가 안도감 같은 게 들기도 했다.
확실히 영업에만 집중하는 시스템이니 손님들과의 교류는 쉽지 않겠지.
아무래도 식당가는 인원을 늘리든 다른 뭔가를 찾든 식으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말 잘 지내고 있다는 거였다.
그때,
“현성아, 우리 수육에 한잔하자.”
순이 엄마가 툭 던지자 아주머니들이 바로 박수를 쳤다.
여기서 금치수가 끼어들었으니.
“제가 막걸리 사 오겠습니다.”
“오, 애가 눈치가 있네.”
원래 눈치로 먹고 살던 녀석이라 잽싸게 움직였다.
아니, 내가 허락도 안 했는데?
“제가 수육은 좀 삶습니다.”
갑자기 강만식이 끼어들었고.
“양념장은 제가 만들게요.”
이보영이 유명 한정식 식당인 어머니의 비전까지 꺼내 들더니.
“제가 다른 건 몰라도 파전은 당장 장사해도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김부성이 바로 부침가루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처음 봤을 때부터 파전이니 피자니 떠들어 댔었지.
여기서 정아름까지 가세했다.
“자리 다 깔았는데요?”
엥 하는 순간, 한쪽으로 밀어 넣은 식탁들이 어느 순간 세 개가 붙어서 바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아주머니 넷에 우리까지. 어째 구겨 앉으면 충분히 나올 듯하게 놓인 것이다.
그렇게 등 떠밀 듯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보세요.
내일 우리 봉사 나가야 하거든요?
근데 희한한 게 말이다.
사람이 모이고 김장을 했으며 음식이 만들어지니까, 좀 풀어지는 게 있긴 했다.
“아이고, 현성아. 좀 일찍 봤으면 종종 찾았을 텐데.”
“그러게. 근데 참 코 찔찔 흘릴 때가 언젠데 이렇게 훌쩍 컸대?”
“은하가 가끔 이야기하긴 했는데, 너 옛날에 우리 딸 좋아했다고 하지 않았나?”
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그 누나 생각이 갑자기 들긴 했다.
첫사랑 이런 게 아니라…… 누나가 사탕을 잘 사 줬었다.
근데 결혼해서 애가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아닌가? 하여간 한참 차이가 나는 판에 무슨.
“이제 기억이 좀 나네. 라면 들고 오다가 엎어져서 울기도 했지.”
으어, 10년도 넘은 이야기인데.
“튀김 하다가 태워 먹는 바람에, 오징어를 깡으로 만들기도 했더라고.”
“딱딱했지만 라면 국물에 적시니 먹을 만하긴 하더라.”
“떡볶이에 소금 쏟은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판 다 버렸지 않나?”
“버리기 전에 달라고 했지. 아깝잖아. 근데 소태야, 소태.”
“그러고 보면 라면에 달고나도 넣은 적이 있었지?”
“에휴, 순대에 춘장 찍어 먹으라고 가져다준 적도 있었어. 무슨 단무지도 아니고.”
그렇게 아주머니들이 내 과거의 흑역사가 마구 토해냈다.
근데 떠오르긴 하더라.
나 어릴 때는 진짜 말썽꾸러기였구나.
어쨌든 옛날이야기가 불쑥불쑥 나오니까 민망했다. 근데 다들 웃고 떠드니까 묘하게 안도감이 들기도 했고.
흠, 이게 사람 사는 맛이라고나 할까.
내일 일은, 모르겠다.
어차피 모든 준비가 다 끝났으니 딱히 걱정할 건 없을 거다.
이때 막걸리에 살짝 취했는지 정태수가 한마디를 꺼냈다.
“우리 형, 애인 있어요. 근데 여왕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