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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52화 (152/156)

152화

“학생. 난 여기 좀 담아줘.”

첫 할머니부터 강적이었다.

3단 찬합이라니.

“영감하고 둘이서 먹을 거라, 이 정도는 되어야 해.”

“아, 두 분이요?”

“그려, 넉넉하게 담아줘. 아, 밥은 안 담아도 되고.”

살짝 고민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 뒤,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일단 칸이 나뉜 첫 번째 찬합에 밑반찬이 종류별로 들어갔다. 김치가 조금 넉넉하게, 나머지를 깍두기와 양파 절임으로 채웠다.

그다음 두 번째 큰 찬합이 나오자 정태수가 약간 당황해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손님들을 다 겪어본 경험 덕에 이내 씨익 하고 미소를 짓더라.

“넉넉히 드려.”

“예. 형님.”

정태수는 긴 쇠 국자를 솥 아래까지 넣어서 건더기를 잔뜩 떴다. 그걸 조심스레 부어 찬합 하나를 가득 채워 버렸다.

그러면서 아까 가르친 대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건 밥이랑 비벼 드시는 건데 너무 많이 섞으면 짤 수도 있습니다.”

“근데 이건 뭐여?”

“한국식 간장 소스입니다.”

“아니, 안에 든 게 건더기가 뭐가 많네. 이기 뭐냐고.”

“아, 카레처럼 다진 고기하고 감자, 당근 같은 야채들이거든요. 푹 익혔으니까 씹기 부드러울 겁니다.”

“허, 고마워.”

이제 마지막 내 차례.

사실 약간 긴장이 되긴 하더라.

실제로 줄 선 어르신들 시선 대부분이 한동안 내 쪽에 꽂혔으니까.

뜨거운 물에 10분 이상 담가서 데운 고기였다.

커다란 스텐 트레이에 올리고 칼로 쭈욱 그어 진공 포장 비닐을 가른 뒤, 고깃덩어리를 내려놓았다.

일부러 텅! 하고 소리가 나게.

동시에 훅 퍼지는 고급스러운 고기 향.

당연히 눈에 잘 띄게 트레이도 앞쪽으로 살짝 기울인 상황이니 다들 자동으로 쳐다보더라.

“엄마야. 고기가 진짜 실하네.”

“설마, 저걸 잘라서 주는 건 아니겠지?”

“우리 영감 치아가 부실해서 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저거 집에 가서 잘라먹어야 하는 건가?”

다 방법이 있으니까 할머님들 걱정하지 마시죠.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옆을 쳐다봤다.

“만식아, 시범 보여줄게.”

원래라면 폴드 포크, 이름 그대로 포크를 사용해 잘게 찢어먹는 요리다. 그걸 빵 사이에 야채 같은 것과 끼워서 버거처럼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시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뉴튜브에서 참고한 것 중에 요리 장갑을 끼고 약간 짓누르듯 해서 덩어리를 만들더라.

그걸 나중에 손으로 퍼트리듯이 찢었고.

그 방법도 괜찮았지만 여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 아니던가.

“두께 1㎝, 대충 이 정도에서 칼집을 내고 스으윽.”

크기 자체가 상당한지라 칼질 한 번에 손바닥만 한 고기가 옆으로 턱 하니 펼쳐졌다.

“칼 놓고, 집게 하고 포크 잡은 다음에 이렇게 이렇게.”

포크 쥔 오른손이 옆으로 움직일 때마다 고기가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졌다.

“이렇게 한 손 가득 잡으면 1인분이야. 이해했지?”

“예. 알겠습니다.”

내 옆에 강만식을 놓은 건, 이 이유 때문이었다.

나름 호쾌한 사나이라는 김부성이 배식을 했다면 한 번에 양이 아주 뭉텅이로 빠져나갔을 테니까.

게다가 일전에 손만두 빚을 때도 느끼지 않았던가.

이 녀석은 호텔 레스토랑을 꿈꾸고 있었는지 정확한 계량에 익숙했다.

특히 지금의 손놀림도 괜찮았다.

고기의 결대로 찢었다지만 표면의 그을린 부분과 속의 부드러운 부분은 맛과 향이 다르다.

그걸 요리 장갑을 낀 채로 능숙하게 펼친 채 섞고 있었다.

하긴, 저래야 제 맛이긴 하지.

어쨌든 그 직후, 첫 번째 할머니가 다가왔다.

“학생, 이건 뭐여? 고기가 참 희한하게 생겼네.”

“예. 서양식 장조림입니다. 정확히 그건 아니지만 대충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겁니다.”

“장이 없는 장조림?”

“조금 전에 받으신 그 소스가 장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아, 아아~ 알것어. 섞어 먹으라는 거지?”

“장조림 반찬처럼 따로 드셔도 되고 같이 드셔도 됩니다.”

기본 간은 다 되어 있고, 파우더로 향까지 입혔다.

어르신들 입맛에 조금 강할 수 있지만 식감이 부드러우니 밥하고 먹기에는 딱일 테지.

어쨌든 첫 번째니까 시범을 보여야겠지?

“찬합 주세요.”

“넉넉하게 줘.”

“예. 남으면 하루 이틀 정도는 냉장고에 넣고 드시면 될 거예요.”

그렇게 두 번 손으로 담고, 손가락으로 조금 더해서 찬합을 가득 채웠다.

그렇다고 아주 많이 담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엔 손기술+약간의 잔재주가 들어간다.

찬합 바닥은 보이지 않게 넣었지만 고기 결 사이에는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퍼트리고 두 번째는 살포시 담으니, 약간 올라와서 푸짐해 보이는 것이다.

“할머니, 맛있게 드세요.”

“떽, 할머니가 뭐야. 곱분이 이모라고 불러.”

“아, 예. 이모님 맛있게 드세요.”

3단 찬합이 그렇게 닫히고 보따리로 들어가려는데, 순이 엄마가 손짓을 하더라.

“아이고, 이모. 그리 들고 가면 소스 다 흘려요. 가져와요, 비닐로 한 번 묶어줄 테니까.”

“아, 맞어. 전에도 국물 흘린 적 있었지.”

순이 엄마는 찬합을 살짝 눌러 랩으로 한 번 싸더니 다시 비닐에 넣어 보따리에 담았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꼼꼼하게 꽉 묶더라.

솔직히 나도 저런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역시 경험자가 다르긴 하네.

“후우~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진이 빠지는 것 같은데.”

조용히 중얼거렸는데, 순이 엄마는 또 그걸 들은 모양이었다.

“호호, 걱정하지 마. 앞으로 두 시간 반만 더 하면 끝나니까.”

부드럽게 말하는데 이거 섬뜩하더라.

결국 휙 고개를 돌려 정태수를 노려봤다.

“너, 알고 있었지?”

“형도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능청스럽게 쳐다보는데, 내가 왜 저 녀석을 돕기로 한 건지 후회가 되더라.

사실 군대 배식처럼 쭉 나눠주고 끝내는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한 분 한 분 이런 식이라면 죽어날 것 같은데?

하아,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 * *

“아이고, 허리야. 이거 비가 올라나? 혹시 따뜻한 국물 같은 건 없나?”

“국물…… 이요?”

“국수집 아지매는 비빔국수 해줄 때도 국물 달라면 주던데?”

“저희 소스가 자작하고 따뜻합니다. 밥도 막 보온통에서 꺼냈고요.”

“거, 애들이라 잘 모르네. 늙으면 뜨신 국 없으면 밥이 목구멍으로 잘 안 넘어가. 에이, 빌어먹는 처지에 그냥 먹어야지.”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그릇을 뺏듯이 가져갔다.

“난 김치 맛없으면 안 먹어. 아니, 왜 그것밖에 안 줘? 좀 더 담아. 더어~ 담으라고. 어어~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김치 빌런 할아버지, 그거 드시라고 담은 건데 비닐에 싸시면 어떻게 합니까?

“소스가 적어, 밥도 적고. 좀 흥건하게, 어~ 넘치도록.”

분명 곱배기 두 그릇째인데 부족하다고?

슬쩍 보니 아예 비빔밥을 만들어서 비닐째 가방에 챙겨가더라.

그래, 이 정도는 뭐.

“거참, 깍두기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그리고 여기도 좀 담으라고.”

그러면서 아예 가져갈 반찬통을 내미시는 분도 있었고.

“어우, 셔. 이거 양파가 식초에 담갔다 뺀 거야? 그리고 왜 김 영감보다 내 고기가 더 적은데? 좀 더 내놔.”

할배요. 진짜!

리필로 고기만 더 받아 가는 건 그렇다 쳐도, 그거 막걸리 안주 아닙니다.

차라리 초반에 포장해 가시는 분들이 양반이었다. 그리고 왜 일찍 와서 받아 가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남은 음식 양으로 봤을 때 대충 막바지가 됐다 싶었는데…….

한쪽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노래 가락이 흐르며, 트로트에 몸까지 흔드시더라.

으어, 순이 엄마!

왜 거기서 춤추고 있어요?

아주머니들, 막걸리 나발 불면 안 된다고요.

하여간 대혼란 환장 파티라고나 할까.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할 일이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터졌다.

“형, 소스 거의 다 됐어요. 남은 거 별로 없는데요.”

“몇 인분 정도 될 것 같은데?”

“10% 조금 더 남았으니까 서른 분까지는 될 겁니다.”

“우리 충분히 넉넉하게 만들지 않았었나?”

“예. 다 끝나고 다른 봉사자들하고 먹을 것까지 해서 대충 350인분 정도 예상하고 만들었거든요.”

일단 밥은 충분하니 패스.

밑반찬도 넘치도록 가져온 김치 덕에 여유가 있었다.

“이거 폴드 포크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 역시 1인 300g을 잡고 100㎏였으니 300인분을 훌쩍 뛰어넘는 양이었다. 게다가 중간에 강만식과 교대해서 담을 때 슬쩍 줄이기도 했었고.

하지만 저 술안주 빌런들 때문에 생각보다 소진이 빨리 되었다.

아! 아직 예비비가 남은 게 있었지.

특히 저쪽에서 자꾸 노려보는 시선들 때문에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 국물 할배들이었다.

“그렇다고 즉석에서 할 수 있는 건 라면 정도밖에 없는데?”

여기서 그걸 해줬다간 욕 덕에 불로불사가 될 가능성도 컸다.

“태수는 일단 소스 뺀다고 생각하고.”

“국물보다 건더기가 더 많기는 한데요. 이걸 어떻게 하면 될 것도 같고요.”

“최대 몇?”

“어찌어찌 오십 명 정도까진 가능하지 않을까요?”

목이 막힌다면서 몇 번이나 찾아와서 소스 많이 달라는 아재들 때문에 만들어진 현상이란다.

하지만 우리하고 자원봉사 대학생, 아주머니들 몫도 남겨놔야 했다.

힘들게 움직였는데 다 끝나고 라면만 먹이고 돌려보내면 너무 미안하잖아. 더군다나 슬쩍슬쩍 지나가면서 눈짓을 보내는데, 꼭 먹어보고 싶다는 의지까지 느껴지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중간중간 돌아가면서 식사라도 하게 할 걸 그랬네.”

언제나 후회는 늦는 법이다.

나는 빠르게 폰을 꺼냈다.

“어, 호석아. 우리 육수 남은 거 있냐?”

-예. 예비로 빼놓은 거 있습니다.

“가게 많이 바쁘지?”

-일단 대기 손님들은 다 받았고요. 사람이 두 명이 더 들어 왔으니 조금 여유가 있긴 합니다.

“그럼 반 통만 쌍둥이 시켜서 보내줄래?”

-거기 교회 맞죠. 계단 올라가는데.

“어.”

-바로 챙겨서 보내겠습니다.

정호석과 통화를 끝내고 바로 김부성을 쳐다봤다. 재빠른 심부름에는 역시 이 녀석이 최고겠지.

“부성아. 잠시 심부름 좀 할 수 있겠지.”

“당연합니다. 사장님.”

“흐음…… 그 호칭, 마음에 든다. 일단 근처 놀이터 시장 가서 계란 두 판하고, 대파 한 단, 양파도 한 망. 당근도 열 개 정도 사 와라. 양배추도 있으면 좋고.”

“계란 두 판, 대파, 양파, 당근, 양배추. 입력했습니다.”

“부탁한다, 서둘러.”

“롸져.”

김부성이 순식간에 사라지자마자 머릿속으로 레시피를 정리했다.

사실 즉석에서 할 수 있는 국물 요리, 그것도 후다닥 만들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인스턴트 팩을 쓰면 금방이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적어도 오늘의 주방을 책임진 사람으로 요리다운 걸 내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다행인 건, 저 할배들의 소란(?) 덕에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는 거다.

“태수야. 만식아. 남은 거 일단 정리하자. 보관팩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을 건 넣고, 싹 치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태수와 강만식이 움직였다.

새로 요리할 준비가 거의 끝났을 무렵, 저 멀리서 김부성이 뛰어오더라.

황당한 건 그 바로 뒤에서 오승호, 오승우가 보였다는 것.

아! 깜빡했다.

저 두 녀석도 헌터였지. 어째 양쪽으로 말통을 들고서도 빠르더라니.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노예 1호, 2호, 그리고 자발적 노예 신청자 3호가 함께 도착했다.

“오, 다들 고생했다.”

재빨리 재료를 받아 늘어놓은 뒤, 소매를 걷었다.

먼저 손을 씻고 애들한테 재료 세척부터 부탁했다.

그때, 정태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더라.

“근데, 형님. 이걸로 뭐 하시려고요?”

가볍게 웃으며 대꾸해 줬다.

“으음, 가슴이 따뜻해지는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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