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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53화 (153/156)

153화

“예?”

정태수가 놀라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강만식, 김부성과 정아름, 이보영까지 대체 무슨 상황이냐는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일일이 가르칠 때가 아니었다.

결국 요약으로 가는 수밖에.

“음식이 떨어졌어. 아직 서른 분 정도가 남았고, 그 전에 더 달라고 할 것 같은 분위기거든.”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술판이 벌어진 저쪽이었다.

다들 그것만으로도 이해 한 모양이었다. 저 어르신들은 여기가 공짜 술집으로 아는지 수시로 이런저런 요구를 해왔고, 몇 번이나 난감해했었으니까.

“우리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조금 힘들더라고 마무리는 확실하게 해야지. 그 외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지금은 바로 움직이자.”

“옙.”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결의를 굳혔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부터는 정신없이 굴리는 게 맞았다.

틈이 생기면 긴장이 풀리게 될 거고, 불만이 터져 나올 테니까.

그건 군대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훈련은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효과가 있고 그래야 마지막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자, 개념만 이야기해준다. 한식으로 치면 계란탕, 중식이라면 면 없는 울면, 대충 그런 음식을 만들 거야.”

“아! 그거 라면…….”

“경험이 있다고 해도 단정 짓지 말 것.”

바로 강만식의 입을 막았고, 뒤이어 손을 들려던 이보영도 내 시선에 멈칫했다.

확실히 이보영이 한식당을 한다고 했었지.

아마 계란탕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일단 부성이는 계란을 다 깨서 큰 볼에 최대한 곱게 풀어. 만식이는 각 재료를 알아서 손질해. 대파는 다지고, 당근은 길쭉하게, 양파나 다른 건 네 판단대로 해라.”

“예, 알겠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움직인 건 김부성이었다.

반대로 강만식은 잠시 계산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때 정아름과 이보영이 물었다.

“저희는 뭐 하나요?”

“으음, 보영이는 만식이 보조. 아름이는 나랑 움직일 거다.”

이보영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둘이 헤어졌다니 뭐니 하지만, 사실 여기서 제일 손발이 잘 맞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때문에 알아서들 잘 할 것 같았다.

“생각하지 마. 움직여. 주방에서 할 일을 알면서 머뭇거리는 건, 조리사로 실격이야.”

“아, 죄송합니다.”

이보영이 고개를 숙인 뒤, 차 뒤쪽으로 향했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한 보조 주방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 봐야 돌돌이와 연결한 널찍한 판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도와 전기까지 끌어다 놨으니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었다.

“하아. 이걸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나.”

“뭐가요?”

정태수가 묻는데, 그저 웃음만 나오더라.

어제 아주머니들과 김장을 담그고 수육까지 삶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때 혹시나 하고 생각한 게 이거였다.

설마, 봉사 활동 끝나면 또 이렇게 되는 거 아닌가?

해서 우리끼리도 해서 먹을 수 있는 걸 준비하자고 태수에게 일러놨다.

우리와 아주머니들, 자원봉사 학생들…… 어쩌면 추가로 교회 사람들도 일부 참여할지도 몰랐으니까.

“우리 준비한 반죽이 몇 인분 정도 될까?”

“그거 하기 나름이긴 한데, 20인분 정도는 나올 거예요.”

“그거 일단 확인해 봐. 그리고…….”

몇 가지를 일러놓고 나니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뭔가가 이상했다.

중간부터 신호를 보냈고, 나눠주는 양을 조금씩 줄였다. 어르신들이 더 달라고 하는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나름 신경 써가며 남은 양을 체크 했던 것이다.

분명 넉넉하게 준비했음에도 많이 모자라더라.

문제는 음식이 완전히 동이 나버리면 그 뒤에는 대책이 없다는 것. 그러니 급조한 음식으로라도 어느 정도 정리한 다음, 남은 사람에 맞춰 대응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특히 뜨뜻한 국물 요리를 낸다면, 술판에서 더는 고기를 찾지 않겠지.

배도 제법 부를 테고 어느 정도 몸도 누그러들었을 테니까.

일단 정태수 역시 돌돌이 쪽으로 향했다.

그때 노예…… 크흠, 쌍둥이들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도와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괜찮은데요? 실장님이 여기서 할 거 있으면 도와주고 오라고 했거든요.”

오승우가 그렇게 말하는데 바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 주방이 복잡해서 사람 더 들어오긴 그렇고, 가서 쉬어.”

“괜찮습니까? 많이 바빠 보입니다만.”

오승호까지 뭔가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난 1호, 2호의 등을 가볍게 떠밀었다.

“마음은 고마운데,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게.”

“예, 알겠습니다.”

오승호는 결국 육수통만 남긴 채 동생을 데리고 교회를 벗어났다.

사실 의도를 다 말해줄 시간이 없었다.

실제로 주방이 좁은 것도 있었지만, 이미 이들은 며칠 내내 손발을 맞췄다.

물론 중심은 나였지만, 빠져도 괜찮아야 한다.

기껏 정태수에게 주방 인맥을 만들어줬는데 그 관계가 더 복잡해지는 건 솔직히 아니지 않는가.

때문에 점심때도 몸을 움직이는 일의 양을 늘리기보다 전체적인 흐름 관리에 집중했던 거다.

“아름이는 잠시 대기.”

“알았어요.”

약간 풀이 죽은 느낌이었지만 무시했다.

왜냐면 이 육수통을 들게 하는 건 무리라 생각해서였다.

기존에 정태수가 쓰던 커다란 소스통을 화구에 올리고 불을 켰다. 거기에 육수를 붓고 나서 확인해 보니, 아직도 약간은 온기가 있더라.

쌍둥이가 미친 듯이 달려왔다는 거겠지?

일단 플러스를 주자.

“아름이는 이거 맛 좀 봐줄래?”

“아, 이게 오빠네 라면 육수인가요?”

“응, 비법 베이스지.”

현재 행복 분식은 가오픈 기간이었다. 그러니 여유가 있었고, 정호석은 지금도 이런저런 시험(?)을 해보고 있었다.

말린 새우도 넣어보고, 북어채, 황태포 등등의 다양한 부재료를 약간씩 넣어가면서 변화를 주려 했다. 그리고 맛을 확인한 다음 그 내용을 메모해서 수시로 보내주더라.

물론 내가 시킨 일이기도 했다.

당연히 비용은 가게에서 내는 거고.

곧 정호석은 반 정도는 독립 형식으로 3호점을 운영해야 하니 나름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의도였다.

때문에 이 육수도 내가 만든 맛과 다를 가능성이 존재했다.

“아~ 맛있는데요? 전체적인 간은 많이 싱거운 편인데 뭐랄까 혀에 달라붙은 감칠맛이 있어요.”

정아름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 베이스로 끓인 라면에 스프가 들어간다. 우리 분식집 국물 양이 넉넉한 게 그래서인 거다.

“특별한 향은 안 느껴져?”

“표고버섯? 그리고 어묵 국물 같으면서도 끝에 오는 기름 맛은 없어요. 또 새우 혹은 갑각류 같은 걸 잠깐 담갔다가 뺀 느낌일…… 까요.”

“후, 그 정도면 됐어.”

완전히 끓기까지 기다리면서 두어 번 더 맛을 봤다. 약간 간이 강해지긴 했지만 큰 변화는 없더라.

부글부글부글…….

마침 육수가 다 끓었다.

다시 한번 정아름과 맛을 확인한 다음 주문을 던졌다.

“자, 아름이는 이제 뭘 하느냐.”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걸 보니 뭔가를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예. 뭘 하면 돼요?”

“어, 스프를 만들어.”

“예?”

“자, 메뉴는 계란탕. 들어가는 재료 대부분이 심심하니까 그럼 육수의 간은 조금 더 강해야겠지?”

“그, 그건 알겠는데요. 제가 어떻게…….”

“어차피 내가 대략적으로 알려주면서 뒤에서 봐줄 거야. 그러니 추가로 뭐가 들어갔으면 좋겠는지 고민하면서 해봐.”

“으아~ 너무 어려운데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너 점수 평가 시험이야!”

* * *

김부성은 열혈 노력 바보였다.

확실히 지식은 떨어지지만, 친화력이 누구보다 좋았다. 아마 누군가 옆에 두고 가르친다면 쑥쑥 성장하겠지.

하지만 미묘한 한계가 존재했다.

일단 요리의 대가가 되는 건 불가능했다. 보다는 즐겁게 음식 하면서 사람과 어울리는 걸 추구하는 스타일이니 그쪽하고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 것이다.

강만식은 냉정한 계산파였다.

실력은 제일 좋았지만 아직 자신만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때론 좌우를 가리고 오직 정면으로만 달리는 경주마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다양한 부딪힘이 부족해서겠지. 그래야 사람이 둥글어지고 구르다 멈추진 않게 될 테니까.

이보영은 발랄한 외모와 다르게 소심했다.

특히 실력은 좋지만 뭔가 억눌려 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게 은연중에 느껴졌다.

어쩌면 강한 책임감이 큰 부담으로 오는 건지도 몰랐다.

정아름은 직관이 강하다고 해야 할 거다.

무의식적으로 본질을 남들보다 빨리 파악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방 일보다는 다른 쪽이 맞는 것 같았다.

어쩌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일이 더 어울릴지도.

그 때문에라도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맞겠지.

일단 내 평가는 이 정도로만 하기로 하자.

오송해 선생님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시겠지.

“기본 양념은 거의 다 있으니까, 소금, 후추, 간장, 굴소스…… 도 있구나. 그리고 마법의 가루도 있고, 칼국수 양념장도 있네.”

항상 음식 하는 사람들이니 이 정도는 필수지.

특히나 빠지지 않고 가지고 다니는 건 바로 마늘이었다.

즉석에서 다져 먹는 맛은 급이 달랐고, 어지간한 한국 사람이라면 싫어할 리가 없었으니까.

정아름은 아직도 주저하는지 움직이지 못했다.

역시 스타트는 끊어줘야 하겠지.

“일단 소금하고 간장부터 넣어봐.”

“예? 밑도 끝도 없이요?”

“첫째, 너무 짜지만 않으면 된다. 둘째, 색이 많이 변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까 그걸 기준으로 뭘 더 많이 넣어서 간을 맞추는지 결정하면 돼.”

“어느 정도로요?”

“이대로 먹어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감을 잡았는지 정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첫 행동은 내 예상을 훌쩍 벗어났다.

굵은 소금과 절구를 가져온 거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곱게 빻기 시작했다. 그러다 소리가 울리는 게 신경 쓰이는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작업을 이어나갔다.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미 다른 이들은 준비가 끝났는지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일단 시간을 확인했다.

재료가 들어오고 지시가 떨어지고.

여기 작업까지는 딱 10여 분.

다들 기본 실력이 있고 손발을 맞췄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소금 빻기가 끝난 정아름은 그걸 육수통에 부었다. 황당하게도 중간중간 확인도 하지 않고 탈탈 털어 버린 것이다.

그다음 간장통을 들더니 다시 부었다.

콸콸콸콸~

아주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쏟아지는데, 나 역시 덜컥 겁이 날 정도.

정아름은 몇 번이나 육수통을 저은 뒤, 맛을 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뒤 맛을 확인해보라고 접시를 내밀어줬다.

어떠냐는 눈빛으로.

“흐음, 딱 괜찮네.”

그제야 깨달은 게, 얘들 호텔조리학과라는 거.

즉 음식 만드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건 다 되어 있었다.

“자, 그럼 다음 코스. 너희들 준비한 거 다 때려 넣어.”

“예? 그냥 손질만 된 건데요?”

김부성의 말에 휙 고개를 돌려 보니 강만식은 오히려 손을 내저었다.

“이미 태수랑 보영이랑 같이 기본적인 조리는 다 했습니다. 데칠 건 데치고, 볶을 건 볶고.”

“엥? 언제?”

“너 달걀 한 판 깼을 때, 손질 끝났고. 두 판째 깰 때 볶고 데쳤지. 채에 거르는 동안 식혀 놨고.”

일전의 복수(?)인지 강만식의 얼굴에는 의기양양이 깃들어 있었다.

그 옆에서 이보영이 조곤조곤 말했다.

“여기서 너 빼고 다 자격증 있잖아.”

“크헉!”

“이거 중식 조리사 자격증 시험에 들어가거든.”

“크학!”

비수에 찔린 것처럼 김부성이 휘청거리는데, 바로 입을 열었다.

“여기 주방이야. 몸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다.”

“죄, 죄송합니다.”

“바쁘니까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부어!”

김부성과 강만식이 조심스럽게 육수통에 각종 재료들을 쏟아부었다.

어차피 다 기본 익힘은 된 것들이다.

계란이 부풀면 전분물 넣고 마지막에 간만 추가하면 끝.

재료 사고 준비하고, 중간 뻘 짓까지 계산해보니 딱 35분 컷이네.

양이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린다 싶었다.

하지만 계란이 퍼지면서 올라오는 건 불과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마무리 향신료만 추가하면 끝.

솔직히 요즘은 초딩도 계란 프라이 정도는 다 하지 않는가.

걸리는 시간은 대부분 몇 분 남짓이고.

때문에 급히 선택한 게 이 메뉴였다.

“자, 이제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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