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보글보글.
계란이 너무 풀어지지 않게 살살 저었다.
그런 다음 불을 약하게 줄이고 간을 보니 약간 심심한 느낌이 있었다.
“다들 어때?”
“이대로만 내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대체적으로 평이 좋았다.
그 반응에 약간 실망이 들었다. 확실히 얘들은 실전에서 조금 아쉽네.
이걸 알려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냥 지시를 내리고 뚝딱 내보내면 편하긴 하겠지만, 뭔가가 묘하게 걸리더라.
에라,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니 하나라도 더 알려주는 게 맞겠지?
“너희들 말도 맞는데, 추가 조리 들어간다. 여기에 간을 더하고 전분 물을 풀자.”
“예? 왜 굳이.”
강만식이 조금 당황해하며 묻자,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이보영이나 정아름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정태수와 김부성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각자의 방향성에서 나오는 차이였다.
“강만식, 이보영, 정아름. 너희들은 말 그대로 조리사야. 보다 음식에 집중하는 편이지.”
“예. 그렇기는 합니다.”
“흠. 태수는 말이야. 칼국숫집을 장사하면서 많은 손님들을 경험했거든. 지금이야 음식을 그대로 내어가기는 하지만 할머니 때부터 본 게 있어.”
전날 과음했는지 눈이 시뻘건 단골이 오면 냄비를 따로 꺼냈다. 거기에 육수를 따로 담아 강한 불에 끓여내는 것이다.
그럼 수분이 날아간 만큼 육수가 약간이나마 더 진하게 된다.
그렇게 칼국수 한 사발 먹고 나면?
“크하~ 속이 확 풀리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혹여나 싶어 물어보기까지 하고 해주니 당연히 다음에도 또 찾을 수밖에.
그게 40년 꾸준한 장사의 비결이었다.
옆에서 그런 걸 봐왔기에 정태수가 단번에 이해 한 것이기도 했고.
“부성이도 마찬가지. 다시 확인차 물어보는데, 너 장래 뭐 하고 싶다 했지?”
“당연히 퓨전 포차죠. 꼭 저만의 가게를 운영하고 싶거든요. 가능하면 진상 손님 없는 술집이 목표입니다.”
당연한 듯 말하는데, 아직도 다른 이들은 이해하질 못하는 표정이었다.
“쯔. 짧게 간다. 잘 들어. 태수는 경험이 있고, 부성이는 목표가 술 손님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너희들하고 차이가 나는 거지. 요리를 보느냐, 먹는 사람을 보느냐. 알아들었어?”
순간 강만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전에 김부성이 그랬었지. 일단 맛있기만 하면 된다고.
그게 이래서 나온 말이었나?
“간단히 말하면, 먹는 사람은 이게 한식인지 중식인지 일식인지를 구분하지 않아. 일단 맛있는 게 전제가 된 뒤, 어떤 음식인지는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거지.”
“맞습…… 니다.”
“거기에 환경도 중요해. 자, 밖은 쌀쌀해. 어르신들은 이미 배가 찬 상황이야. 거기에 술까지 드셨단 말이지. 그럼 이 정도 간이면 충분할까?”
“어쩌면…… 아무 맛도 못 느낄 수도 있겠네요.”
이보영의 말에 강만식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처음에 말했다시피 전분을 풀어서 중식 울면 느낌 나게 간다고 했잖아.”
“그, 그러긴 했습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잠시 머뭇거리는데, 김부성이 손을 들었다.
“간을 더하든가, 확 그냥 매운 고추를 때려붓든가 해서 강렬한 맛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어차피 꽐라가 되면 확 들어오는 맛 아니면 잘 못 느끼거든요. 하하하.”
“일단 반은 정답.”
원래라면 다진 고추와 마늘을 넣어서 매콤한 기름을 낼 생각이었다.
걸쭉한 전분 물이 들어감으로 포만감을 더해줄 수 있지만 맛 자체가 많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맛을 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강만식이 손을 들더라.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국물 맛이 좋으니 위에 올린 고명으로 승부를 봐야지.”
“예?”
“일단 시간이 없으니까, 전분 물을 풀고 농도부터 확인하자.”
미리 태수를 시켜 준비한 전분 물을 풀었다.
전체적으로 약간 걸쭉해졌다는 느낌이 들자 다시 맛을 봤다. 확실히 국물 맛이 조금 약해지더라.
난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5분 준다. 강만식, 이보영은 여기 혹 하나 달고 바로 고추를 길게 썰어. 가만, 근데 우리 파프리카는 있나?”
기억하기로 감자채전을 만들고 위에 고명으로 장식할 예정으로 챙겨온 것도 같았다.
태수가 바로 대답했다.
“찾아보면 한 열 대 여섯 개 정도는 있을 겁니다.”
“그럼 그것도 같이 최대한 가늘고 길게. 그리고 태수 너는 폴드 포크 작업 마무리하고.”
슬쩍 돌아보니 정아름이 다시 소금 간을 더하더라.
그렇게 음식 준비가 끝났다.
계란 두 판으로 급조한 음식이었다.
딱 봐도 7~80인분은 너끈히 나올 것 같더라.
“다, 다 됐습니다.”
강만식의 다급한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 사람이서 미친 듯이 다다다다다 하며 있는 거 없는 거 다 때려 썰었더니 한 쟁반 푸짐하게 올라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자, 국물 담고, 고명 뿌리고, 마지막에는 고기.”
폴드 포크 1인분 양이 5인분 이상이 되는 기적.
일단은 이걸로 버텨볼 예정이었다.
순서는 당연히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우선이었고, 대신 약간의 임기응변을 더 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재료가 모자라서 새로 음식을 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대신 아주 푸짐하게 담았습니다.”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음식을 건네는데, 다들 웃으면서도 뒤끝을 남기더라.
“아이고. 음식 냄새 맡으며 기다리다 향냄새 맡겠네.”
“그러게나 말여. 위장이 그냥 주둥이 밖으로 튀어 나올라고 했어.”
그래도 별 탈 없이 받아 가시니 다행이었다.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었다.
“먹다 뒤진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거지꼴로 황천길 갈 뻔했디야.”
“그럼 오히려 좋지.”
“뭐가 좋아?”
“자네 잡아갈 저승사자가 못 알아보고 지나칠 수도 있잖아.”
“하이고, 박씨. 날 잡아놨는데 못 가면, 남들 배 타고 건너는 거 나만 물질해서 가야 혀. 고생은 살아서 해야지 뒤져서도 하는 건 아니라고.”
“허, 언제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더만.”
“개똥도 약에 쓴다니 하는 말인 거지.”
환갑도 막내 취급한다는 어르신들의 황천길 개그였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허허허 하시더라.
특히 마지막이 인상적이었지.
“허어~ 벌써 다 죽었구먼. 고마~ 다 뒤져 뿔고, 어데~ 아가리만 살았는 갑네.”
친구들이 안 보이는 척, 먼 산 보듯 둘러보면서 나온 말이었다.
그 능청스러운 연기에 나 역시 웃음이 나오더라.
어쨌든 기다리는 분들까지 꼼꼼하게 챙길 수 있어서 좋기는 했다.
넉넉한 김치에 깍두기와 양파절임.
따뜻한 밥, 그 옆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국이 듬뿍 담겼다.
그 위에 올라간 건 적당한 매콤함을 더해줄 고추와 장조림처럼 찢은 폴드 포크였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을 푸짐한 한상.
심지어 그렇게 담아놓고 보니 제법 잘 어울리더라.
그렇게 마무리하려는데, 예상대로 국물 찾던 어르신들이 귀신처럼 달려왔다.
“그거 좀 줘 봐.”
“어이! 김씨, 내가 먼저라고.”
“거참. 말 많네. 누가 좀 먼저 받으면 어때?”
“이 양반이 돌았나. 아까도 슬쩍 슬쩍 끼어들더니, 그러다가 염라대왕 앞에도 끼어들겠다.”
“쩝. 고건 아니고.”
“됐고, 뒤로 가.”
하여간 툭탁거리는 게, 참 재밌게들 사시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을 상대로 어르고 달래고 빌기까지 하면서 남은 음식을 털어냈다.
완전히 바닥이 나 버린 거다.
“허~ 진짜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고작 자원봉사라 생각했는데.
후우~ 이건 진짜 하나의 인생 시험이었다.
진심으로 영혼이 쑤우욱 하고 하늘로 빨려가는 것 같더라.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정태수와 김부성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강만식은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미 끝났음에도 뭔가 할 게 없는가 계속 돌아다녔던 것이다.
이보영과 정아름 역시 마찬가지.
남자보다 체력이 떨어지기에 더욱 상거지 꼴로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짝짝!
“자! 다들 모여.”
“예? 아직도 안 끝났어요?”
“크헙. 또 뭐 해야 합니까?”
“시, 시켜만 주신다면…… 지옥이라도.”
부성아, 이미 네 표정이 저승사자다.
하! 이런 생각을 하다니. 아무래도 어르신들 이야기에 홀린 모양이었다.
어쨌든 다들 모아놓고 짧게 말했다.
“다들 수고했다. 자, 공식적으로…… 미션 완료다.”
그제야 생기가 돌아오는지 아주 그냥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더라.
그 직후,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다들 시선을 맞추었다.
동시에 서로 돌아가면서 손뼉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막 시합을 마친 선수들처럼.
물론 나 빼고.
하아, 조금 섭섭하긴 한데, 그래도 녀석들을 보니 이상하게도 흐뭇해지더라.
* * *
“이거 곤란한데?”
“예? 뭐…… 가요?”
“전부 싹 떨어졌다며?”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어르신들이 계속 달라고 달라고 해서, 남기려고 하긴 했는데 후우~ 어렵더라고요.”
이거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순이 엄마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보니 지은 죄도 없는데 괜히 미안해지더라.
“그…… 오신 분들 다 나눠 드리면 끝…… 나는 거 아닌가요?”
“현성아, 그건 맞아. 맞긴 맞는데…….”
순이 엄마가 주저주저하니 의구심이 피어나더라.
그때 다른 아주머니들도 다가와서 사정을 듣더니 약간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잠시 고민하는데,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이~ 영감탱이야.”
“이 씨, 양반이 진짜 아직도 이러고 있네!”
“야! 안 일어나.”
“하이고, 술만 마셨다 하면 이 꼬라지야!”
한참 이모뻘인…… 아니, 할머님 부대가 등장을 했다.
다들 쌍심지에 불을 켜고 우르르 몰려드는데 솔직히 덜컥 겁이 나더라.
차라리 몬스터들이 달려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기세가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짝! 짜아악!!
온 사방에서 울리는 등짝 갈기는 소리.
텅, 탕. 우당탕.
그다음은 찬통으로 마구 후려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이고, 그만해! 여편네야.”
“아야! 그만 좀 해. 아니, 알았다고.”
“일어나. 일어난다고.”
“쫌! 남들 눈도 있는데.”
할아버지들이 화를 내거나 역정을 부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고분고분하더라.
아니 한 분이 버럭 했는데.
“아이고, 내 팔자야. 내 저런 영감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네. 아주 그냥, 마누라 말은 쥐똥만큼도 안 듣고.”
할머니 한 분이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치는데, 그쪽으로 다른 할머니들이 우르르 몰려가더라.
그 기세에 할아버지가 막 다급히 움직이더라.
“아, 아니. 내가 잘못했다고. 봐, 자리 정리도 다 했고, 막걸리 병 치우고 있잖아.”
“이제사 움직이면 뭐 하누. 마누라는 이미 복창이 터졌는데.”
“아이고. 임자. 내 잘못했다니까. 이, 일단 집에 가서…….”
“내가 이놈의 부녀회인지 나발인지를 그만두든가 해야지. 그래야 이런 일도 없을 거고. 진짜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틈만 나면 술이야!”
할머니의 말에 솔직히 멍해졌라.
부녀회라고?
“됐고, 현성아, 너는 모른 척해. 애들 데리고 뒤로 가 있고.”
순이 엄마는 이런 광경을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너무도 태연히, 아니, 오히려 웃으며 감상하는 게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죠?”
“뭐 보는 대로지. 밥만 먹고 올게, 이래놓고 잔뜩 술판을 벌인 거고, 그것도 적당히 마시면 모를까 저렇게 얼굴 벌게질 정도면 마누라 입장에서 속에 불이 나요.”
“크, 크험.”
아무리 생각해도 순이 엄마님 입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대충 들어 보니. 주민센터, 혹은 구 단위에서 지원금이 나온다.
그걸로 우리처럼 자원봉사의 도움을 얻어 한 번씩 이런 행사를 벌이는 것이다.
그걸 저 할머님들이 나름의 힘(?)을 써서 당겨 왔는데.
“그때마다 이래. 거, 적당히 먹고 가면 되는데 아주 동네 잔치 하듯이 해버리니까. 어떨 때는 해가 질 때까지 꼼짝도 안 한다니까? 이모 언니들이 한꺼번에 와서 정리하지 않으면 끝이 안 나.”
“헐, 해가…… 질 때까지요?”
“그걸로도 끝나면 다행이게? 한 번은 밑에서 경찰들까지 올라왔다고. 잠 좀 자자고 주민 신고가 들어왔데.”
“아, 아…….”
그 정도면 정말 심각한 게 맞았다.
충분히 할머님 부대가 출동해서 정리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말이다.
“쌩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치워.”
“저기 술병은 이쪽에다 따로 담고. 재활용, 분리수거.”
“돗자리 똑바로 정리하라고 했잖아.”
할머님들의 무시무시한 진두지휘에 할아버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후다다닥 움직이더라.
들어 보니 이게 처음부터 이렇게 된 건 아니라고 했다.
거의 10여 년 동안 쌓이고 쌓인 게 터지고, 또 쌓이고 터지고를 반복했단다.
“이해가…… 되네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데, 순이 엄마가 그러더라.
“근데 말이야. 우린 아직 할 게 남았거든.”
예? 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