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마지막까지 정성껏!”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다른 경우라면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하는지를 설명한다면 아무래도 감정 과잉이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대부분 지쳐 있는 상황 아닌가.
솔직해 내가 봤을 때, 나쁜 애들은 없더라.
그렇다고 무작정 이러이러하니 이래야 한다 하기에는 아직은 조금 애매했다.
다들 실력은 있지만 깊이에서는 아직이었다. 옆에서 누군가가 건드리면 그 영향만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뭐, 누가 나한테 따질지도 모르지.
네가 뭔데 그런 판단을 하냐고.
“당연히 내 마음이지.”
무심코 중얼거린 걸 들었는지 강만식이 슬쩍 쳐다봤다.
난 노려보는 것으로 응수를 하면서 칼질하는 손을 가리켰다.
눈치 빠른 녀석은 아니지만 대충 알 거다.
“아, 죄송합니다.”
“너. 나보다 잘할 수 있으면 괜찮은데, 내가 말했잖아. 집중하라고. 특히나 칼질할 땐 시선을 떼지 말라고 했지?”
“예. 저도 모르게 그만.”
실제로 정태수가 칼국수 써는 걸 보고 놀란 애들이었다. 거기서 반쯤은 숙이고 갔는데 그 불똥이 나한테까지 튀더라.
전체적으로 지시를 하는데, 조금씩 반항기를 보이면서 은근히 신경을 건드린 거다.
훗, 웃으며 가볍게 실력 발휘를 해줬다.
마늘 한쪽을 가져와서.
다다다다다다-
얇게 슬라이스 해버렸다.
그 숫자가 대충 오십이 넘어가니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
하나하나가 종잇장 수준이라 도마가 비칠 정도였으니까.
크흠, 그건 제쳐 놓고.
강만식이 오락가락하는 건 단순히 야채를 써는 일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나름의 책임감(?) 때문인지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전체를 아우르느라 자주 산만한 모습을 보였던 거다.
특히 한 번 지적하면 잠깐은 집중했지만 바로 주위를 둘러보는 걸 습관처럼 해댔다.
살짝 고민했지만 결국 주의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멈춰!”
* * *
“아주 분위기가 개판이네.”
대충은 안다.
나 역시 그랬듯이 긴장이 탁 하고 풀렸을 테니, 다시 뭔가를 열정적으로 한다는 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강만식은 칼질 한 번 하고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김부성은 가만히 있다가 정태수가 시키면 후다닥 움직이고, 끝나면 다시 멍 때리기 일수였다.
정아름은 이 파트 저 파트를 돌아다니며 수다 떨기에 바쁘더라.
마지막으로 이보영은…… 하아, 욕을 참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행히 아직은 준비 과정.
튀기고 굽고 하는 단계가 아니었기에, 동시에 마지막이란 생각에 다들 불러냈다.
“만식아. 너 갑자기 산만해졌다.”
“죄송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예민해진 건지, 안절부절못하는 건지 조금 구분이 안 가.”
갑자기 강만식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어라? 이런 반응은 처음인데?
진짜 뭔가 있는 건가?
“크흠, 됐고. 부성아.”
“옙. 사장님.”
이젠 아주 대놓고 부르네.
뭐, 어차피 사람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고, 저 정도로 열성적이라면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입사(?) 대기자가 좀 있기는 했지만 일단 마음에 드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대충 알겠는데, 너 어제 같지 않더라.”
“잘, 모르겠습니다.”
“취직을 해도 수습 기간이란 게 있거든. 합격은 일종의 최종 테스트란 거지. 하지만 중도 탈락이란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큽.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까. 너, 잘 생각해!”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
김부성은 내가 무조건 뽑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열심히는 하는데 갑자기 배우는 걸 설렁설렁했다.
쉽게 표현하면, 이거 구워야 한다고 하면 거기에 집중하는데…… 왜 구워야 하는지를 묻질 않았다. 그냥 절반 정도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이전보다 표시가 났던 거다.
원래라면, 이거 왜 해?
엉? 왜 이런 방식으로 하는 거야?
하는 식으로 질문 폭탄을 던지고 다닐 녀석인데 갑자기 유독 잠잠했 던 것.
물론 지친 것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 내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정아름. 너는 뽕에 그만 취해 있고. 다른 파트 움직임에 맞춰서 반응하라고.”
계란국에 대해 내가 호평을 하자 애가 살짝 맛이 간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부분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실전 현장 아닌가.
아쉽겠지만 감상과 감동은 미뤄두는 게 맞았다.
근데 자랑하듯 떠벌리고 다니면서 다른 이들의 일을 방해하고 있었으니 주의를 주는 게 맞다 싶었다.
“헤헤. 제가 조금 나댔죠?”
“자부심을 가지는 건 나쁜 게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때와 장소는 가려야지.”
“앗, 죄송합니다.”
“됐고. 집중해. 그리고 이보영.”
순간 화들짝 놀란 이보영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래,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고, 아차 할 수도 있어. 근데 명색이 호텔조리학과 학생이 칼질하다 손가락을 베인다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어쩔 수 없는 실수라면 이해를 해. 내 말의 포인트는 딴 생각 하느라 그걸 자초했다는 거야. 왜 재료 준비하는데 먼 산을 보냐고.”
“그, 그게…….”
이보영은 주저주저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강만식이 조심스레 나섰다.
“죄송합니다. 제가, 메뉴에 좀 무리한 주문을…….”
“조용히 해!”
휙 고개를 돌려 녀석을 노려봤다.
순간 녀석은 찔끔하면서 한 걸음 물러나더라.
“내가 너보고 끼어들라고 했어? 아니지? 그리고 이게 네 일이야! 아니잖아. 근데 왜 주제넘게 나서냐고.”
강만식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우물거렸지만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잘 들어. 이건 너희들이 앞으로도 무수히 겪어야 할 일이다. 적어도 음식 할 때는 다른 건 다 잊어야 한다고. 그게 프로야.”
“저…… 그게.”
“이건 진짜 가혹한 말일 수도 있어. 가까운 사람이 큰 사고가 나거나 돌아가시더라도…… 아니, 애초에 그런 경우면 조리대 앞에 서는 일도 없겠지. 하지만 만약 서게 된다면 무조건 자신의 몫은 해내야 해.”
다들 이해했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아예 안 하면 모를까, 하기 시작했다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야. 손님이 불평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
“맞습니다.”
김부성이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주먹을 들면서 우렁차게 소리쳤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을 뻔했네.
“크흠. 그리고 우리 서로 다 같이 이야기해서 메뉴를 정했잖아. 맞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걸 왜 둘이 따로 이야기를 해? 그게 맞다고 보나? 전체 흐름을 잡아놓고 식전, 메인, 식후, 디저트까지 철저한 계산 아래 준비를 했는데, 중간에 누가 건드린다? 너희들 세계에서는 그걸 인정하는 거니?”
순간 강만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누구보다 그쪽 생리를 잘 알기에 큰 잘못임을 깨달은 것이다.
보통, 미숙함에 의한 실수는 인간적으로는 봐준다.
하지만 허락받지 않고 흐름을 벗어난, 고의적인 완성품은 인정받지 못한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전체를 망쳤다는 이미지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그 꼬리표가 붙은 요리사들은 끝내 협업하는 톱급 식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뭐, 지금은 그 정도까지 대단한 건 아니었다.
따지면 동네 장사 수준이니까.
하지만 사장 말도 무시하는 직원이면 어디 가서도 문제가 될 게 분명했다.
“전체 흐름이 문제가 된다면 애초에 나한테 말했어야지.”
“죄송합니다.”
강만식은 바로 허리를 푹 숙였다.
순간 이마가 지끈거리더라.
이 자식들을 내가 너무 풀어줬나 하는 감정부터, 과연 이렇게까지 다그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 갈등이 들더라.
사실 내가 봐도 이건 좀 억지이긴 했으니까.
크험. 원래라면 소소한 디테일까지 총주방장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건 당연한 거다.
왜냐.
모든 책임을 지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여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어느 정도 자의적인 해석도 인정한다고 했다.
메뉴와 레시피가 ‘딱’ 정해진 식당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마냥 방관하는 건 잘못 된 일이었다.
“보영아.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할 일이 있는 걸 아는데 머뭇거리는 건, 조리사로서 실격이라고 했지? 특히! 사사로운 감정을 싣지 말라고 한 것도 같은데?”
“죄송합니다.”
“그래. 이건 우리에게는 봉사야. 하지만 음식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름의 시험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럼 집중하는 게 당연하잖아.”
구체적으로 지적할 게 많았지만 가급적이면 참으려 했다.
하지만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아오, 얼마나 정신줄을 놨으면 감자칼로 삼겹살 껍데기를 긁어내려 하냐고.
그러다 아차 하고 다시 칼을 잡고서 손질하다 손가락까지 베였으니.
내 입장에서는, 이걸 보고 제정신으로 넘기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거다. 당연히 주의를 주는 게 맞는 것이다.
“하아.”
짙은 한숨에 갑자기 하늘에서 누가 억누른 것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감정의 밀도가 높아 차마 고개를 들 엄두조차 못 낸다고나 할까.
일단은 살짝 풀어줄 필요가 느껴졌다.
“아마 지금이 너희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인 것 같아서 부른 거야. 물론 뒷풀이도 하긴 하겠지만, 일단 과정을 한 번 되짚자고.”
“옙.”
역시 김부성은 눈치 없이 활발한 놈이 맞네.
근데 그 호탕한 목소리에 묵직함이 깨지는 것도 있긴 하더라.
“자! 우리가 정한 메뉴는 뭐냐.”
“일단 모듬전입니다.”
“삼겹살 간장 구이에 조림과 절임, 맛탕입니다.”
저마다 대답하는데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사실 어르신들의 도움 덕에 많은 식재료가 왔음에도 부족한 건 있었다.
근데 순이 엄마가 그러더라.
공식적인 봉사 활동은 끝났으니까, 자비로 뭔가 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그러면서 메뉴에 맞게 필요한 걸 불러달란다.
기본 양념이야 다 있고, 부족분은 바로 사면 되니 일단은 사양했다.
어쨌든 그걸 바탕으로 다들 머리를 맞대서 구상한 결과가 이거였다.
반찬도 되면서 적당한 기간을 두고 먹을 수 있는 것.
우선적으로 김치는 넉넉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으니 남은 양을 전부 돌리기로 했다. 순이 엄마나 다른 아주머니들도 우리 안 줘도 괜찮다면서 그냥 다 나눠 주기로 한 것이다.
깍뚜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양파절임은 생각보다 많이 나가서 패스.
그다음은 들어온 재료를 활용한 요리였다.
일단 호박죽이 첫째였고, 그다음 감자와 고구마를 활용한 요리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겹살로 간장 구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정태수, 김부성 파트가 맡은 건 호박죽.
태수의 경우 당연히 할머니 때문에 나름 죽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였다.
먼저 밀가루 반죽으로 한입 크기의 새알심만 수백 개를 만들었다.
그사이 열혈남아 김부성은 열심히 속을 파고 껍질을 벗기고 토막 낸 다음, 미친 듯이 조각을 다져댔다.
이제 이걸 끓는 물에 푹 삶으면서 으깨주고 젓기만 하면 된다.
그 외의 각종 반찬들은 강만식과 이보영에게 맡겼다.
어르신들도 먹기 편하게 삼겹살 수육을 시작했는데, 푸욱 삶은 다음 간장 조림 양념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감자, 당근 등을 갈비찜처럼 적당한 덩어리로 넣어 같이 우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자조림은 냉장 보관의 경우 열흘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또 여기에 더해지는 고구마 맛탕도 일주일은 무난하게 가긴 간다.
마지막으로 내가 맡은 파트는 전이었다.
일단 김치가 많아서 김치전.
감자도 식감 좋게 잘라서 감자채전을 하기로 했다.
이건 내가 자주 하는 거였고 반응 역시 좋기에 선택한 메뉴였다.
자투리로 호박전도 해볼까 했는데 재료가 모자라서 패스.
대신 돼지 껍데기를 다져서 파전에 응용하기로 했다.
대충 해물파전의 변형이라고 보면 된다. 식으면 딱딱해지겠지만 엄청나게 잘게 썰면 쫀득하기만 한 식감에 재미를 더해줄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초장부터 삐끗하니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잘 들어. 일단 이쪽 일이 끝난 건 맞아. 너희들이 긴장이 풀린 이유도 알고. 거기다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에 이야기를 아낀 것도 사실이야.”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물었다.
“오늘 오신 분들이 어떻더니?”
“예? 그냥 동네 할아버지? 할머님들?”
김부성이 자신 없어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다들 동감하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럼 거동이 불편해서 못 오시는 분들도 있겠지?”
“아! 예. 그렇습니다.”
“그래. 지금 너희들이 만드는 음식은 그분들께 보낼 거야. 그냥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고, 과하게 욕심낼 것도 없어. 중요한 건…….”
고개를 돌려 아직도 쌓여 있는 선물(?)들을 쳐다봤다.
마치 우리가 열심히 했음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진정한 마음을 담은 정성스러운 음식이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