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9)

03.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목소리가 음험하게 낮아졌다.

“그거참 씨발 좆같이 우습네.”

“……네?”

소리가 작아서 못 들었어요, 하며 어리둥절해하는 우예린에게 도준희가 툭 뱉었다.

“모른다면 됐어.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니까.”

“그게 아니라, 우리는 잘 안 맞을…….”

“맞춰가면 되지. 우예린 씨 보고 맞추란 말 안 해. 우예린 씨 착하고 머리 좋은 얼굴 반반한 남자 좋아하잖아. 내가 맞출게. 그럼 되나?”

집요하다. 그가 집요하게 굴수록 우예린은 곤란해졌다. 헤어지자고 하면 바로 알겠다고 할 줄 알았다. 지금 상황은 머릿속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건 곤란할 것 같아요.”

간신히 거절의 의미를 내뱉는 게 다였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할 거였다. 내가 당신과 연애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데는.

우예린은 말이 없는 도준희를 곁눈질했다. 왜 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을까. 헐렁한 흰색 와이셔츠에 손목에는 어디 잡지에서나 보던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다. 일할 때는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전혀 몰랐는데 지금 보면 확실히 어지간해서는 유지하지 못할 행색이었다.

스포츠카와 온갖 명품. 도준희의 아름다운 몸과 더없이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상에 해가 되지 않는 선이어야 했다.

‘오해가 아닐까?’

이지나는 소식통이긴 하지만 그 신뢰성은 떨어졌다. 알고 있는 모든 게 백 프로 정확하진 않았다. 사채라니. 만약 도준희가 정말로 그런 소비 습관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충고를 하는 것도 오지랖이 되지 않을까.

우예린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우예린의 한숨을 들은 도준희의 섬세한 눈썹이 찌푸려졌다. 우예린은 갑자기 싸늘해진 공기에 움찔 놀라서 도준희를 흘끔거렸다.

도준희의 입술이 비뚤게 올라갔다. 화가 난 것 같은데 웬 미소일까. 우예린은 도준희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해. 나랑.”

도준희가 깔끔하게 말했다. 그가 하는 말은 꼭 암호로 되어있는 것처럼 한차례 생각을 해야 이해가 된다. 기분이 나쁜 듯 찌푸린 눈썹, 그러나 말끔한 얼굴로 뱉은 말을 천박한 의미와 연결 지을 수가 없었다.

당황한 우예린에게 도준희가 삐딱하게 말했다.

“이별 섹스 몰라?”

우예린은 단어가 주는 난해한 느낌에 파드득 몸을 떨었다. 아무리 그녀가 아는 게 없다고 해도 저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알았다. 도준희를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도준희는 한쪽 팔꿈치를 핸들에 얹고 우예린을 바라보았다. 사선으로 올라간 눈썹이 불만스러워 보였다. 어딘지 껄렁한 태도였다.

“없긴 왜 없어. 이별 여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여행도 있는데 이별 섹스라고 없을까.”

우예린은 입술이 딱 붙어버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갖다 붙이니까 영 없는 단어는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별 여행. 이별 섹스. 말은 되는 것 같다만 그녀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단어였다.

“그래도 그건 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지?”

도준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점잖고 선했던 얼굴이 간데없이 사납고 싸늘한 얼굴이 되었다.

우예린은 사슴 같은 미남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인상이 사나운 표범 과는 좋아한다기보다는 두려워서 꺼리곤 했다.

짧은 순간 겁을 먹은 우예린이 입을 딱 붙이자 도준희가 후, 한숨을 쉬었다. 억지로 누그러진 눈썹이 둥그스름했다.

“생각해 봐, 우예린.”

“뭐, 뭐를요?”

“사귀는 사이에 데이트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연락도 무시하면서, 마지막은 이별 통보.”

하나하나 접은 손가락을 눈앞에 가까이 들이밀었다. 우예린은 마디가 굵은 긴 손가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누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

도준희가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워진 그의 목덜미에선 독할 정도로 시원한 샤워 코롱 냄새가 풍겼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편 머리가 아파왔다.

향기와 함께 우예린을 덮친 것은 무섭도록 강렬한 도준희의 눈빛이었다. 도준희가 잡아먹을 것처럼 우예린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한 뼘도 되지 않았다. 우예린은 옴짝달싹 못 한 채로 눈을 살짝 떨었다.

“응?”

“저, 저요.”

“그렇지?”

이번 대답은 마음에 든 듯 도준희가 살짝 웃었다. 그럼에도 표범이 으르렁대는 것 같았다. 우예린은 맹수 앞의 먹잇감처럼 몸도 제대로 펴지 못했다.

‘이 사람은 누구야. 내가 아는 도준희가 아니잖아. 난 이런 사람은 몰라. 내가 좋아한 사람은 이 사람이 아니었어.’

우예린은 혼란스러워졌다. 도준희가 우예린을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다.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우예린이 몇 년간 사랑해 왔던 부드럽고 매끄러운 미소. 미소 짓는 얼굴만큼은 기억 속과 똑같은데 다르다.

‘뭔가 달라.’

강렬한 눈빛 때문일까. 그가 음산하게 느껴졌다. 대학생 때는 전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 사이가 저려왔다.

우예린의 흔들림을 눈치챈 듯 도준희가 목소리를 죽이고 감미롭게 속삭였다.

“그럼 내가 이 정도는 제안할 수 있잖아.”

“…….”

“너도 좋아하는 거.”

“…….”

“그거 하자고.”

우예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언어가 되지 못한 더듬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의아한 듯 눈을 치뜬 도준희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오물거리는 입술을 집어삼켰다.

뜨거운 혀가 우예린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몰아붙였다.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혀를 긁었다. 가슴이 찌릿했다. 도준희는 목구멍에서 터지는 우예린의 신음을 남김없이 삼켰다.

우예린은 숨을 헐떡였다. 도준희가 덮치듯 무게로 내리눌러 숨 쉬기가 힘들었다. 간신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숨을 쉬었다. 도준희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붙잡아 돌려 다시 입을 맞추었다.

숨 막혀. 숨…….

우예린이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도준희가 아랫입술을 손톱으로 지긋하게 눌렀다. 우예린의 입술이 열렸다.

도준희가 다시 능란한 뱀 같은 혀를 집어넣어 굳어있는 우예린의 혀를 가지고 놀았다. 도준희의 혀끝이 우예린의 혀를 날카롭게 긁었다. 찌릿한 쾌감이 터졌다.

“으, 으응!”

민망할 정도로 큰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도 모르게 나온 신음에 우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준희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감고 있지 않았던 거야?’

도준희가 입술을 뗐다. 타액으로 부드러워진 우예린의 입술을 엄지로 누르며 쓸었다.

“어떻게 할래?”

우예린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해졌다. 그녀의 동공은 도준희의 해사하고 근사한 얼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치도록 좋아해 본 사람. 보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사람. 얼굴 한번 보고 싶어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했던 사람.

이 사람과의 마지막이다. 도준희라는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생각했음에도 그 ‘마지막’이란 단어에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동시에 미묘한 아쉬움이 자꾸만 가슴을 흔들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도준희가 힘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길고 매끈한 속눈썹이 그의 큰 눈 아래로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우예린은 시름에 빠진 듯한 그 얼굴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문득 도준희가 눈을 들어 그녀를 직시하며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쉰 목소리에 우예린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침만 꼴깍 삼켰다.

“응? 우예린, 대답해.”

마지막이라면, 이게 마지막이라면 한 번쯤은.

이대로 끝이라면 난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할 거야. 이 사람을 내 의지로 놓았던 이 순간을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야.

호소력 짙은 도준희의 까만 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 좋아요. 같이 가요.”

우예린의 대꾸에 도준희가 그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야릇하면서도 서늘하고, 사나우면서도 다정한 이상한 미소였다.

도준희가 차를 몰고 간 곳은 일전에 갔었던 그의 개인 샵이라던 펜트하우스였다. 차에서부터 그의 손에 농락당해서인지, 차에서 내릴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힘이 빠져서 비틀거리자 도준희가 다가와서 허리를 한 손으로 감아 지탱했다. 우예린은 거의 그의 품에 안기듯 해서 옮겨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을 깜박였다. 도준희가 젖은 입술로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펜트하우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익숙한 곳, 낯익은 마사지대가 눈에 띄었다. 그날로부터 며칠이나 지났는데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우예린은 입술을 웅얼거렸다.

“샵이라고 했으면서.”

‘집이었잖아, 역시.’

우예린이 억울한 듯이 얼굴을 구기자 도준희는 어이가 없는 듯 살짝 웃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곳이 그의 개인 샵이냐, 집이냐가 아니었다.

풀썩!

우예린은 거대한 침대 위에 던져졌다. 침대는 비싸기로 유명한 가구 브랜드의 대형 침대였다. 어찌나 쿠션감이 좋은지 허공으로 몸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리려는 그녀에게 도준희가 가까이 다가왔다. 다리 사이에 그녀를 가두고 블라우스 단추를 한 손으로 풀어냈다.

“마지막으로 하는 거면, 거칠게 해도 되나?”

“이, 일단 대화부터…….”

“싫어.”

도준희가 일어나려는 우예린의 어깨를 밀어 눕혔다. 우예린은 눈을 깜박이며 그가 그녀의 위로 몸을 드리우는 것을 바라보았다.

“넌 아무 얘기도 안 했잖아.”

“…….”

“이별은 씨발.”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우예린은 할 말이 없었다.

“애, 애초에 사귀자고 한 것도 강제…….”

“하하, 뭐? 다시 말해 볼래?”

도준희가 우예린에게 고개를 가까이 숙이며 속삭였다. 그의 까만 눈이 음험하게 반질거렸다.

“이렇게 질질 흘리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준희가 치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팬티 위로 우예린의 음부를 거칠게 문질렀다.

‘아까 불쌍하게 속눈썹을 떨던 사람은 어디로 간 거지?’

왠지 속은 듯한 기분이라 우예린은 꼬리를 잡힌 여우처럼 파드득 튀어 올랐다.

“내가 잘생겨서 좋다며. 잘 때는 좋아해 놓고 이제 사귀니까 싫다?”

“좋아한 거는 아니에요…….”

“씨발, 감히 이 도준희를 딜도로 써?”

우예린은 화들짝 놀랐다.

딜도라니. 도준희를?

생전 써보지도 않은 도구였다. 도준희를 딜도로 생각하다니, 언행이 과하다.

그를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벌벌 떨리고 얼굴이 빨개져서 숨쉬기도 힘들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억울했으나 도준희는 화난 얼굴로 더욱 거칠게 음부를 문질렀다.

젖은 팬티가 음부에 달라붙었다. 천이 민감한 부위에 쓸리는 감각이 따가우면서도 아랫배가 간질간질했다. 쾌감이 그가 문지르는 곳마다 찰랑찰랑 고이기 시작했다.

“아, 아앙, 아, 흐으으…….”

신음을 흘리면서 허리를 비틀었다. 도준희는 느끼는 우예린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우예린의 턱을 붙잡고 저를 바라보게 했다. 우예린은 민감한 부위에 끊임없이 가해지는 야릇한 자극에 눈앞이 흐려졌다.

도준희가 시트를 붙잡고 달달 떠는 그녀의 손을 제 얼굴로 가져왔다. 우예린은 멍하니 그녀의 손이 그의 얼굴을 더듬는 것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서우면 내 얼굴을 봐. 내 얼굴은 잘생겼다며.”

“흐, 흐으.”

“너 얼굴에 환장하잖아.”

우예린은 그의 얼굴에 홀렸다가 흠칫했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얼굴에 환장하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도준희는 여전히 가슴이 떨릴 만큼 잘생겼고 완벽한 그녀의 이상형이었지만 이미 생겨버린 찝찝함은 극복하기 힘들었다. 그녀의 새가슴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

몇 년간 품어왔던 첫사랑은 신기루 같은 사랑이었다. 수사슴처럼 선하고 신비로웠던 그녀의 사랑은 실은 사슴의 탈을 쓴 거친 표범이었던 것이다.

얼굴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예린은 같이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다정한 사람이 좋았다. 불행히도 도준희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얼굴만 좋아한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었다. 무서운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럴 수, 흣, 없어요.”

이제 도준희는 그녀의 블라우스를 파헤쳐서 가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음부를 자극했을 때부터 빳빳하게 곤두선 붉은 젖꼭지가 그의 입 속에 빨려 들어갔다. 도준희가 눈을 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예린은 몰아치는 쾌감과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 그의 얼굴을 회피하려 눈을 꽉 감았다.

“도준희 씨, 하아, 그만!”

“말해.”

도준희가 젖꼭지를 잘근잘근 깨물면서 말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말하라는 거야. 우예린은 몸을 집어삼키려는 감각을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도, 준희 씨는 날 속였잖아요.”

“내가 널?”

“모르는 척하지 말아요. 날 속였잖아요. 내가 거기를 의심하는 거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날 가지고 놀았잖아요.”

도준희가 멈칫하고 가슴을 뱉어내었다. 그가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우예린은 그제야 그가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납득했나 보다 싶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무시무시하게 노려보고 있는 도준희와 눈이 마주쳤다.

싸늘한 시선에 숨이 막힐 뻔했다. 도준희가 몸을 일으켜 그녀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가두었다. 가까워진 시선에 우예린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내가 널 속여?”

“마, 맞잖아요.”

우예린은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을 꽉 그러쥐었다. 이런 종류의 기운은 엄한 부모의 질책 한마디에도 못 이기고 고개를 숙이는 우예린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거였다.

태생이 기가 약한 우예린은 도준희의 휘몰아치는 분위기에 압사당할 듯했다. 그러나 지금 잘못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 우예린은 주먹을 꽉 쥐고 도준희를 노려보았다.

“왜 날 속였어요?”

그녀가 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물러서지는 않더라도 약간 움찔하기라도 할 줄 알았던 도준희는 멈칫하기는커녕 그녀를 비웃었다.

“어이없네.”

도준희의 한쪽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비웃음을 본 우예린은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초에 이상한 마사지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온 건 너였잖아. 내가 언제 야한짓 하는 곳이라고 그랬지? 혼자 옷을 벗고 강하게 만져달라느니 부드럽게 해달라느니 한 건 너였어.”

“…….”

“왜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해?”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던 사실이었던지라 우예린은 움찔했다. 시선을 피하는 그녀를 보며 도준희는 이를 갈았다. 이상하게 이 화제에 대해서는 그가 더 열이 받는 듯했다.

“내가 거기서 나서지 않았으면 너는 다른 놈에게 네가 생각하는 야한 마사지를 받았을 거야. 그러면서 ‘왜 가슴 안 만져주지?’, ‘젖꼭지 왜 안 빨아주지?’ 하면서 아쉬워했을 거고.”

천박한 말투에 우예린의 볼이 점점 더 붉어졌다. 도준희가 물고 빨아 붉게 곤두선 우예린의 젖꼭지를 강하게 꼬집었다.

“흑!”

“어? 맞잖아.”

“그, 그런 천박한…….”

“천박하긴. 이미 침대에서 다 들어놓고서. 더럽게 말해줄 때마다 좋아했잖아.”

도준희가 삐딱한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그가 말하는 그녀는 이상 성욕을 가진 사람처럼 들렸다. 면역이 없는 우예린은 억울한 얼굴로 웅얼거렸다.

“침대라뇨. 마사지대였죠!”

도준희가 코웃음을 쳤다.

“쇼하고 있네.”

그가 키스를 퍼부었다.

‘지금? 왜? 모욕적인 말을 하더니 갑자기 왜 키스를 해?’

우예린은 도저히 도준희의 사고를 따라갈 수 없어 벅찼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타액을 모두 가져가다시피 하는 그의 키스도, 가슴을 아프도록 쥐어짜는 그의 손놀림도 모두 그녀의 통제를 벗어났다. 도준희가 한 손으로 그녀의 치맛자락을 위로 올렸다.

허벅지가 형광등 불빛 아래 훤히 드러났다. 도준희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젖은 팬티를 뭉근하게 문질렀다. 팬티와 함께 손가락이 질구를 마구잡이로 자극했다.

“아, 아앗!”

“이렇게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질질 짜면서 사기는 무슨 사기. 그리고 내가 사기 쳤으면 뭐, 네가 무슨 피해라도 입었어? 인간 딜도로 사용된 건 나야, 네가 아니라.”

도준희가 거칠게 중얼거렸다. 우예린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황당해졌다. 도준희가 선심 쓰듯 말했다.

“좋아. 딜도로 사용하게 해줄게. 충분히 써.”

“하읏, 읏, 도, 준희!”

도준희가 우예린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팬티를 내렸다. 젖은 팬티가 쉽게 벗겨졌다.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음부에 공기가 닿자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도준희가 그의 바지를 벗어 이미 단단하게 굳어진 성기를 손으로 대강 문질렀다. 우예린은 허벅지를 찌르는 뜨거운 귀두에 몸을 움찔 떨었다.

도준희가 그녀의 손을 성기로 가져갔다. 뜨겁고 부드러운 질감에 우예린은 불에 덴 듯 손을 뗐지만 도준희가 다시 그녀의 손을 그의 성기로 가져다 댔다.

“뭐, 뭐 하는…….”

“뭐 하긴. 네가 딜도로 쓸 물건이잖아. 아직 네 질을 쑤셔줄 만큼 충분히 딱딱하지 않으니까 잘 쓸 수 있게 노력해 봐.”

우예린은 손을 빳빳하게 폈다. 손에 닿는 뜨거운 살의 감촉이 낯설고 꺼림칙했다. 저게 그녀의 안을 헤집었다는 걸 알지만 직접 만지는 건 다른 느낌이었다.

손으로 잡은 그의 성기는 그녀의 몸에 있는 어느 피부 부위의 질감과도 같지 않았다. 제3의 피부를 만지는 기분이었고, 남자의 성기를 만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를 기묘하게 고양시키는 한편 죄악감을 느끼게 했다.

“시, 싫어요.”

“싫다는 소리 한 번만 더 해봐.”

도준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기분이 나쁜 듯해서 우예린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도준희는 그녀가 적극적으로 성기를 만지지 않아도 상관없는 듯했다. 그녀의 손 위로 손을 겹치고 성기를 문지르게 했다.

섹스를 할 만큼 충분히 딱딱하지 않다고 했는데, 손에 만져지는 그의 성기는 매우 뜨겁고 거대했다.

‘이게 충분히 딱딱하지 않다고?’

우예린은 질린 얼굴로 손을 떼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도준희는 말한 것과 달리 우예린의 손이 성기에 닿자 금방 흥분했다.

“씹, 고작 만져진 것 가지고.”

그러고는 자존심이 상한 듯 욕설을 지껄였다.

“이미 별거 다 한 사이에 성기 한 번 문질렀다고 흥분하기는.”

도준희는 눈을 찌푸리면서도 계속해서 우예린의 손으로 성기를 문질러댔다. 우예린의 손가락이 그의 귀두를 감쌌다. 귀두가 질척질척했다. 성기의 몸통이 뜨겁고 건조한 데 비해 귀두만이 질척거렸다.

우예린은 제 의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과 손에 닿는 느낌이 낯설고 두려웠다. 겁에 질린 우예린의 얼굴을 보며 도준희가 흥분한 목소리로 신음이 섞인 욕설을 뱉어냈다.

“그, 그만…….”

도준희가 손을 멈추었다. 웬일로 말을 들어줬을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말을 들어준 게 아니었다.

“흐읍.”

도준희가 미간을 찌푸리고 신음을 흘렸다. 우예린은 저도 모르게 그의 구겨진 미간을 바라보았다.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하고 부드러웠던 얼굴을 좋아했는데, 저렇게 성질 더러워 보이는 얼굴은 본 적도 없고 좋아한 적도 없는데, 어쩐지 마약처럼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날것 그대로의 거친 얼굴.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우예린은 혼란스러워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준희의 입술에서 새는 욕설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혼란도 잠시, 두려움이 그녀의 마음을 덮어버렸다.

“쌀 뻔했잖아.”

천박한 말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얼굴 때문에 인생 말아먹을 게 분명해. 우예린은 도준희에게 넋을 잃은 스스로를 꾸짖고 서둘러 손을 물렸다. 도준희가 우예린을 싸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계속 그렇게 굴어봐. 대학교 때도 사람 돌아버리게 만들더니 지금도 똑같네.”

‘뭐?’

“기분 좋네. 그때 생각나서 자극도 되고.”

도준희가 우예린의 가늘고 하얀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우예린은 입을 어버버, 하며 열었다.

“대, 대학교 때라니…….”

“모르는 척하지 마. 나 기억하지? 나만 보면 도망갔던 거, 기억 못 하진 않을 거 아니야.”

도준희가 눈을 구기며 웃었다. 그때 생각이 달가운 듯도 하고 달갑지 않은 듯도 한 태도였다. 우예린은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나만 보면 도망갔다는 말은 뭐야. 내가 언제 당신을 보고 도망갔다고…….

“내가 언제…….”

“말 좀 걸라치면 꽁지 빠지게 도망갔으면서.”

도준희가 껄렁하게 말하며 우예린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한 손으로 그녀의 발목을 붙잡아 올린 채로 성기를 질구에 맞추었다.

우예린은 단단하고 뜨거운 성기의 감촉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정신을 혼란시키는 건 그가 꺼낸 말이었다.

“나는…….”

도망간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온 적이 없었다. 기억을 뒤져봐도 그런 적이 없었다. 아, 그가 그녀 쪽으로 가까이 다가온 적은 있었다. 뒤에 추종자들의 시선을 잔뜩 단 채로. 그의 진로에 있는 것만으로도 따가운 눈총이 박혀와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었다. 설마 그런 순간순간을 말하는 거라면…….

난 너를 피해 도망간 게 아니야.

말을 머뭇거리는 순간 거대한 성기가 질을 뚫고 들어왔다. 뭉툭한 귀두가 질 깊숙한 부분을 쿡 강하게 찌르자 머리에 스파크가 튀었다.

우예린은 천장을 향해 시선을 돌린 채 입을 벌렸다. 이윽고 그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단발적인 신음이 딱딱, 끊겨서 튀어나왔다.

“흐, 하아, 흐, 흐으, 빠, 빨라, 흣.”

“겁은 많아서, 어? 이미지 관리하고 착한 척하고, 얼빠진 짓은 다 했는데 그래도 헤어지자고…….”

푹, 푹. 도준희가 무자비하게 우예린의 질 속을 헤쳤다. 우예린은 빠듯한 아래에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는 우예린의 두 발목을 잡은 채로 허릿짓을 했다.

도준희가 그녀의 얼굴에 진득한 입맞춤을 퍼부었다. 단단한 성기가 팍! 깊숙한 곳을 뭉갰다. 우예린의 허리가 위로 솟구쳤다. 으아, 으아. 감당 못 하는 쾌감이 점점 더 커져갔다.

“내가 열이 받아, 안 받아. 씨발. 넌 내내 그랬어.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답답하게.”

“흐, 흐응. 흣, 빠, 빠르다구요, 그만, 흣.”

“이래도 저래도 똑같으면 그냥 내 좆대로 하지 뭐. 어차피 넌 도망가기만 하는데.”

“뭔가 오해가…….”

“오해는……, 윽.”

도준희가 삽입을 짧게 했다. 뒤이어 발목을 놓아주고 우예린의 가는 허리를 붙잡은 채로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흥분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오해, 씹.”

말끝마다 붙는 욕이 이제는 귀에 익숙하게 달라붙는 것 같았다.

도준희가 한 손으로 우예린의 젖꼭지를 꼬집음과 동시에 푹, 깊게 박아넣었다. 우예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흥분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아, 아파.”

“보채기는. 만져줄게, 기분 좋은 곳도.”

도준희가 허릿짓을 유지하며 우예린의 불룩 튀어나온 살점을 검지로 긁었다. 처음엔 살살 긁던 것이 나중에는 손가락으로 뭉갠 채 문질렀다. 우예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몸덩이를 불린 쾌감이 점차 가까이로 다가왔다. 도준희가 허릿짓을 하는 속도를 높였다. 검지로 클리토리스를 꾹 문대며 푹, 푹 박아넣었다. 마지막으로 팍, 소리가 날 만큼 세게 처박았다.

“흐으읏!”

우예린은 눈앞이 아찔했다. 하얀빛이 눈앞에서 마구 튀었다.

도준희가 우예린에게서 성기를 뺐다. 탈진한 우예린은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가 팔다리를 몸통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아기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발을 달달 떨었다. 아직 남은 쾌감의 잔여물로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우예린은 숨이 막혔다. 도준희가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은 탓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30분 후, 마침내 도준희에게서 풀려난 우예린은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남은 감각의 여운으로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문득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아주 조금 아쉬워졌다. 이별 섹스라니. 누가 들으면 비웃을 일을 행했지만 후회는 되지 않았다. 도준희와의 잠자리는 좋았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은 해서 다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후련했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아주 조금 아쉬워졌다.

지금의 도준희는 그녀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무서운 데다가 성격도 맞지 않는 걸 알았지만, 얼굴만큼은 기가 막히게 취향이었으니까.

눈을 가느스름하게 떠서 도준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새벽녘, 떠오르는 해처럼 해사하고 눈이 부셨다.

‘이런 얼굴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역시 조금은 아쉬우려나.’

우예린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가야지.’

어찌나 강렬하게 느꼈던지 아직도 발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잠시 눈을 감고 홀로 쾌감을 갈무리하는데 도준희가 우예린의 발목 하나를 붙잡아 위로 올렸다. 우예린은 깜짝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도준희가 다리 사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예린의 다리 사이에서 하얀 정액이 꾸물대며 기어나왔다. 도준희가 검지와 중지를 붙이고 정액을 쓸어 모아 우예린의 질로 쑤셔넣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우예린이 기겁하며 힘없이 팔을 휘저었다. 도준희가 눈썹을 찌푸린 채 악마처럼 웃었다.

“뱉지 말라고. 아까우니까.”

“그만, 더러운 짓 하지 말아요.”

“더러운 짓? 이게?”

도준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문득 그의 눈이 얄궂게 빛났다. 우예린은 갑자기 불안해져서 엉덩이를 꿈틀거렸다.

“나, 이만 갈래요.”

“어딜.”

비뚜름한 미소마저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묻는 도준희에게 우예린은 괜히 위축되었다. 그러나 위축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약속된 관계이지 않았던가.

“이별 섹스라고 했잖아요.”

우예린은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도준희는 처음 듣는 단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해사한 얼굴을 보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 그거…….”

“…….”

“취소.”

여상한 얼굴로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취소는 무슨 취소.’

기겁한 우예린이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철컥.

기이한 쇳소리가 났다. 우예린은 깜짝 놀라서 손목을 응시했다.

손목에 수갑을 채운 도준희가 반대쪽을 침대 옆의 행거에 채웠다. 행거의 수갑에 손이 고정된 우예린은 한쪽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당황한 우예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준희가 헐렁한 와이셔츠의 소매를 위로 접으며 씨익 웃었다.

“내가 어떻게 하든 도망가는 거라면, 내 방식대로 한다고 했잖아.”

“내 방식대로라니…….”

“네 몸부터 날 기억하도록 해줄게.”

도준희가 짐승 같은 눈으로 우예린을 바라보았다. 우예린은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채 수갑과 도준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이거 범죄예요.”

“아, 그래?”

협박도 안 통하는 듯해서 급하게 외쳤다.

“이상한 짓 하지 말아요!”

“이상한 짓?”

“비정상적으로 굴지 말자는 거예요.”

“아?”

도준희는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준희가 수갑을 찬 우예린의 손목을 짐짓 부드럽게 문질렀다. 손놀림은 부드러웠지만 우예린에게 꽂힌 시선은 들짐승처럼 날카로웠다.

그가 중저음의 매끄러운 목소리로 우예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저질러보지.”

‘제정신이 아니야.’

우예린으로서는 도준희의 사고방식과 말투와 그 말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준희가 끼고 있던 검은색 뿔테 안경을 벗었다.

“이따위 안경이나 끼고. 나답지 않았지. 응?”

얼굴에 날카로움이 한층 더해졌다. 그 상태로 씨익 웃었다. 우예린은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경찰서는 집처럼 드나들었는데, 감방은 가본 적 없거든. 한번 볼까? 내가 감방을 가는지 안 가는지.”

그가 우예린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다시 다리가 벌어졌다.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한 도준희를 보며 우예린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신 멀쩡하면 넌 평생 여기 갇혀있을 줄 알아.”

그 말이 그냥 하는 협박 같지가 않아서 우예린은 펄쩍 뛰었다.

“내, 내가 왜 여기에…….”

“그럼 그럴 각오도 없이 대거리를 했어? 나한테?”

가소롭다는 표정에 우예린은 넋이 나갔다.

‘이 사람은 누구야?’

그녀가 좋아했던 도준희는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에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말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나게 했던 남자였다. 그러나 눈앞의 도준희는 아무리 잘생겼어도 말을 걸 용기조차 사라지게 만들었다.

“내가 싼 게 가득 차서 막아도 막을 수 없게 만들어줄게. 언제 어느 곳에 있든 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도록.”

도준희가 속삭이는 소리가 악마의 음성 같았다.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는, 도준희라는 이 남자는 우예린이 전혀 모르는 날것의 사내였다. 그녀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 * *

도준희는 손목에 수갑을 찬 채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우예린을 응시했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 그간 우습지도 않은 짓거리를 하고 연기를 해대었는데, 여기까지였다.

그의 본색을 보자마자 발 빠르게 발을 빼고 도망가려는 우예린. 겁 많은 사슴 같은 여자. 겁이 너무 많아서 답답하게 했던 여자!

‘씨발, 다 집어치워.’

도준희는 우예린의 턱을 잡으며 음습하게 웃었다.

‘이러나저러나 안 될 거라면 지금의 내게 익숙해지게 만들어주지.’

“보지 빨아줄게. 다리 더 벌려.”

덜덜 떨던 우예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뭐…… 뭐를 빨아줘?’

성기를 상스럽게 부르는 단어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듣는 것도 민망하기 짝이 없었고 입에는 올린 적조차 없었다.

교육적으로 엄했던 부모님, 성적으로는 더더욱 올바른 방향으로만 건전하게 접하게 했던 부모님을 생각하자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우예린은 도준희의 명령과 달리 고개를 저으며 다리를 꽉 붙였다. 도준희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쌍꺼풀 없는 눈이 우예린을 날카롭게 직시했다. 우예린은 어쩐지 곧 잡아먹힐 예정인 사냥감이 된 기분이었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치마를 홱 들추었다. 아슬아슬하게 음부를 가리고 있던 치맛자락이 배까지 올라갔다. 도준희는 그 상태로 우예린의 양 발목을 붙잡았다. 한쪽 손목이 수갑에 걸려 있어 우예린은 한 손으로만 도준희를 제지했다.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았지만 도준희가 고개를 들여 노려보자 움찔해서 손에서 힘이 빠졌다. 도준희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입꼬리를 올리자 왼쪽 뺨의 보조개가 훅 파였다.

우예린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준희의 얼굴을 보자 자동 반사적으로 뛰는 심장 탓에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이지나의 말이 맞았다. 잘생긴 남자에게 홀려서 인생 말아먹을 거라는 친구의 말이 결국 맞아들어갔다.

우예린은 소극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도준희가 원하는 대로 말려들면 안 된다는 생각은 확실했다. 말없이 울먹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보다 이상해질 수는 없다.

그녀가 생각하는 잠자리란 수줍은 얼굴로 서로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보면서 조심스럽게 몸을 겹치는 그런 거였다. 이렇게 난폭하고 거친 느낌이 아니라.

애초에 따라온 게 잘못이었다. 더는 죄를 지을 수 없어.

“그래. 힘 더 줘. 내가 들어갔을 때도. 더 맛있겠네.”

우예린 앞에서는 평소처럼 굴면 안 된다는 족쇄를 벗어던진 도준희에게선 천박하고 미친개 같은 본색이 새어 나왔다. 그게 우예린을 더 겁먹게 만들었다.

도준희가 수박을 쪼개듯 우예린의 다리를 양옆으로 벌렸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도준희를 막을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가 결국 쫙 벌어졌다. 우예린의 커다래진 눈을 뚫어져라 보며 도준희가 우예린의 발목을 위로 쭉 들어 올렸다.

이 자세로는 도준희에게 그녀의 부끄러운 곳이 다 보일 것이다. 우예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치스러워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도준희에게서 발을 빼내려는 시도였지만 도준희에겐 움찔거리는 우예린의 성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준희가 혀를 내밀었다. 부러 우예린 보란 듯이 느릿하게 혀를 내밀어 우예린의 성기를 핥아 올렸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광경인데, 우예린은 도준희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알던 지적이고 점잖은 눈빛이 아닌, 질척한 늪처럼 진득거리는 눈빛으로 저를 보는 그에게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도준희의 혀가 우예린의 충혈된 분홍빛 꽃잎을 쭉 빨았다. 강한 자극에 우예린의 엉덩이가 위로 튀어 올랐다. 도준희는 우예린의 발목을 힘주어 잡은 채 혀를 집요하게 놀렸다. 혀를 위로 올려 통통하게 달아오른 우예린의 돌기를 휘감았다.

혀로 긁듯이 위로 올려 발기한 돌기를 입에 넣어 빨았다. 예민한 살점이 자극되는 감각에 우예린은 눈앞이 연신 번쩍였다.

“아, 아앗! 그, 그만, 그만해요! 하으으!”

우예린은 목을 뒤로 젖히고 정신없이 신음을 흘렸다. 도준희는 발목을 잡은 채로 얼굴을 뗐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핥았다. 새빨간 혀가 날름 빠져나왔다.

“네 보지가 빠끔 열려 있어. 이거 너한테도 보여주면 좋겠는데.”

우예린은 해쓱한 얼굴로 고개를 격하게 저어댔다.

“시, 싫어. 싫어요, 싫어요!”

“그렇게 싫으면 나만 볼게.”

도준희가 아쉽다는 듯 얘기했다. 도준희가 더 이상한 짓을 할까 봐 걱정했던 우예린은 저도 모르게 마음을 놓았다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놔 줘요, 그만, 놔 달라구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준희가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녀를 찾아온 건 성기를 찌르는 손가락의 감촉이었다.

“하, 하앗! 뭐 하는 거예요?”

“여긴 박아달라고 하고 있잖아. 무슨 소리야?”

도준희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이런 일에 면역이 없는 우예린을 지독하게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상상도 못 하는 우예린으로서는 도준희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도준희는 손가락으로 꽃잎과 클리토리스를 만지작거렸다. 우예린은 발목이 잡힌 채 엉덩이만 바르작거렸다. 도준희의 움직임이 수상해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성기를 만지며 거길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창피해서 콱 죽어버릴 것 같았다. 문득 도준희가 모양 좋은 입술을 벌렸다.

“아.”

“왜, 왜요?”

도준희가 우예린을 힐끗했다.

“내가 싼 게 나오고 있네.”

“……?”

수 초 후, 그의 말을 이해한 우예린이 발목에 힘을 주어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호리호리한 몸매로 무슨 힘이 그렇게 센지 도준희에겐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아예 몸을 뒤집어 도망가려는 우예린의 발목을 잡은 채 도준희가 몸을 일으켰다.

“아깝게.”

“하, 하지 마.”

“내가 말했잖아. 내가 싼 게 가득 차서 막아도 막을 수 없게 만들어준다고.”

우예린이 눈을 크게 뜨는 동시에 그녀의 질구로 도준희의 두툼한 귀두가 촉촉한 속살을 헤치며 들어왔다. 조금의 유예 없이 단번에 들이닥치는 움직임에 우예린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엎드린 채 헐떡이는 그녀의 위로 도준희가 몸을 맞대었다. 그에게서 도망가기 위해 시트를 긁어모은 우예린의 손등에 뼈가 불거졌다. 그 손 위로 도준희가 손을 덮었다. 큰 손에 우예린의 손이 흔적도 없이 가려졌다.

도준희의 무게를 느낀 우예린이 헐떡였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뺨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매끄러운 피부 감촉에 우예린은 몸을 떨었다. 엉덩이에 닿은 그의 음모가 까슬까슬했다.

단번에 들이닥친 상태로 도준희는 신음 같은 숨을 길게 흘렸다. 하반신에 닿는 우예린의 부드러운 엉덩이 감촉에 기분이 좋았다. 그대로 싸고 싶을 만큼.

“빌어먹게 좋네.”

이를 간 도준희의 입매가 비틀렸다.

우예린은 도준희의 입에서 나온 거친 말투에 뺨이 굳어졌다. 도준희에게 깔려 있자 꼭 인간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몸에 힘을 주어도 엉덩이만 약간 움찔할 뿐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돌연 도준희가 신음을 흘렸다.

“말 잘 듣네. 엉덩이에 힘도 주고.”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우예린은 겁에 질렸다. 그녀의 안에 들어온 도준희의 성기가 점점 커지는 게 느껴졌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였던 것이 그를 자극한 게 분명하다.

‘어떡해, 어떡해. 도망가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어.’

답답함과 속상함에 훌쩍이는 우예린의 눈가에 도준희가 입을 가져다 댔다. 입술로 지분거리자 눈물이 입술에 묻어나왔다. 혀로 할짝인 도준희가 짤막하게 말했다.

“짜.”

“…….”

“이런 꼴을 안 보려고 했었던 건데.”

“……흑.”

“그래도 익숙해져야 할 거야, 우예린.”

이를 악문 도준희의 잇새에서 소름 끼치는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예린의 귓가에 솜털이 파르르 돋아났다.

“엉덩이에 힘 계속 줘봐.”

도준희가 색스러운 목소리를 우예린의 귓가에 흘려보냈다. 우예린이 그를 피하려고 얼굴을 돌리자 도준희가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붙잡아 돌렸다.

“엉덩이에 힘줘.”

명령조에 우예린이 반사적으로 하체에 힘을 주었다. 도준희에게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은 잘 듣지. 맛있어, 우예린.”

도준희의 목소리는 낮고 강압적이라 귀에 똑똑히 박혀왔다. 무서워, 무서워. 우예린이 훌쩍였다.

“씨발, 그동안 왜 참았는지 아까울 만큼 존나게 맛있다고.”

좋다고 말하면서 도준희의 음성에는 은근한 분노가 깃들었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손을 꽉 쥔 채 허리를 움직였다. 엎드린 우예린의 몸을 꽉 누르며 하반신만 움직여댔다. 뾰족하고 단단한 성기가 우예린의 질구를 쑤시듯 박아댔다.

퍽, 퍽! 엎드린 탓에 더 좁아진 질구를 쑤시는 도준희의 성기는 성이 난 기세로 우예린의 질을 파헤쳤다.

도준희의 성기를 피할 수 없는 우예린은 도준희가 쑤셔 박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뒤로 물러날 수가 없으니 충격이 그대로 흡수되는 기분이었다.

“앗, 앗, 하악!”

도준희가 쑤시는 대로 비명과 신음을 정신없이 흘리며 시트 위에 얼굴을 묻었다. 손은 도준희에게 잡힌 채 몸은 도준희의 몸에 눌려서 우예린은 자유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틈이 없었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손을 꽉 붙잡았다. 얼굴을 시트에 파묻은 우예린의 귀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성기는 집요하게 우예린의 내부를 파헤쳤다.

처음에는 짧게 들어갔다가 나온 도준희의 성기가 점점 더 우예린의 안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송곳이 몸을 쑤시는 것 같았다. 우예린은 신음을 흘리며 이 시간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왔다 갔다 하는 것만도 빠듯했었는데.

“네 안이 점점 넓어지네. 내 자지 모양에 맞게 만들어져서, 쑤실 때마다 더 깊이 들어가잖아.”

도준희가 천박하게 속삭였다. 우예린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점점 이상해졌다. 두껍고 단단한 귀두가 마침내 우예린의 질 가장 깊숙한 곳을 찧었다.

“헉!”

충격 어린 신음을 흘리며 눈을 크게 떴다. 생리적으로 고인 눈물이 뚝 떨어졌다. 도준희가 뜨거운 혀로 눈물마저 핥아 삼켰다.

퍽!

또다. 또다시 그의 귀두가 내부를 찧었다. 더 이상 깊은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깊은 곳을 찔린 것 같았다.

자궁의 입구를 두드리는 것 같이, 도준희가 그 부분을 집요하게 찔러넣었다.

퍽, 퍽, 퍽!

쉴 틈 없이 찔러대는 성기의 움직임에 우예린은 기분이 이상하게 변했다.

‘어, 어떡해. 느낌이 너무 이상해!’

도준희가 솜털이 돋아난 우예린의 목덜미를 입술로 물었다. 혀로 목덜미를 핥고 이빨로 씹어댔다. 우예린은 통증과 동시에 강한 쾌감을 느꼈다.

퍽!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도준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엉덩이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도준희가 엉덩이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퍽! 들어와 우예린을 찧었다. 눈앞에서 별빛이 튀었다.

“아아아악!”

우예린은 낯선 목소리가 새된 교성을 지르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목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이 높고 야한 목소리였다.

“큿!”

뭔가를 분출한 것 같았다. 아랫배에 고였던 뜨거운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다리 사이에서 축축한 것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한차례 폭풍이 몸을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간 탓에 기진맥진했다. 우예린은 침대 위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후…….”

도준희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우예린은 힘이 빠져서 눈을 깜박였다.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온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몸 위로 무게를 실었다. 우예린은 그 무게를 기분 좋다고 느끼는 스스로가 믿을 수 없었다. 다시 굳어진 우예린의 귓가에 도준희의 쉰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네 질이 내 좆을 잘라먹으려고 했어.”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목소리에, 말투에, 말의 내용. 우예린은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만족스럽게 풀어졌던 도준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준희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성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생생해서 우예린은 몸을 떨었다.

‘이제 끝났나 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아찔한 탈력감이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우예린은 그저 숨만 내쉬었다. 도준희의 손이 다리 사이에 닿기 전까지는.

깜짝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도준희가 긴 손가락으로 우예린의 엉덩이 골을 타고 내려와 질구를 지분거렸다.

“뭐, 뭐 하는…….”

우예린이 간신히 고개를 들어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도준희를 돌아보았다. 도준희가 손끝으로 질구를 쿡 찔렀다. 움찔하는 우예린의 발목을 붙잡았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설마.’

우예린이 눈을 크게 뜨고 다리를 벌리는 도준희를 응시했다. 우예린의 몸을 옆으로 돌린 도준희가 그녀의 발목 하나를 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우예린의 무릎이 도준희의 가슴에 닿았다. 도준희가 한쪽 입꼬리를 들었다. 뺨의 보조개가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얼핏 보면 소년처럼 청량한 느낌의 보조개가 지금만큼은 지옥으로 가는 버튼처럼 느껴졌다.

우예린에게 익숙한 그의 얼굴. 신비스럽고 다정했던 도준희의 얼굴이 그녀가 보는 사이에 변해갔다. 입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리고 미간에 주름을 잡은 도준희는 굶주린 맹수 같았다.

“난 아직 안 끝났는데?”

도준희가 태연하게 건넨 말에 우예린은 혼비백산했다.

‘악마야, 악마라고.’

다시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시트를 쥐어뜯었다. 힘이 없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르작거리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도준희가 빳빳하게 일어선 성기를 손으로 훑었다.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지. 도망가려고 할수록.”

우예린의 질구에 성기를 넣으며 도준희가 그녀의 얼굴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넌 아무 데도 못 가.”

서늘하고도 색스러운 목소리에 우예린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났다.

‘뭐야. 왜 이렇게 된 거야.’

첫사랑을 만나 기뻐했을 따름인데. 그녀답지 않았던 일탈의 대가를 받는 걸까.

“왜, 왜 이러는 거예요. 갑자기. 안 그랬잖아요.”

훌쩍이는 우예린에게 도준희가 말했다.

“네가 내 눈에 띄었잖아. 마사지 샵 앞에서.”

우예린은 움찔 놀라서 도준희의 눈을 응시했다. 도준희의 까만 눈이 우예린을 보며 반짝였다.

“그렇게 보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병신같은 짓을 하고 있었겠지.”

“…….”

“차라리 잘됐어.”

도준희의 말에 우예린은 울음을 터뜨렸다. 무슨 말인지 완벽히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억울했다.

‘일탈은 단 한 번뿐이었는데.’

대학까지 열심히 살다가 취업 기념으로 한 번 눈을 돌린 것뿐인데.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지. 우예린은 꼭 악마에게 잡히는 벌을 받는 것 같았다.

도준희가 다시 허릿짓을 했다. 그 후로도 한참, 우예린은 목이 쉬도록 신음을 흘렸다.

* * *

우예린은 눈을 떴다. 손목이 아프다 했더니 시야에 거무튀튀한 쇠가 보였다. 눈을 번쩍 떴다. 손목에 찬 수갑이 눈에 들어오자 잠기운이 확 달아났다.

손목이 아픈 건 수갑에 쓸린 탓이었던 듯 불그스름한 자국이 손목에 띠처럼 둘려 있었다. 섹스를 하면서 손을 휘저은 탓에 흔적이 더 깊어진 듯했다.

수갑 때문에 손목이 내내 들린 상태였던 것도 상처를 내는 데 한몫했다. 다른 손으로 수갑을 찬 손목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뻐근하고 쓰라렸다.

“으읏…….”

신음을 흘리다가 깜짝 놀라 방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도준희는 없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까지 등에 붙어있었던 도준희였는데.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내내 붙잡고 있었던 발목은 손자국이 나있었다. 아래가 뻥 뚫린 기분이었다. 우예린은 엉거주춤 벌려져 있던 다리를 오므렸다.

도준희는 정액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그의 말을 무서울 정도로 충실히 지켰다. 방금 전까지 그가 안에 있었던 것처럼 구멍이 계속해서 뻐끔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손가락을 넣어도 저항 없이 쑥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려웠다. 우예린은 아래에 힘을 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구멍을 좁히려는 노력이었는데 돌연 울컥, 하는 느낌과 함께 액체가 아래에서 흘렀다. 내려다보자 하얀 정액이 허벅지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예린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첫사랑인 도준희를 만나 기뻤었는데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던 게 착각이 아니었다.

도준희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으어어엉, 으어어엉. 서럽고 무서워서 계속 눈물이 났다. 그런 한편 머릿속으로는 오늘이 며칠인지를 셈했다. 어제가 금요일이었다. 다행이다.

다리를 움직이고 어깨를 돌려보았다. 몸이 크게 아프지 않은 걸 보니 출근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아 한숨을 쉬었다. 도준희가 가방을 어디로 숨겼는지,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흐어어어엉. 우예린은 어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서럽게 울었다.

달칵.

문이 열리고 도준희가 들어왔다. 품이 넓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편한 차림이었다. 움찔 놀랐던 우예린은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도준희가 들어오는 걸 바라보았다. 다른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쟁반을 들고 들어온 도준희가 침대 위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우예린은 침대 헤드에 찰싹 붙은 채 쟁반을 바라보았다. 죽과 약봉지로 보이는 게 있었다.

“밥 먹어.”

도준희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녀는 제 몸이 실오라기 하나 걸쳐있지 않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분명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도준희가 가져다 버렸는지 방 안에 그녀의 옷은 없었다.

‘이걸 보고 도준희가 또 흥분하면 어떡하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도준희가 삽입을 강행했다는 것을 떠올리자 덜컥 두려움이 치밀었다. 다행히 도준희는 어젯밤과 달리 잡아먹을 것처럼 거친 눈이 아니었다.

언뜻 무심해 보이는 눈. 우예린은 긴가민가하며 그를 조심스레 살폈다.

“밥 먹으라니까.”

도준희의 눈썹이 치솟았다.

‘너 같으면 이 상황에서 밥이 들어가겠니?’

우예린은 차마 그렇게 쏘아붙일 수가 없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소고기 죽이었다. 아플 때마다 사 와서라도 꼭 챙겨 먹는 음식. 좋아하는 죽이었지만 입맛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너 이 죽 좋아하잖아. 먹어. 어제 내내 아무것도 안 먹었어.”

“…….”

우예린이 내내 고개만 젓자 열이 받은 듯 도준희의 미간에 주름이 갔다.

“아니면 내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또 먹여줄까?”

우예린이 깜짝 놀라서 떨리는 입을 열었다.

“정말…… 모르겠어. 나한테 왜 이래요. 아니,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예요? 도준희,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요. 왜 자꾸 이상하게 굴어요?”

도준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우예린은 긴장이 되어서 그의 입술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게 도준희의 본모습이라면 왜 그가 이런 성격이라는 걸 몰랐는지, 왜 갑자기 제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지, 하나하나 이해 안 가는 것투성이였다.

게다가 그가 자신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학생 때와 달리 옷 스타일도, 헤어스타일도 달라졌고 화장도 하기 시작했으니 못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알고 있었던 것 같지 않은가. 그럼 모르는 척을 했다는 말이다.

‘왜 그런 건데?’

우예린은 가슴을 가리려고 애를 쓰면서 답을 기다렸다. 도준희가 비딱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넌 나한테 왜 이러는데?”

우예린은 눈을 크게 떴다. 생각 못 한 대꾸였다. 도리어 질문을 하다니. 그것도 나한테 왜 이러냐고? 그게 무슨 말이야.

우예린은 당황해서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내가 뭘 했다고요?”

“몸 만져달라면서 순수한 나를 흥분시키더니, 사귈 때는 연락이 줄어 사람 걱정시키고, 마지막에는 네 맘대로 헤어지자고 했잖아.”

“…….”

“넌 나한테 왜 이러는데?”

우예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준희의 별명이 ‘미친개’라는 건 전혀 알지 못하는 우예린이었지만 몰랐음에도 도준희가 미친놈 같아 보였다.

“내가 언제 그랬어요. 몸 만져달라고 했던 건, 마사지 샵이라서 그런 거였잖아요.”

“그럼 근육이나 풀어달라고 해야지, 가슴 만져달라고 한 건 너였잖아.”

“나 그런 말 안 했어요!”

“정말?”

도준희가 눈을 치켜떴다. 당당한 표정에 움찔한 우예린이 머릿속을 뒤져보았다. 분명 처음에 가슴을 만져달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흥분한 중간에 뭐라고 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확신하지 못하는 우예린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자 도준희가 피식 웃었다.

“내 말이 맞지?”

“사귀는 건 당신이 멋대로…….”

“그래서 내가 사귀자고 협박했어?”

도준희가 다리를 꼬며 물었다.

‘그런 건 아니었는데.’

우예린은 답을 할 때까지 집요하게 굴던 도준희를 떠올렸다.

“거의, 협박이었잖아요.”

“나는 협박한 적 없는데. 내가 욕을 했어, 너를 때리기를 했어. 뭘 했어?”

“도준희 씨!”

“처음인 나에게 상처를 줬던 건 네가 먼저야, 우예린.”

침대맡에 딱 몸을 붙인 우예린에게 도준희가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도준희의 말에 황당했던 우예린은 가까워진 그를 보며 몸을 움츠렸다.

도준희는 눈을 내리깔았다. 우예린도 고개를 숙였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준희가 사납게 입꼬리를 올렸다.

“……밥 먹어. 좋은 말로 할 때.”

꼭 도준희가 때릴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았던 우예린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도준희가 숟가락으로 죽을 뜬 채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먹여주려고?’

놀랍기는커녕 두려움이 증폭한 우예린이 입을 딱 붙였다.

“먹어.”

도준희는 다른 말 없이 한 마디만 했을 뿐이었는데, 우예린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도대체 캠퍼스를 떠났던 사이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설마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까. 명령하는 말투가 어떻게 이리 잘 어울릴 수가 있는지 불가사의다.

먹기 전까지는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그를 보며 마지못해 입을 벌렸다. 도준희가 죽을 그녀의 입 안으로 날랐다. 적당히 따뜻한 죽이 우예린의 말라붙은 입 안을 촉촉이 적셨다.

우예린이 우물거리며 죽을 먹자 지켜보던 도준희가 다시 죽을 떴다. 우예린은 그의 눈치를 보며 죽을 다시 받아먹었다.

죽을 나르는 손등에는 푸른 핏줄이 서있었고, 그건 자신이 종종 넋을 보고 봤던 그때처럼 섹시했지만 우예린은 다른 때와 달리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죽 한 그릇을 다 비워갔다. 도준희가 약봉지를 쟁반 위에 엎었다. 약봉지 안에서 연고와 반창고가 떨어졌다. 뭘 하려나 했는데 도준희의 손이 수갑을 찬 손목에 닿았다. 손끝이 닿자마자 그 부분이 화끈거려서 깜짝 놀랐다. 격하게 손목을 뒤로 물렸다.

찰캉!

수갑이 행거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찔끔 놀란 우예린이 눈치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눈썹을 치켜올린 도준희가 약을 쟁반 위로 던졌다.

“바르든가 말든가.”

“…….”

“챙겨줘도 지랄이네.”

빈정이 상한 얼굴이었다.

안 챙겨줘도 돼요.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일어나는 도준희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이거, 수갑 풀어줘요. 출근해야 해요.”

도준희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고개를 삐딱하게 까딱였다.

“왜?”

“왜라뇨? 출근……해야 한다니까요.”

“아, 출근.”

도준희가 이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안 돼.”

“……네?”

“귀가 막혔어? 안 된다고.”

“왜요?”

우예린은 너무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다급하게 대꾸했다. 도준희에게 말 한마디 걸기 무서웠으나 답답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떻게 들어간 회사인데. 어떻게든 출근하고 다시는 도준희와 엮이지 않을 거다. 문자도 전화도 다 차단하고 집은 이사를 갈 거다. 내심 생각하며 도준희를 간절하게 올려다보았다.

도준희는 일어선 채 우예린을 비딱하게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안 돼.”

“그럼 언제 보내줄 건데요?”

“네가 내게 익숙해질 때까지.”

그때가 언제인데!

도준희는 그 말만 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무정히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우예린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턱에 고이더니 뚝 떨어졌다.

“이게 뭐야.”

침대에 엎어진 우예린은 엉엉 울었다. 발에 도준희가 던져둔 연고와 반창고가 걸렸다. 신경질이 확 나서 약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창, 차앙, 창.

약과 쟁반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쟁반이 떨어지는 소리가 꽤 컸다. 우예린은 흠칫해서 방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잠했다.

도준희가 뛰어 들어올까 봐 겁을 먹었던 우예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 다시 눈물이 났다. 결국 침대 위에 엎어져 한참을 엉엉 울다가 진이 빠져서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니 사방이 어두웠다. 침대맡에 있는 스탠드 하나만 켜진 상태였다. 우예린은 시트에 뺨을 댄 채 눈을 깜박였다. 앞이 잘 안 보였다.

손을 들어 눈두덩을 만졌다. 평소보다 두 배는 부어오른 상태였다. 뜨겁기까지 하다. 펑펑 울고 난 다음이 으레 그렇듯 머리가 멍하고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켰다. 잔뜩 울어서 그런지 목이 말랐고 소변도 마려웠다.

눈물로 다 빠져나갔으면 됐지. 소변은 왜 마렵고 난리람.

우예린은 손목에 채운 수갑을 힐끗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소변이 마렵다고 인식을 하니 배뇨감이 급증했다. 문을 힐끗했다. 도준희는 들어올 낌새가 없고 그렇다고 소변이 마렵다고 도준희를 부르는 건 무서웠다.

수갑에서 손목을 빼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영 소득이 없었다. 배뇨감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여기서 소변을 누면 어떡하지. 끔찍한 상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낑낑거리며 손을 빼려 했지만 손목은 더 쓰라리기만 했다. 아파서 손목을 손으로 쥐었다가 끈적끈적한 감촉에 깜짝 놀랐다.

“……뭐야?”

손을 들여다보았다. 스탠드 불빛에 비친 손가락이 번들거렸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 냄새, 감촉. 연고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발로 차여 바닥에 나뒹굴었던 연고가 사라져 있었다. 연고뿐만이 아니라 쟁반과 반창고도 없었다.

수갑에 쓸려 상처가 났던 손목에 연고가 가득 묻은 상태였다. 혹시 몰라 발목도 바라보았다.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우렁 각시가 들어온 게 아니라면 누가 했는지는 빤하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냐면 전혀 아니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벌컥 화가 났다. 우예린은 기가 약하고 마음도 여린 편이었지만 인과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손목이 쓰라린 것, 발목이 시큰거리는 것, 배뇨감이 있는데도 당장 화장실로 달려나가지 못하는 것. 그 모두가 도준희 때문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못되고 나쁘게 굴면서 자는 사이에 약 같은 걸 발라놓다니.

‘이러면 누가 좋아할 줄 알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무섭게 굴려면 계속 무섭게 굴란 말이야.’

차라리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할 텐데. 우예린은 도준희의 머릿속과 의도를 조금도 알 수가 없어서 초조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벌써 토요일 저녁이었다. 내일이면 일요일이다. 그다음 날은 월요일이다. 회사에 갈 날이라는 것이다.

‘이러다가 회사에 결근하고 평판이 나빠지고 잘리기라도 한다면…….’

우예린은 막막하고 초조해서 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계속 연락이 없으면 회사도 부모님도 이상한 걸 깨닫고 신고를 할 테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일상에 변화가 생기기 전에 모든 걸 원래대로 돌리고 싶었다.

심각하게 생각하던 우예린은 다리를 덜덜 떨었다. 허벅지에 불편하게 힘이 들어갔다. 다리를 배배 꼬던 우예린은 급기야 무릎을 꿇었다. 배뇨감이 심해진다. 머릿속을 꽉 채웠던 복잡한 걱정들은 가장 기본적인 생리 욕구에 먼지처럼 하늘거렸다.

“도, 도준희 씨…….”

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도준희 씨. 호칭이 이상하다. 그가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면 선후배 관계라는 것도 알고 있다는 거다.

대학생 때는 딱히 그를 부를 일이 없었다. 보통 나이 많은 후배에게는 오빠라고 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를 그렇게 부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도준희이…….”

결국 호칭을 정해서 불렀다. 문은 잠잠했다. 우예린은 입술을 깨물고 배뇨감을 참았다. 5분, 10분, 시간이 지났다.

마침내 소변으로 아랫배가 꽉 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참기가 힘들어지자 머릿속이 마비가 되었다. 상황에 대한 혼란도, 두려움도, 회사에 대한 걱정도 하나씩 사라져갔다.

여기서 싸면 안 된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꽉 채웠다. 끝까지 참고 싶었지만 배뇨감이 절정에 달하자 우예린은 서둘러 입술을 열고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도준희!”

달칵.

문이 열리고 도준희가 들어왔다. 우예린은 반가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도준희는 어처구니없게도 검은색 파자마 차림이었다. 아주 편안해 보였다. 방으로 들어온 도준희는 우예린의 이상한 자세를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우예린은 무릎을 꿇은 채로 주먹을 쥐어 침대 시트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소, 소변. 소변이 마려워요.”

우예린이 울먹였다. 도준희는 미처 생각 못 했다는 듯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싸고 싶으면 말을 했어야지.”

“말을 할 틈을 줬어야죠!”

우예린은 초조함과 분노가 합쳐져서 빽 소리를 질렀다. 도준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예린은 스스로 내지른 비명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곧 얼굴이 창백해졌다. 쌀 것 같았다.

“화장실이요, 화장실. 얼른요.”

우예린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애원했다. 잠깐 멈추어 서서 우예린을 바라보던 도준희가 밖으로 나갔다.

‘이대로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깜짝 놀란 우예린이 애절한 목소리로 도준희를 연거푸 불렀다. 곧 방 안으로 다시 들어온 도준희가 가까이 다가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수갑의 열쇠 구멍에 넣었다. 곧 약간의 쇳소리와 함께 수갑이 풀어졌다.

우예린은 벌떡 일어나려다가 힘이 풀릴 것 같아 엉거주춤하게 멈추었다. 울먹이는 우예린을 도준희가 홱 안아 올렸다.

깜짝 놀란 우예린이 도준희의 목을 껴안았다. 도준희는 우예린을 안은 채로 화장실로 향했다. 우예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화장실까지 같이 들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오줌 싸는 걸 보고 즐거워한다는데. 나한테 그런 거를 시키면 콱 죽어버릴 거야.

극단적인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데, 도준희가 우예린을 화장실 내부로 들여보냈다. 멍해진 우예린이 돌아보자 눈썹을 치켜올린 상태로 말했다.

“싸고 나와. 허튼짓하면 오늘 내내 구멍이 닫히지 않을 줄 알고.”

‘어떻게 협박도 저렇게 저질스럽게 하지?’

우예린은 닫힌 화장실 문을 보며 황당해졌다. 안으로 들어와 변태 같은 짓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스스로가 울적했다. 우울했던 우예린은 배를 찌르기 시작하는 배뇨감에 얼른 변기로 달려가 앉았다.

잠시 후, 일을 마친 우예린은 일어나서 화장실 문을 열려다가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에 이마를 댔다.

나가기 싫다. 나가면 도준희가 있겠지.

어제부터 새벽까지 떨어지지 않았던 도준희로 인해 아래가 헐렁거리는 느낌이 들어 기함을 했다. 제 기능을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은 성기에 손가락을 넣어 보며 얼마나 안심했는 줄 모른다. 정말 도준희의 성기 크기대로 맞추어져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어떡할까 걱정했던 만큼 마음이 놓였다.

우예린은 손목을 바라보았다. 수갑이 풀린 손목은 가볍고 자유로웠다.

이대로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상태로 있으면 안 돼. 우예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집은 전에도 와본 적이 있다. 다행히 나가거나 내려갈 때는 카드 키가 필요 없는 집이니까, 도준희에게 들키지 않고 나가면 될 것이다.

우예린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녀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고민스러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꼴로 나갈 수는 없으니까.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옷걸이에 샤워 가운이 걸려있다. 우예린의 푸르죽죽했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얼른 가운을 꿰입었다.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도준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소리 없이 한 발을 내디뎠다.

핸드폰을 챙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거 찾다가 도준희에게 걸리면 더 큰일이니까. 일단 핸드폰은 버리고 가자. 몸 빠져나가는 데에만 신경 쓰는 거야.

긴장해서 입 안이 말랐다. 심장 뛰는 소리가 밖에 들릴까 봐 걱정이었다. 우예린은 가운 옷깃을 꽉 잡은 채 조심조심 걸음을 떼었다. 도준희는 방에 없었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이 방에서 현관문까지는 일직선이었다.

방문을 연 뒤에는 곧장 전속력으로 뛰어서 현관문까지 도착하는 거다. 그리고 바로 도어 록의 열림 버튼을 누르고 뛰쳐나가는 거야.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하며 방문 가까이 다가갔다. 시트 위에는 지긋지긋한 검은 수갑이 놓여있었다. 몸을 부르르 떨고는 수갑에서 시선을 뗐다.

문고리를 붙잡았다. 여기가 제일 위험하다. 이 조용한 밤중에 문이 열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게 날 수가 있으니까.

신중을 기하면서 문을 느리게 열었다. 다행히 누가 달려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열었다. 숨도 크게 못 쉰 채 몸이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만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한 걸음 디뎠다. 뛸 준비를 하고 고개를 든 순간. 고개를 든 채로 굳어졌다. 널널한 파자마 바지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도준희가 비딱하게 서있었다. 심장이 철렁했다.

“뭐 하냐?”

도준희가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예린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굳었다. 도준희가 문을 열어젖히고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어깨와 팔뚝이 살짝 스쳤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도준희가 침대로 걸어가는 소리가 났다. 우예린은 그 순간 엄청난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현관문이 저기 보였다.

‘어떻게든 전속력으로 뛰면 도준희에게 잡히지 않고 도망갈 수 있지 않을까?’

우예린은 공부를 할 때도 계획과 목표를 명확히 짜는 편이었다. 늘 성공적으로 목표한 계획을 소화했다. 그건 우예린이 엄청나게 성실하거나 똑똑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현실성 있는 계획만 짰고 스스로의 능력과 한계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무지막지한 유혹이 그녀를 잡아끌었지만 그녀는 결국 현관문에서 시선을 돌리고 눈을 꽉 감았다.

‘……못할 것 같아.’

주춤 몸을 돌려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준희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우예린은 다 죽어가는 짐승처럼 느린 걸음으로 도준희에게 다가갔다.

도준희는 아무 말 없이 우예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곧이라도 이빨을 들이밀 것처럼 사납다. 짐승 같은 시선에 우예린은 도망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망가지 않고 돌아왔으니 얼버무릴 수 있다. 도준희도 그녀가 한 생각을 모를 터였다. 문을 열었던 건, 목이 말라서, 아니면 당신을 찾으러 간 거였다고 말하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도준희는 우예린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예린은 눈치를 보다가 손목을 내밀었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손목을 힐끗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다시금 수갑이 채워지자 우예린은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약도 발라주고 죽도 챙겨주고 하는 거 보니까. 생각보다 인정은 있는 사람 같아. 저, 적어도 죽이려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혹시 잘만 말하면…….’

머리를 굴렸던 우예린은 도준희가 발목을 잡아 벌리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다리를 벌린 채로 그녀의 음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뭐 해요!”

튀어 오르려던 우예린을 강하게 내리누른 도준희가 귀찮은 듯 눈썹을 찌푸렸다.

“뭘 하긴. 허튼짓하면 각오하라 했잖아.”

우예린의 눈이 흔들렸다.

“무슨 허튼짓이요. 그, 그런 거 안 했어요.”

“그래?”

도준희가 씨익 웃었다.

얼버무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예린은 심장이 크게 뛰었지만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샤워 가운을 툭 들추었다.

“이건 왜 찾아 입었는데?”

“부, 부끄러우니까요.”

“지랄. 네 온몸 곳곳을 맛봤는데 뭐가 부끄러워?”

도준희가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우예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사람에게 인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미친놈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

도준희가 혀로 우예린의 성기를 핥았다. 몇 시간이고 그에게 시달렸던 성기는 그 작은 자극 하나만으로도 민감하게 달아올랐다.

퉁퉁 부어 얼얼한 곳에 뜨거운 혀가 닿자 허리가 뒤틀렸다. 우예린은 수갑을 채우지 않은 손으로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만해요!”

“그만?”

“그래요. 그만해요.”

“싫어.”

혀를 내밀어 우예린의 작은 돌기를 날름거린 도준희가 입술을 핥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말이 안 통해. 말문이 막힌 우예린이 말을 더듬었다.

“그럼 어, 언제까지 이럴 건데요.”

도준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보지가 내 자지 모양으로 완벽하게 갖춰질 때까지 그만 안 할 건데?”

도준희가 한 협박 중에 제일 무서운 협박이었다. 반사적으로 침대맡으로 도망가려는 우예린의 발목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도망가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 왜 자꾸 쓸데없는 짓을 하지? 어이없게 멍청하네.”

‘당신한테 멍청하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울컥해서 소리를 지르려던 우예린의 입이 도준희의 입에 막혔다. 도준희가 우예린의 입술을 삼키고 혀를 입 안으로 넣었다. 입술이 우예린의 입술을 느릿하게 빨아들였다. 따뜻한 혀가 입술을 핥고 우예린의 작고 얇은 혀를 휘감았다. 우예린의 목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섹스는 과격하고 거칠면서 키스만큼은 적응 안 될 정도로 부드러웠다. 마치 소중한 것을 대하는 듯. 꼭 상처를 내고 상처에 약을 바르는 그의 이해 못 할 행동처럼. 그 괴리가 자꾸만 우예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 *

다음 날, 우예린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하늘이 무너져라 펑펑 울었다. 도준희는 자기가 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미친놈 주제에, 또라이 주제에!’

도준희가 빠져나간 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 같았다.

빠끔거리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했다. 어제는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이번에야말로 구멍이 안 닫히면 어떡하지.

도준희가 한 말처럼 성기가 그의 성기 모양대로 갖춰진 거면 어떡하지. 질 근육도 단련할 수 있는 걸까. 걱정으로 머릿속이 꽉 찼다.

걱정스러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벌써 일요일이었다. 도준희는 수갑을 풀어줄 생각조차 안 했다. 수갑이 풀어지는 시간은 화장실을 갈 때뿐이었다.

정오가 지나자 우예린은 점점 초조해졌다. 이러다가 정말 회사에 못 가면 어떡하나 싶었다.

욕실의 문이 열렸다. 우예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울었다. 우는 소리가 더 커졌다. 침대에 무게가 느껴졌다. 우예린의 옆에 걸터앉은 도준희에게선 바디 워시 향이 났다.

남은 이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자기는 태연하게 씻기까지 하다니. 억울하고 도준희가 미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만 울어. 지금도 개구리 눈 같으니까.”

짜증이 담긴 목소리에 벌컥 화가 났다. 그러나 회사 걱정이 먼저였다. 베갯잇을 꼭 쥔 채 웅얼거렸다.

“오늘 일요일이에요.”

베개에 막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우예린은 베개를 치우고 또박또박 말했다.

“오늘 일요일이라고요!”

“그래서? 교회 가려고?”

우예린은 어리둥절해졌다.

‘교회? 갑자기 교회는 왜 나온 거지?’

“목사 딸은 어디 가서도 목사 딸이네.”

우예린은 멍해졌다. 부모님이 교회를 운영하시기는 한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교육을 받은 것치고 그닥 신실한 편이 아니지만.

울컥,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왜 이렇게 아는 게 많은 거야.

“솔직히 말해봐요. 나를 알고 있었어요?”

“응.”

우예린은 순간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준희는 이제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요?”

그걸 알면 도준희가 이러는 이유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네가 나 구해줬잖아.”

“내가요?”

우예린은 시트에 이마를 댄 채 움찔했다. 그럴 리가 없다. 불만 보면 화드득 놀라 도망가고, 수영을 못 하니 물에 빠진 사람은 구하기는커녕 같이 빠져 죽지 않으면 다행인 자신이? 싸움이 벌어지면 쳐다보지도 않고 반대쪽으로 도망가는 자신이 누구를 구해?

‘그래, 이거구나.’

우예린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열렬하게 말했다.

“사람 잘못 본 거 같아요. 제가 그랬을 리 없어요. 제가 얼마나 겁쟁이인데요. 남 일에 관심도 없어요.”

필사적으로 주장했지만 도준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나 구했어.”

“언제요!”

“예전에 칼에 찔려서 죽을 뻔했는데 네가 약 사다 줬잖아.”

“……내가요?”

“응, 네가. 쌍화탕이랑 연고랑 밴드 사줬잖아.”

우예린은 입술을 뻐끔거렸다.

‘아니, 칼을 맞았는데 그런 약을 사다 줬다고? 그럴 리가……. 애초에 칼에 맞은 사람을 보지도 못했는데. 게다가 구해줬다니. 그런 약들로 칼에 찔린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우예린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던 중 흐릿한 기억 하나가 그녀를 스쳤다. 고3 시절, 밤중에 싸움을 했는지 어딜 굴렀는지 거리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놔두다가는 입이 돌아갈 것 같아 편의점에 들러 약을 사줬던 기억이 났다. 얼어 죽을까 봐 뜨거운 쌍화탕도 줬었다.

‘그게 설마 도준희였단 말이야? 잠깐만. 그게 도준희라면 어쨌든 나는 호의를 베푼 건데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거야.’

“도, 도움을 줬으면 호의로 갚아야죠. 이게 뭐예요!”

“구해줬으면 책임을 져야지.”

우예린은 어깨를 떨었다. 다시금 확신했다.

‘이 사람은 미친놈이야. 또라이라서 말이 안 통해.’

벌떡 일어나서 도준희를 돌아보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도준희가 손가락으로 우예린의 눈가를 훔쳤다. 우예린은 그 손가락이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었지만 용기를 냈다.

“우리 이제 좋게 끝내면 안 돼요?”

“무슨 소리야?”

“나, 놔주면 안 되냐고요.”

도준희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눈꼬리는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나한테서 도망가려고?”

“도망가려는 게 아니라…… 전처럼 돌아가자는 거죠.”

“전처럼?”

“그래요, 전처럼. 서로 알지 못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발랄하게 말했던 우예린은 서늘한 도준희의 얼굴을 보고 무너지듯 훌쩍였다.

“내가 잘못했어요. 그때 당신 그냥 놓고 갔어야 하는 건데.”

투덜거리는 우예린을 보는 도준희의 눈이 위험하게 가늘어졌다. 그 사나운 기색을 눈치챈 우예린이 움찔했다. 겁먹은 우예린을 바라보던 도준희가 곧 표정을 풀고 그녀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그럴 리 없어.”

“언제까지 이럴 건데요.”

“네가 눈을 감고서도 내 자지 모양을 기억할 때까지.”

도준희가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 와중에 가슴이 떨리는 스스로가 우예린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속은 미친놈이지만. 우예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 나 회사만 가게 해줘요. 내일 월요일이라서 회사 가야 한단 말이에요. 열심히 해서 들어간 곳이에요. 잘리면 안 된다고요.”

말을 하다 보니 속상함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회사?”

도준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예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내내 걱정했던 문제가 도준희에겐 이제 막 떠올린 문제인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을 한 걸까.’

도준희가 무서우면서도 슬금슬금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관둬.”

그 말에는 황당함이 지나쳐 눈물이 쏙 들어갔다.

“뭐라고요?”

“집어치우라고.”

도준희가 우예린의 뺨을 감싼 채 엄지손가락으로 축축하게 젖은 우예린의 눈가를 가만히 쓸었다. 굳은살이 박여 딱딱한 손가락이 여린 살을 자극했다.

눈물이 말라붙은 피부가 쓰라린 건 신경도 안 쓰였다. 그보다는 도준희의 반응이 너무 황당하고 두려웠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응, 난 그게 더 좋은데?”

턱을 괸 도준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뭘 그렇게 만져대는 건지 다른 손은 여전히 우예린의 여린 뺨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도준희의 눈빛은 숨이 막힐 정도로 어두웠다. 질척하고 음습한 눈. 우예린은 높은 산에 오른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누구도 자신을 저런 눈으로 보지 않았다. 꼭 잡아먹힐 것 같은 시선이었다. 뺨을 만지는 손이 아래로 내려가 목을 꺾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진심이다. 도준희는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우예린은 도준희를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이 완전히 증발했다. 설득도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거지 당연하다는 듯이 관두라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을 터였다.

놔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심장이 불안으로 쿵덕쿵덕 뛰었다.

“난 뭐 먹고 살라고요?”

“아, 그게 걱정이었어?”

도준희가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걱정 마. 네 밥 굶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

우예린은 입을 벌렸다. 눈물이 말라붙은 입술이 바들바들 경련했다.

‘미친놈!’

우예린은 떨리는 눈으로 발목에 붙여진 밴드를 바라보았다. 도준희가 붙인 거였다. 입술을 꽉 깨물고 발목으로 손을 뻗었다. 밴드를 떼어내고 구겨서 바닥에 던졌다.

도준희의 눈꼬리가 못마땅하게 치켜 올라갔다.

우예린은 화가 났지만 평생 화를 내본 적이 없다 보니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도준희가 약을 건넸다.

“발라.”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겠다. 도준희의 손에서 연고를 빼앗고는 벽을 향해 던졌다. 탁! 벽에 맞고 튕겨 나온 연고가 바닥을 거칠게 굴렀다.

도준희가 눈을 치떴다.

“미쳤냐?”

“미친 건 당신이에요!”

분노로 머리 한구석이 마비된 걸까. 우예린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목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이, 이런 거 하지 말고 놔줘요!”

초조함이 극에 달한 게 분명했다. 그렇게 무섭던 도준희에게 이런 말도 하고. 소리를 벌컥 지르니까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분노가 일순 증발하듯 사라졌다.

뒤늦게 이성을 찾은 우예린이 움찔하며 도준희를 쳐다보았다. 도준희는 열이 받은 듯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씨발, 네 좆대로 해봐라. 어디 맘대로 되나.”

사나운 기세에 우예린은 눈을 꽉 감았다. 한 대 때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짧다면 짧은 스물다섯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만큼 무서웠다. 눈을 꽉 감고 기다렸지만 주먹이 날아오지는 않았다. 슬그머니 한쪽 눈을 떴다. 도준희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씩씩대다가 벌떡 일어났다.

“씨발.” 하며 방문을 걷어차는 그의 뒷모습을 우예린은 멍한 얼굴로 멀거니 쳐다보았다.

쾅!

문이 거세게 닫혔다. 우예린은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그가 그대로 가버렸다는 데 대한 안도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으로 인한 허탈함과 초조함. 이 상황 자체가 막막해서 어쩔 줄 몰랐다.

우예린은 바닥에 떨어진 연고를 노려보다가 발목을 응시했다. 멍이 옅어져서 시퍼렇던 게 노란색이 되어있었다.

화가 났다. 발을 쾅쾅 굴렀다. 아팠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심해지자 막막함과 초조함이 약간이나마 해소되는 것 같았다.

몇 번 더 발을 구르다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욕설도 중얼거렸다. 손목에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연고를 바른 탓인지 생각보다 쉽게 아무는 것 같았다. 거칠게 손을 휘젓다 이불에 딱지가 비벼져 떼어졌다.

우예린은 엉엉 울었다. 울다 지쳐서는 잠이 들었다. 이미 퉁퉁 부은 눈에 눈물이 말라붙자 따끔거렸다.

눈을 뜨자 앞이 깜깜했다. 이게 뭔가. 눈에 뭐가 얹어져 있어 손으로 끌어내렸다. 다시 눈을 제대로 떴다. 차갑게 젖은 수건이었다. 수건 탓인지 눈이 조금 편했다.

어제 딱지가 다 뜯어져 피가 비쳤던 손목에는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손목을 잡아당기자 철컹! 수갑이 행거에 부딪혀서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손목의 살이 쓰라리고 욱신거렸다.

정말 싫다. 미친놈. 호의는 호의로 돌려줘야지. 범죄로 갚아?

우예린은 기억도 나지 않았던 옛날에 도준희를 만났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것과 지금 그녀가 이런 꼴을 당한 것 사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성립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곧 도준희가 미친놈이라 그녀로서는 생각을 가늠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해.”

창문에는 환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쨍쨍한 걸 보니 정오가 넘은 것 같았다. 일요일 오후였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이제라도 집에 가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월요일에는 사수의 발표 준비를 도와야 했다. 자료 준비는 금요일에 다 해서 다행이었다. 주말로 미루지 않는 습관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다니…….

우예린은 손목에 붙은 밴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화를 내면서 나간 주제에 밤중에는 들어왔다는 건가?

우예린은 도준희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는 고팠다. 손이 닿는 거리에 있는 협탁 위에 죽이 담긴 그릇이 있었다. 역시 그녀가 좋아하는 소고기 죽이었다.

배는 고팠지만 죽 그릇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아무리 기다려도 도준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는 점점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우예린은 창백한 얼굴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정말 회사에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님에게 전화 한 통만 할 수 있다면 마음이 놓일 것 같은데.’

주홍빛 저녁노을이 세상을 물들이고 그녀가 있는 방도 발갛게 변했다. 그리고 몇 분 후에는 저녁노을도 사라졌다. 이제 저녁이었다.

시간을 가늠하던 우예린의 답답함과 초조함도 최고조였다. 머릿속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새장 속에서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새가 된 것 같았다. 그것도 발목에 자물쇠가 채워진 새장이다.

휙 고개를 돌려 수갑을 잡아당겼다. 수갑이 망가지든가, 침대 행거가 떨어지든가. 어떻게든 손을 자유롭게 할 기세로 거칠게 수갑을 잡아당겼다.

한참을 낑낑 애를 쓰며 노력했지만 손목의 밴드만 벗겨졌을 뿐이었다. 손목이 쓰라렸다. 눈물이 눈을 비집고 나왔다.

“싫어!”

울분이 북받쳤다.

“싫다고!”

그곳에서 도준희를 만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런 곳에 왜 간 거야. 그러지 않았더라면 도준희를 볼 일도 없었을 텐데.

그것도 도준희의 얼굴을 보고 그 방에 스스로 발을 들이밀었다. 남자 얼굴 때문에 인생 말아먹을 팔자가 분명했다.

‘이제는 잘생겨도 싫어.’

답답하다, 답답해. 우예린은 울면서 발버둥쳤다. 그 탓에 머리가 침대 헤드에 부딪혔다. 둔탁한 통증에 머리가 흔들렸다. 아팠지만 풀리지 않는 갑갑함에 더 세게 몸부림쳤다.

쾅쾅, 그렇게 열 번쯤 머리가 부딪혔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뭐 하는 거야. 씨발!”

우예린은 손이 잡힌 채로 눈을 위로 올렸다. 도준희였다. 화가 잔뜩 난 얼굴이다. 무서운 표정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움찔 물러서는 대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디 한번 네 마음대로 해보라던 도준희가 왜 이렇게 화를 낼까.

“무, 무슨 상관이에요. 내 몸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목소리 끝이 연약하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도준희를 노려보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도준희가 붙들고 있는 손을 잽싸게 빼내고 보란 듯이 발버둥 쳤다.

네 맘대로 해 보라며 손을 뗐던 도준희는 우예린이 멈추지 않자 마침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시 손목이 잡혔다. 우예린이 눈을 떠서 도준희를 바라보았다. 도준희는 아주 무서운 얼굴이었다.

우예린은 흥, 콧방귀를 뀌었다.

‘왜 저렇게 화를 내? 내 몸 상하는 게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만해.”

도준희가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처음에는 무슨 상관인가 싶어 짜증이 났지만, 점차 이렇게 과격하게 화를 내는 도준희가 의아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안이 벙벙해서 도준희가 화를 꾹 눌러 참는 얼굴을 바라보던 우예린의 눈이 슬며시 가늘어졌다.

“회사 보내줘요.”

“그만두라고 했잖아. 얼마 벌지도 못하는 게.”

울컥.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폄하하자 무서움도 잊고 화를 내려던 우예린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싶어 참아내었다.

또박또박 반복해서 말했다.

“회사 보내줘요.”

“……우예린.”

“안 그럴 거면 손목 놔요.”

하던 걸 계속하겠다는 암시에 도준희가 이를 악물었다. 한참 침묵이 생겼다. 우예린은 도준희가 노려보는 시선을 견디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한참을 우예린을 노려보던 도준희가 마침내 굳게 닫혔던 입술을 뗐다.

“좋아. 그까짓 회사, 보내주지.”

환하게 밝아지는 우예린에게 툭 던졌다.

“그럼 그다음엔?”

그다음에? 우예린은 생각 없이 대꾸했다.

“그야 당연히 내 집에…….”

도준희의 눈이 사나워졌다. 우예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가야 하지 않을까요? 각자 살던 그대로…….”

“하?”

도준희가 눈썹을 꿈틀했다. 이게 아닌가?

‘에이 씨.’

우예린은 혼란스러워하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퇴근하자마자 여기로 올게요.”

이번에는 맞았나 보다. 도준희가 약간 풀어진 얼굴로 섬세한 눈썹을 치켜올렸다.

“널 뭘 믿고?”

“정말이에요. 정말로 끝나자마자 올게요.”

우예린은 난생처음으로 입술에 침을 바르고 진지하게 거짓말을 했다.

오기는 뭘 와. 여기 나가자마자 당장 도망갈 거다. 도준희는 차단하고 아니, 아예 핸드폰은 번호를 바꾸고 집도 당장 이사를 갈 거다. 도준희가 이런 미친놈이었다니.

할 수 있는 걸 다 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도준희는 힘이 바싹 들어간 우예린의 손을 흘끗했다. 화가 난 듯 울컥했던 눈동자가 곧 냉랭하게 우예린을 바라보았다.

“믿어달라는 눈이네.”

“네, 믿어줘요.”

우예린은 두려움에 질렸지만 결코 도준희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도준희가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짝눈이 된 도준희의 시선이 음습하게 느껴진 우예린의 목에서 침 삼키는 목소리가 났다.

“똑바로 쳐다보는 건 마음에 드는데…….”

“…….”

“하필이면 가장 들어주기 싫은 부탁을 하네.”

우예린은 도준희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말이 통했나 싶어 가슴이 설렜다.

“회사에만 보내줘요. 그거면 돼요.”

훌쩍이면서 말했다. 마침내 도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더니 방을 빠져나갔다.

‘어딜 가는 거지?’

우예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도준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도준희의 손에는 갈색 지갑이 들려있었다.

‘갑자기 웬 지갑이지?’

우예린은 훌쩍이던 것도 멈추고 지갑에 시선을 못 박았다. 도준희는 일어선 채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다양한 명함을 꺼내어 우예린의 앞에 좌르륵 늘어놓았다.

우예린은 눈을 깜박이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족히 십여 장은 될 것 같은 건 다 명함이었다. 까맣고 하얗고, 금박에 은박까지. 색이 다르기는 했지만 명함이 맞다.

‘이게 왜?’

의아해서 명함을 좀 더 자세히 훑었다. 그리고 공통점을 발견했다.

[무조건 심부름센터]

[해결할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종로 해결사]

그 외 다른 명함도 말만 좀 다를 뿐, 심부름, 해결사란 단어가 꼭 들어가 있었다.

‘설마.’

우예린이 꼿꼿하게 굳어져서 명함을 내려다보자 도준희가 서늘하게 말했다.

“다 내가 아는 놈들이거든.”

“…….”

“도망간다면 잡아올 거야. 그리고 회사든 뭐든 어떤 이유를 대도 이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줄 알아.”

우예린은 차마 고개를 들어 도준희를 보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허튼짓하면 네 구멍이 닫힐 일은 없을 줄 알아.”

그때와 연장선에 있는 협박이다. 달달 떨며 조심스럽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느새 맞은편에 앉은 도준희가 우예린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는 우예린에게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설사 네 부모에게 일 생겨도 못 나갈 거라고. 알아들어?”

“꼬, 꼭 다시 돌아올게요.”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이사도 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을 다 풀어 찾는다면 다 소용이 없다는 건가. 머릿속이 아찔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테니까.’

우예린의 눈꺼풀이 파르르 흔들리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도준희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우예린은 혹시 도준희가 마음을 바꿀까 싶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 도준희…….”

“왜.”

“손목이 너무 아파요.”

손목을 흔들자 쇳소리가 울렸다. 도준희가 눈을 치뜬 채 우예린을 바라보았다. 우예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과연 먹힐까.’

남이 아프든 말든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 같기는 한데, 아까 나를 막으면서 화를 냈으니까. 이런 행동을 하는데 과연 좋아하는 게 맞는 건가 싶지만…….

우예린은 두려운 마음을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손목이 끊어질 것 같아요.”

“이게 어디서 수작을 부려?”

도준희가 하, 비웃었다.

역시 안 되는 거였어. 설마 내일 아침에나 풀어주는 건 아니겠지.

눈앞이 막막해진 우예린은 머릿속이 까맣게 변했다. 그런데 비웃었던 도준희의 눈이 우예린의 손목에 닿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씨발, 이거 왜 이래?”

도준희가 덥석 손목을 붙잡았다. 우예린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손목은 수갑에 쓸려서 상처가 난 상태였다.

기껏 딱지가 졌던 것도 억지로 뜯겨 상처가 더 흉하게 벌어졌다.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도 손목은 엉망이었다.

“아, 아파요.”

“씨발. 진작 말했어야지.”

도준희는 다소 급하게 수갑을 풀어냈다. 우예린은 자유로워진 손목을 얼른 가슴으로 끌어왔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안 들어줄 줄 알았는데.’

도준희는 못마땅한 얼굴로 우예린의 손목을 바라보더니 손목을 잡았다.

‘다시 채우려나 봐.’

해쓱해졌던 우예린은 도준희가 바닥에 떨어진 연고를 집자 눈을 깜박였다. 도준희가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상처 심해지면 뒈질 줄 알아.”

누가 보면 자기 상처를 헤집은 줄 알겠네. 속으로 투덜거린 우예린은 도준희가 쳐다보자 흠칫, 숨을 들이켰다.

도준희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우예린은 그 얼굴이 자꾸만 불안했다. 회사에 보내주겠단 말을 철회할 것 같았다.

“내, 내일은 일찍 일어날게요. 회사 끝나자마자 돌아올게요. 회사, 여섯 시에 끝나요.”

자발적으로 약속을 하자 도준희의 입술이 미묘하게 비틀렸다. 까만 눈동자가 한층 더 새카매졌다.

“못 믿겠는데.”

그럼 어떻게 하라고.

“나 회사 가야 해요. 내가 학점 얼마나 열심히 땄는지 아, 알죠?”

도준희가 자신을 알고 있었다면 대학 시절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런 생각에 묻자 도준희는 부정하지 않았다.

“안 가면 나 콱, 주, 죽어버릴 거예요.”

“이게 툭하면 협박이야!”

도준희가 버럭 성질을 냈다. 구겨진 얼굴에 우예린은 겁먹은 거북이처럼 목을 집어넣으면서 눈치를 보았다.

툭하면 협박을 하는 건 너지. 나는 지금 두 번밖에 안 했다고! 억울했지만 역시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안 되겠어.”

“…….”

“나갔다 올 거야. 주방에 죽 있으니까 먹고 있어.”

‘뭘 어쩌려는 거지?’

도준희는 가슴 덜컹이게 하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돌연 일어나서 나갔다.

우예린은 도준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거실을 뱅뱅 돌았다.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온 집 안을 돌아다녔더니 허기가 졌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머리가 어지러운 게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죽이 있다고 했지.’

주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소고기 죽이었다. 숟가락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먹기만 하면 되었다. 의자에 앉아서 죽 한 숟갈을 입에 떠 넣었다. 고소하고 맛있다. 내내 굶은 탓인지 위장이 요동을 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고 음식도 맛있구나.’

우예린은 허탈한 깨달음을 곱씹으며 죽을 먹었다.

‘일단 먹자. 먹어야 힘이 나지.’

도준희를 상대하려면 힘이 있어야 했다. 우예린은 숟가락을 쥔 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손목에서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몸으로 상대하는 게 힘들면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봐야지.

원래 죽 한 그릇을 다 못 비우는데, 진이 빠진 몸은 계속 허기가 져서 죽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마지막 한술을 떴을 때까지 도준희는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진이 빠진 우예린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시계를 흘끗했다. 원래 그녀가 자는 시간이었다. 회사에는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내일 회사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지금 자야 한다.

계속 잤으니까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우예린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잠이 깬 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우예린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이상하다. 몸이 무거워.’

눈을 끔벅이는데 위에 뭔가가 있었다. 뚫어져라 쳐다보자 도준희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이제는 도준희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이 떨렸다.

‘뭘 하는 거지?’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서늘하고 이상한 감촉이 하반신을 덮고 있었다.

금속 특유의 서늘한 느낌에 소름이 돋고, 불길한 감각에 머리털이 곤두섰다. 벌떡 일어나자 그녀에게 정수리를 보이고 있던 도준희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흘끗하더니 열쇠를 돌리고 뺐다. 찰칵, 소리와 함께 금속이 허리를 단단하게 죄였다.

도준희가 비켜서자 우예린은 재빨리 그가 꼼지락대던 부분을 바라보았다. 주위가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 않아서, 스탠드 불빛을 조절하여 그 부분에 빛을 비추어 보았다. 불빛 아래 드러난 광경은 가관이었다.

금속 물체는 속옷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우예린이 이상한 물건을 쥐고 풀어보려 했지만, 수갑처럼 잠겨 있어 벗을 수가 없었다. 창백해진 우예린이 입을 뻐끔거렸다.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지? 속옷인가? 아니, 속옷이 뭐가 이래.’

우예린은 도저히 이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도준희의 얼굴과 그가 쥐고 있는 열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성은 저 열쇠가 아니라면 이 이상한 걸 벗지 못할 것 같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을 천천히 알려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거리지?’

“회사 가야 한다며, 얼른 자라.”

“뭐, 뭐 한 거예요?”

다시 금속 물체를 바라보았다. 다시금 소름이 돋아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이게 뭐…….”

“회사는 보내줄게.”

“…….”

“집에선 벗겨줄 거야. 섹스하기에는 불편하니까.”

“이게 뭐냐고요!”

“정조대. 옛날 양키 놈들이 집 비울 때 마누라 바람날까 봐 만든 거.”

정조대!

우예린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정조대라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출력하는 데만도 수 초가 걸렸다. 사용할 일도, 볼 일도 없어 괴리감이 큰 물건이었다.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물체다. 그리고 그녀가 그걸 차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아 우예린은 넋을 잃었다.

도준희는 우예린의 성기를 완벽히 감싸고 있는 정조대를 만족스러운 듯 내려보았다.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자 우예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예린은 정조대와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도준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사람 진짜 또라이 아냐?’

새하얗게 질린 입술을 달달 떨었다.

“그래도 이, 이건 아니잖아요! 흉측하게. 차라리 사람을 붙여요. 감시하라고요! 정상적으로!”

“밖에 내보내면 네가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내가 알 수 없잖아. 사람을 붙여도 사각지대는 존재하니까.”

“누굴 범죄자 취급하는 거예요?”

기가 찼다. 범죄자는 본인인 주제에.

우예린이 황당하게 대꾸하자 도준희는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너는 얼굴 반반한 놈들한테 눈 돌아가잖아.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다른 놈이랑 붙어먹으려면 어떡하려고. 이러고 있으면 창피해서 다른 놈 앞에서 팬티 못 까겠지.”

“나,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이런 거 안 해도!”

“다른 놈에게 눈 돌아가면 그 새끼는 찢어 죽이고 넌 하루 종일 내 정액을 배에 담고 있을 줄 알아.”

도준희의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해.’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제정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 구조였고, 우예린은 그를 이해하는 걸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걸 깨달았다.

다소 늦은 감이 있는 깨달음이었다.

* * *

우예린은 아침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

하얀색 변기 앞에 선 채 우예린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치를 보며 도준희가 집어 던진 샤워 가운을 주워 입었던 터라 겉모습은 멀쩡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다가도 의식되고, 움직이면 더 의식되는 이놈의 요상한 속옷이 문제였다.

조심스럽게 가운을 들추었다. 쇠 특유의 광택이 도는 정조대가 드러났다. 우예린은 결국 눈물을 찔끔 흘렸다.

“흐어엉…….”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보통의 속옷을 제외하고는 생리 속옷 정도만 입어봤던 우예린은 이런 흉측한 물건을, 그것도 명칭 정도만 알고 있던 정조대를 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갔는지 도준희가 문을 두드렸다.

“우예린. 회사 꼭 가야 한다며? 아까부터 들어가서 뭐 해?”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무서운 사람. 아니, 미친놈.’

정조대를 찬 이후로 우예린은 도준희를 미친놈이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속으로 하는 말이긴 하지만.

손등으로 눈두덩이를 비볐다.

달칵달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분명 문을 걸어 잠갔던 우예린은 사색이 되어 문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문은 잘 잠겼는지 열리지는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문밖에서 으르렁대는 소리가 났다.

“쳐들어가기 전에 나와. 문 따는 거 일도 아니야.”

아예 문고리를 없애 버려야겠군, 착각인지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도준희라면 조금만 늦어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우예린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요!”

이런 말 하기엔 너무나도 수치스럽지만.

“소, 소변을 어떻게…….”

“뭘 웅얼대는 거야?”

도준희가 으르렁거렸다.

잠깐 화장실에 있는 것뿐인데, 왜 저렇게 도망치려는 죄수를 쫓는 것처럼 그러는 거야.

우예린은 그를 원망하면서도 당장이라도 문을 따고 들어올까 무서워 얼른 목소리를 키웠다.

“소변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고요!”

결국 말해버리고 말았다.

우예린은 세상이 그녀를 버린 것 같은 표정으로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은빛의 정조대가 반짝였다. 눈물이 다시 솟으려는 순간.

쾅!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우예린은 눈가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단 채 홱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조금 올라간 도준희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우예린을 바라보았다.

‘소리 질러서 화난 건가?’

입을 합 다물고 주춤 물러섰다. 도준희가 한걸음에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젠 때리기까지 하려는 거야!’

“꺄악!”

비명을 질렀던 우예린은 몸이 돌려지자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우예린의 뒤로 다가온 도준희가 그녀의 손을 정조대로 가져갔다.

“여기.”

도준희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귓가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짜증스러운 기색을 뺀 바리톤 목소리는 예전에도 생각했었다시피 몸이 저릴 정도로 부드럽고 매혹적이었다.

“여기 잡고 누는 거야.”

“…….”

“다 큰 게 오줌도 혼자 못 눠?”

말의 내용은 전혀 매혹적이지 않았다. 도준희의 목소리에 홀릴 뻔했던 우예린은 정신이 강제로 차려졌다.

우예린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도준희의 손바닥에 우예린의 작은 손등이 가려졌다. 우예린이 제대로 짚지 못했는지 손가락을 하나 빼내어 질구와 맞닿은 정조대 부위를 문질렀다.

우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부분은 쇠인데 손가락에 닿는 부분의 질감은 보드라웠다.

“거기를 열어서 눠.”

도준희가 가죽으로 된 가운데 부분을 옆으로 벌렸다. 손가락이 얽히면서 도준희의 손끝이 연약한 질구 근처의 살점을 긁고 지나갔다.

소름이 돋아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고 섰다.

“왜 안 눠?”

“…….”

“아, 여자들은 앉아서 누지.”

우예린은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이렇게 잡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소변을 볼 수가 있겠는가.

우예린은 울음보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작은 목소리로 웅얼댔다.

“놔, 놔 줘요.”

“뭐라는 거야? 크게 얘기해.”

“손! 놔 달라구요! 이 상태로 어떻게 볼일을 봐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버럭 소리를 지르지 도준희는 눈을 깜박이다가 손을 놓았다.

“더럽게 까다롭네.”

귀찮음이 물씬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까다롭기는 뭐가 까다로워. 이게 까다로우면 세상에 안 까다로운 사람이 없을 거야. 황당해서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도준희의 어이없는 말에 대꾸를 하기에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오줌보가 급했다. 우예린은 서둘러 변기에 앉았다.

도준희는 멀뚱멀뚱 그런 우예린을 보고 있었다. 우예린은 가까스로 소변을 참으며 말했다.

“왜 안 나가요?”

“그냥 싸.”

“제발 나가요.”

거의 흐느끼듯 요구하자 도준희가 귀찮은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잘 싸는지 확인해주려 했는데 생각해 줘도 지랄이네.”

‘제발 사절이다.’

도준희가 느릿느릿 나가자마자 우예린은 재빨리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런데 잠금장치를 아무리 내려도 탁 걸리는 느낌이 안 들었다. 꼭 망가진 것처럼.

‘설마 도준희가 문을 열 때 망가졌을까?’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다.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다.

결국 우예린은 문이 열릴까 봐 노심초사를 하며 볼일을 보았다. 정조대의 구멍을 벌린 채로.

오늘은 월요일 아침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만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우예린은 제3의 세상에 빠졌다가 탈출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빠듯한 출근 시간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주지 않았다.

도준희와 문을 나서기 전까지 정조대로 실랑이를 한 탓이었다. 우예린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조대 같은 흉물스러운 물건을 하반신에 찬 채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주장에 도준희는 눈썹을 삐뚜름하게 구긴 채 대꾸했다.

“그럼 그만둬.”

우예린은 이제까지 사람들을 잘 상대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소심하지만 꾸준한 설득을 통해 의견이 맞지 않는 상대와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건만 도준희를 통해 그 생각을 수정했다.

미친놈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친놈인 것이다.

어쨌든 우예린은 사회 초년생의 빈약한 지갑을 가지고 평소에는 잘 이용하지 않는 택시를 잡아탔다. 도준희의 집이 원래 그녀의 집보다 회사와 조금 더 가까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사 앞에 도착했을 때는 출근 시간 5분 전이었다. 이것도 30분 전에 출근하는 게 보통이었던 우예린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마음은 급한데 우예린은 곧바로 회사로 들어가는 대신 옆 건물 1층의 약국으로 직행했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약사가 초조한 우예린을 맞아들였다.

“피임약 주세요. 그, 사후에 먹는 거요.”

대형 약국은 시간 때문인지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우예린은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첫사랑과 미친개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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