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7화 (7/460)

7화. 쉬지 않고 팔굽혀펴기 50회가 되면

술병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범윤은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크게 소리치며 탁자를 뒤엎었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탁자와 의자를 걷어차니 다른 손님들이 놀라며 물러나고 몇몇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모두가 움츠러든 건 아니었다.

저만치 벽 쪽에 앉아 있던 근육질의 거한 하나가 나섰다.

“어이, 젊은 친구! 술을 마시려거든 곱게 처마실 것이지, 어디서 행패야!”

거한이 뒤쪽에서 손을 뻗었다. 거칠고 커다란 손이었다.

그가 윤의 어깨를 움켜쥐고 잡아 돌려 주먹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넌 뭔데!”

윤이 몸을 뒤로 도는가 싶더니 팔꿈치로 거한의 턱을 가격했다. 머리가 젖혀진 거한이 머리를 똑바로 하기도 전에 윤이 거한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으윽!”

거한이 배를 움켜쥐고 무너지면서 무릎을 꿇었다.

쿵.

빠르고 깔끔한 솜씨였다. 거구의 몸이 앞으로 쓰러진 다음에야 사람들은 상황을 파악할 정도였다. 순식간에 끝난 뒤 점소이며 사람들이 모여들어 놀라 웅성거렸다.

그중에는 아래층에 있던 두 형제의 호위무사도 있었다.

호위의 표정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었다.

위기도 느끼지 않았다.

건달 두셋 정도는 이공자 범윤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위로서 그의 일은 그저 뒤처리였다.

그 와중 범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싸움이 나고, 탁자는 엎어져 난장판이 되었는데도 동생이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다.

막 울화를 터뜨리려 할 때, 부몽이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형님은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겁니까.”

“뭐?”

“무서운 거잖습니까! 큰형님이 무서운 거잖습니까. 무서워서 곁에는 가지도 못하면서 센 척 그만하십시오. 술과 도박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 뿐이잖습니까.”

“이 자식이!”

윤이 부몽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부몽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봤다.

“시발, 기분 더럽네!”

윤은 멱살을 놓고 욕을 내뱉었다. 그러다 의자를 들어 바닥을 내리치면서 연신 악을 질러댔다.

“내가 놈을 두려워한다고? 그깟놈을? 좋다. 너한테 보여주겠다. 그놈의 가면을 벗겨내주마!”

**

천화서고로 돌아온 범윤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지 않았다.

밤바람 속에 그는 살기등등 모처로 향했다.

그때 후공은 전각의 뒤뜰에서 체력 단련에 한창이었다.

체력은 부쩍 좋아져 최근에는 유지 시간과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간 상태였다.

이제 일반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쉬지 않고 팔굽혀펴기 50회.

쉬지 않고 윗몸 일으키기 50회.

쉬지 않고 쪼그려뛰기 50회.

거기에 기마자세는 반각 유지.

처음 환혼 당시 걷는 것조차 힘겨워했던 것과 비교하자면 상전벽해라 할 만했다.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성에 차는 근력 상태가 아니었기에, 오늘은 새로운 것에 도전 중이었다.

무려 높이뛰기.

최근 송화가 적극적인 조력자로 변신해 여러 도움을 주고 있었다. 송화도 신이 나는지, 안색도 처음에 비해 몰라보게 밝아진 터였다.

“공자님, 더 높이 해볼게요.”

“그러자.”

송화가 긴 막대기로 바닥을 쓸듯 휘저었다.

후공은 걸리지 않게 훌쩍 뛰어올랐다. 처음엔 발목 정도였다가 금세 무릎 높이까지 막대기가 지나가도 발에 걸리지 않고 뛰어올랐다.

붕, 붕, 부웅―

“일곱, 여덟, 아홉……!”

막대기가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움직이고 후공이 거뜬히 몸을 솟구치자 송화가 웃음꽃을 피웠다.

“공자님. 어쩜 이렇게 잘하실까요. 우리 열 개씩 두 번만 더해요.”

“열 개, 한 번만 하자.”

“다리 찢으시게요?

“그것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 볼 생각이야.”

“좋아요.”

다리 찢기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영원히 안 찢어질 것 같던 다리가 이제 제법 각도가 커졌다. 조만간 가랑이가 지면에 닿는 일도 머지않았다.

그렇게 다리 찢기를 마치고는 바로 물구나무를 섰다.

송화가 올라간 발을 붙잡고 후공은 두 팔로 체중을 견뎠다.

시간이 길어지며 팔이 후달려 바들바들 떨었다.

“송화야.”

“공자님, 힘드시면 쉬었다 해요.”

“그게 아니라 누가 오는데?”

“네?”

머리를 아래로 한 채로 후공은 바람을 가르며 달려오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읏차!”

후공이 물구나무를 멈췄다.

다리를 내려 몸을 똑바로 하려다 순간 어지러워 휘청였다. 송화가 얼른 잡아주었다.

“조심하세요, 공자님.”

“고맙다.”

달려온 건 범윤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 앞에 이른 윤은 그 모습을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야아…… 야밤에 두 남녀가 다정하게 지랄들을 하고 있네. 넌 이제 하다 하다 물구나무냐, 이 미친 새끼야,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짓이냐!”

‘저놈이 윤이로군.’

후공은 처음 보았지만 바로 알아차렸다.

천화서고에서 대공자에게 쌍욕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는 청년이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최근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오고 있는 사촌 동생 부몽이 저만치 뒤쪽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다.

‘잘됐다.’

안 그래도 눈에 거슬렸던 터라 손을 봐줄 참이었는데 마침 맞게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송화가 곁에서 소곤거렸다.

“공자님, 이공자예요.”

이미 알고 있음에도 후공은 짐짓 눈을 크게 떴다.

“뭐? 내 아우라고? 그런데 왜 술을 처먹고 망나니처럼 내게 욕을 한단 말이냐?”

“망나니?”

범윤이 발끈했다.

후공이 혀를 끌끌 찼다.

“네 언행을 보아라. 그 꼬락서니가 망나니가 아니면 무엇이냐. 어디든 망나니 하나쯤은 있다더니. 한심한지고.”

“내가 한심해?”

어이가 없어 윤이 웃었다.

“틈만 나면 죽으려고 들어 저승사자가 왔다가 돌아가고, 또 왔다가 돌아가 지금쯤 저승사자와 친분까지 생겼을 놈이, 나더러 한심하다고? 이런 식으로 부몽을 속였던 거로구나.”

“…….”

“넌 언제까지 기억을 잃은 척할 거냐. 애쓴다만 괜한 수고하지 마라. 모두가 알고 있다. 네놈이 그저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바꿨을 뿐이란 걸 말이다.”

“…….”

“모두가 바라는 것이 뭔지 알아? 네놈이 빨리 뒈지는 거다. 혼자. 조용히. 알겠냐, 이 정신병자 새끼야!”

“…….”

“그 표정은 뭐냐? 꼴에 기분이 상한 거냐?”

“너는 아직 듣지 못했나 보구나.”

“뭔 소리야!”

“내가 누구인지.”

“누군데?”

후공은 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명했다.

“송화야, 막대기를 가져오너라.”

“네?”

송화가 멍청하니 쳐다봤다.

누구인가가 따로 있었던가? 또 막대기는 왜 가져 오라고 하시는 걸까. 송화는 이해를 못해 눈만 깜박거렸다. 하지만 대공자가 미간을 찡그리니 움찔해 얼른 막대기를 가져다 건넸다.

후공이 막대기를 허공에 몇 번 휘둘렀다.

붕붕~

더 휘둘러 볼 것도 없이 바로 감이 잡혔다.

비록 나무 막대기에 불과했지만, 천하제일인이 들면 그것이 곧 명검이요 쇠몽둥이였다.

어느덧 팔굽혀펴기 쉰 개를 쉬지 않고 해내는 단계까지 체력을 끌어올리지 않았던가. 초식과 보법을 펼칠 수 있으니, 몽둥이로 개 한 마리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미친. 그걸로 날 패시겠다?”

범윤의 눈이 사나워졌다.

후공은 그런 범윤을 담담히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천재 가문의 두 공자.

자존심 강해 보이는 두 천재의 기세에 공기가 무거워지고, 시간이 정지된 듯했다.

마침 한줄기 밤바람이 후공을 향해 세차게 불어오니, 그의 머리와 옷자락이 신비롭게 휘날렸다.

한데 바람이 세찼다.

“에취!”

재채기를 너무 심하게 한 나머지 그만 휘청이고 말았다.

송화가 말리고 나섰다.

“공자님, 여기까지 하세요. 이공자님은 글공부만 하신 분이 아니에요.”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던 송화가 재채기만으로 휘청이는 모습에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물러나라.”

후공이 엄히 말하고 우측 편 어둠을 향해서도 소리쳤다.

“은신하고 있는 네 명의 호위들도 잘 들어라. 누구도 이 싸움에 나서지 마라. 너희가 내 호위라 해도 중도에 끼어든다면 용서치…….”

“공자님, 좌측이에요.”

송화가 얼른 다가와 속삭였다.

후공이 움찔해서는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나서지 마라!”

범윤은 얼척이 없어졌다.

“미친 새끼가 가지가지 하는군. 좋다. 만약 몽둥이로 날 한 대라도 때릴 수 있다면 널 형님이라고 불러주지. 하지만 그 전에 네 얼굴이 피떡이 될 것은 각오해야 할 거다.”

범윤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동시에 주먹을 문지르니 우드득 뼈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일각 후!

범윤은 피떡이 되었다.

퍼억, 퍽, 퍽!

몽둥이가 쉴 새 없이 윤을 난타했다.

윤은 머리를 감싸 쥐고 땅바닥을 구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소리친 게 있어서 그만하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비명만 질러댔다.

곁에서 송화가 발을 동동 굴렸다.

“공자님, 이러다 죽겠어요.”

“놔라, 나는 이 버릇없는 놈을 오늘 죽여야겠다.”

퍼퍽, 퍼퍽― 퍼퍼퍽―

“형님! 형님!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형님!”

결국, 윤이 살아보겠다고 ‘형님’을 외치며 투항했다.

윤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충분히 말릴 수 있는 송화가 말로만 만류하는 척하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맞아 죽겠다 싶어, 사내대장부의 일언이고 뭐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후공이 그제야 찜질을 멈췄다.

“너는 무슨 생각이냐! 내가 누군 줄 알고 겁도 없이 무례한 것이야!”

“형님, 압니다! 압니다!”

“누구냐!”

“형님은 그러니까…… 천하제일인입니다!”

범윤은 얼마 전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가까스로 기억해냈다. 할아버지는 큰 아이가 이상하다고, 돌아버린 것 같다고 하면서 각별히 대해주라고 신신당부했었다.

후공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네가 미쳤나 보구나. 좀 더 맞자.”

퍼퍽! 퍼퍼퍼퍽!

다시 일각 후.

윤은 이제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미 옷은 흙투성이요, 눈은 밤탱이였다.

입술도 터져 피와 침이 줄줄 흘렀다.

그 앞에 후공이 쪼그려 앉았다.

막대기로 범윤의 어깨를 툭툭 내리쳤다.

“내가 누구라고?”

“형님이십니다. 그리고 가문의 대공자이십니다.”

“앞으로 넌 어찌할 셈이냐?”

“정신 차리겠습니다.”

“술은?”

“끊겠습니다.”

“쉽지 않을 텐데.”

“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오늘부터 정신 차리고 살 생각이란 거지?”

“네, 형님.”

범윤의 대답이 씩씩했다.

그 광경은 어느샌가 모두가 지켜보는 중이었다.

가주 범천부터 의원, 여러 학사와 검수들, 시녀들까지 눈을 비벼가면서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있었다.

지금 누가 누구더러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라고 훈계하고 있는 것인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또 어째서 훈계하는 모습이 이리도 자세가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좋다. 그럼 엎드려라.”

“네?”

다 끝났다 싶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범윤이 얼떨떨해하고, 지켜보는 이들도 왜 그런가 하고 바라봤다.

“엎드려.”

“……네.”

“몇 대?”

“네? 다, 다섯 대 맞겠습니다.”

“일곱 대 가자. 맞으면서 마음에 새겨라.”

스악!

막대기가 팔굽혀펴기 연속 오십 회의 근력에 휘둘려 범윤의 엉덩이에 꽂혔다.

빠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범윤의 고통에 찬 비명이 천화서고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이 밤.

죽기만을 소망하던 대공자가 사람 하나 잡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왜 이리 마음이 뭉클한지 모를 일이었다.

몇몇은 눈물을 흘렸다.

어느샌가 노가주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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