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1화 (21/460)

21화. 개방 거지들은 호기심이 많지

다음 날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안휘북부의 저잣거리마다 무성하게 소문으로 넘실거렸다.

무림인은 물론이고, 강호에 한쪽 다리를 살짝 걸치고 있는 이들, 그 외에 일반인들도 명망 있는 가문과 문파의 흠집에 한마디씩 떠드니 관련된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이 드물 정도였다.

“소문 들었나?”

“자네도 들었나 보군.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 황당해서 생각할 가치도 없던걸.”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구심은 피어나게 마련.

“아니 뭔가가 있어.”

“자넨 지금 서문세가와 청월문이 의심스럽단 겐가?”

“그럴 리가.”

“그럼?”

“허어, 이 사람 생각이란 걸 안 하고 사는구먼. 서문세가와 청월문이 결백해도 다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며 떠들고 있는 판국일세.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볼 만한 곳이 진정 음모의 핵심이란 말일세.”

“듣고 보니 그럴듯하구먼. 이거 이거, 서문세가와 청월문이 열 좀 받겠는걸.”

“두 곳뿐인가. 강호와 거리를 두고 있는 천화서고도 난데없이 불려 나온 격이니 부글부글 끓는 건 만만찮을 걸세.”

소문을 통해 천화서고는 약자가 되었고, 해명이나 음모의 진원지를 밝혀야 하는 건 서문세가와 청월문이 되었다.

“가만, 근데 해결책은 간단하지 않나?”

“응?”

“서문세가의 가주와 청월문주가 천화서고를 찾아가 오해를 풀면 그만이잖나. 그 총관이란 자의 낯짝도 구경하고 말일세.”

“오호, 그럴싸한걸. 거기에 부근 명망 있는 가문들이 중립적인 관점에서 함께한다면 그림도 괜찮겠군. 그러면서 흑단인지 뭔지도 함께 때려잡자고 결의하고 말이네.”

“그렇다니까.”

누군가는 해결책을 떠들고, 다른 누군가는 불구경하듯 일이 커지길 은근히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밤, 저잣거리.

“냠냠, 쩝쩝.”

골목 어귀에서 중년 거지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닭다리를 뜯으니, 그 옆에 있는 젊은 거지가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젊은 거지는 견디기 힘든지 결국 입을 열었다.

“사형, 맛이 어떤가요?”

“최악이야. 내가 살면서 이런 쓰레기 맛이 나는 닭고기를 먹게 될 줄은 몰랐구나. 이런 기분 처음이랄까.”

“그, 그럼 저한테 버리십시오.”

젊은 거지가 헤벌쭉 입을 벌렸다.

중년 거지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허, 내 모름지기 개방의 분타주가 되어서 어찌 그런 흉악한 짓을 할까. 어렵고 힘든 일은 분타주인 내가 해야지.”

냠냠, 쩝쩝.

젊은 거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발놈.”

중년 거지가 눈을 부릅떴다.

“너 뭐랬냐? 방금 나한테 욕했냐?”

“제가요? 무슨 욕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시발놈이라며!”

“사형, 저 아시잖습니까. 저 항상 욕할 때 시발새끼라고 하지, 시발놈이라곤 절대 안 합니다.”

“어…….”

중년거지가 맞아, 그렇지 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내가 착각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냐.”

“괜찮습니다.”

“근데 사제야, 난 이상하게 미안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어. 막 아무나 보이는 대로 패고 싶은 거 있잖아. 막 잡아다가 발로 뭉개고 싶은 그런 거 말야.”

“으어어억!”

중년 거지가 닭다리를 입에 물고 자근자근 밟으니 젊은 거지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죽는다고 난리였다.

그때 휘잉 하며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 덕에 젊은 거지가 위기에서 벗어났다. 휙 몰아쳐 먼지가 몰려오는가 싶더니만, 흐릿함이 가시니 조그마한 체구의 어린 거지가 히히덕거리며 웃고 있었다.

중년 거지가 뼈를 쪽쪽 빨며 반겼다.

“오호, 우리 귀여운 막내가 왔구나.”

“분타주 사형, 제가 뭘 본 줄 아실까요?”

어린거지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어서 말해봐라. 궁금해서 염라대왕 보러 가게 하지 말고.”

중년 거지가 재촉하고, 젊은 거지도 언제 일어났는지 그 곁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소문을 퍼뜨리던 자들이 천화서고로 들어갔답니다.”

“뭣이?”

“왜?”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린 거지가 히히거렸다.

“재밌지 않습니까요?”

“재밌다. 이거.”

“시발, 최곤데?”

젊은 거지의 욕설에 분타주가 웃다 말고 눈알을 부라렸다.

“넌 왜 아까부터 자꾸 욕을 하는 거냐. 의를 숭상하는 우리 개방이 입 냄새가 더럽지, 입에 걸레를 물고 더러운 말을 뱉어내서야 쓰겠느냔 말이다.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욕하지 마라. 알았냐, 이 개호로상놈의 새끼야. 쳐죽일라. 아주!”

이야기는 뒷전이고 당장 사제를 패 죽일 기세였다.

막내 거지가 중간에 끼어들어 말리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 싶게 세 거지는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천화서고가 어떤 곳이냐? 천재 가문인데 사람들이 다 유순해. 무슨 나무나 풀 같은 사람들이란 말이지. 그런데 이런 소문을 퍼뜨렸다는 건?”

“흐흐, 겁먹은 거지요.”

분타주의 말에 젊은 거지가 히죽거렸다.

어린 거지의 눈도 초롱초롱 빛났다.

“소문이 사실이라는 뜻이야. 뿡뿡.”

“그렇지. 서문이 청월이 둘 다 더 이상 허튼 짓 마라. 천화서고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너희놈들이 제일 먼저 의심 받을 테니.”

“캬아, 천화서고답네. 선비야 선비, 역시.”

세 거지가 동시에 낄낄거렸다.

분타주가 기대된다는 듯 손을 비볐다.

“이거 잘하면 대어를 낚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문세가요?”

“멍청아, 그럼 어디겠냐? 퀄퀄퀄일까 봐?”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가.”

“천화서고가 뭔가 하겠지. 거기 대공자도 일전에 보니 사람이 확 달라졌잖냐. 어쨌든 난 천화서고 편!”

“저도요!”

“한 표 추가여요!”

어린 거지도 손을 들었다.

***

천화서고 대공자의 처소.

오후 나절 윤과 부몽은 연신 큰형님 앞에서 분을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형님, 이 기회에 서문세가와 청월문의 민낯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그들에게 철퇴를 가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의로운 척 고상한 척하면서 안으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놈들을 가만둘 순 없습니다. 천벌을 내려야 합니다!”

후공은 소문을 낸 이후 후속조치를 취한 터였다.

발 빠르게 움직여 총관이 빼돌렸던 재산을 회수하는 작업을 진행시켰고, 결과까지 보고 받은 뒤였다.

회수 절차는 나름 순조로웠다.

총관이 서문세가나 청월문 쪽에 맡겨두었다면 회수에 머리가 좀 아팠을 테지만, 그나마 대륙전장에 보관해둔 덕분에 어렵지 않게 매듭지었다.

대륙전장은 총관이 직접 와야 내줄 수 있다며 버티긴 했어도, 대륙전장의 책임자를 천화서고로 불러 총관과 대질시키니 군소리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회수된 건 아니었다.

세 권의 진법 책자와 두 첩의 그림, 청화백자는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진법서는 화공왕정진, 팔황도요수진법, 육양구룡진법.

물론 이 진법들은 후공의 기억에 있고 윤과 부몽도 암기하고 있으니 토씨 하나 빠짐없이 다시 필사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회수는 회수였다.

또한 두 첩의 그림 미인도와 황산예화, 그리고 청화백자도 가치를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두 아우는 강도당한 심정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후공이야 딱히 그림이네 도자기네 별 관심은 없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너그럽게 넘어가 줄 용의가 없었다. 이쯤 해두고 무공 회복에 전념하기에도 찜찜함이 남는 터.

나름 복안도 지니고 있었지만, 일단은 늘그막에 생긴 어린 아우들의 분노에 맞춰 씩씩대며 코 평수를 넓혔다.

“당연하지! 더럽고 추악한 놈들. 이번 기회에 아주 요절을 내버리자! 자, 그럼 어떻게 박살 낼 것인지 각자 의견을 내봐라.”

“…….”

“…….”

당장 쳐 죽이러 갈 것 같던 부몽과 윤이 입술을 앙다물며 씩씩대기만 했다.

눈동자가 바쁘게 또르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방법을 찾고는 있는 모습이었지만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당연한 일.

바보가 아닌 이상, 생각하면 할수록 요절당해버릴 것 같은 것이다. 서문세가의 가주나 청월문 장문인까지 갈 것도 없이, 두 문파에 얼마나 많은 고수가 있을 것인가.

막막한 안색 중에 윤이 무릎을 ‘탁’ 쳤다.

부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님,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군요!”

“아니 무릎이 갑자기 가려워서.”

“그럼 긁으시면 될 걸, 큰형님도 계시는데 이 와중에 낚시를 하시다니요.”

“진짜 가려웠다구. 너도 딱히 생각이 안 떠오르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

“아니요, 저는 엄청난 묘수가 떠올랐습니다.”

“뭔데?”

“무림맹에 신고하는 겁니다.”

듣고 있던 후공은 일순 멍해졌다.

‘허어…… 굉장하구만.’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라고 무림맹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몽이 의기양양했다.

윤도 그럴싸하다 싶은지 눈을 반짝였다.

“오호, 무림맹이 있었지. 근데 아우야, 후공인가 뭔가 하는 그 뚱뚱한 천하제일인이 죽어버렸다고 하지 않더냐?”

후공의 안색이 잠시 퀭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아우는 신을 내며 말하기 바빴다.

“그 뚱뚱이가 없으면 어떤가요. 무림맹에 절세고수가 즐비할 텐데요.”

“근데 신고가 먹힐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우리 말보다 서문세가나 청월문의 입김이 더 클 거 아니냐? 인맥도 굉장할 테고.”

“흐음, 확실히 그 점은 문제이긴 하네요. 썩은 정파 쪽이 대놓고 사악한 무리보다 더 상대하기가 난감한걸요. 큰형님 생각은 어떠…… 아니, 큰형님 왜 안색이 그리 어두우신가요?”

퀭해져 있던 후공이 발끈했다.

“내 안색이 어떻다고! 난 그저 너희들 말하는 것이 한심해서 그러는 것이다! 어찌 된 게 스스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타인의 도움을 얻을 궁리만 하는 게냐. 그래선 언제라도 또 먹잇감이 될 뿐이다!”

뚱뚱이라는 말이 여간 언짢았노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후공은 아무 말이나 갖다 붙여 책망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아무 말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시무룩해져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아우를 향해 말을 이었다.

“내 직접 나설 것이다. 두 곳 중에 먼저 청월문부터 공략하는 것으로 하자. 청월문에 대해 아는 바를 말해…….”

두웅! 두웅! 두웅!

크게 울린 종소리에 후공은 말을 멈췄다.

이 종소리는 외부의 적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경고음이었다. 세 번이면 위험이 아닌 환기였다.

“혹시 서문세가와 청월문이 쳐들어온 걸까요?”

“크, 큰형님. 이제 어떡하죠?”

윤과 부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후공은 미간을 좁히고 갸웃했다.

‘그럴 리가. 이런 백주 대낮에?’

곧 송화가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

“공자님, 청월문 장문인이 찾아왔습니다.”

“청월문?”

“네, 전할 말이 있다며 입구를 열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인원은?”

“동행인은 딸랑 딸 하나입니다.”

“딸랑 딸?”

“네, 딸랑요. 전에 공자님도 보셨던 반교인 소저입니다.”

후공은 물론이고 윤과 부몽도 고개를 갸웃했다.

딸과 함께 왔다는 건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함이 아닌가. 자신은 그저 평화롭게 대화를 원하고 있을 뿐이라는.

“흠, 가보면 알겠지.”

후공이 일어서자, 두 아우가 뒤따랐다.

***

산 중턱의 절벽 앞.

청월문 장문인과 그의 딸 반교인은 절벽 앞에 서 있었다.

두 사람 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구름이 넘실대는 창공이요, 발밑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한 무리의 새 떼가 큰 화살표 형태로 창공을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반교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버지, 우리가 잘못 찾아온 것 아닐까요? 여긴 어떻게 봐도 절벽인걸요.”

“천화서고 입구는 이곳이 맞다. 환상진이 펼쳐져 있을 뿐이야. 이 절벽, 하늘, 저기 흘러가는 구름까지 모두 환영이다.”

청월문 장문인이 나직이 답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