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서문가주는 감히 그에게 견줄 수 없다
오른손을 눈앞으로 끌어오다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뚜드득, 뚜드득. 손가락이 춤추며 엿가락처럼 뒤틀려갔다. 다섯 손마디가 부러지고 뒤로 꺾이며 도는 광경에 서문웅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소리에 맞춰 이번엔 손목이 돌아갔다. 오그라들며 옆으로 부러져 덜렁거렸고, 이어 팔의 혈관과 힘줄이 터져 피부가 붉게 물들고, 급기야 팔이 밖으로 굽으며 부러져나가면서도 또 뒤틀려갔다.
뚜드드드다다닥!
“그아악, 그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을 토해내다 젖혀진 목이 바로 돌아왔다. 그것도 잠시, 교릉이 본격적으로 서문웅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스스로에게 적용하면 축골공이 되나, 타인에게 펼치면 극악스런 고문이 된다. 서문웅은 욕조 안에서 꺾이고 부러져가며 파닥거렸다. 목이 돌고 팔과 다리가 미칠 듯이 뒤틀리며 입으로는 피를 토해내면서 팔딱거리니, 소금물에 담가진 미꾸라지가 따로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려차차아안! 크아아아악! 네놈이냐! 가문의 복수로 내게 독을 쓴 것이냐아아아……. 그아아아아가가각!”
서문웅의 처절한 비명이 크게 울려퍼졌다.
거기에 그 광경을 지켜보는 두 시녀의 비명까지 더해지면서 서문세가의 밤이 찢어져나갔다.
서문가주가 들이닥친 건 그때였다.
그가 발작하는 아들을 끌어안았다.
서문웅은 아버지의 품 안에서도 미칠 듯이 꿈틀거렸다.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목이 자꾸 꺾여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아버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진정해라! 어떻게 된 거냐?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크아아아아아아악!”
대답은 비명뿐.
파팟,
서문가주가 일단 멈추려 마혈을 점했다.
그의 눈이 커졌다.
점혈이 먹히지 않았다.
이내 명문혈에 장심을 대고 내부 기운을 살폈다. 기가 기경팔맥을 달리고 있는데, 일곱 개의 기운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면서 몸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현을진인을 모셔와라.”
***
한 시진 후.
현을진인은 땀에 흠뻑 젖었다.
서문웅의 발작은 이제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긴 일렀다.
서문웅은 거의 공처럼 쪼그라들고 들러붙어 신체는 절반으로 줄었고,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해져 있었다. 그저 발작이 멈췄을 뿐.
“후우……. 급한 불은 껐습니다.”
“진인, 완치는 되겠습니까?”
“자리를 옮겼으면 합니다.”
소매로 흥건히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현을진인이 나서니 서문가주가 뒤따랐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현을진인의 낯빛이 심각해졌다.
“가주, 어찌 된 일입니까? 누구와 원수를 맺은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주화입마가 아니고?”
“주화입마가 아닙니다. 누군가 작정하고 손을 쓴 것입니다. 어찌 제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씀하십니까?”
“……”
현을진인이 언짢다는 기색을 드러내도 서문추는 정녕 영문을 몰랐다.
“놀라운 수법입니다. 이런 점혈을 펼칠 수 있는 자라면 명성이 드높은 이일 테지요. 혹은 전대 고수이거나. 도대체 누구를 건드린 겁니까? 제발 감추지 말고 사실을 말씀해주십시오.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야 그에 따라 방책을 마련할 것 아닙니까!”
“……”
연신 현을진인이 쏘아붙임에도 서문가주는 말을 잃었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현을이 다그치듯 말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겁에 질려 있는 것처럼도 보인 것이다.
“아, 아무 일도 없었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게 말을 못 하겠다는 겁니까?”
현을진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서문가주 서문추도 미간을 꿈틀거렸다.
평상시라면 현을이 자신 앞에서 이리 무례하게 굴 수 없었다. 그의 의술이 안휘 북부에서 따를 자가 없어 신의라 불린다고 해도, 지금의 태도는 도가 지나쳤다.
“진인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첫째는 오늘 내내 본가를 떠난 적이 없고, 연회를 베풀어 손님을 맞았을 뿐입니다.”
“아무와도 다툰 적이 없다고요?”
현을진인의 눈에 순간 두려움이 찼다.
서문추가 뭔가 떠올랐는지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그렇다면 내부자의 소행?”
“그, 그럴 가능성이 크겠군요.”
서문추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적이라면 너무 많을 수도 있고, 아예 없기도 했다.
이제껏 흔적을 남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인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그러나 또 그리 생각하면 현을진인의 두려움이 의문이었다.
“진인, 그자의 경지가 어느 정도일 것 같소?”
“글쎄요. 제 생각이 지나친 면도 없지 않군요. 점혈에 특화되어 있는 자라면 무공 수준이 낮아도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내부자 중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점혈이라면 청월문 쪽이었으나 그것은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가주, 그자는 가주께서 반드시 찾아내실 테지요. 그리고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편히 말씀하시오.”
“이곳에 제 거처를 마련해주십시오. 하루 이틀에 치료될 일이 아닙니다. 최소 한 달은 경과를 지켜보며 손을 써야 합니다.”
서문추가 현을진인의 손을 잡았다.
“고맙소. 내 이 은혜는 잊지 않으리라.”
“장담하긴 아직 이릅니다. 일단 저는 밤을 도와 급한 대로 약재와 침구를 챙겨오겠습니다. 이후 필요한 약재는 구해주십시오.”
“물론이오.”
현을진인은 서문세가를 나오자마자 지체 없이 신형을 펼쳐 내달렸다. 그는 무공을 익혔음에도 평소 느긋하게 걷는 걸 좋아했다. 오늘처럼 이리 빨리 달린 건 근 몇 년 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숨조차 돌리지 않고 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야밤에 급히 서문세가로 떠났던 가장이 안색이 하얗게 질려 돌아온 터라, 부인이며 아우며 아들들까지 누구 할 것 없이 긴장해 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고는 모두 입을 쩍 벌렸다.
“오, 오그라들었단 말입니까?”
“그래, 누군가 엿가락 주무르듯 주물러 우그러뜨린 것 같이 되었다.”
“그, 그게 누구입니까, 아버지?”
“모른다. 나도 모르고 서문가주도 몰라. 처음엔 서문가주가 숨기고 있다고 의심했지.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해보니, 그도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어찌 모를 수 있습니까. 형님께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요.”
아우의 말에 현을은 대답이 없었다.
한참 만에 그의 입이 열렸다.
“누구인지 안다고 달라질 일이 있을까 싶다. 확실한 건, 서문세가가 이번에 맞이한 적이 실로 무서운 자라는 거지. 서문가주는 감히 그에게 견줄 수 없다. 내 비록 점혈법만 뛰어난 자일 수 있다며 슬며시 말을 흐렸으나, 점혈의 공능을 볼 때 결코 점혈 능력만 놀라운 자가 아니다. 일곱 혈도에 내린 수백 개의 뿌리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여 축골과 비틀림이 일어나는지, 내 지식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무서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다.서문세가의 첫째의 오늘 행적과 동선을 감안해보면, 상대가 쓴 점혈 수법이 후혈일 가능성이 크다.”
“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오늘은 연회가 있었다지. 오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어제 점혈된 건지, 이틀 전인지 알게 뭐냐. 만약 후혈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더 큰일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서문세가로 은잠하여 손을 썼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서문가주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 아느냐?”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후혈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손을 쓴 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 것 같냐고 묻더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겁도 없이 가늠해보고 있더라는 거다.”
“도…… 도대체 서문세가는 누굴 건드린 건가요?”
**
그 시각.
가족회의가 한창인 현을진인의 처소 지붕 위에서도 나름 열띤 대화가 오갔다.
- 사형, 후혈이 그러니까 점혈의 공능이 나중에 나타난다는 겁니까? 그거 대단하네. 사혈이라도 찍히는 날엔 왜 죽는 줄도 모르고 죽게 된다는 거잖아?”
- 무식한 놈. 첨 듣냐?
나란히 팔베개를 하고 자빠져 은앙개와 취운개가 전음을 교환했다. 둘은 서문세가에서 뻗어나온 비명을 듣긴 했어도 서문세가로 들어갈 엄두는 못 내고 몸이 달아있던 상황이라, 마침 세가에서 뛰쳐나오던 현을진인의 뒤를 밟은 터였다.
- 어쭈, 들어본 모양입니다.
- 흐흐, 들어만 봤다. 근데 저것들 너무 나간 감이 있네.
- 왜요?
- 사부님께 듣기로는 후공이 그런 식의 장난을 쳤다고 했거든.
- 누구요? 후공? 선 넘네.
은앙개가 눈으로 실실 쪼갰다.
- 그나저나 서문세가의 첫째가 얼마나 작살이 나버렸길래 현을진인이 저리 맛이 가버린 거냐.
- 내가 볼 땐 유난 떠는 듯.
- 내 말이.
그때 지붕 아래 가족회의는 마무리 중이었다.
현을진인은 바깥출입을 금하고, 다른 이가 넌지시 물어도 입을 닫고 함부로 아는 척해선 안 된다는 식의 주의를 이어 갔다. 그러는 사이 이미 지붕 위에 있던 두 거지는 그림자가 되어 사라진 뒤였다.
조금 지나 어둠을 질주하는 두 그림자는 둘에서 셋이 되었다.
모름지기 그림자는 은밀해야 한다만,
“와아아! 천화서고 빨리 가고 싶어! 샤랄랄라 흩날리며 질주~~.”
“막내야, 좀 닥치면 안 될까.”
***
천화서고.
자정을 넘긴 밤.
후공은 풍화정에서 세 거지를 맞았다.
예감상 거지들이 떼로 올 것 같았기 때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적중했다.
서재나 처소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거지들의 냄새를 맡아야 할 뿐 아니라 떠난 뒤에도 악취가 밸 터라, 사방이 탁 트인 풍화정은 녀석들을 맞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인간적으로 씻고 다녔으면 싶고, 씻도록 자리를 마련해줄 수도 있었지만, 개방놈들은 갱생이 안 된다는 걸 진즉에 깨달았기에 권고도 포기했다.
방주인 곤오신개를 빨래해봤으니.
빨래 후 놈은 반년 만에 원상복구 되어 돌아오는 기염을 토했고, 그 탓에 당시 얼마나 놀라버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개방도들이 또 밉지는 않다.
아니, 도리어 마음이 가는 편이었다.
진정한 무소유.
불승들은 절이라도 있지, 이놈들은 집도 절도 없으면서 의를 숭상한답시고 길바닥에 자면서 온갖 곳을 날뛰어 다니는 것이다.
탐욕이라곤 없는 놈들.
“쩝쩝……. 처자, 고기 얼른얼른 좀 얹어. 그래, 그렇게 바로바로 올리라고! 소고기는 살짝 익혀 먹어야 맛있다는 거 알 텐데 그래. 쩝쩝…….”
“사형, 여태 먹어본 소고기 중에 제일 맛있지 않습니까?”
“말 시키지 마라. 뒈지기 싫으면.”
“말 제일 많이 해놓고 나한테 난리네. 눈을 왜 그렇게 뜨는데, 한판 뜨까?”
“일단 먹고.”
“어.”
후공은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
탐욕이라곤 없는 놈들이란 말은 취소.
일도 시켜야 하고 챙겨주고 싶기도 해서 야식을 준비했거늘, 판을 벌려주니 세 놈의 탐욕은 아주 저세상 탐욕이었다.
적응 안 되는 놈들 같으니.
“형아, 너무 맛있어. 형아는 우리 개방이 맘에 든 거야? 난 천화서고가 아주 마음에 들어. 형아랑 여기 살까 봐. 냠냠.”
“……’
이 녀석도 적응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