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고객중심 무극살부
우선 무극살부는 최대한 고객 중심이었다.
고객이 자연사나 사고사를 요구하면 살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처리했고─이 경우 금액이 커지지만, 돈만 맞춰주면 무극살부는 군소리가 없었다─반대로 잔혹하게 죽여 달라고 하면 갈가리 찢어놓거나 얼굴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았다.
또 다른 장점은 집요함으로, 무극(無極. 끝이 없다)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들은 포기를 모르는 자들이었다.
처음 무극살부를 청할 때만 거액이 들 뿐, 청부에 실패해도 추가금 없이 성공할 때까지 청부는 진행된다.
결말은?
언제나 행복이다.
무극살부는 살수들이 몇 명이 갈려 나가도 부지런히 살행에 나서 결국 뜻을 이루니, 무극살부를 선정하면 따로 신경 쓸 것도 없이 번거롭지 않고 좋았다.
이번 살행에도 무극살부는 살수를 넷이나 투입했다.
거액을 지급한 만큼 감쪽같이 처리할 것이다.
심지어 청부 대상이 스스로 죽기를 소망하는 자라면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기대되는군요.”
“어이, 아무리 그래도 표정 관리는 좀 하지?”
주양이 흐뭇해했기에 만박자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사람 하나 잡는 판인데, 주양은 어떻게 봐도 선물 개봉을 앞둔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허허, 좋은 날 왜 그러십니까?”
“내가 볼 땐 자네도 제정신 아니야.”
솔직히 인생사 살다 보면 우울해져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죽고 싶다고 토로한다고 곧이곧대로 내가 죽여줄게 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을까?
이 정도면 죽여 달라는 놈이나 죽여주겠다는 놈이나 둘 다 미친 것이다. 더 황당한 건 이번 일로 범항만 죽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주양도 죽는다.
강북 제일의 갑부인 은하전장의 둘째 아들.
둘째라 해도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주양이건만, 이 일을 시작하며 이미 끝을 정해두고 있었다.
- 친구를 죽이고 제가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저도 죽어야 마땅하지요. 그것이 천화서고에 대한 예의요, 사람의 도리입니다.
이 말을 만박자는 첫 만남에서 들었다.
어쩐지 눈매가 차분해 언뜻 보면 부처님을 닮은 주양은,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고 자신은 지옥에 들어갈 생각인 것이다.
그 막대한 재산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죽는다니.
만박자는 자신의 돈도 아닌데 아까워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다음 만박자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속삭였다.
“자넨 어떻게 죽을 셈인가?”
“만 선생과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주양이 빙긋 미소 지었다.
쓸데없이 해맑아 만박자의 얼굴은 다시 구겨졌다.
“말하는 꼬라지하곤. 그래, 알아서 잘 뒈지겠지. 뭐 어쨌든 난 이번 일에 관여한 적이 없는 거네. 깔끔하게 죽어. 나까지 끌고 들어가지 말고.”
“흠, 근데 지금 제게 말씀하신 분은 누구라고 하셨지요?”
주양이 괜히 딴청을 피우며 너스레를 떨자, 만박자가 코웃음 쳤다.
“지랄하네.”
**
그 시각, 무극살부의 살수들은 목표물을 포착했다.
번화가로 천화서고 대공자와 두 아우가 막 들어서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살수들은 행인들 사이를 걸으며 대공자를 향해 동서남북 사방에서 각기 접근해갔다.
“이런 한심한 놈들.”
후공이 걷다 멈춰 아우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늘어선 상가를 지나는 중.
윤과 부몽이 목조 인형을 파는 좌판을 보더니 화색을 띠며 달려간 것이다.
그 광경에 호위 중 유일하게 동행한 송화가 씩씩하게 말을 걸어왔다.
“공자님!”
“응?”
“제가 당장 두 분 공자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좋다. 가라!”
“네!”
씩씩한 목소리만큼이나 씩씩하게 걸어간 송화는,
돌아오지 않았다.
윤과 부몽에게 뭐라 뭐라 하는 것 같더니 어느샌가 함께 나무 인형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이럴 거면 꼭 씩씩해야 했냐.’
후공은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덩그러니 거리 한복판에 서 있을 때였다.
“오오오, 천화서고 범형 아니십니까!”
저만치 멀리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쫓아 시선을 던지니 대륙전장의 왕소한이었다.
통통한 볼살에 미소를 띠며 사람들 너머로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 곁에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장예와 단강무 그리고 반교인이었다.
그들도 알아보고는 웃으며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후공은 주춤 뒤로 반보를 디뎠다.
‘응?’
살의(殺意).
아이들의 손짓이고 뭐고 위협이 지척이었다.
정면.
살의를 띤 인물은 뜻밖에도 노파였다.
지나는 여러 행인 사이로 노파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나 볼 법한 노파로 지팡이를 짚고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노파가 아니었다.
여인은 노파인 척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구부정한 걸음에 보폭이 불규칙했지만 도리어 불규칙 속에 규칙이 보인다. 오물거리는 입술 안쪽에 얼핏 보인 치아는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척추를 구부리고 있어도 기본 근골은 잘 잡혀 있다.
무엇보다 은신과 은둔을 꿰뚫는 안법 자령안(紫靈眼)에 비친 노파의 안쪽 얼굴은 중년 여인이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노파가 눈길을 자연스럽게 피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이대로면 곁을 스쳐 지날 터였다.
노파에게 곁을 내주는 순간 암수는 뻗어올 것이다.
‘서문추의 잔당이 고용한 살수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기간이 너무 짧은데?
‘설마 주양?’
범항과 주양 사이에 오간 서신은 살인 청부 요청.
그럴 리가.
범항의 기억을 전이받은 후 주양에게 서신을 보내 서고로 오라고 했다. 아직 답장도 없었다.
아니, 당장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다.
누구의 청부인지는 나중 일.
후공은 미간을 좁혔다.
기감을 끌어올리며 노파를 맞이할 준비를 하자니 살의가 연달아 잡혔다.
‘한 명이 아니로군. 둘……. 셋…….’
좌측을 슬쩍 돌아봤다.
절름발이가 다가온다.
그리고 우측 대각 방향으로는 비쩍 마른 중년인.
이어 등 뒤로 한 명이 더 잡혔다.
두리번거리는 척 뒤를 돌아보며 확인했다.
‘……. 넷? 이거 대접이 과하군.’
뒤쪽에는 이십 대 후반 정도의 청년이 코를 후비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린놈이 사람 죽이러 와서 성의 없이…….’
사람을 죽이러 왔으면 조금은 진지했으면 싶은데, 태도가 불량한 것이 여간 못마땅했다.
그나저나 수준 높은 살수 조직이라면 과거에 전부 일망타진한 것으로 아는데, 이놈들이 새롭게 생겼다는 그놈들인가.
살막, 흑연부, 암향단.
과거 찬란한 명성을 날렸던 청부조직들.
그중 살막과 흑연부는 전멸했고, 암향단주는 농사 짓는다고 했는데……
그 사이 노파가 이 장여 앞에 이르렀다.
다른 셋은 아직.
뒤쪽도 딴청을 피우며 천천히 접근해오고 있었다.
선공을 맡은 건 노파인 모양.
그 의미는,
‘너부터 먼저 죽는다는 뜻이지.’
후공은 일보를 디뎌가며 무형보를 밟았다.
이 보 째에 멈칫하더니, 그 순간 튕겨 나갔다.
“범 형, 안 그래도 얼굴 한번 봤으면…….”
왕소한이 활짝 웃으며 다가가다 놀라 주춤 물러났다.
곁의 장예 등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화서고 대공자의 신형이 흩어지는 듯하더니, 다시 시선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길 가던 노파의 모가지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뚜득.
그대로 노파의 목이 돌아가 버렸다.
가냘픈 노파는 상체는 앞으로 한 채 고개는 뒤돌아보는 형태로 무너졌다.
“헉! 무슨……”
“노파를!”
말리고 말고 할 틈이 없었다. 그만큼 천화서고 대공자의 손속이 빨랐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미 대공자의 신형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축 처진 노파를 팽개친 후 대공자의 신형은 비틀하는가 싶더니 이내 좌측으로 나아갔다.
절름발이의 어깨를 짚어갔다.
파팟.
서로 간의 손이 빠르게 교차했다.
주춤 물러나는 절름발이의 눈동자가 공포와 당혹으로 물들었다. 어깨를 움츠려 일격을 벗어났다 싶었거늘, 미끄러지듯 금나수에 팔이 꺾여나갈 상황이었다.
하지만 금나수조차 허초였다.
절름발이는 옆구리를 스치는 감각과 함께 마혈이 점혈 당한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정보가 다르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분명 천화서고 대공자는 죽으러 나오는 것이라 했다.
그런 천화서고 대공자가 왜 우리를…….
그리고 이 무공, 이 무위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의 상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턱 밑에 손가락이 닿는 감촉을 느꼈다 싶은 순간, 뭔가가 정수리까지 관통했다.
쩌엉.
머릿속에 종이 울리면서 그의 의식이 멀어졌다.
뇌수가 터져 뭉개지자 절름발이는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 허물어졌다.
그때 우측과 후방에 있던 두 살수가 동시에 신형을 덮쳐갔다. 두 동료가 순식간에 죽어버린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의문은 나중 일이었다.
“범 공자!”
“범 형!”
“혀, 형님!”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왕소한 일행과 아우들이 놀라 외치고, 놀란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그 사이 공세를 펼친 코 파던 청년 살수의 손목은 잡혀 돌아가 있었다.
청년 살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분명 비수로 늑골을 찔러 들어갔는데, 대공자가 핑그르 한 바퀴 도는 순간 손목이 잡혀 꺾여나간 것이다. 그리고 손목이 안으로 접힌 채 자신의 비수가 자신의 심장으로 파고드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푸욱!
“크헉!”
청년 살수의 단말마와 동시에 중년 살수의 장력이 후공의 등에 작렬했다.
즉시 내력에 반응한 후공의 호신기 허운이 일어났다.
허운의 작용은 반탄과 풍익(風翼).
장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후공은 그 기운을 이용해 빙글 깃털처럼 선회해 덮쳐갔다.
“무슨?”
중년 살수의 신형이 어지러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력이 격중되었다면 상식적으로 곧바로 돌아서는 상황 따위 있어선 안 되는 것이다. 예상 범주를 훌쩍 뛰어넘은 데다 선회가 너무 빨랐다.
자신이 내뻗은 장력의 기운을 고스란히 이용했음을 알 길 없는 그가 받은 당혹스러움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작은 틈은 후공에겐 넉넉한 틈이었다.
파팟.
혈도가 점혈 된 중년 살수의 의식이 아련해졌다.
“사혈……. 뭐 이런……. 하지만 너도…….”
풀썩.
중년 살수가 무릎을 꿇고 이어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후공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뚱해졌다.
왼쪽 옆구리.
그곳에 작은 침이 꽂혀 있었다.
네 번째 살수가 죽기 직전 남긴 한 수였다.
침은 몸에 절반도 박히지 않았고, 타격이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반격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허운의 반탄이 미미했다. 허운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튕겨지거나 방향이 바뀌어야 했다.
침을 뽑았다. 침의 앞부분이 암갈색을 띠고 있었다.
독침.
- 하지만 너도…….
살수의 마지막 말이 이 의미였나 보다.
죽어가던 살수는 독침으로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미안하게도 육각망의 피는 독이 통하지 않는다.
“공자님!”
“형님!”
“큰형님, 괜찮으신가요?”
일행만 아니라 왕소한 쪽도 다가오며 놀란 목소리를 냈다.
“범 형,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자들이 범 형을 노린 겁니까?”
“범 공자, 괜찮나요?”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나간 광경이 생소한지, 왕소한은 미처 상황 파악을 못하고 겁에 질려 안색이 창백했다.
하지만 단강무와 장예, 그리고 반교인은 사태를 대충 짐작했다.
목이 돌아간 노파의 인피면구가 반쯤 벗겨져 중년 여인의 얼굴이 드러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공은 한 사람을 지목했다.
“윤.”
“네, 형님.”
윤이 서둘러 앞으로 다가왔다.
“네 짓이냐?”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윤이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몸을 떨었다.
형님이 그저 차분히 바라볼 뿐인데 몸에 한기가 일며 머리가 쭈뼛 섰다.
후공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누구와 연루된 거냐? 오늘 내가 외출하게 된 건 너 때문이다만.”
“형, 형님……. 그게 사실은 오늘…….”
***
홍미반점의 4층 창가.
주양도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주양은 눈을 엄청 크게 뜨고 입도 쩍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