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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46화 (46/460)

46화. 천공단은 결코 든든하지 않다 (2)

그날 저녁, 일행은 식사를 위해 객잔에 들었다.

비는 줄었을 뿐 아직이었기에 객잔에 손님은 많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총인원 12명의 단체 손님이 객잔에 들어가니 주인까지 튀어나와 살갑게 반겼다. 점소이들이 중앙 쪽에 식탁을 이어 붙여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두 거지가 서둘러 손을 뻗으려 할 때, 호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직이오오!”

소리칠 땐 끝을 길게 하는 금적자였다.

거지들은 물론이고 객잔의 모두가 놀라 주춤했고, 송화의 경우 와닷 경기를 일으켰다.

소천개가 물었다.

“금피리 할아버지, 식사 전 감사 묵념하게요?”

금적자가 소천개를 향해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란다, 이 거지야.”

“그럼요?”

거지라고 불려도 개의치 않고 소천개의 눈동자는 그저 의문에 차 있었다. 금적자가 모두를 둘러보며 긴 수염을 쓰다듬었다.

“다들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지 잊은 듯하구려. 우리가 누구요? 천화서고 대공자를 지키는 천공단이 아니겠소. 살수들은 본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이 음식에 독이 없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이까.”

“과연 선생이십니다.”

“미처 그 생각을 못 했군요.”

항마삼협이 감탄했다.

무산쌍웅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여인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호호호! 다들 걱정할 것 없어요. 독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제가 전문가랍니다.”

묘빙빙이 웃으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소매 속에서 은빛 물체를 꺼냈다.

한 쌍의 젓가락이었다.

천공단 전체가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본시 독을 판별할 때 금속 중 은이 사용되는데, 독이 있다면 색깔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는 것이다.

“호호호! 모두 기다려주세요.”

묘빙빙이 젓가락으로 잘 양념된 돈육에 푹 찔러넣었다. 이어 입으로 끌어오더니 단번에 먹어치웠다. 변색 같은 건 보지도 않았다.

아예 먹어서 확인하는 건가?

다들 의아하게 바라볼 때, 묘빙빙의 손이 빨라졌다.

어찌나 빠른지 그녀의 팔과 손이 안 보일 정도였다. 잔상만 흐릿해 당연히 젓가락이 변색됐는지 여부는 알아볼 수 없었다.

알아볼 수 있는 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돼지 갈비 부위였다.

그러자,

천공단의 안색이 변색되었다.

정색하며 묘빙빙을 보던 천공단은 호통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호통은 나중 일이고, 누가 치든 말든 그딴 건 상관없었다. 눈 한 번 깜박이는 시간만으로도 고기가 빠르게 사라져가는 것이다. 누구 할 것 없이 젓가락을 집어들고 갈비 사냥에 나섰다.

“독은…… 신경 안 쓰는 거예요?”

송화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천공단은 마치 걸신들린 모습이었다. 두 거지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대답 따윈 돌아오지 않았다.

“범 공자, 독은 없으니 안심하고 드세요.”

묘빙빙이 제 먹을 것 충분히 다 먹고 나서는 푸근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꺼억,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식탁 위에 공통으로 먹는 특식 요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후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육각망의 피를 복용했기에 독을 두려워할 건 아니었다. 거기다 영악초는 육각망이 흐릿하게 여기는 독까지 범용적인 면독 작용이 있어, 처음 금적자가 거론했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도리어 신경이 쓰인 건 이 객잔이었다.

정확히는 손님.

안쪽 자리에 앉아 있는 청의인이 거슬렸다.

청의인의 인상은 특색 없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얼굴이었다. 사내는 이쪽을 힐끔거리지도 않았으며 그저 소면을 시켜 후루룩 마시듯 하더니 벌써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금적자가 외친 소리에 객잔 주인과 점소이들은 몸을 휘청일 정도였고 다른 손님들도 인상을 찡그렸건만, 청의인만은 들리지 않은 양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것이다.

이미 금적자에게 익숙한 듯하지 않은가.

그리고 나중에 와서는 먼저 나간다.

사내가 무극살부의 살수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내내 금적자가 피리를 불었고, 항마삼협이 그렇게 떠들었으니 누가 따라붙어도 따라붙을 수 있는 일이다.

후공이 객잔을 나가는 청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묘빙빙이 채근했다.

“범 공자, 왜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나요?”

“마음이 놓이지 않는군요.”

“호호호, 조심성이 많군요. 보기와 달리 샌님이었네요. 자, 제 젓가락을 보세요. 그렇게 골고루 음식을 집어 들었는데 변색되지 않았잖아요.”

“독이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럼요?”

“이미 다른 일이 시작된 것 같군요.”

후공이 객잔 창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가 쪽에 자리하고 있던 다섯 명의 노중년인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표정에 모두 비쩍 마른 체형이었는데 안광이 칼처럼 날카로웠다.

무극살부와는 상관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먼저 와 가볍게 술을 걸치고 있던 터였는데 천공단의 소란에 기분이 상한 듯 한 번씩 매서운 눈길을 보냈었다.

“어머! 깜짝이야!”

어느샌가 노중년인들이 일행 쪽을 향해 늘어섰기에 묘빙빙이 보고는 과하게 놀란 척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천공단도 식사를 중단하고 그들을 바라봤다.

노중년인 중 하나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안하무인으로 소란을 피우더구나. 식사는 맛있느냐.”

미소를 짓고 있어도 목소리가 스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순간 금적자의 안색이 딱딱해졌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소리쳤다.

“초면에 반말을 해버리는 겐가아아아!”

항마삼협이 서둘러 금적자를 말렸다.

“선생, 참으십시오. 이런 예의 없는 자들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러더니 일어나 노중년인들을 향해 삿대질했다.

“쯧쯧, 너희 몇 살인데 선생에게 반말을 해버리는 거냐?”

“버릇없는 놈들 같으니.”

“강호가 언제부터 이리 무례해졌단 말인가!”

그런 항마삼협을 무산쌍웅이 말리고 나섰다.

“삼협은 참으십시오. 저자들이 버릇이 없기로서니 굳이 폭력을 사용해서야 되겠습니까. 저희 형제가 잘 타일러 보내겠습니다.”

하지만 금적자가 가만히 안 있었다.

“비키시게에에!”

금적자는 화를 참을 수 없는지 호통을 내지르고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란지 바로 탁자를 뒤엎어버렸다. 접시들이며 남은 음식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후공은 널브러진 난장판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놈의 새끼들. 제대로 식사도 안 했는데.’

그사이 금적자는 한 걸음 떼 깨진 접시들을 짓밟고 노중년인들을 노려봤다.

“나 예순둘이다아아!”

“…….”

노중년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할 가치도 없어서라기보단 멍해져버렸다.

예순둘이라고 말해버릴 줄은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도대체 강호에서 누가 나이를 따진단 말인가.

- 요즘 강호는 이런 것이냐?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리둥절해 자신들끼리 전음을 교환할 지경이었다.

이들의 별호는 음산오살(陰山五煞).

과거 모종의 사건에 얽혀 부상을 당한 후 부족함을 느끼고 폐관하며 수련의 나날을 보내다 십여 년 만에 강호로 나온 터였다.

그런데 그동안 강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괴상한 놈들이 한 무더기였다. 솔직히 이런 분위기에서 나이가 문제가 아니잖은가.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하여 기다려주었거늘, 쓸데없는 아량이었군.”

음산오살 중 첫째가 살기를 피워내며 미소 지었다.

음산오살의 기운이 심상치 않고 금적자의 분노도 커 가히 일촉즉발이었다.

양소와 송화는 이미 기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주인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몇 살이냐고 묻지 않느냐아아!”

금적자가 쩌렁쩌렁 소리쳤다.

진심 그게 중요하다는 얼굴이어서, 이제 천공단들조차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음산오살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이는 첫째가 예순셋이었다.

그러니까 한 살 더 많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웃기게 되고 만다. 중요한 건 이놈들을 어떻게 죽일 것인지였다.

“장소를 옮기지. 따라와라.”

“안 가아아아아!”

금적자가 소리쳤다.

음산오살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건 비단 음산오살만이 아니었다.

항마삼협도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짜증을 냈다.

“금적 선생, 장소를 옮기는 게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저희가 따라가서 상대하겠습니다.”

“네, 나이는 저희가 죽이기 전에 확인할 테니 금적 선생께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적자가 항마삼협을 노려봤다.

“내가 다 생각이 없을까아아!”

“네?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아무리 봐도 없어 보입니다만.”

“뭐! 너희 놈들 날 뭘로 보고 흰소리냐. 너희들 몇 살이야! 천공단이라고 오냐오냐 했더니 노인 공경도 모르고 어디서 막말이야, 막말은!”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

항마삼협이 지지 않고 항변하니, 원래 상대였던 음산오살은 갑작스레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단순히 황망해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뭐? 금적자라고?’

오가는 대화에 금적자라는 별호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음산오살의 셋째가 전음을 발했다.

- 대형, 설마 이자가 우리가 아는 금적자란 말입니까?

표정을 감춘다고 감췄지만 눈빛에는 의문이 깃들어 있었다.

- 금적자일 리 없다. 내가 아는 금적자는 이런 무뢰배가 아니다. 그는 점잖고 예의 바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 아니냐.

- 하지만…….

다들 금적자의 허리춤에 시선이 닿았다.

첫째의 시선도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금빛 피리를 보고 있었다.

‘정녕…… 금적자란 말인가.’

상대가 금적자라면 오늘의 승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거기에 금적자 하나만이 아닌 일행들까지 있지 않는가. 접전이 벌어지면 복보다는 화를 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자각으로 음산오살은 천공단을 차분히 살필 수 있었다.

소란스러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건만, 다시 보니 하나하나 쉽게 여길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항마삼협은 금적자에게 대들고 있었고, 무산쌍웅에 관해서는 그들의 흉악한 인상이 신경 쓰였다. 어린 거지들조차 눈빛에 현기가 어려 있지 않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젊은 서생이었다.

분위기가 묘했다.

검을 곁에 두고 있으니 분명 무공을 익혔음인데 어디에서도 기운을 파악할 수 없었다. 천공단인가 하는 이 무리의 핵심인물로 보이는데, 소란스러운 가운데 여유로운 표정이 기괴했다.

‘정녕 이상한 놈들이 아닌가.’

그때 소란은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선생께서 그 생각이란 걸 말씀해보십시오. 합당하다면 저희가 어찌 승복하지 않겠습니까.”

항마삼협이 한발 물러나자 금적자도 더는 역정을 내지 않고 수염을 그윽하니 쓰다듬었다.

이제 천공단뿐 아니라 음산오살까지 주목했다.

그런 가운데 다 생각이 있는 금적자가 입을 열었다.

“난 이자들과 싸울 생각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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