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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51화 (51/460)

51화.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식경

추적매가 여전히 따라오고 있었기에 천공단은 평온한 안색을 유지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다.

언제든 소수의 인간은 다른 짓을 하게 되어 있다.

천공단주에 눈이 먼 금적자 혼자 부지런을 떨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새 모이를 가져와 뿌려댔다.

그 결과 추적매는 유혹 당하지 않고 대신 온갖 잡새들이 날아들었다. 덕분에 잡새들은 금적자로부터 ‘네놈들 거 아니야아아~~ 꺼지라고~~’ 라는 욕을 들어야했다.

묘빙빙이 깔깔 웃어댔다.

“선생께선 참 뇌가 없으시네요. 저렇게 멀리 나는 새가 마차 주변에 뿌린 모이를 알기나 하겠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저가 알려주겠나?”

“비밀이에요.”

“염병…….”

후공은 둘의 대화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안 그랬던 금적자가 왜 저렇게 망가졌는지, 묘빙빙이 언제적부터 맛이 가버린 건지 등을 고민하는 건 쓸데없는 심력 낭비였다.

대신 다른 의미로 묘빙빙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찍 죽기에 안성맞춤이다.

불의의 습격이 있을 때 묘빙빙 곁에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번거롭구만.’

후공은 마차 창문을 열었다.

마차 곁을 항마삼협이 신법을 펼쳐 달리고 있었다.

- 삼협의 능력이 놀랍더군요.

항마삼협에게 전음을 발했다.

정확히는 삼협 중 이열에게였다.

이열이 돌아보며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 자네에게 전음을 들으니 신선하군. 서문세가를 끝장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말이 헛소문은 아닌가 보네.

- 기여랄 게 있겠습니까. 그것보다 제가 여태 지켜보니 천공단주의 향방이 얼추 짐작이 갑니다.

- 오호? 자넨 누가 적임자로 보이던가?

이열의 눈이 반짝거렸다.

- 금적 선생은 피리를 불기 바쁘고, 무산쌍웅은 외모만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지요. 개방 제자들은 배경은 훌륭하나 그 배경 탓에 전면에 나서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무공과 여러 면을 고려해볼 때 삼협이 가장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 캬아! 탁월한 안목일세. 괜히 천재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구만.

이열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 뭔가. 뭐든 말해보게. 장래 천공단주가 다 해결해주겠네.

- 크흠……. 장래 천공단주께서는 묘 소저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 처자? 아……. 그게 좀 모자라지. 그런데 묘하게 귀엽달까.

엉뚱한 대답에 후공은 피식 웃고 말았다.

- 그건 그렇습니다만, 천공단에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첫 번째는 묘 소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습니까?

-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네.

- ……?

후공은 갸웃해보였다.

- 장래 천공단주로서 우리가 그리 죽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네. 천공단은 천공단주가 지켜야지!

- 그렇습니까. 곁에 두고 마음 쓰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과연 예비 천공단주답습니다.

- 아무렴. 앞으로도 그런 불길한 소리는 말게. 내 천공단이고 우리 천공단이니까!

이열이 다부지게 말하는 모습을 후공은 뚱하니 바라봤다.

‘이놈, 생각 이상으로 단순하구나.’

단순한 건 한 놈만은 아니었다.

이열이 말을 전했는지 항마삼협 전부가 안색이 환해졌다.

천공단을 꾸린 주양의 친구이자, 천화서고의 천재, 거기에 더해 천공단이 존재하는 이유인 존재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이쯤이면 천공단주는 따 놓은 당상이었기에 삼협은 마차를 보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후공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곤,

탁.

바로 마차 창문을 닫아버렸다.

‘이놈들은 한 번도 대표나 수장이 되어 본 적이 없는 것일까.’

천공단주 운운한 건 그저 ‘묘빙빙을 지켜라’ 는 말을 돌려 말한 것뿐인데, 항마 녀석들은 마치 임명장이라도 받은 양 모가지에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묘 소저!”

이열이 묘빙빙을 불렀다. 목청이 쾌활했다.

“왜요?”

“신법이 뛰어난 건 알겠소만 너무 앞서가지 마시오. 우리와 같이 갑시다!”

마차 지붕을 박살내버린 묘빙빙은, 양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어서 마차 안에 탑승하지 않고 신법을 펼쳐 달리고 있었다.

“흥! 알긴 아는군요. 뭐 그래요, 그럼.”

벌써부터 항마들이 묘빙빙을 챙기기 시작했기에 후공은 아예 바깥 상황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눈을 감고 명상에 들었다.

마차 지붕이 날아가버린 탓에 햇살이 후공의 얼굴을 비췄다 사라졌다 했다.

***

다음 날 밤.

일행은 화웅현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이날도 금적자와 두 거지는 객잔 지붕에서 잠을 청할 요량이라, 지붕 위에서는 잔잔한 피리 가락이 울려퍼졌다.

음률은 밤에 어울리는 곡조여서, 소란스럽다는 항의는 없었다. 도리어 1층과 2층을 주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객잔인지라 손님들이 운치 있다면서 이곳에서 한잔 더 걸치자며 들어오곤 했다.

스윽.

한순간 그림자가 비추는가 싶더니 두 인영이 지붕 위로 솟구쳤다.

무산쌍웅이었다.

기세가 흉흉한 탓에 은앙개와 소천개가 빤히 쳐다봤다.

“무슨 일이기에 얼굴에 악귀 탈을 쓰고 오셨대요? 둥둥!”

무산쌍웅은 소천개를 무시하고 금적자 앞에 섰다.

“선생, 이야기 좀 하시죠.”

삐리리리 삐리리리~~

금적자가 피리를 놓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천화서고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놈,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무산쌍웅의 말투가 신경질적이었다.

원래 둘은 상냥하게 미소 지어도 흉악스러워 보이는데, 신경질을 내자 그 모습이 무슨 지옥의 야차요, 악귀처럼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인가?”

그제야 금적자가 피리를 멈췄다.

“놈의 패악질이 끝도 없습니다. 여유만만한 것이 마치 제놈이 천공단주인 양 행세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작 우리의 보호를 받는 주제에 말입니다.”

“허허, 패악이란 말은 과하구만. 그런데 천공단주 행세란 건 무슨 뜻인가?”

“하나부터 열까지 아닌 게 없습니다.”

“하나부터 말해보게.”

금적자가 귀를 후볐다.

귀찮다는 태도가 여실했다.

무산쌍웅은 그래도 들어주는 것이 어디냐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싹수가 노랗지 않았습니까. 선생이며 삼협, 그리고 우리까지 천공단을 바라보는 놈의 눈빛이 얼마나 거만하던가요. 존경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요. 강호초출 신출내기 주제에 강호에서 명성 높은 이들을 만났다면 경외심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냐는 말입니다. 아주 지가 최고로 잘난 줄 안단 말이지요.”

“천화서고 형아 잘난 거 맞아!”

소천개가 불쑥 끼어들었다.

쌍웅이 죽일 듯 노려봤다.

소천개가 눈을 돌리지 않고 빤히 쳐다보자 은앙개가 나섰다. 실실 웃으면서 얼른 소천개의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무산쌍웅의 말이 이어졌다.

“그뿐이 아닙니다. 어제 일만 해도 제놈이 뭔데 추적매를 잡아보라며 은근히 부추긴단 말입니까. 마치 그런 모습은 암중의 천공단주 같은 모양새가 아니었냐는 말이지요.”

“…….”

금적자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뭘 그런 걸로’라고.

금적자가 피리를 불려는 듯 만지작거렸기에 무산쌍웅은 다급해졌다.

“진짜 중요한 건 이제부터입니다. 선생께서도 삼협이 갑자기 묘빙빙에게 친근하게 굴고 곁을 맴도는 걸 보셨을 테지요?”

“그렇네.”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금적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설마 연정을 품었다는 건가? 사랑이 피어난 거여?”

무산쌍웅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그럴 리 없잖습니까. 삼협이야 누구 하나 못 죽여서 안달난 사람들인데 연정이라니요.”

“그럼?”

“삼협이 희희낙락이기에 제가 물어봤지요. 처음엔 말을 않다가 계속 추궁하니, 실상인즉 대공자 녀석이 슬쩍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천공단에서 가장 무공이 약하다는 이유로 묘 소저를 돌봐야 하지 않냐고 말입니다.”

“흐음……. 그 정도면 배려 같네만…….”

금적자가 눈동자를 위로 올리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삼협이 그런 데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내막인즉 대공자 놈이 삼협이 천공단주에 가장 적합하다면서 이미 천공단주인 양 인정했답니다.”

“……????”

금적자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기세를 놓치지 않고 쌍웅은 가열차게 몰아붙였다.

“천공단과 멸살단을 만든 주양의 친구이자 천공단의 존재 이유인 대공자놈이 이런 식으로 겁도 없이 천공단주를 세운다면…….”

무산쌍웅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 새끼가아아아아!”

콰콰콰…….

눈이 돌아간 금적자가 기운을 일으키니 전각 지붕의 기왓장들이 연이어 부서져나갔다. 은앙개와 소천개가 식겁해 그 자리에서 휙 하니 멀어졌다.

“어린놈의 패악질이 끝도 없구나아아아아아아아!”

**

그 시각.

화웅현 마을 외곽 토지묘에 다섯 개의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무극살부 특급살수들이었다.

추적해 온 지 오늘로 7일째.

이 밤은 결행의 순간이었다.

“해독제.”

다섯 중 청의 살수가 환약을 건네자, 다른 넷이 각기 받아들고 바로 삼켰다.

누구 할 것 없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해독제가 입안에 들어간 순간 심한 냄새가 퍼졌기 때문이다.

“악취가 대단하군.”

“환으로 만들어졌기에 망정이지, 영초 상태로는 결코 누구도 먹을 수 없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해독만 아니라면 정녕 사양하고 싶은 냄새.

살수가 되기 위한 고된 훈련 과정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지독한 인내다. 거기에 동요하지 않는 평정심까지. 그런 특급살수들조차도 얼굴을 구길 정도로 해독제의 악취는 대단했다.

원 재료를 먹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으리라.

특급살수들은 미리 준비한 죽엽청을 돌려마셨다.

입을 헹궈 해독제의 악취를 떨궈내기 위함이었다. 이대로는 입을 벌린 순간 악취가 주변까지 퍼지기에, 냄새를 지워야 했다. 그럼에도 입안의 텁텁함만은 가시지 않았다.

이어 백의살수가 품에서 옥병을 꺼내 마개를 열었다.

퐁!

그가 곧바로 소맷자락에서 검은색 환약을 꺼내 옥병에 집어넣었다.

쏴아아아……

환약이 옥병에서 녹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그걸 확인한 순간 백의살수가 바로 옥병의 입구를 닫았다.

“만면환이 용해되어 발현하기까지는 일식경(30분). 지속시간은?”

“일각(10분).”

네 명의 특급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두 인지하고 있는 바였다.

단지 확인과 경각의 의미가 담겨 있을 뿐.

백의 살수는 홀로 마을 중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머지는 토지묘에 남았다.

함께 움직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노출 위험이 크다.

남은 넷은 지금껏 근접하여 은연중에 살폈던 터. 그 와중에 천공단과 천화서고 대공자의 눈길에 포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단연 신경 쓰이는 건 대공자였다.

백의 살수를 제외한 네 살수가 돌아가면서 근접할 때 이미 그중 둘은 대공자로부터 살기를 느낀 터였다.

그 살기는 은근했다.

‘적당히 하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천공단이 문제가 아니다 싶은 건 단지 기분 때문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밤으로 끝이다.

대공자든 천공단이든 날고 긴다 해도 만면환 앞에서는 소용없다. 백의 살수가 만면환을 공기 중에 퍼뜨리고 나면 죽음은 기정사실.

그 시점에 맞춰 넷은 움직일 예정이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식경.”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군.”

“잠들기 딱 좋은 밤이지.”

“아무렴.”

특급 살수들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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