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52화 (52/460)

52화. 노리는 자, 대비하는 자

특급살수들이 작전을 개시한 시각.

후공과 천공단을 노리고 있는 건 무극살부만이 아니었다.

후공이 머문 4층 객방의 아래층 방. 그곳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음산오살.

칠 일 전.

천공단과 갈등을 겪을 때 그들은 다짐했다.

‘두고 보자.’

그래서,

그날부터 지금까지 추적하며 두고 보고 있는 중.

사람은 각자 신념을 지니고 살아간다.

신념이 없다면 험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갈팡질팡 휩쓸려다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음산오살은 확실한 신념 아래 두고 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과의 약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

음산오살은 결행의 날을 하루하루 재고 있었고, 드디어 이 밤 영원히 잠들게 해 주겠다 결정한 상태였다.

본래 공격하려던 건 어제이긴 했다.

하지만 천공단이 추적매를 잡는 과정에 드러낸 무공을 멀리서 보면서 참기로 했다.

‘좀 더 두고 보자.’

참을성이 어째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로 하루 미뤄졌다.

그러곤 전면전보다는 기습이 낫다는 판단도 곁들였다.

비로소 이 밤.

은밀히 천화서고 대공자의 아래층 방을 잡는 데까지 성공했다. 더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 준비해라.

전음을 발한 건 음산오살의 대형이었다.

올해로 예순셋.

금적자 때문에 평소 잊고 있던 나이를 계속 떠올리게 된 그였다.

즉시 네 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냈다.

계획은 간단하다.

천장을 뚫고 위층 방에 천화서고 대공자를 제압한다.

이름이 송화라고 했던가. 예쁘장한 그 시녀만 차를 준비하느라 곁에 있을 뿐이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이 무리의 핵심 인물이다.

뒤따라오는 동안 상황은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무극살부며 천공단의 역할이며 어떤 상황인지 면면이 누구인지.

딱히 주의를 기울인 건 아니었다. 천공단이 워낙 소란스럽게 떠드니 모르기가 어렵고 거의 저절로 알아진 수준.

그렇게 음산오살이 여태 존재감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던 기운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려 할 때였다.

“이 새끼가아아아아!”

금적자의 고함소리가 쩌렁 울렸다.

예상치 못한 외침에 음산오살이 와닷 놀라 목을 움츠렸다.

“으읍…….”

막 기운을 뿜어내려던 터라 기혈이 역류해 몇이 가슴을 움켜쥐면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분노한 금적자의 외침이 이어졌다.

“어린놈의 패악질이 끝도 없구나아아아아아아아!”

우당탕탕 소리가 나면서 이내 위층이 소란스러워졌다. 금적자를 위시한 천공단이 우르르 방으로 몰려든 것이다.

음산오살의 대형이 미간을 찡그렸다.

다 몰려왔으니 이래선 급습의 의미가 없었다.

- 조금 더 두고 보자.

- 네.

당연한 결정이었다. 소란은 어차피 곧 진정될 것이다.

원래 천공단은 이런 놈들이지 않는가.

여태 참았는데 조금 더 인내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 금적자가 틀림없거늘 어찌 저리 망가졌는지 알 수 없구나.

- 약을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 그나저나 천공단주가 뭐라고 저리 기를 쓰고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 예전의 강호는 이렇지 않았거늘, 어찌 이리 어수선하고 몰상식해진 건지.

음산오살이 더 두고 보기로 하며 탄식하고 있을 때, 위층 천공단의 분위기는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금적자와 무산쌍웅이 험악한 기세를 드러내며 들이닥친 탓에 항마삼협이며 묘빙빙까지 급히 방 안으로 몰려왔다.

“무례하게 무슨 짓인가요!”

막 찻잔을 내려놓던 송화가 두 팔을 벌리고 주인 앞을 막아섰다. 눈이 돌아간 금적자에게 송화가 안중에 있을 리 만무했다.

“처자는 비키게에에에!”

금적자의 호통에 내력이 실려 있어 송화가 몸을 휘청였다.

후공은 턱을 매만졌다.

송화의 마음 씀씀이야 가상했지만, 금적자는 송화가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의 인물이 아니었다.

“송화야, 물러나거라.”

“하지만 공자님…….”

후공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이어 금적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선생께선 무슨 일이십니까?”

이미 지붕 위에서 오간 대화는 모두 듣고 있었다.

동시에 아래층 반응도 신경 쓰고 있던 상태.

지난 번 객잔에서 시비가 붙었던 다섯이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알기에 나름 대비하고 있었는데, 천공단이 우르르 몰려왔으니 아래층은 이제 문제될 것이 없었다.

“몰라서 묻나!”

“말씀해 보십시오.”

“자네가 뭔데 멋대로 천공단주를 정하는가. 보호를 받는 주제에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고 그러냐고오오!”

묘빙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만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공단주를 정했다고요? 범 공자, 그렇게 안 봤는데 몹쓸 사람이었군요. 어떻게 사람이 뒤로 호박을 깔 수가 있죠!”

다들 멈칫해 묘빙빙을 바라봤다.

소천개가 눈을 찡그리며 ‘씨는 어디갔어?’라고 중얼거렸다.

화를 냈던 금적자조차 잠시 멍청한 얼굴로 묘빙빙을 응시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묘빙빙은 그딴 거 신경 쓰는 존재가 아니었다.

“새도 안 잡혔는데 천공단주라니 말도 안 돼요. 대체 뭔가요? 범 공자는 우리 중 누굴 천공단주라고 정했다는 건가요? 설마 저인가요? 그렇더라도 미리 언질은 줘야잖아요?”

후공이 대답할 기회는 없었다.

“아니여어어어!”

금적자가 소리쳤다.

워낙 큰 고함이라 묘빙빙뿐 아니라 다들 놀라서 움츠렸다가 인상을 쓰며 쳐다봤다. 아래층 방에 있는 음산오살조차 놀라 살짝 경기를 일으켰을 정도였다.

금적자가 후공을 노려봤다.

“허튼 수작은 좋지 않네. 이번에는 경고지만 다음번에는 말로 끝내지 않을 것이야.”

“거참 굉장하군요.”

후공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당연히 굉장한 상황이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었나 싶어서 그렇습니다. 괜히 으쓱해지는군요.”

“뭐라고?”

“그러니까 선생의 말은, 제가 인정하면 누구든 천공단주가 된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금적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택도 없지.”

“그럼 선생께선 왜 이리 화가 나셨습니까?”

“…….”

“제가 주장한다 해도 어차피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이게 화를 낼 일입니까?”

“…….”

금적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할 말을 찾는 듯했지만, 떠오르지 않아 입술만 깨물 따름이었다.

난처함을 도운 건 무산쌍웅이었다.

“선생께서 화가 나신 이유는 자네가 예의가 없기 때문이네! 우리는 자네를 지키겠다고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거늘 한 번이라도 고맙다, 고생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느냔 말이야!”

후공이 무산쌍웅을 바라봤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어?”

“고맙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어…….”

오만하게만 보고 있던 천화서고 천재가 바로 고맙다는 말을 할 줄 몰랐던 무산쌍웅은 멍청이 대답하고는 이내 금적자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 상황에 항마삼협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고, 은앙개와 소천개가 소리 죽여 낄낄거렸다.

후공이 입을 열었다.

“이유야 어떻든 마침 잘됐습니다. 천공단주에 관해 제 역할은 없으니 그 이야기는 이쯤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 밤 천공단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왕 다들 모였으니 무극살부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무극살부? 자넨 아직까지 걱정하고 있었단 말인가?”

항마삼협이 비웃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클클, 보기와 달리 쫄보에 겁쟁이였구만.”

“태연해하기에 여유가 있는 줄 알았더니, 내심으론 전전긍긍이었다니 재밌군.”

“살수들은 오지 않아. 불에 날아든 나방이 빙의해야 올까 말까네. 온다고 해도 우리가 곁에 버젓이 있는데 누가 자네에게 손을 쓸 수 있단 건가.”

“범 공자! 병신같이 겁먹지 마욧!”

묘빙빙도 뾰족하게 외쳤다.

“흐음…….”

후공은 침음성을 흘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후공은 묘빙빙을 만난 이래 처음으로 백화장주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분명 일전에 본 백화장주는 멀쩡해보였는데 애를 왜 이렇게 키웠는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내심 마음을 달랜 다음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묘 소저, 무척이나 겁이 납니다. 걱정도 되고요. 추적매는 여전히 따라오고 있습니다. 멸살단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 무극살부 입장에서 손 하나라도 귀할 터인데, 그저 지켜볼 목적으로 따라올 리 만무합니다.”

“…….”

“오늘 밤은 첫 번째 기습 이후 칠 일. 방심하기 좋은 시기가 아닙니까. 그리고 무극살부에게 남은 시간도 많지 않습니다. 오늘을 포함 사흘 정도입니다. 그 안에 어떤 식으로든 살행에 나설 겁니다.”

“뜬금없이 사흘은 또 뭔가?”

항마삼협이 물었다.

다들 같은 의문이었기에 모두의 시선은 후공의 입에 주목했다.

“약왕문까지는 앞으로 닷새면 도착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삼 일째 정도면 남궁세가의 영향권에 들어갑니다.”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멸살단에 압박 받고 있을 무극살부입니다. 그런 무극살부가 남궁세가의 영역권 내에서 소란을 피워 남궁세가까지 자극하는 건 문제를 키울 뿐이니 부담스러울 겁니다. 그러니 무극살부에게 남은 시간은 사흘뿐입니다.”

“…….”

다들 말없이 수긍했다.

그럴듯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듯한 정도가 아니라 상황이 선명히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이놈 뭐지?’

서책에 파묻혀 살고 은둔과 피폐한 시절을 보냈다던데 어째 상황 분석이 노련한 강호인보다 더하다 싶었다.

방 서재 폐인이었던 주제에 지역적 거리 감각이며 무림세가의 영향권까지 인지하고 있지 않는가. 다들 눈이 절로 가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천공단 중 이미 천화서고 대공자의 맛을 본 은앙개와 소천개만 이 정도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상식적인 분석이야 그렇긴 하지. 하지만 사흘이든 열흘이든 상관없네.”

“무극살부 놈들은 오면 죽어. 보이는 순간 죽어.”

무산쌍웅이 무심히 뇌까렸다.

후공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단순히 기습을 하려는 것이라면 살수들은 죽게 될 겁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우리가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 리가.”

“무극살부가 독을 사용한다면 대처하기 어려울 겁니다. 특히 공기 중에 살포한다면 더욱 난처해질 테지요. 그런 상황에서 천공단이 과연 저를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여러분들은 독에 대항할 수단이 있습니까?”

무극살부의 수단이라면 독 외에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에 후공은 천공단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은 육각망과 영악초를 복용했기에 대처가 가능하다지만, 과연 천공단이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을 것인가. 까딱 잘못했다가는 이 망나니들 중 몇을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눈앞에서 독을 쓰거나 독을 음식에 타는 방식으로는 천공단을 어찌할 수 없다. 독은 특이한 성질을 지닌 것일 테고, 하독의 수법도 남다를 터.

그렇기에 천공단의 역량을 다시금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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