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53화 (53/460)

53화. 천공단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다

그때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하하하! 독 때문에 벌벌 떨고 있었단 말인가요? 호호호! 정말 못 말리겠군요. 독은 염려 마요. 제가 전문가니까요.”

묘빙빙이었다.

그녀에게 쏟아진 시선들 그 어디에도 기대에 찬 눈빛 같은 건 없었다.

‘은젓가락 출현인가…….’

학습효과라는 것이 있다.

다들 머리에 젓가락만 떠올렸다.

이미 독을 살핀다고 은젓가락으로 빠른 고기 섭취를 보여준 묘빙빙이었다. 은젓가락은 독의 판별보단 개인 식기용도에 가까웠다.

묘빙빙이 통통한 만두 같은 볼살 위로 눈빛을 반짝였다.

“자, 다들 보아요.”

묘빙빙이 목걸이를 빼내 보였다.

옷섶에 가려져 있던 목걸이의 보석이 드러났다.

둥그런 형태의 백색 보석이 은은히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이건 섭독주(攝毒珠)에요. 피독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능을 지녔답니다.”

“오오!”

천공단이 탄성을 터뜨렸다.

후공도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군.’

아니, 꽤 괜찮다고 해도 될 정도다.

피독주는 독에 당했을 때 입에 머금으면 체내의 독기를 흡수하는 효능을 보인다.

하지만 섭독주는 거기에서 더 나아간다.

외부의 독을 감지하면 색깔이 변하고 독성까지 흡수하니 피독주와는 비교 불가한 기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섭독주라도 다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건 아니다.

특정 독은 섭독주가 무용지물이기도 하고 섭독주에 따라 어떤 건 십여 종의 독을, 또 어떤 건 천여 종의 독을 흡수할 정도로 천차만별이었다.

묘빙빙의 섭독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가문이 백화장이란 것을 감안하면 제법 쓸 만할 터.

“여러분~. 본녀의 곁에만 있으면 죽을 걱정 같은 건 망상에 불과하답니다. 그러니 범 공자도 어디 멀리가지 말고 제 곁에 바짝 붙어있도록 해요. 항마삼협께서 어찌 알았는지 살아보겠다고 제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는 걸 범 공자도 봤을 테죠? 하여튼 세 분 눈치가 보통 빠른 게 아니라니까. 아하하하! 호호호호호!”

항마삼협의 안색은 급하게 썩어들어갔다.

후공은 훌륭하다는 말을 던지고는 시선을 개방 쪽으로 돌렸다.

은앙개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야 뭐 독은 음식의 일종이지. 어릴 때부터 온갖 것을 다 먹어 버릇해서 어지간한 독에는 끄떡없거든.”

“형아, 사형 말이 맞아. 나도 독에 엄청 강해. 엄청 강하게 컸거든.”

“강하게 큰 것과 독이 무슨 상관이란 거니?”

묘빙빙이 핀잔을 주었다.

“상관이 있지. 사부가 독버섯 먹인 다음에 죽을 것 같으면 살리고, 독지네 먹이고는 죽으려고 하면 살리고, 그래서 그렇게 죽었다가 살아났다 하다 보니까 이젠 만향 독두꺼비 같은 것도 그냥 한 끼 식사라구. 누나의 섭독주야 누나처럼 예쁘장하지만 부럽진 않다구!”

“사부가 정신병자였구나.”

“좀 그렇지.”

후공은 더 확인하지 않았다.

이 두 놈의 사부가 개방 방주라는 점만으로 신뢰가 갔다. 현 개방방주가 그러고도 남을 놈인 건 후공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음은 무산쌍웅이 입을 열었다.

“우린 독을 두려워하지 않아. 독이 우릴 무서워할 뿐.”

왜 그런지에 대한 부가 설명은 없었다.

후공도 그러냐며 넘어갔다.

강호에 몸담은 이들의 특성 탓이다. 자신의 실력이나 진가를 전부 드러내는 걸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독이 작용하기 전에 상대의 목을 따면 그만일세.”

“난 숨을 참아버리지.”

항마삼협과 금적자가 연이어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후공은 대단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천공단이 괜히 천공단이 아니로군요. 여러분들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독의 종류는 다양하고 예측이 안 되는 것도 많습니다. 현재 가장 경계해야 하는 류라면 무색무취 상태로 공기 중에 살포하는 것일 테고, 보통 그 범위는 십여 장 안팎입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부터는 세 무리로 나누어 넓은 간격으로 위치를 잡으면 대처가 수월할 듯싶은데, 여러분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적자가 소리쳤다.

“싫어어어!”

분노한 건 금적자만이 아니었다. 무산쌍웅이며 항마삼협 등이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듣자 듣자 하니 가관이로군.”

“기도 안 차는군. 자네가 뭔데 우리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가?”

“새를 잡으라 하질 않나, 흩어져 있으라 하질 않나. 누가 보면 우리가 자네의 수하들인 줄 알겠어.”

“아무렴, 보호받는 처지란 걸 잊으면 곤란해. 주제도 모르고 천공단주 행세를 하면 못쓰지.”

“맞아요.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해야지, 주객이 전도된 것 같네요. 모양새도 그래요. 혼자 의자에 앉아 있고 우린 다 서 있는 것도 누가 보면 우리가 명령 받는 것 같고요.”

묘빙빙까지 한마디씩 던지며 책망했다.

천공단의 반발은 격렬했지만 뜻밖에도 이웃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 대형, 젊은 놈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아래층 이웃들은 진지했다.

아우의 전음에 음산오살의 첫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 그렇구나. 만약 예상치 못한 독공을 펼친다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대처하기 좋을 듯싶다. 한쪽이 당하더라도 바로 다른 쪽이 만회할 수 있을 테니. 낮이라면 몰라도 밤에는 우리도 그리 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 네, 분명 무극살부는 한 수를 지니고 있을 겁니다.

- 천공단 녀석들 도통 제정신인지 알 수가 없군.

천화서고 대공자의 말은 하나하나 맞는 말이었기에 음산오살이 도리어 위기감을 느끼고 공감했다. 이래서 이웃이 더 낫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후공도 음산오살의 대형과 같은 마음이었다.

‘이 정신 나간 놈들을 어찌한다…….’

다들 눈앞에서 꺼져줬으면 싶은데 말은 들어먹지 않고 힘으로 찍어 누를 수도 없으니 슬슬 짜증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쨍그랑. 꽈작.

1층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탁자가 뒤집히는 소리가 연달아 터져나왔다. 사람이 여럿 쓰러지는 소리도 들렸다.

“쯧쯧, 술을 처먹으려면 곱게 처먹을 것이지. 제가 휙 다녀오지요.”

은앙개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막 자리를 뜨려다 멈췄다. 눈도 휘둥그레졌다.

풀썩.

창가 쪽에 있던 송화가 전조도 없이 쓰러진 것이다.

비명조차 없었다.

모두 놀라 안색이 급변했다.

“응?”

“무슨?”

“설마?”

“……독???”

상황을 파악할 정신은 없었다.

쿵! 소리가 이어졌다.

묘빙빙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녀의 목에 걸린 섭독주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누나의 섭독주가 왜 반응을…….”

소천개가 말을 맺지 못하고 휘청이다 그대로 쓰러졌다.

“막내야! 왜 그래?”

은앙개가 놀라 소천개를 붙들려 했지만, 은앙개도 소천개를 잡는 순간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곧이어 무산쌍웅과 항마삼협이 비틀거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돼…….”

“무슨 독이기에…….”

“설마 이렇게 죽는다고?”

“잠이…… 쏟아져…….”

황망한 표정도 오래가지 못했다. 다들 몇 번 휘청이다 그대로 고꾸라졌다.

금적자라고 사정이 다른 건 아니었다.

그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수면독?”

정신이 아득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게 내려앉으려 했다.

짜악.

금적자가 자신의 뺨을 갈겼다.

하지만 이건 한낱 졸음이 아니어서,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는 건 무리였다. 그도 결국 다리가 풀리며 널브러졌다.

금적자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천화서고 대공자를 바라봤다.

“아…….”

한탄이 절로 터졌다.

역시나였다.

의자에 앉은 대공자는 머리를 떨구고 축 늘어져 있었다.

‘천공단은…… 이대로 끝인가…….’

스스슷.

그사이 창문을 통해 다섯 인영이 들어섰다.

특급살수들이었다.

그들이 방 안을 훑었다.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일 층 식탁에서 개봉한 만면환의 독기는 순식간에 객잔 사방 십여 장까지 퍼져 근처 전부를 잠재운 상황.

만면환은 엄밀히 말해 독은 아니었다.

극악한 수준의 수면제.

일각 동안 방원 십여 장을 전부 잠재운다.

희귀초인 만면초를 환으로 만든 것인데, 만면초는 10년을 땅속에 있다가 잎사귀가 땅 밖으로 올라와 9일을 유지한 뒤 시들어 사라진다. 물기에 닿으면 기화된다.

구하기 어렵고 조제하는 것도 난맥이 많다.

살행에 있어 만면환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잠든 상대를 죽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는 것이다.

단점이라면 단연 해독제였다.

만면초보다 더 희귀한 영악초. 뿐만 아니라 영초의 악취는 이 세상의 악취가 아닌 수준.

이는 단점이면서도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누가 있어 영악초를 복용할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그걸 온전히 체내에 흡수할 수 있을 것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흐으음…….”

“?”

예상치 못한 신음소리에 특급살수들이 급히 소리를 쫓았다.

금적자였다.

놀랍게도 완전히 잠들지 않았고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특급살수들은 무심히 바라봤지만 내심으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금적자로군.’

만면환이 아니었다면 금적자 정도의 인물을 처리한다는 건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내…… 피리……. 피……리를…… 불어야 하는데…….”

금적자가 느릿느릿 말했다.

그의 손은 자신의 허리춤 근처에 있었지만 그 짧은 간격이 수만리처럼 느껴졌다.

금적자는 결국 피리를 잡는 걸 포기했다.

대신 살수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쏟았다.

“……피리 좀 줄래……?”

“…….”

“…….”

특급살수들이 누구 할 것 없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 판국에 만담인가?

그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항마삼협이었다.

“부탁…… 하나 하지.”

“천화서고…… 대공자를…… 건드리지 마라.”

“그…… 대신…… 우릴 죽여라…….”

항마들은 셋이면서도 하나처럼 마음이 같았다. 처연한 목소리 속에 비장함이 묻어났다.

특급살수들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금적자에 이어 항마삼협까지 온전히 잠들지 않았다니.’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크크, 너흰 쓸데없이 비장하구나. 걱정마라. 대공자도 죽이고 너희도 함께 보내줄 테니.”

특급살수의 비웃음에 항마삼협도 웃음으로 응수했다.

“그럼…… 우린…… 살려줘.”

그 말에 금적자가 실실거리고, 여태 자는 것 같던 무산쌍웅도 의식은 있었는지 힘없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심지어 그 말에는 잠든 척하고 있던 후공조차 웃어버릴 뻔했다.

‘이런 정신 나간 놈들. 그래도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군.’

평소에 부리는 여유야 누군들 못할까.

죽음을 앞두고는 여유라는 건 증발되고 만다.

그렇기에 천.공.단~~~~ 하며 떠들기만 해 한심하게만 보였던 녀석들이 제법 그럴싸한 강호인처럼 느껴지는 후공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살릴 기분도 나지.’

거지들은 새근새근 잘 자고 있다.

묘빙빙은 심지어 베개 없냐면서 잠꼬대 중이다.

어린아이들은 잘 자야 하니 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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