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삼악에 이른다는 것의 의미 (1)
한편 지하석실의 후공은,
‘기이하군. 감각이 사라지다니…….’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독양충이 원인.
독양충은 육각망이나 영악초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생김새야 풍뎅이 같아서 특이할 건 없었다.
언뜻 봐선 실제 풍뎅이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흡사했다. 자세히 봐야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
악취도 예상대로였다.
육각망은 외피뿐 아니라 산 채로 녹색 피를 복용하는 과정에서 극악한 악취에 시달려야 했고, 영악초는 입 안에 넣고 씹는 순간 온 세상의 시궁창이 밀려드는 끔찍함이었다면, 독양충은 외피에서 썩어나가는 시큼함이 풍기는데 순간 아찔하게 현기증이 일 정도로 역했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은,
독양충의 내단에서 시작되었다.
독양충의 몸통을 뜯어내고 찾아낸 내단은 윤기 흐르는 검은 구슬 같은 형태였는데, 기이하게도 악취가 전혀 없었다. 여기까진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
내단을 삼킨 순간, 모든 악취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갈라지고 뜯겨나간 독양충의 외피가 곁에 남아 있으니 그 냄새만은 계속 풍겨야 하건만, 그 냄새까지 증발해버린 터.
후공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감각에 문제가 생겼다.
확인을 위해 황급히 옷소매를 끌어와 냄새를 맡아봤다. 천 특유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독양충의 내단이 냄새를 삼킨 것인가?
아니다.
이는 후각의 상실.
바로 미각도 확인했다.
입술을 살짝 깨물어 피를 내고 혀로 음미했다. 찝찔한 피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의 점성 감촉만이 모호하게 혀에 맴돌았다.
후각에 이어 미각까지 상실.
인간의 오감(五感) 중 이감을 잃었다. 내력이 상승한다 쳐도 두 개의 감각을 잃은 것은 큰 타격이었다. 무림인으로서도 문제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희로애락에서도 치명적이다.
봄이 와도 꽃은 향기가 없고, 맛있는 요리라는 표현도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이다.
내력 상승의 대가로 지불하기엔 너무도 큰 손실.
삼악의 부작용인가?
그런 생각이 잠시 떠올랐지만 후공은 이내 떨쳐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찬란한 아침은 어둠을 지나야 볼 수 있다.
어둠이 없다면 빛이 얼마나 찬란한지 알 수 없다. 천지를 비추는 햇살의 감흥은 밤이 있을 때라야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멈춰야 하고, 정체된 순간은 도약을 위한 움츠림일 뿐이다. 빛의 위대함은 온통 캄캄한 흑암 속에서 드러나며, 무학의 이치 또한 그런 자연의 섭리 안에서 노니는 것이 아니던가.
이는 진일보를 위한 일시적인 늪.
후공은 곧바로 좌정하여 독양충의 내단에 의식을 집중했다.
내단의 일부가 녹아들면서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하나의 물결이 출렁이는 것 같이 변해갔다. 또 점점 뜨거워져갔다.
순식간에 변해가며 이내 불덩이를 삼킨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타오르는 느낌. 마치 부글거리는 용암물이 몸 안에 깃든 듯했다. 용암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싶은지 그 자리에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방향을 잡지 못하고 제 자리만 지킨다.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꿈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후공은 내단의 기운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기를 운용해 전신세맥에 흩뿌려놓은 육각망과 영악초의 기운을 끌어 내단 쪽으로 흘려들게 하여 감쌌다.
삼악의 결합.
쾅!
내부에서 폭음이 터졌다.
그것을 기점으로 용암 덩어리가 폭주했다.
거대하고 빠른 물결이 전신 경맥을 휘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주천하여 기경팔맥을 휘젓고 세맥까지 관통하는 기운은 그야말로 폭풍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후공의 모습은 고요히 좌정한 것으로 보일 뿐이나, 내부는 불덩이가 휩쓸고 있었다.
밖은 어느샌가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후공의 시간은 멈췄다. 시간을 잊고 공간을 잊고 그저 몰아지경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
그 시각,
“수면독이었다고요?”
“그래. 잠이 몰려오는데 감당이 안 되더구나.”
“만면환이었나 봅니다.”
“만면환?”
별채에서 천공단이 ‘역시 고기는 소고기지’라며 돌고 돌아 저녁으로 다시 소를 구워먹던 중에 용화청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무극살부의 습격 당시로 흘러 수면독이 거론된 터.
금적자의 상황 설명에, 용화청은 바로 수면독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네, 만면환은 수면독 중에서도 고약하기 짝이 없는 류입니다. 만독불침을 이룬 자라도 잠드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살수들치곤 제법이다 싶군요. 특히 해독제를 만드는 건 만면환 제조보다 몇 배는 난해한데 말입니다.”
“아하! 그래서 본녀의 신물이 통하지 않은 거로군요.”
묘빙빙이 그래서 그랬구만, 이란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화청은 얼른 못 들은 척했다.
그때 은앙개가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각주께선 어찌 보지도 않고 만면환이라고 단언하십니까? 수면독은 한둘이 아닙니다만.”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천공단의 시선은 용화청을 향했다. 용화청이 웃음을 머금었다.
“대공자께서 잠들지 않았다고 하니 만면환일 수밖에요. 영악초만이 유일한 해독제이고, 극소량을 써야 하기 때문에 여러 배합이 필요합니다. 한데 대공자께선 영악초를 통째로 흡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만면환이 통할 리가요. 물론 그 와중에 대공자께서 잠든 척 기지를 발휘한 부분이 저는 더 놀랍습니다.”
무산쌍웅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잔혹한 미소를 띠었다.
섬찟해진 용화청이 놀라 몸을 움츠렸다.
“클클클, 역시 명실상부 천화서고로군.”
“클클, 형님은 다 준비가 되어 있었구만. 괜히 천공단주가 아니지. 클클클.”
살수라도 전개할 것 같던 무산쌍웅이 사실은 자기 일처럼 뿌듯해하고 있는 것뿐인지라, 용화청은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곧바로 항마삼협이 투덜거렸다.
“아니! 형님은 좋은 건 나눠먹어야지, 혼자 드시고 너무하는구만.”
“맞아! 우리에게도 천화서고에 갈 때마다 고기만 구워줬어요. 아주 못됐어.”
“아, 두목 그렇게 안 봤는데, 이거 마음의 상처가 남는구만.”
이어 소천개와 은앙개가 농담을 던졌다.
그런 반응에 용화청은 순간 호기심이 동했다.
‘과연 천공단이라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천공단은 무시할 수 없는 면면인 것이다. 그래서 바로 넌지시 미끼를 던졌다.
“다들 영악초 복용이 난해한 건 모르시나 봅니다.”
“그깟 게 뭐라고요! 몸에 좋다면 썩은 물도 꿀떡꿀떡이에요!”
묘빙빙이 바로 핀잔을 주었다.
뒤이어,
“아무렴, 도움이 된다면 모래도 웃으며 씹어먹지.”
“모래가 뭡니까, 소똥이라도 못 먹겠습니까.”
“나도 나도! 깔끔한 형아가 먹은 걸 내가 못 먹을 리 없어!”
다들 미끼를 덥석 물었기에 용화청이 자신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 지었다.
천공단주만이 아니라 천공단에게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덕분에 약왕문이 활기를 띠게 되지 않았던가. 영악초 하나 정도는 건넬 수 있다.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좋고, 실패해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천공단분들이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군요. 사실 본문에 여분의 영악초가 있는데,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
“……??”
“……?”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미 약왕문으로부터 원신단을 받게 됨을 알고 있다.
원신단은 약왕문의 금약(禁藥) 중 하나.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받게 된 것도 놀라운데, 영악초를 건넨다 하니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강호의 위협에는 예고가 없다. 이번 무극살부 건도 살수들 따위라며 벌레 취급하다 영영 생을 마감할 뻔하지 않았던가. 또 언제 만면환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지 모르는 일. 영약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백번이라도 먹어야 했다.
“그런 걸 왜 일일이 물어보는 게냐아아!”
금적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각주, 얼른 다녀오지 않고 여기서 뭐하는 거요!”
“빨리요, 빨리!”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다녀오시오!”
천공단은 용화청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워하며 성화를 부렸다.
잠시 후,
“흐음, 천공단이라……. 왠지 기대되는구나. 함께 가자꾸나.”
허락을 구하러 온 아우의 말에 부문주 화운이 흥미가 돋았다. 그는 아예 내친 김에 자신만 나선 것이 아니라 아홉 장로들까지 대동하고 별채로 향했다.
만약 천공단 중 영악초 복용에 성공하는 이가 나타난다면?
좋은 일이다.
약왕문 입장에서도 자극제가 될 터.
이미 천화서고 대공자가 이악을 이루었고 삼악에 나아가고 있다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의미가 남다른 것이다.
솔직히 삼악을 이뤄가는 대공자의 언행이 마치 한 끼 식사하듯 하니, 원래 삼악이란 게 별것 아닌 건 아닐까 하는 망상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약왕문 수뇌부가 우르르 별채로 몰려갔을 때, 천공단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거의 칼부림 직전.
“…….”
“…….”
“…….”
다들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며 얼이 나갔다.
영악초를 누가 먼저 먹을 것이냐를 놓고 순번을 정한다고 금적자부터 어린 소천개까지 아귀다툼이 장난이 아니었다. 온 걸 알 텐데도 아는 척 따위 없었다.
화운이 나섰다.
“진정하십시오. 따로 순번은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응?”
안녕하십니까, 따위였다면 멈추치 않았을 천공단이 다툼을 뚝 그쳤다.
“똑같은 분량의 영악초를 나눠드릴 테니, 동시에 드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화운이 눈짓했다.
화청이 얼른 하나의 영악초를 9등분해 각각 천공단 한 명 한 명에게 건네주었다.
화운은 복용시 주의할 점과, 복용에 성공하는 이에겐 몇 명이 성공하든 각기 하나씩의 영악초를 통째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후후, 하나도 아니고 9분의 1이 뭐라고. 냄새도 파릇파릇 신선하니 좋기만 하구만.”
“고작 주의사항이 씹어먹어야 한다는 건가?”
“우린 개방이어요! 약왕문 분들, 개방 너무 무시하신다!”
“아무렴, 우리에게 악취 같은 건 일상이지. 코가 마비된 건 오래 전이라고!”
“난 먹는 건 뭐든 자신 있어!”
퉁퉁!
묘빙빙까지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
“자, 그럼!”
금적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공단이 동시에 영악초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누구는 두 번, 누구는 빠르게 세 번!
그렇게 씹고,
한순간에 정지했다.
정지하지 않은 건 눈동자뿐. 다들 동공만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그리고 이내, 첫 탈락자가 나왔다.
“쿠우웨웨에에에엑!”
뭐든 먹을 수 있다던 묘빙빙이었다.
그녀는 비명처럼 토악질을 하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 엎드려 촤르르 촤르르 거렸다. 방금까지 먹었던 것이며, 점심과 아침에 먹은 것까지 게워내는 중에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러면서도 멈추질 않았다.
“쿠우우우웨에에에엑~~. 케에에엑!”
연신 쏟아내는 묘빙빙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이어 소천개에게로 향했다. 소천개가 느닷없이 발작을 일으키며 나뒹굴고 울부짖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건 아니잖아아아아~~. 쿠웨에에에엑~~ 이 개새끼들아아아아. 쿠웨에에엑!”
약왕문 수뇌부들을 향해 욕을 쏟아낸 소천개는 그 자리에서 나자빠져 뒹굴면서 묘빙빙처럼 게워내기 시작했다.
어린 녀석의 쌍욕이었지만 화운을 비롯한 장로들은 이해했다. 그들 모두 경험자다. 어떤 고통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욕은 멀쩡한 사람임을 증명할 뿐, 인성과는 관계가 없었다.
뒤이어,
“우웨에에에엑! 이 시발 새ㄲ……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엑!”
은앙개가 간발의 차이로 소천개를 뒤따랐다.
묘빙빙부터 소천개, 은앙개까지 바닥을 나뒹굴면서 토하고, 흐느꼈다가 와중에 쌍욕까지 내지르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화운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천화서고 대공자!
그를 경이롭게 여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삼악 중 일악이라도 다가가지 못한다.
누구라도.
영악초는 삼악 중 그나마 순한 맛이란 평가인데 이 지경이다. 이는 그저 대공자가 상식 너머의 인간이란 의미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