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78화 (78/460)

78화. 삼악에 이른다는 것의 의미 (2)

그래도 천공단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젊은 세대는 무너졌지만 연륜의 중노년은 아직 건재했다.

금적자와 항마삼협, 그리고 무산쌍웅.

그들은 버텨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서로 간에 신경전까지 벌였다.

“클클, 금적선생과 삼협께서는 힘들어 보이는데 이쯤에서 포기하시지요.”

무산쌍웅의 도발에 금적자가 비웃었다.

“훗, 몸을 부들대면서 말하는 꼴이 우습구나.”

“선생께서도 볼살 떨면서 할 소리는 아니다 싶습니다만.”

“다들 말이 많은 걸 보니 후달리나 봅니다. 그렇다면 최후의 승자는 우리 삼협일 테지요!”

누구 할 것 없이 바들바들 떨면서도 입으로는 잘도 나불거리는 것이 과연 천공단이었다.

이내 그들이 행동을 전개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잘근잘근 영악초를 씹어갔다. 강호의 연륜과 쌓아온 명성, 거기에 경쟁심리까지 더해진 탓에 누구 할 것 없이 몸을 덜덜거리면서도 꼭꼭 씹고는 꿀꺽 삼켰다.

“으하하하하하하! 별것 아니구만. 하하하하하!”

먼저 금적자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를 이어 항마와 무산도 웃음을 쥐어짜냈다.

“하하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으흐흐흐흐!”

“클클클클…….”

약왕문 수뇌부는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

“…….”

그들은 알고 있었다.

찬사를 보내는 건 시기상조.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작 비극이 될지 희극일지는 지금부터 드러난다. 영악초를 삼킨 것이야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삼키는 정도까지는 약왕문에서도 숱한 경력자가 있었다.

그렇기에,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하하, 왜 멀어지는 게냐?”

그 모습에 금적자가 갸웃하며 물었지만,

슬금슬금.

좀 더 빠르게 약왕문 수뇌부는 거리를 더 벌리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하하, 자꾸 어디 가!”

“하하, 우리가 무섭나 봅니다.”

금적자 등이 서로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조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화운등은 마른침을 삼켰다.

‘곧 벌어진다.’

늘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웁!”

무산쌍웅이 비틀하더니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순간적으로 양 볼이 잔뜩 부풀어올랐기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터져나오기 직전.

곁에 있던 항마삼협이 흠칫 놀랐다가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왜 그래? 괜찮나?”

무산쌍웅이 이내 답했다.

“꾸웨에에에에에에엑!”

“으웨에에에에에에에엑!”

대답은 소리로 대신되었다.

소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분출물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

토사물이 직수로 항마삼협의 면상으로 쏘아졌다. 가까이에 있기도 했고, 그만큼 굉장하게 튀어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항마삼협이 누구인가. 쏜 살이라도, 번개 같은 암기라도 산보하듯 비껴내는 신법의 구사자들이다. 피하지 못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현실은,

“꾸웨에에에엑!”

“으웨에에에에엑!”

“끄에에에에에에엑!”

때마침 항마삼협도 치밀어올라버렸다.

그래서 피하지 못하고 그저 같은 방법으로 대항하는 형국. 덕분에 항마들은 그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쌍웅을 향해 밀려드는 토사물을 토사물로 맞받아쳤다.

콰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두 물줄기와 세 물줄기의 격한 싸움.

그건 무슨 붉은 광선을 쏘아내는 듯한 괴물 같은 광경이었다. 대체 얼마나 처먹었는지 많이도 나오고 멈출 줄도 몰랐기에 지켜보는 이들은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뒹굴고 있던 묘빙빙조차 잠시 구토와 악취를 잊고 ‘뭐여…… 시바…….’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3대 2.

엄청난 양의 토사물의 맞대응.

그 향연 속에 승자 따윈 없었다. 꿩도 먹고 돼지에 소까지 먹었기에 그칠 줄도 몰라, 전부가 머리부터 흠뻑 젖어들어가니 이는 거의 동귀어진이었다. 자신의 뼈를 내줘버리고 상대의 뼈도 취하는 참혹함 그 자체.

“허허허, 장관이구만.”

그 광경에 여유를 부리며 깔깔거린 건 금적자였다.

멀리 서 있던 화운이 물었다.

“선생께선 괜찮습니까?”

“나? 하하, 내 수준을 누구와 견주는 것이냐. 괜찮다마다.”

“괜찮지 않으실 텐데요?”

“허허, 이놈이 날 뭘로 보…….”

금적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쿵!

쓰러졌다.

금적자는 말하다 말고 서 있던 채로 통나무 자빠지듯 앞으로 처박혔다. 그러곤 처박힌 상태로 부들부들 발작을 일으키면서 구토를 시작했다. 그 모양이 꼴사납기 짝이 없었다.

화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금적선생의 모습은 과거 자신의 모습이었다. 메스꺼운 악취를 견디고 삼켰다가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전 반응에 의해 내기를 다룰 수 없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 엉망으로 망가졌고, 그 당시 끔찍한 기억으로 지금까지도 한 번씩 악몽을 꾸는 지경이 아닌가.

내부로 진입한 영악초는 악취는 몇 배로 증폭되고, 또 기도를 타고 역류한다. 그 상황에서 구토는 필연.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몸 안에 남겨진 영악초의 기운이 진기를 역행시키니 운기 불능 상태에 빠진다.

이것이 역전이다.

항마삼협과 무산쌍웅이 서로가 서로에게 토사물로 목욕시키고 있는 건,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몸을 통제할 수 없어 방향을 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역전 반응을 통제하려면 기의 운행에 달통해야 하고, 동시에 높은 의식으로 내부를 조율해야만 한다. 물론 그것조차 이론이 그렇다는 것이지, 얼마나 높은 수준이어야 가능한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삼악 중 하나가 이 정도다.

그것도 9분의 1을 섭취했을 뿐이다.

이런 험난함을 온전히 세 번 넘어야 삼악을 이룸이니, 가히 난공불락인 것이다.

그렇기에 화운으로선 대공자를 경외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강호의 신예들 중 대공자와 견줄 수 있는 자가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니다. 화운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 기세면 신예들이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는 대공자가 이 무림의 정점에 서지 않을까.

화운의 상념은 거기에서 멈췄다.

게워낼 만큼 게워냈는지 금적선생과 항마, 무산이 고함을 내지르며 죽인다며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어어어어어어억, 약왕문 이 개새끼들아~~~.”

“으아아아아아악, 네놈들 다 죽여버리겠아아아아~~.”

“시발것들아, 멸문을 각오해라. 우웨에에에엑!”

이럴 줄 알고 거리를 벌려둔 터다.

다시 생각해도 뒤로 물러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금적자 등의 다가오는 속도가 빠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비척대면서 뛰다가 중간에 넘어져 처박히면 또 벌떡 일어나 아귀처럼 몸을 흔들며 달려오는 광경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화운과 화청, 그리고 약왕문 구장로는 슬금슬금 뒷걸음치다가 이내 줄행랑쳐버렸다.

“크아아아악, 어디 가냐아아아!”

“이 시발놈들아아아아아아! 거기 안 서냐아아아아!”

“으아아아~~ 너흰 멸문이야아~~.”

***

후공은 긴 호흡을 토해냈다.

“후우우우…….”

용암의 물결은 하루가 지나 진정되었다.

후공은 호흡 속에서 내부 기운을 다독였다. 전신을 폭풍처럼 휘돌던 융화된 삼악의 기운은 이제 전신 세맥 곳곳으로 깃들어간다.

3성 초입이던 무형건곤심결은 어느덧 4성에 도달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약왕문을 향해 출발하기 전 막 3성을 이룬 걸 감안하면 넘치는 성과라 할 만했다.

경지의 상승은 시기마다 다르다.

초기 상승은 급격하지만 중기에 접어들면 더뎌진다.

1성에서 3성이 될 때보다 3성에서 4성에 도달하기까지가 더 까다롭다.

한데 이를 단번에 이루었다.

삼악이 결합하면 십대영물에 견줄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반년이 채 되지 않아 4성이다. 범항이 워낙에 비루한 몸이라 12성의 본래의 경지까지 10년을 생각했건만 이 추세면 4, 5년 안에 이룰 수 있을 터.

흡족한 건 비단 경지의 상승뿐이 아니었다.

‘감각이 돌아오는군.’

후공은 소실된 후각과 미각이 돌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상대로다.

감각은 정체되어 있었을 뿐.

잠시 어둠 속에 머물렀지만 그야말로 잠시.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감각이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려 한다. 단순히 회복이 아닌, 이전의 상태를 초월하는 새로운 감각의 시작.

이윽고,

“흡!”

한순간 강렬한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그런데,

‘……?’

뜻밖에도 지금 후공이 맡은 향은 곁에 떨어져 있는 독양충의 외피 악취가 아니었다. 꿀처럼 달콤한 향이었다.

이는 석실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향취였다.

외부에서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마치 실존하는 듯 코를 파고든다. 동시에 입안에도 달콤한 맛이 맴돌았다. 냄새든 맛이든, 후공으로선 이제껏 한 번도 맡아보거나 맛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향과 맛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순식간이라 해야 옳았다.

꿀향이 사라진 빈자리는 다른 향과 맛이 채웠다.

청순한 느낌의 꽃향기.

이어 그것도 빠르게 사라지고 다시 매캐한 악취가 뒤를 이어 감각을 자극한다.

향은 그렇게 계속 변했다.

솔향이 났다가 구린내가 났다가, 절로 침이 고일 정도의 신맛에 미간이 찡그려질 정도로 짰다가 매웠다가, 또 어느샌가는 바다의 내음으로 이어지면서 향과 맛이 계속 바뀌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개의 향과 맛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것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재밌구나.’

후공은 떠올랐다 사라지고 또 떠오르면서 끊임없이 자극해 오는 맛과 향에 의식을 두었다.

이것이 삼악의 공효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수만 가지의 향과 맛이 감각을 자극하며 점멸해가는 중에, 후공은 흥미로운 활용법이 떠올랐다.

육각망, 영악초, 독양충의 악향(惡香)들의 조화는 세상의 모든 향을 배합해내고 있으니, 이것을 조율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무공을 보조할 수단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잡기로는 쓸 만하겠군.’

쏟아져오는 향 속에서 후공은 한줄기 의식을 분리했다. 자신이 지닌 바 무학의 이치를 통해 새로운 공법을 만들어갔다.

...얼마나 몰입해 있었음인가.

후공은 공법의 정립을 마쳤다.

향취의 활용.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까 잠시 고민하였다.

그러다 천향오주(千香五周)라 칭했다.

또한 공법의 성취 단계는 다섯으로 분류했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 일곱 단계를 둘까도 했지만 후공은 축약하기로 했다. 자신이 이룬 삼악의 성취가 온전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전수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단계를 둔 것도 스스로의 성취를 확인하는 의미일 뿐.

일주의 요결은 득(得) 화(和) 결(結).

기본적으로 향을 중화시킬 수 있다. 향취든 악취든 감각에 영향받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는 아예 주변 향을 빨아들여 취할 수 있는가 하면, 향취를 없애는 것도 가능했다.

또한 백여 종의 향액을 물방울 형태로 맺힐 수 있고, 그 농도를 조절할 수도 있었다. 방원 십여 장 정도에 향취를 진동시키는 것도 가능한데, 바람을 탄다면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이주의 요결은 일주의 공효가 심화된다.

거기에 더해 증(蒸), 파(播), 독(毒).

향취를 수증기 형태로 분사할 수 있으며, 그 범위는 주변 백여 장까지 퍼진다. 한 마을로 적용하다 치면 중심지를 전부 향취로 뒤덮을 수 있음이었다. 독의 요결로는 상대에게 영악초를 복용한 듯한 부작용을 끌어낼 수도 있다.

삼주의 단계에서부터는 효용성은 점점 더 커진다.

천리향으로의 활용까지 가능해지고, 향취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며 진해진다. 결국 궁극에 이르면 향취만으로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이 나오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될 터.

후공은 천향이주의 성취에서 멈췄다.

과욕은 화를 부르는 법.

길을 알고 있다고 해도 모든 길에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는 우선 기어야 하고, 그 다음 천 번을 넘어진 후 걸을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잡기이기도 하고.’

그래도 후공이 흡족해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고문법으로 쓸 수도 있고, 추적에도 이용할 수 있는 등 다양성 측면에서 천향은 효용가치가 큰 것이다.

물론 스스로 향공법을 창안하고, 또 그걸 잡기라고 부르고 있음을 화운과 화청이 들었다면 기함했을 테지만, 전직 무림맹주이자 천하제일이었던 이에겐 잡기 정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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