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생매장.
지붕 위의 관전자들도 소란스러워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마지막에 기운을 거둬들인 건가?”
“아주 못된 놈까진 아닌가 보네.”
천공단의 눈에 그리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칠비단혼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 자신의 공격은 진득한 살의 속에 전력을 담은 터.
후공을 바라보는 칠비단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제 그의 시선은 달라졌다.
상대는 일개 서생도 아니고 또 자신보다 아래도 아니었다. 서문세가와 맞설 때 그 중심에 대공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천공단주라는 자리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금적선생, 항마삼협, 무산쌍웅.
명성이 쟁쟁한 이들이 그저 천공단이란 이름 아래 유희의 의미로 즐기고 있다 생각했거늘, 착각이었다.
“대공자, 그럼 어디 제대로 해보지요.”
“제대로?”
후공이 피식 웃었다.
언제는 제대로가 아니었냐는 의미였다.
칠비단혼도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다. 물러날 길은 없었다. 한편으로 마음 한쪽에선 다시금 확인해보고 싶은 열망도 피어났다.
‘우연인지, 실력인지.’
칠비단혼이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사이 이번엔 후공이 선공을 취했다.
일보!
무형보를 딛는 순간, 이 보째는 사라졌다. 나타났을 때는 칠비단혼의 눈앞이었다. 목을 움켜갔다. 금나수였다. 그 움직임에 칠비단혼이 놀라워하면서도 바로 대응했다.
‘어림없다!’
자신을 상대로 금나수라니. 칠비, 즉 일곱 개의 팔이라는 별호는 장법보단 금나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칠비단혼은 짓쳐오는 손목을 낚아챘다.
분명 칠비단혼은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공의 손은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며 벗어났고, 그사이 좌수가 칠비단혼의 어깨를 짚어갔다.
“헉!”
칠비단혼이 경악하며 황급히 뒤로 신형을 주륵 물렸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척에 있던 대공자의 손목을 왜 시야에서 놓친 건지, 허리춤에 있던 대공자의 좌수가 어떻게 동선이 없다시피 하며 갑자기 어깨를 짚어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팔이 여러 개로 보이는 건 자신이 아니라 도리어 대공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한 수.
놀람이 채 가시기 전, 후공이 곧바로 짓쳐들었다.
칠비단혼은 즉시 백비격(百臂擊)으로 응수했다.
백비격은 그만의 독문절예.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수공이었다.
순간 팔이 수십 개가 된 듯 환영이 일었다.
“좋구나!”
후공이 칭찬했다. 무수히 쏟아지는 칠비단혼의 공격 양상은 자신의 움직임을 시험해보기엔 안성맞춤인 탓이었다. 즉시 자령안을 시전하여 환영으로 된 허초를 구별하는 동시에, 의미있는 실초는 허운의 풍익에 맡겨놓았다.
사성에 이른 지금 풍익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바람의 깃털이 되었다. 칠비단혼의 맹렬한 공세를 바람삼아 짧게 휘돌아 방향을 선회하고 빙글 돌아 해소하니, 파상적으로 휘몰아쳐오는 공격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두 사람 사이의 공방이 이루어지는 간격은 1장(약 3미터)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칠비단혼의 곤혹스러움은 점차 커져갔다.
그의 백비격의 환영은 미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모두 걸러지고 있다. 또 실초는 헛손질뿐인 것이다. 한 번씩 정확히 타격을 했다 싶을 때는 기묘하게도 자신이 쏟아낸 기운이 증발된 듯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그는 자신이 마치 허공에 뜬 깃털을 움켜잡으려는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잡으려고 하면 도리어 아이의 손바람 때문에 깃털이 나부껴 벗어나듯 대공자는 그렇게 벗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기운을 흘려내고 비껴내는 방식 또한 점점 더 유연해진다. 이대로라면 백비격이 아니라 천비격이라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정도였다고?’
손속을 빠르게 하면 회피도 그만큼 빨라진다. 느리면 느린 대로 느긋해진다.
이처럼 옷깃조차 잡지 못하고 있으니 내력은 빠르게 고갈되어 가고, 절망은 커져 갔다.
반면 은앙개와 묘빙빙을 비롯해 지켜보는 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입을 쩍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우와아, 두목 개 쎄잖아!”
“형아,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천공단주 맞지?”
지붕 위 셋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두목이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만 여의치 않으면 원신단을 먹고라도 뛰어들려 했는데 쓸데없는 기우였다.
그만큼 상황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처음 칠비단혼의 맹렬한 장력이 적중했을 때만 해도 칠비단혼이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광경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칠비단혼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은 그의 당혹해하는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있고, 기세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 가운데 두목은 표홀한 움직임으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때그때 기민한 몸놀림으로 모든 공세를 해소하며 칠비단혼 주위를 휘돌고 있으니, 감탄하기도 바쁠 지경이었다.
그건 송화나 양소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주인의 예전 모습이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는 만큼 경악을 넘어섰다. 천화서고에서 이공자를 몽둥이로 팰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샌가 주인은 아득한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마음을 바로세우자 이런 성장이라니, 천재란 정녕 이런 존재일까. 그 존재가 바로 천화서고의 대공자였기에 감회가 남다른 송화와 양소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고 뿌듯해지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때 후공은 허운과 통격의 운용에 충분히 만족했다.
거의 삼백여 초가 넘어가는 시점.
이제는 끝내야 할 때였다.
칠비단혼의 수법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이 그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초식에 얽매이는 자의 한계치가 극명히 드러나니 허운을 시험하는 것도 더는 의미가 없었다.
칠비단혼의 장력이 어깨로 짓쳐들었다.
후공은 신형을 흔들었다.
무영보!
흔들한 순간, 잔상이 일었고 후미로 빠지듯 하다 그대로 파고들어 칠비단혼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파앙!
“크윽!”
칠비단혼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중심을 잡으려 했을 때 이번엔 복부 한가운데 쪽으로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우욱!”
고통에 겨워 몸을 움츠리고 간신히 고개를 들려는 순간, 좌측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드는 발이 보였다.
파앙!
이내 머리가 돌아가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몸이 붕 떠올랐던 것일까.
아니면 그대로 땅에 찍혀졌던 걸까.
칠비단혼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은 안면을 땅에 댄 채 처박혀있는 상태였다.
잠시 기절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하지만 기절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렸다지만 그는 아직 현실감이 없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어떻게…….’
이게 아닌데. 그가 생각했던 결과물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이 상태가 된 건지, 흙바닥에 안면이 비벼지고 있는 중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상념은 거기에서 그쳤다.
톡톡!
손가락 하나가 이마를 건드린 탓에 칠비단혼이 눈동자만 굴려 손가락의 주인을 확인했다.
“……대공자.”
입술이 잘 안 움직이는 탓에 발음이 어눌했고 침이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그의 시야 가득 천화서고 대공자가 쭈그려 앉아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깨어났구나.”
“…….”
“그러게 왜 사람 말을 안 듣는 거냐? 내가 뭐라고 했지?”
“…….”
칠비단혼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말을 안 들었던 게 어디 한두 개인가.
“무서우니 쫓아오지 말라면 그랬어야지.”
“그 뜻이…….”
칠비단혼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고서야 알아차렸다.
무서움이 느껴지니까라는 뜻이 아니라, 대공자 자신이 무서운 사람이란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 무서운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오늘 만난 겁니다.]
정녕 오늘 만났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쯧쯧, 진작에 이렇게 나왔으면 좋았지 않느냐. 그랬다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인연도 쌓고 다음을 기약했을 수 있었을 테고 말이야.”
“…….”
“그런데 봐라. 이 꼴이 다 뭐냐. 마차는 부서지고 말들은 다 죽어나가고. 넌 이제 생매장 당하게 되고. 쯧쯧.”
“……??”
칠비단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들었을 텐데.”
“남궁세가의…… 일원인 저를 지금…… 죽이겠다는…….”
“넌 정녕 사람 말을 전혀 듣질 않는구나.”
“무슨…… 말도 안 되는…… 후환이 두렵지…… 큭!”
“소란 떨지 마라.”
바로 아혈이 점혈된 칠비단혼은 몸이 들렸다.
이윽고 어디론가 옮겨지는가 싶더니 구덩이에 던져져 처박혔다.
철퍼덕.
구덩이는 기절해 있는 사이 깊게도 파놓은 터여서, 혼자 묻히기에는 넉넉했다.
칠비단혼이 동공을 미친 듯이 흔들며 구덩이 위를 바라봤다. 내려다보고 있는 네 사람의 얼굴이 햇빛을 등진 탓에 음영져 보였다.
“두목, 덮을까?”
입술의 움직임은 안 보이고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그래.”
“형아, 덮고 풀도 심어놓자.”
“후후후.”
“여긴 정말 외져서, 풀까지 심어놓으면 백 년이 지나도 못 찾을 거야. 최고야!”
발랄한 여인의 목소리까지.
칠비단혼은 동공에 지진이 났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촤악, 촤악.
안면에 흙이 덮여오면서 파묻혀갔다. 눈을 바쁘게 떴다 감았다하면서 떨궈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몸을 움직여도 보려했지만 손가락조차 제어할 수 없었다.
‘정말 이렇게 나를 묻어버린다고? 아니겠지? 그럴 리가……. 그저 겁만 주는 것…….’
스스로를 다독여가던 칠비단혼의 생각이 끊겼다.
완전히 덮였다.
시야는 차단되었고, 흙더미의 무게가 묵직하게 몸을 짓눌러온 것이다.
‘이 시발 놈들이…….’
생매장이라니.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건 아니다. 강호의 수많은 실종자 중 한 명이 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죽음을 맞겠지만, 지금의 결말은 아니었다.
진기를 유도했다.
우선 급한 대로 혈도를 해제해야 한다.
필사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뚜드득.
몸이 움직였다.
하지만,
‘……?’
허리가 들리며 몸이 활처럼 휘었다. 흙더미가 아직 완전히 덮이지 않았기에 그의 배와 가슴이 흙 너머로 드러났다. 기뻐할 순 없었다. 그가 허리를 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들린 탓이었다.
위쪽이 시끄러워졌다.
“뭐야, 움직이잖아!”
“점혈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야, 빨리 묻어버리면 돼!”
마차 안에서 후공이 펼쳐놓은 교릉이었다.
때맞춰 발현된 것이었지만, 당하는 칠비단혼도 천공단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덩이 위에서 흙더미가 속도를 더해 쏟아져내렸다.
그와 함께 칠비단혼의 몸이 뒤틀려가기 시작했다. 목이 좌로 우로 뒤틀리고 팔이 꺾였다가 돌아왔다가 난리가 났다. 그건 마치 힘 좋은 생선이 꿈틀대면서 팔딱거리는 것처럼 미친 듯이 요란했기에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우와, 굉장하네.”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구!”
흙이 무겁게 뒤덮여갔다.
그 무게 아래 칠비단혼은 육중하게 꿈틀거렸다. 뼈마디가 부러진 건 없었지만, 더 이상 자신의 몸이 아닌 듯 통제가 불가능했다.
주화입마인가?
아니면 이것도 대공자의 손속일까?
칠비단혼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도대체 누굴 건드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