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93화 (93/460)

93화. 참새 떼.

역용은 확실하다.

중년인의 안면과 목 부위.

피부결이 튄다.

극미세하게 자글거렸다. 역용의 공법으로 계속 보정하고 있다. 원래의 얼굴이 아닌 것이다.

역용술은 변용술.

인피면구와는 차원이 다르다.

인피면구는 정교한 가죽 가면일 뿐이다.

하지만 역용술은 자신의 피부와 골격을 변화시켜 원하는 용모로 바꾼다.

더 나아가 체형까지도 변형한다.

물론 체형 변화까지는 선호되지 않는다.

역용에 더해 신체 변형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신체 전반에 내력을 계속 운용해야 하는 탓에, 기감에 포착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톡톡.

후공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대체 뭘까.

재밌는 놈인 건 분명한데…….

어찌 남궁세가에 그것도 천룡대전에 역용을 하고 잠입할 생각을 했을까. 이곳에 고수 아닌 자가 드물거늘, 재밌는 데다가 대범하기까지 하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그만큼 스스로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 점은 후공도 인정했다. 놈의 역용술은 훌륭하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담아가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자리의 몇 정도가 알아볼 수 있을까?

열 손가락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환경에 따라 그 숫자는 늘 수 있다.

거리가 십여 장 안쪽이라면, 상대를 인지하고 있다면, 또 의심하고 있어 예민히 관찰하는 상태라면 더 많은 이들이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북적이는 연회 공간이다. 게다가 화단을 관리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어깨가 구부정한 일꾼 따위를 주의 깊게 볼 사람은 없다.

놈의 목적은 무엇일까?

절도? 색황조를 노리고 있나?

암살? 누구를? 나인가? 무극살부?

정찰? 정찰이라면 무엇을 위한?

혹은 몰래 누구를 만나야 하는 상황인가?

후공은 생각을 떨쳐냈다.

선후가 바뀌었다. 목적 파악은 후순위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과연 한 놈뿐인지, 동료가 있는지이다.

한 놈이면 좋겠다. 하지만 좋은 꿈을 꾸듯 소망만 품은 채 눈을 감고 있을 순 없는 일. 움직여야 할 때다.

일어서며 연회장 앞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남궁학을 비롯한 십대세가의 가주와 지도부들이 태평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일견한 후, 움직였다.

연회장이 차려진 대연무장을 벗어나 그 너머로 산책하듯 걸었다. 중년 일꾼 곁을 자연스럽게 스치며 그의 옷자락에 천향을 남겼다.

‘너는 이제 세 번째 참새.’

후공은 천향을 남기면서 부수적인 수확을 얻었다.

무극살부의 살수가 아니다.

이자의 목적이 ‘천화서고 대공자의 암살’이었다면 자신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테고, 자신이 근접하기까지 우연인 듯 한 번쯤은 돌아봤을 것이다. 한데 스치듯 지나침에도 기운의 요동침이 없었다. 미약한 파동조차 없었다. 이자에게 ‘천화서고’는 아예 관심 대상이 아닌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서, 한 놈이면 좋겠다는 바람은 꿈처럼 깨어졌다.

새로운 참새를 찾아냈다.

접시며 그릇을 한데 모아 운반하는 하인이었다. 마주친 탓에 서로 좌로 우로 양보하다 둘 다 멋쩍게 웃으며 마주 지나쳤다.

그사이 천향이 남겨졌다.

그는 네 번째 참새가 되었다.

다섯 번째 참새는 뜻밖이었다.

후공은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미간을 찡그릴 뻔했다.

어이없게도 이번 참새는 남궁세가의 검수였다.

걸어오는 검수들 무리에 한 놈이 섞여 있었다.

후공은 그들을 막아서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천화서고라는 말에 다들 반색한다. 고기, 아니 색황조를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묻고 답을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 천향은 안착했다.

후공은 실제로 색황조가 있는 울타리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우리 고기, 담에 또 보자꾸나! 라는 말도 건네주었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두 명을 더 찾아냈다.

둘 다 하인 복장.

한 명은 시녀였고, 다른 한 명은 노인.

현재까진 다섯.

혹시 놓친 참새가 없는지 남궁세가를 다시 한 바퀴 휘돌았다. 더 이상의 참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 모두에게 천향을 남겼고, 다섯 가닥의 보이지 않는 선은 명확하게 연결되었다.

후공이 연회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은앙개를 비롯 천공단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목,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

은앙개가 쉴 새 없이 요리를 입에 처넣으며 반겼다.

후공은 피식 웃고는 의자에 앉았다.

“은앙개.”

“응?”

“네 사형을 불러와라.”

“어? ……어.”

은앙개는 순간 갸웃했지만 이내 움직였다. 두목의 분위기가 평소와 미묘하게 다른 것이다.

“소천개.”

“응, 형아.”

“넌 몽몽.”

“응, 몽몽.”

그렇게 취운개와 몽연몽까지 자리에 함께하니 좌석엔 여섯이 되었다. 취운개가 배불러서 배가 터져 죽을 것 같다면서 툴툴거리고, 몽연몽이 뭔 일인데 금세 또 보자고 했냔 식으로 눈을 꿈벅대면서 바라봤다.

후공은 전음을 사용했다.

다섯 역용자에 대해 설명했다. 최대한 곁가지를 쳐내고 핵심만 요약했다.

전음이 끝나기 무섭게 은앙개가 큰소리로 떠들었다.

“정말 웃기지 않아! 난 말씀이야. 이제껏 천화서고에서 먹은 소고기가 제일 맛있는 줄 알았거든. 근데 여기 와보니 생각이 바로 바뀌었지 뭐겠어. 사형도 그렇지 않아?”

“거지새끼야, 말해 뭐하냐. 괜히 사람들이 남궁세가 남궁세가 하겠냐.”

개방은 강호밥을 허투루 먹지 않았다.

전음을 듣자마자 연막을 쳤다.

반면 흠칫했던 묘빙빙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떠드는 대화를 듣고서야 행동 요령을 이해했고 긴장을 풀었다. 곧바로 자연스럽게 장단을 맞췄다.

“뭔 소리야. 약왕문 소고기가 최고였지.”

“나도 누나 말에 동감이어요! 약왕문은 돼지도 맛났어!”

소천개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합류했다.

그런 대화의 물밑으로 바삐 전음이 오갔다.

- 헐, 다섯이나?

- 여기서도 확인 가능한 놈이 있나?

취운개와 몽연몽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룡대전에 역용으로 스며든 자들이라니.

그 인원이 다섯이나 된다는 점에서 충격이었고,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에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디서 약을 파냐는 반응은 없었다.

대공자가 농담을 즐겨하긴 해도, 밑도 끝도 없는 식은 아닌 것이다. 또한 취운개는 취운개대로, 몽연몽은 몽연몽대로 대공자를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취운개는 대공자가 서문세가를 어떻게 요리했는지 직접 보았고 겪었기에 믿음이 컸고, 몽연몽은 서문세가의 몰락 과정을 맹에 보고하기 위해 사후 조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혀를 내둘렀었다.

‘……?’

후공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천향의 반응 때문이었다.

참새 한 마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고 있다.

여섯 번째 참새로 뒤처리를 하며 쟁반등을 나르던 잡꾼이었다. 상황 파악이 끝나자 후공은 기분이 좋아졌다.

‘후후, 곧 만나러 가마.’

후공은 내심 미소짓고는 취운개와 몽연몽에게 두 명을 지목해주었다. 한 명은 저만치 멀리 있는 조경 일꾼이었고, 다른 한 명은 연회장에 막 들어선 시녀였다.

“근데 예쁜 누나는 어디 갔지?”

“그러게. 어떻게 꽃보다 선녀인 남궁 소저가 안 보이냐. 누구 본 사람?”

“아까 보니 키 크고 잘생긴 남자와 나가던걸.”

“크으……. 이런 젠장.”

쓸데없는 대화가 표면으로 흘렀다.

그 아래에서 취운개와 몽연몽은 안법을 펼쳐 살폈다. 취운개가 개방의 안법인 무구안을 운용하니 동공의 외곽이 투명해지며, 멀리 있는 조경 일꾼의 얼굴이 가까이 끌려왔다.

‘……뭐야?’

취운개는 짜증이 나는 한편으로 놀라웠다.

거리가 멀어 판별이 안 되니 짜증이 났고, 또 거리가 멀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공자는 이 거리에서 판별했다고?’

사제들로부터 대공자가 남궁세가의 칠비단혼을 아작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사이 경지가 올랐다 싶었는데, 이 정도면 예상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실력이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개방의 은신을 꿰뚫어본 대공자이기도 했지만, 이 성장 속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반면 그리 멀지 않은 시녀 쪽을 바라보던 몽연몽은,

- 이럴 수가……. 역용…….

뜨악한 표정을 감춘 채 전음으로 놀라움을 표했다. 하지만 이어 바라본 조경 일꾼은 그도 분별해내지 못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때는 취운개도 이미 시녀의 역용은 확인한 상태.

- 대공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여?

둘의 전음에 긴장이 묻어났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제 연회장은 더 이상 태평한 연회장이 아닌 것이다.

상황이 바뀌니 모든 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에 그늘이 지면 화창한 날이라도 어두워 보이는 법. 방금까지 밝기만 하던 연회장은 이제 짙은 안개로 뒤덮여보였다.

솔직히 시녀의 역용조차 대공자가 정확히 찍어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만큼 정교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 눈앞에 안개가 끼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대공자, 일단 잡아야 하지 않겠나?

- 글쎄요.

후공이 희미하게 웃었다.

- 글쎄요라니, 지금 태연히 글쎄요라는 말을 하고 있을 때인가.

몽연몽의 전음은 표정만 태평할 뿐 거의 잡아먹을 기세였다.

취운개가 끼어들었다.

- 글쎄요, 가 맞습니다. 다섯 명 중 남궁세가의 검수가 있다는 건 간단히 볼 일이 아닙니다.

- 뭐야? 그럼 설마 남궁세가에서…….

-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가능성이야 희박합니다만, 이들이 어떤 목적인지 이번 천룡대전의 누구와 연루된 건지 알 수 없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이 말이지요.

- …….

몽연몽도 그제야 대공자의 ‘글쎄요’를 이해했다.

생각해 보니 변수가 많았다.

우선 다섯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대공자가 전각 내부까지 일일이 확인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 최근 들춰진 서문세가의 패악도 떠올랐다.

사람 일 모르는 것이다.

명문정파는 오래된 전통으로 인정받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고일 수 있다. 멀쩡해 보인다고 멀쩡한 게 아닌 것이다. 그러니 현재 모인 구대세가 누구라도 연관되었을 수도, 무관할 수도 있었다.

특히 세가들은 혼맥으로 얽혀있고, 특히 백리세가는 서문세가와 밀접하지 않던가. 이번 천룡대전에 보이지 않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태라면 무턱대고 행동할 수 없었다.

후공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아무 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 미리부터 심각해할 건 아닙니다.

- 이미 엄청나다 싶네만.

- 이렇게 하죠.

- 어떻게?

- 방금 한 마리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 어?

- 응?

몽연몽과 취운개가 놀라움을 표했다.

대공자는 출입문 방향을 등지고 있는 데다 시선을 돌린 적도 없었는데 마치 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후공은 전음을 이었다.

- 한 놈만 잡으면 됩니다. 제가 놈을 잡겠습니다.

- …….

- …….

- 본격적인 대응은 그 한 놈을 통해 전체 윤곽을 알아낸 다음 진행해 가도록 하죠. 안에 남은 네 마리는 각자 맡아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가까이 접근하거나 태를 내지 않아야 하며, 놈들 중 누군가 세가를 떠난다 해도 쫓지 말고 내버려두세요.

- 알겠네.

모두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 좋은 생각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았고, 하나를 잡는 것이 모두를 잡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이 방법은 최선이었다.

단지 후공과 함께 움직여본 적이 없는 몽연몽만은 왜 대공자가 이런 상황에서도 차분한지, 당황해하지 않는지 의아해할 따름이었다.

후공은 참새를 배정했다.

몽연몽에게 한 마리, 취운개에게 한 마리.

은앙개에게도 한 마리를 지켜보도록 했고, 남은 한 마리의 참새는 묘빙빙과 소천개가 함께하게 했다.

- 혼자 괜찮겠나?

몽연몽이 염려했다.

후공이 씨익 웃으며 전음을 발했다.

‘걱정 마라. 내가 후공이거든.’

- 괜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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