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03화 (103/460)

103화. 대군이 내게 오면 좋겠다.

남궁연이 멀어져갔다.

어느샌가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그 뒷모습을 후공은 뚱하니 바라봤다.

‘요즘 애들이 감성적인가? 저놈이 특이한 건가?’

혼자 오기 적적하였고, 보는 것이 배움이라 함께 온 것뿐이었다. 그리고 위험하니 돌려보내는 것인데, 대체 무슨 생각을 떠올리느라 눈물을 글썽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마터면 ‘우냐?’라고 말할 뻔했다.

주변을 조금 서성였다.

해는 금방 떨어졌다.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꿍덕꿍덕. 달 토끼들이 열심히 절구질을 하고 있나 보다. 후공은 월토기가 떠올라 미소 지었다.

이 밤 달빛이 돕고 있으니 좋은 일이 있을지도. 초대장을 띄우면 달은 멀리까지, 또 여러 사람에게 전달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대군이 온다면 좋겠다.

내가 먼저 대군을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후공은 생각했다.

이내 두 개의 금륜을 허공에 살짝 띄웠다.

스릉.

바로 검을 빼들어 금륜을 휘감다가 짧게 튕겨내기 시작했다. 팅팅팅, 떨어지는 금륜을 검으로 튕겨낼 때마다 불꽃이 일었고, 륜의 회전 속도가 빠르게 증가했다.

그건 마치 팽이를 돌리는 것과 같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금륜은 허공에서 돌고 있고, 또 돌아가는 속도가 팽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맹렬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속도가 오르자 금륜이 어느 때부턴가 울부짖듯 굉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기기기기기기깅! 키키키키키키킹!

누군가 근처에서 들었다면 질겁하고 뒷걸음질 칠 정도로 크고 위압적인 소리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후공은 허운의 반탄을 실어 검을 크게 두 번 휘둘러 금륜을 쳐올렸다.

카앙! 캉!

미세한 시간 차를 두고 두개의 금륜이 하늘 높이 솟구쳐올랐다. 달빛에 반짝였고, 굉음과 함께 긴 빛줄기를 남기며 상승해가니 그 광경이 실로 장관이었다.

“와아, 저기 좀 봐!”

그 광경은 멀리서도 잘 보였고, 굉음도 먼 곳까지 퍼졌다. 마을 공터에서는 더 눈에 잘 띄어, 놀고 있던 아이들이 저녁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며 놀라워했다.

“저건 대체 뭐야?”

“용 아니야? 용 맞지? 그치?”

“두 마리인가? 소리도 엄청 나!”

금륜이 빛의 꼬리를 만들어낸 데다 서로 휘감듯 돌며 상승하고 있으니, 어린아이들 눈에는 정녕 두 마리의 금빛 용이 경쟁하듯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놀란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길을 걷는 이들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집에 있든 주루에 머물고 있는 자든 누구 할 것 없이 밖으로 나와 이 광경을 목도하며 놀라워했다.

어떤 이는 신기하게 바라봤고, 또 어떤 이는 멋진 광경이라며 탄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하지만 두 줄기 금빛이 두 번째, 세 번째 연속해서 솟구쳐오르고, 그 뒤에도 끝도 없을 것처럼 예닐곱 번 솟구쳐 오를 때쯤엔 사정이 달라졌다.

다들 안색이 변했다.

아이들조차 더는 용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뛰어갔고, 아이들을 찾아 급히 뛰어나온 부모들도 있었다.

거리를 걷던 이들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거나 집에 머물던 이들은 가족에게 바깥출입을 말라고 당부했다.

기기기기기기깅! 키키키키키키킹!

창문을 닫고, 문을 걸어 잠가도 굉음은 그칠 줄 모르고 들려왔다.

누군가는 지난 밤 토지묘 쪽에서 나던 굉음과 비명 소리를 떠올리며 두려워했고, 또 누군가는 강호 무림 고수들의 이야기가 떠올라 겁을 먹었다. 그래, 틀림없었다. 이는 무림인의 솜씨이며, 곧 금빛이 출현한 곳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려는 징조인 것이다.

사람들은 누가 금빛을 쏘아올리는지, 어떤 목적이 담겨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했기에 더욱 움츠러들며 그저 숨을 죽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특정한 몇몇은 금빛 광채의 의미를 알아보았다.

금빛일 뿐이나 초대장이란 걸 알아차렸다.

귀살들이 보았고, 귀령주와 다른 귀령들도 금빛 용을 보았다. 그저 보았을 뿐이고 굉음이 들려올 뿐인데도 그들의 귀에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부르고 있는 것이다.

**

모처의 서재.

“결과는?”

“놈 혼자입니다.”

“혼자라고?”

귀령주의 보고에 오십 대 귀부인은 한껏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의 드러난 모습만으론 그저 황당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달랐다. 실제로 그녀, 혈주요희가 받은 충격은 훨씬 컸다. 지난 밤 귀오령을 잃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격정에 휩싸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혼자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겁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놈은 그만큼 자부하고 있음인가? 무모해도 될 만큼 무공 실력이 출중한 것인가?

“자세히.”

“귀살들이 확인하였습니다. 버려진 객잔의 이 층에 놈은 홀로 앉아 있습니다. 이후 객잔 주변, 더 나아가 객잔을 기점으로 방원 사백여 장을 살폈으나 여타 조력자나 함정이 될 만한 것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넌 어찌 생각하느냐?”

“그에겐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감춰둔 한 수가 있을 겁니다.”

은빛가면을 쓴 귀령주의 음성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귀부인, 혈주요희도 동감했다.

무려 상대는,

천화서고의 천재인 것이다.

철천지원수라곤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는 상대를 인정하고 있었다. 단순히 지난 밤 귀오령을 죽인 실력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서문세가가, 자신의 부군이, 아들이 어떻게 당하였는지 잊지 않고 있었다.

상대는 허허실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 전략적으로 미소를 짓고, 고개를 숙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유연함을 지녔다. 그 틈에 덫을 놓았던 놈이다. 또한 천화서고의 힘을 맹신하지 않고 주변의 도움 또한 최대치로 끌어내기까지 했다.

천재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확실한 건 놈이 모사이자 전술가이며, 전략가라는 점이다.

그런데 혼자라고?

그렇다면 귀령주의 말대로일 터.

틀림없이 비장의 한 수가 있을 것이다.

그저 놈이 어리석게도 만용을 부린다든지, 귀오령을 죽여 우쭐해 있다든지, 놈을 잡을 절호의 기회라든지, 따위의 안일한 발상으로 상대했다간 큰 화를 면치 못하리라.

서문세가가 그렇게 당했으니까.

몰락의 재현이 될 뿐이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놈이 지는 싸움을 걸어올 리 없다는 전제로 임해야 한다.

“혹시 놈이 대군에 대해 알고 있다고 보느냐?”

“불가합니다. 귀오령에겐 철저히 정보를 제한해 왔습니다.”

요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령주에게 물은 건 의심이나 뭔가 새로운 대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혼란스러웠기에 확신을 다지고 안정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럼 방법은…….’

혈주요희의 시선이 창가 앞에 놓인 항아리로 향했다.

커다랗고 적갈색을 띤 항아리였다.

요희가 항아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충상인.”

그 순간,

항아리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천천히 움직이며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드러났다. 항아리가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항아리를 등에 메고 있었다.

그저 노인은 커다란 항아리에 가려져 여태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만큼 노인은 작았다. 그래서 돌아섰음에도 노인이 항아리를 메고 있는 것인지, 항아리에 노인이 매달려 있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노인이 무심히 바라봤다.

“말씀하시오, 요희.”

“쉽게 갔으면 싶은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하려던 말이었소. 난 요희 그대가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갈까 그것이 노심초사였다오.”

그러면서 왜소한 노인은 품에서 검은 옥병을 꺼내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검은 옥병이 마치 솜털이 이동하듯 부드럽고 천천히 허공을 지나 살며시 혈주요희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고마워요.”

혈주요희는 미소 짓고는 이내 귀령주에게 세 사람을 불러오라 명했다. 잠시 후 귀이령과 귀삼령, 그리고 귀사령이 그녀 앞에서 예를 갖췄다.

“너희 셋이 다녀와야겠다.”

“네.”

많은 말이 생략되었지만 모두 이해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요희가 귀사령을 불렀다.

“귀사령.”

“네.”

“네가 맡는다. 먼저 놈의 의중을 떠보아라.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 하지만 특별함이 없다면 즉시 처리한다. 놈은 영악함이 말로 할 수 없으니, 늦게 대처한다면 곤란함에 빠질 수 있다. 변수가 나기 전 이것을 사용하여 끝내도록 해라.”

요희는 귀사령에게 검은 옥병을 건넸다.

다음은 귀이령이었다.

“귀이령, 놈을 절대 죽여선 안 된다. 반드시 사로잡고 그 후에는 양팔과 양다리를 모두 잘라라. 내게 가져올 때는 머리와 몸통만 남아있어야 한다. 나는 사지 멀쩡한 대공자 놈과는 마주할 생각이 없다.”

“네.”

큰 아들 서문웅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그 끔찍한 모습을 요희는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요희에게 있어 사지절단은 어떤 면에선 매우 관대한 처사라 할 만했다. 물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지만.

“매듭짓고, 그곳으로 데리고 오도록.”

“명을 따릅니다.”

귀이령이 예를 갖췄고, 뒤이어 귀삼령과 귀사령이 고개 숙였다.

**

밤이 깊어지며 객잔은 제법 운치가 돌았다.

객잔 안팎으로 홍등이 빛나고, 이 층 창가에는 두 개의 금륜이 장식처럼 걸리니 그럴싸했다. 그런 영향인지 허름한 객잔의 외관조차도 묘하게 의도해놓은 허름함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객잔의 이 층 중앙.

탁자는 하나요, 의자는 둘.

서생 차림의 청년이 탁자에 검을 기대놓은 채로 고요히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늦는군.’

시간이 오래 지나고 있었다. 금륜을 쏘아올린 후 어느덧 두 시진을 훌쩍 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후공은 기대하고 있었다.

지루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늦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늦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막연한 느낌? 아니다.

두 시진 전,

놈들의 정찰이 있었다. 다섯 개의 미세한 기척이 객잔의 삼십여 장까지 근접하여 잠깐 머물렀다가 이내 사라졌다.

초대장을 받아본 놈들의 첫 정찰인 셈이었다.

하지만 강호의 정찰이란 단순하지 않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과연 혼자 온 것이 맞는지, 함정은 없는지 후속 정찰이 이어지는 건 필수다. 아마 객잔을 중심으로 방원 오백여 장은 샅샅이 훑었을 것이다.

그런 시간들을 감안해줘야 한다.

이후의 과정도 남아 있다.

정찰 내용은 보고될 것이며, 이어지는 풍경은 지도부의 회의와 숙고, 그리고 결단에 이르기까지 또 다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절차와 과정을 밟게 되면 한 시진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 왜 혼자인가?

이 의문은 그들에게 꽤나 강렬하리라.

혼자 오면 안 되는 곳에 혼자 있고, 확인해보니 혼자라는 것이 명확해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 식의 황당한 진실과 마주하면 사람은 부조화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걸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릴 테지.

천재가 이렇게 무모하다고? 무공이 그리 뛰어난가? 뭘 믿고 있는 거지? 예상치 못한 한 수가 준비된 것인가? 수많은 의문이 머리에서 점멸했을 것이다.

그 결과,

- 우리 쪽에서도 확실한 한 수로 맞아야 한다.

이런 결론이 내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후공은 그러길 원했다.

그랬으면 해서 혼자 온 것이니.

‘혼자’라는 황당함을 던져, 그 대응으로 천룡대전을 쓸어버린다는 그 ‘대군’이란 걸 꺼내들고 상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대군’의 의미는 단순히 사람의 숫자가 아니리라. 인원이었다면 이미 드러나야 했다. 허나 끝내 드러나지 않았기에, 실체가 무엇인지 눈으로 보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는 내일의 남궁세가도, 내일의 천룡대전도 없다.

문득 후공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왔구나.’

기척이 느껴졌다.

셋이다.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그중 하나가 객잔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삐덕, 삐그덕.

이 층으로 올라오는 걸음에 나무 계단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 속에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기, 내가 좀 늦었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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