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생각을 안 하는 놈들 (2)
하오문주는 팔각주와 머리를 맞댔다.
세부적인 계획을 위함이다. 윤곽은 빠르게 잡혀갔다.
이번 작업은 하오문의 전통 방식이다.
어려울 건 없었다. 전통이란 고전적이면서도 익숙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니.
하오문의 전통이라면 단순명쾌하다.
등쳐먹기.
간을 쏙 빼먹기다.
하오문주와 팔각주는 이런 방식에는 아주 도가 터 있었다. 몇 마디 툭툭 오가고 수정되면서 그림이 나왔다.
작전명은 ‘불길 속의 영웅들’로 정해졌다.
“놈들은 내일 저녁쯤 장봉에 도착하겠지?”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작전 지역은 장봉.
장봉은 두 개의 커다란 산에 끼어 있는 도성이다.
놈들의 진행 방향은 안휘 북쪽.
산을 타넘지 않는 이상 장봉을 지나쳐갈 수밖에 없다. 마차로 산을 넘지는 않을 테고, 그쯤에선 말들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
“장봉에서 가장 많은 객실을 보유한 객잔이 어디냐?”
“금오각과 만호객잔이 엇비슷합니다만, 만호객잔은 금오각에 비해 객방들이 작고 아담합니다.”
“그럼 만호객잔이다.”
“지당하십니다.”
다음으로는 상대가 만호객잔에 묵도록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오백 명 정도면 될 듯합니다.”
“조금 더 쓰자. 육백 명.”
다른 객잔은 모두 만실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만호객잔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다.
“하긴 불구경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합죠.”
“흐흐, 당연하지.”
하오문주의 눈동자에 웃음이 찰랑거렸다.
내일 밤 놈들이 묵게 될 만호객잔은 불길에 휩싸일 것이다.
고의 화재다.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르면 삽시간에 객잔은 화마에 뒤덮일 것이고, 백여 개의 호실에 묵고 있는 사람들이 살려달라며 내지르는 비명 소리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의로운 이들이 이런 상황을 보게 된다면? 몸을 사리지 않는 법이다.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활약하게 되어 있다. 사전에 성향 파악을 거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불길 속에서 인명을 구해내는 것이 쉬울까.
결코 만만치 않다.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족히 삼백 명이 넘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회는 바로 그때다.
그 순간, 그 정신없는 틈에 색황조를 슬쩍 하면 그만이었다.
“후후, 놈들이 색황조를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을 게야. 하여튼 협객이네 영웅이네 하는 놈들을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니까. 약점이 너무 커. 한심할 정도지.”
“낄낄, 맞습니다. 미친 새끼들이죠.”
계획이 엉성한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왜냐하면 내일 장봉의 만호객잔에 숙박하게 될 인원 삼백여명은 모두 하오문도들로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도들은 불길 속에서 온갖 진상을 부리고 소란을 가중시키게 된다.
아이도 없으면서 아이가 아직 안에 남아있다고 소리치고, 할머니가 아직 빠져 나오지 못했다며 울부짖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품을 찾으러 들어가야 한다면서 다시 불길로 뛰어들어가는 놈들까지 설쳐대면 아주 혼이 쏙 빠져나가고 말리라.
소란이 어디 그뿐인가.
다른 객잔이며 주루에서 대기하고 있던 삼백여 명의 하오문도들도 동시에 튀어나와 웅성거리고, 그중에선 지들도 사람을 구하겠노라며 불길로 뛰어들었다가 도리어 위험에 처해 살려달라고 소리치게 된다.
난장판에 난장판이 더해지는 형국에, 색황조에 신경 쓸 여력 따위 있을 리 없다.
“몇몇은 임산부로 위장시켜 놓겠습니다. 바구니 같은 거 넣고 붕대로 감으면 아주 감쪽같습니다. 불은 나고 막 당장 아이는 태어날 것 같고 그러면 긴장감 쩔어 줄 테죠.”
각주들이 낄낄거렸고, 하오문주도 좋아 죽었다.
“하하, 그 머저리들은 상상조차 못하고 있겠지? 색황조, 색황조, 신나는 노래~~.”
*상상은 아니고, 다 듣고 있었다.
하오문주의 머리 위다.
그러니까 전각의 지붕에 앉은 채로 후공은 뚱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하오문주의 노랫소리에는 그만 피식하고 말았다.
‘웃기는 녀석 같으니.’
오랜만이다. 하오문주 설표.
십여 년 만인가.
하는 짓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이놈은 늘 자신을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있는데, 좀처럼 낫질 않는다. 제 딴에는 꾀를 부린다고 머리를 굴리는데 제대로 하는 건 드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당시 하오문주는 간에 문제가 생겼는지 아니면 갑자기 간이 부어올랐는지 사천당문의 한 축을 작업하려 들었고, 그 결과 작업 당해버렸다.
사람은 흔히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데, 하오문주의 경우는 발을 자알~ 뻗으면 누울 자리는 당연히 나오게 되어 있다는 괴상한 발상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때 후공은 당문 문주 당명을 보기 위해 잠시 들렀다가 당명이 누군가를 쥐 잡듯 잡고 있는 걸 보았고, 나중에 듣고 보니 하오문주 설표였다.
[후공,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죽일까요? 살려둘까요?]
[넌 살려주고 싶다는 말을 복잡하게 하는 버릇이 생겼구나.]
당명이 물어왔기에 후공은 그리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당명이 으헤헤, 거리며 푼수같이 웃었다. 누굴 죽여야 할 때 애초에 물어보고 말고가 없는 당명인 것이다.
[왜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 거냐? 금세 친해졌냐?]
[하하, 그런 게 어딨습니까. 그게 아니라, 하오문주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한 가지만 대보라고 했더니 제법 근사한 말이 흘러나오지 뭐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듣게 되면서 후공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지붕 아래쪽에서는 아직 대화가 한창이었다.
“근데 문주님, 만호객잔을 막상 불태우려니 좀 아깝긴 아깝습니다. 본문의 자산인데 말입니다.”
“쯧쯧, 이 새끼야 배포 좀 키워. 큰 걸 낚으려면 미끼도 고급진 걸 써야 하는 법이야. 무려 색황조야, 색황조! 만호객잔 같은 건 오백 개, 천 개도 지을 수 있어.”
만호객잔은 하오문 소유였다.
대탐소실.
과감한 투자를 하오문주가 강조한다.
“정말 색황조가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아니, 그 전에 색황조가 맞긴 맞는 걸까요? 워낙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다니니 솔직히 실감이 안 납니다.”
“이미 내 두 눈으로 확인을 마쳤다. 눈 색깔이 이상하긴 해도 색황조가 틀림없어. 내가 예전에 당문 문주에게 초빙을 받아 당문에 갔을 때 거기서 색황조를 봤다는 거 아니냐.”
“오호! 당문에서 초빙을요?”
“이 새끼, 안 믿는 눈치네? 내가 그때 귀빈이었어. 거기서 응, 내가 색황조도 구경하고, 후공도 만나고, 악수도 하고, 그래갔고 한동안 내가 손도 안 씻고 인마, 막 그랬어. 내가 그런 사람이야! 그것이 나야!”
- 남궁 형, 갑시다.
- 네.
개소리가 나열되고 있을 뿐이라서 후공은 신형을 날렸다. 여태 묵묵히 곁을 지키던 남궁연이 바로 뒤따랐다.
밤의 그림자 속에서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하오문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당연히 습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거늘, 대공자는 묘한 웃음만 흘리고 돌아선 것이다.
“크흠……. 어떻게 하고 말고 할 게 있습니까. 지들이 지들 소유의 객잔을 불태우겠다는데, 우리가 나서서 하지 말라고 하기도 애매하잖습니까.”
“아,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내심 ‘또 하나 배웠네.’라고 중얼거렸다. 머릿속에 기록했다.
- 두목은 하찮은 일은 무시함.
“남궁 형, 잠깐 어디 좀 들렀다 갑시다.”
“어딜 가시려는지요?”
“도박장입니다.”
“네?”
“싸움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땐 남궁 형이 나서도록 하세요.”
“……?”
**
처음 본 순간,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는 사람을 잘 봤고, 척 보면 알았다. 이런 점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도박장에 두 젊은 놈이 들어섰을 때 하마터면 ‘호구 왔는가!’라고 소리칠 뻔했다. 단정한 모습에 고급스런 차림. 그냥 봐도 어린양들이었다. 신께서 오늘도 어린양을 보내주셨음에 그는 마음 깊이 감사했다.
나의 손은 빛보다 빠르니까.
신이시여, 오늘도 탈탈 털어버리겠습니다!
그렇게 일다경(약 15분) 후.
“그만하지.”
그는 목소리를 무겁게 흘렸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도리어 털려버렸다.
더 털리기 전에 그만둬야 했다.
도박장 내 그가 운용하는 판은 야바위.
세 개의 빈 그릇으로 진행한다.
셋 중 하나의 그릇 안쪽에 붉은 표식이 되어 있고, 그릇을 엎은 다음 정신없이 움직여 멈췄을 때 표식이 남겨진 그릇이 어느 쪽인지 그 앞에 돈을 거는 형태의 도박이다.
한데 은자 두 냥으로 시작한 어린양 중 하나가 내리 열 판을 맞추었고, 그 은자 두 냥이 금자 한 냥을 넘어 은자 열 냥까지 더해진 상황.
다섯 번째 판부터는 다른 손님들까지 어린양을 따라 돈을 거는 바람에 손해가 막심했다.
“젊은 친구의 실력이 대단하군. 깔끔히 인정하네. 하지만 여기까지일세.”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야바위의 판돈은 금자 한 냥 이하로만 참가가 가능하기 때문이지. 큰돈을 걸고 싶다면 주사위판으로 가게나.”
“허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어린양이 너털거리며 자리를 옮기는 모습에 그는 내심 코웃음쳤다.
‘흥, 제법 좋은 눈을 가졌다만 주사위는 어림도 없다.’
주사위는 눈이나 재능보다는 운의 요소가 크다.
게다가 던지는 방식이 아니다.
강호의 고수들의 경우 세 개의 주사위를 손에 쥐고 직접 던질 경우 모두 6을 낼 수 있는 자가 많다. 작고 정밀한 암기로 온갖 것을 해내는 자들인 것이니.
그렇기에 전문 도박판에서는 나무 원통을 사용한다.
원통에 세 개의 주사위를 넣고 흔들었다가 내려놓는다.
원통을 들어올렸을 때 나온 주사위 눈의 숫자로 판별하는 방식이다.
“허허, 이쪽으로 어서 오게.”
“반갑군. 아까 보니 실력이 보통이 아니더구만.”
야바위판이 이목을 끌었음인지, 주사위판에 있던 이들이 후공을 반겼다. 운용자까지 모두 여섯이었다.
후공은 미소로 답했다. 바로 빈자리에 앉았다. 이내 후공 앞으로 세 개의 주사위와 나무 원통이 놓였다.
주사위 판의 운용자가 방식을 설명했다.
“방식은 매우 단순합니다. 각자 원통에 주사위를 넣고 흔든 다음 바닥에 내려놓는 겁니다. 합이 큰 쪽이 승자가 되고, 동률이 나올 경우 나눠가지게 됩니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사위를 하나씩 들어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살폈다. 백옥으로 만들어졌고, 주사위의 눈은 음각으로 파여 있었다. 주사위의 무게는 각각 미세하게나마 달랐다.
또한 주사위마다 면에 따라 무게 배분에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극한으로 미세하다. 음각으로 패인 부분이 하나인가, 둘인가, 여섯인가의 차이인 탓이다.
후공은 그 차이에서 답을 찾았다. 나무 원통까지 들여다보고 손으로 원통을 튕겨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사위가 부딪친다면 면과 각은 무게에 따라 다른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음공의 이치와 인(引)의 결을 중간 중간 곁들이면 끝이었다.
“별것 없군.”
순간 자리에 있던 여섯 사람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 시선들에는 의아함이 반, 빈정거림이 반이었다.
‘무슨 생각이시지?’
의아한 건 남궁연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야바위는 그조차 모두 정확히 짚어냈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아예 궤가 다른 것이다. 승부를 장담할 수 없거늘, 왜 두목이 도발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