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생각을 안 하는 놈들 (3)
하지만 이유가 없을까?
남궁연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지켜본 바가 있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순간들 속에는 두목의 진면목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도발이 의도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두목의 성향은 일상에선 그야말로 대충 대충. 시비를 걸지도 않고 지적도 하지 않고 충고도 없다. 어지간히 거슬리지 않으면 어디서 개가 짖나 보다 하는 식이어서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것이다.
그런 두목이 갑자기 도박장을 찾아 시비를 걸고 있으니, 목적은 하나다.
하오문.
혼자 있을 때면 늘 명상에 몰두하는 두목이 갑자기 도박이 하고 싶어졌을 리 만무하니, 이 도박장은 하오문이 운영하는 곳일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저 두목이 왔으니 이곳은 하오문이 운영하는 곳이어야 한다.
물어볼 것도 없었다.
겪어봤기에 그냥 믿으면 되는 것이었다.
또한 싸움이 날 수도 있다고 했으니 분명 도박장을 통째로 털어버릴 생각이신 듯한데, 문제가 있다.
‘어떻게?’였다.
“허허, 별것 없다라. 젊은 친구가 말이 가볍군.”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것인가.”
“도박은 마음의 승부일세. 사람이 겸손함을 보여야 하는 게야.”
자리한 이들은 불편해하는 시선에서 그치지 않고 은근히 언짢음을 드러냈다. 그래도 다들 나이가 지긋하고 예법을 지키는 것이 점잖은 편이었다.
후공은 미소를 머금었다.
“크흠……. 모두 저를 몰라서 그러시는 겁니다. 잠시 후면 여러분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겁니다. 다들 까무러칠 준비나 하고 계십시오.”
몇몇이 농담이라 여겼는지 너털거렸다. 그중 한 명이 짐짓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흥! 그럼 자네가 연속해서 몇 판이라도 36을 낼 수 있다는 뜻인가?”
여섯 명 중 뚱뚱한 노중년인이었다.
그가 말한 36은 세 개의 주사위가 모두 6이 나오는 상황.
후공은 노중년인의 뚱뚱한 체형과 살집이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히 정감이 갔지만 짐짓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못할 것 같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나.”
“크흠……. 이거 어쩔 수 없군요. 다들 제 실력을 의심하는 듯하니, 이쯤에서 제 정체를 밝혀야겠군요.”
감추려고 했건만, 이라고 말을 마치자 뚱뚱한 노중년인이 갸웃했다.
“정체?”
다른 이들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남궁연조차 뭔 갑자기 정체인가 싶어 눈을 깜박여댔다.
‘정체가 따로 있으셨던 건가? 그냥 천공단주에 천화서고 대공자인데.’
후공이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
“…….”
“…….”
말을 끊어버린 탓에 바라보는 모두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궁연만 정체라는 말에 왜인지 ‘두근’ 심장이 뛰었다.
후공의 말이 이어졌다.
“불패도신(不敗睹神)입니다.”
순간 모두의 얼굴에서 표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눈만 몇 번 깜박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으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제히 터져버렸다.
뒤에 시립해 있던 남궁연만 웃음 대신 맨 목에 사래가 들려 연신 콜록거렸다.
뚱뚱한 노중년인이 껄껄대며 말했다.
“이제 보니 자네 재밌는 친구로군. 마음에 드네. 불패도신이라, 별호가 멋지구만! 하하하하!”
“주 대인의 말씀대로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재미나나 봅니다.”
“하하하, 불패도신을 만나게 되어 큰 영광일세.”
주 대인을 비롯해 다들 신선한 느낌을 받았는지 웃어넘겼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한 사람만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주사위판의 운용자였다.
정신 나간 한 놈 때문에 업장의 분위기가 흐려지고 있다 싶으니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업장의 물 관리가 이래서는 곤란하다. 어린놈이 남의 업장에 와서 말도 안 되는 농담이나 해대고 있다니. 당장 쫓아내야 했다. 어렵진 않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이런, 명성 높은 도신께서 저희 도박장을 찾아오셨는데 제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군요. 제가 도신께 제안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해보세요.”
“연속으로 36을 몇 번이든 내실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열 번도 가능하십니까?”
세 번도 기적이다. 하지만 입을 싸다물게 하고 쫓아내야 했기에, 황당함에 황당함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상대는 불패도신.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열 번이 대수겠습니까. 열한 번도 됩니다만.”
운용자가 코웃음쳤다.
“아하, 도신이었지요? 그럼 목숨도 걸 수 있겠습니다?”
“갑자기? 제 목숨을 말입니까?”
불패도신이 놀란 얼굴이 되었기에, 운용자는 비릿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려주었다.
“방금까지 큰 소리를 치더니 왜 그건 못하겠습니까?”
“억지를 부리십니다. 도박을 하는데 목숨까지 걸어야 할 줄은 몰랐군요. 그리고 돈이 중요하지, 목숨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목숨 값 얼마나 한다고.”
“…….”
운용자가 잠시 멍해졌다.
목숨이 소중하다는 건가, 돈이 소중하다는 건가. 듣긴 했는데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든 상대가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다.
“좋습니다. 도신께서 돈을 원하시니 저희 쪽에서 거금을 걸겠습니다. 열 판을 내리 36을 낼 수 있다면 금전 10만 냥을 드리도록 하죠. 도신께선 그만한 돈이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목숨을 거시고, 그것도 싫다면 당장 여길 떠나주십시오.”
금전 2천 냥 정도면 그럴싸한 집 한 채 가격이다. 금전 10만 냥을 제시한 건 그냥 당장 꺼지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 목숨을 걸겠소.”
“…….”
운용자가 다시 멍해졌다.
불패도신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하지만?”
“내 목숨은 소중하니 안되오.”
“응? 그럼 대체 누구 목숨을 건단 말입니까?”
“내 수하의 목숨을 걸겠소.”
“콜록, 콜록, 케엑켁!”
난데없이 벼락을 맞은 남궁연이 미친 듯이 콜록거렸다.
운용자가 남궁연 쪽을 바라보며 실실거렸다.
“수하분께선 목숨을 걸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만.”
“쯧쯧……. 쓸데없는 걱정을 하십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러면서 후공이 고개를 돌려 뒤편의 남궁연을 바라봤다.
남궁연이 즉시 절도 있게 예를 갖췄다.
“이 자리의 모두에게 약속합니다. 기꺼이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방금까지 놀라서 콜록인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진지한 태도였다.
“보셨습니까?”
“알겠소. 그럼 내기는 성사된 것으로 합시다.”
운용자가 확답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몇 마디 오가다 보니 어찌된 게 목숨이 떡하니 놓였다. 웃자고 꺼낸 이야기가 왜 이 지경이 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분위기 묘해지는군. 농담일 뿐인데 이럴 것까지 있나? 적당히들 하세.”
“그래, 이쯤하고 금전 1냥, 많으면 10냥, 이렇게 잃었다가 땄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즐겁고 좋지 않겠나.”
“괜히 양쪽 다 자존심 세우지 말고 웃고 털어버리세.”
주 대인이 너털거리고 곁에 있는 이들도 만류하고 나섰다. 애초에 성사될 수 있는 판도 아니었다. 36은 단 한 판도 장담하기 힘든데, 10판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확률상 백전백패라서 괜히 우스꽝스러워지고 얼굴만 붉히게 될 터였다.
하지만 운용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신호에 따라 한 사람이 다가와 후공 앞에 놓인 원통과 주사위를 치우고 새로 가져온 원통과 주사위를 내려놓았다.
다들 의아하게 바라봤다.
주 대인이 갸웃하며 운용자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뜻인가?”
“별 뜻은 없습니다. 그저 만전을 기하는 차원일 뿐입니다. 도신의 무공이 그리 대단해보이진 않습니다만, 보기와는 다를 수 있어 대비하는 것입니다.”
“……?”
“흔히 사용하는 주사위는 각 면에 파인 눈이 몇 개냐에 따라 주사위의 무게 중심이 다르지요. 보통 사람은 감지가 아예 불가능하고, 영향도 없습니다. 하지만 강호의 뛰어난 고수들 중에는 그 무게를 분류해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 무게 중심의 다름이 나무 원통에 부딪히면서 소리가 달라지니, 그것으로 가려내기도 합니다.”
“흐음……. 무슨 소리인지 듣고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군.”
주 대인뿐 아니라 다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들이었다.
이해한 건 남궁연뿐이었다.
‘그런 방법이 있겠구나. 하지만…….’
그걸 누가 실현해낼 수 있단 말인가. 쓸데없이 과한 대처다 싶은 남궁연이었다. 극미세한 무게 중심을 따라 소리를 구별한다고 해도, 거기에서 다시 분류해내는 건 다른 차원이다.
주사위를 보지 않은 채로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때야 가능한 일인데, 원통에 부딪혀 튕겨지는 그 수많은 변수를 어느 누가 조율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검과 장법을 다루기 전 익히는 인(引)과 막(膜)의 결로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 이걸 구현해내는 자가 있다면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수준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남궁연은 이내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설마…… 두목이? 별것 없다고 말씀하신 뜻이 이 방법이었던 것인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두목의 경지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어쩌면 비록 주사위가 바뀌었다 해도 그와는 상관없이 방법을 찾아내실지도.
남궁연은 왜인지 그런 믿음이 차올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목숨을 걸 이유가…….
“아까 있던 주사위를 돌려주시오!”
후공이 크게 외쳤기에 남궁연은 대번에 퀭해졌다.
‘죽는 건가.’
하지만 그로 인해 운용자는 ‘오호!’ 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 놀랍습니다. 과연 도신이었던 겁니까. 처음 주사위라면 문제없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하지만 미안하게 됐습니다. 바꿔드릴 수는 없습니다.”
“크흠……. 어쩔 수 없지. 한 판 정도 연습해 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후공은 새로운 주사위를 하나하나 들어보았다.
과연 면마다 무게가 일정하다. 홈을 파내는 방식이 아니라 겉면에 칠을 입혔다. 하나의 점을 칠하든 여섯 개를 칠하든 그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면 어떠한가.
‘후후!’
후공은 주사위들을 매만지며 1과 6의 면마다 천향삼주의 무향을 남겼다. 천향삼주의 정교함은 사백여 장까지 향의 선(線)이 이어지고 위치가 파악될 정도다. 눈앞에 둔 주사위의 위치를 간파하는 건 아이들 장난 같은 것이었다.
후공이 주사위를 원통에 넣은 후 손으로 원통의 밑면을 받쳐들었다.
순간,
원통 안 세 개의 주사위가 둥실 떠올랐다.
원통 내부 중간 지점까지였다.
바로 내력을 운용했다.
회(回)의 결을 따라 나선 형태로 슬쩍 휘감았다. 주사위들은 원통 안 빈 공간에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휙, 휙, 휙.
한 면씩 전환되면서 윗면의 눈이 바뀌어간다. 1이 3이 되고, 4가 5가 되고, 2가 1이 되었다가 3이 되어가다 주사위의 모든 윗면이 똑같은 숫자가 될 때 움직임이 멈췄다.
그때까지 후공은 시선을 위로 올리고 있다가 비로소 원통을 내려다봤다.
6개의 점이 모두 위에 와 있다.
후공은 흡족히 여기며 다시 주사위를 회전시켰다.
시선은 역시 다른 곳에 두었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속도가 맹렬했다. 그러다 한순간 회전이 뚝 그쳤다. 그리하여 위로 드러난 면은 모두 1.
이 광경은 다른 이는 볼 수 없었지만 뒤쪽에 서 있는 남궁연의 눈에는 고스란히 들어왔다. 이미 남궁연의 눈동자는 지진이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