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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119화 (119/460)

119화.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색황조가 말을 해버렸기에,

천공단이며 하오문도들이며 누구 할 것 없이 입이 쩍 벌어졌다. 심지어 발음까지 좋은 건 뭐란 말인가.

곁에서 하오문주가 너털거렸다.

“허허……. 그러니까 색황조가 구관조(九官鳥)랑 짝짓기해버린 거구만. 혈통이 거창하네. 어쩐지 눈깔이 파랗더라니.”

후공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구관조가 사람 말을 따라하는 건 익히 알려진 터. 그런 구관조 중에서도 특출한 놈들은 말을 따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알아듣기도 잘하고 대화까지도 가능하다고 했다. 근데 저놈은 더 잘했다.

스스로 묵언이가 아니고 색관조라며 이름을 밝힌 것만 봐도, 한쪽은 구관조의 피가 흐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또 한편으로 이름이 있다는 건 누군가 그리 불러주었다는 것이니, 원래 주인이 있었다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까르르르르르르. 까르르르르르르!]

색관조는 기분이 좋은 모양.

마음껏 비행 능력을 발휘해가면서 웃음을 그칠 줄 모른다.

후공도 웃었다.

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내내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니, 노력이 가상할 정도였다.

“하하하, 형아! 묵언이 굉장하지 않아? 잘 날고, 똑똑하고. 저렇게 말을 잘하면서 우리 깜짝 놀래 주려고 여태 한마디도 안 한 거잖아. 하하하하!”

“멍청아, 웃을 때가 아니잖아.”

후공이 하려던 말을 묘빙빙이 대신했다.

소천개가 갸웃했다.

“왜?”

“기세등등한 거 안 보여? 이제 우리에게 절대 안 와.”

“하하, 누난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네. 여태 봐놓고도 모르겠어? 나와 묵언이는 피만 안 섞였을 뿐 친형제나 다름없어. 서로 얼마나 아끼고 애정하는데.”

“아, 그러세요? 그럼 어디 한번 오라고 해보시지.”

“맡겨 둬!”

이내 소천개가 목소리를 높였다.

“묵언아, 잠깐 쉬었다가 날아. 이 형님한테 와서 쉬었다가 또 날아오르자. 자, 얼른 이 형님의 품 안…….”

[거기 거지새끼는 닥치시고요. 까르르르르르르르.]

은앙개와 묘빙빙이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렸고, 소천개는 두 팔을 벌린 채로 울상이 되었다.

“야, 장난은 그만하고 이 형님에게로 와.”

[너나 이 형님에게로 와. 너나 이 형님에게로 와. 까르르르르르르. 내가 제일 잘 날아. 까르르르르르르. 앗, 다들 잠깐만!]

앗은 뭐고, 또 잠깐만은 뭔가.

다들 어이가 없으면서도 뭘 하려나 싶어 바라볼 때, 색관조가 빠른 속도로 날아 서쪽 하늘에서 맴돌던 검은 깃털의 추적매에게 다가갔다. 진폭반점에서부터 천공단을 따라온 하오문의 추적매였다.

추적매가 끼이익, 울더니 힘찬 날갯짓과 함께 달아났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얼마 날아가지도 못하고 뒤를 잡혔고, 이내 추월당했다. 색관조의 비행 능력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추적매가 앞에 나타난 색관조를 보고 파다닥 부산스럽게 날개를 휘저으며 방향을 틀어 벗어나려는 순간, 색관조가 오른쪽 날개로 추적매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싸다구! 까르르르르르.]

검은 깃털의 추적매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 떨어져내렸다.

[까르르르르르. 배짱도 좋지. 어떻게 내 구역에서 날아다닐 생각을 다한 거야? 최강자 앞에서. 까르르르르르르르르.]

“뭐여?”

“허어…….”

아래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이젠 기도 안 찼다. 싸다구라니, 몇몇은 저건 틀림없이 사파에서 기르던 새일 거라며 혀를 내둘렀다.

색관조는 유유히 날아 군중들의 머리 위를 선회하며 말을 쏟아냈다.

[까르르르르르르르르. 하오문은 멍청이들이야. 생각을 안 하는 놈들이야. 하오문은 왜 생각을 안 하는 거야? 까르르르르. 남궁이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 남궁이는 나쁜 새끼야. 소천개는 귀여워. 은앙개는 지가 잘생긴 줄 알아. 머리나 감지. 병신 같아. 까르르르르르르르. 묘빙빙은 늘 화가 나 있어. 매우 나쁜 년이야. 까르르르르르르.]

색관조가 모두를 까버렸다.

까인 모두가 어이가 털려 할 말을 잃었다.

이쯤되자, 다급해진 건 소천개였다.

“형아, 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 잡지?”

발을 동동 굴리는 것이, 잡아달라는 뜻이었다.

후공은 그저 웃어주었다.

천향삼주의 무향으로 연계되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너무 높이 올라간 데다 빠르기까지 하니,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물론 부상을 입히거나 죽이는 것이라면 다르다. 지금의 경지라면 가능한 일이나,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후공은 하오문주를 돌아봤다.

“하오문주, 멋진 구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두 말이 필요없을 만큼 끝내줬네. 여러모로 역대급일세. 두고두고 자랑할 거리를 주어 고맙네.”

“그럼 됐습니다.”

하오문주가 슬쩍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흐음, 근데 아깝지 않나?”

“원래 주인이 있는 듯하니 놓아주는 것도 괜찮다 싶습니다.”

대수로울 것 없다는 말투였기에, 하오문주는 새삼스러운 눈빛이 되어 바라봤다. 색황조의 능력에 말까지 하는 새다. 자신이 다 아까울 지경인데, 이 젊은 친구는 참새 한 마리 날려보내는 것 같은 모습인 것이다.

“이거 작별인사인 거지?”

후공이 미소지었다.

“또 뵙겠습니다.”

“아무렴, 그래야지. 근데 뭔가 기분이…….”

“……?”

하오문주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 아쉽구만.”

말만 아니라 하오문주의 표정에도 아쉬움이 깃들었다.

후공은 미소 지은 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볍게 목례하고 돌아섰다. 이어 천공단이 하오문주에게 예를 취한 후 뒤따랐다.

소천개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연신 돌아보면서 계속 하늘을 쳐다봤다.

색관조는 그러든가 말든가였다.

까르르르르 웃으며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다 한순간, 방향을 틀어 날았다.

[까르르르르르르. 하오문주, 또 뵙겠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하오문주와 하오문도들이 뭔 너까지 작별인사냐며 올려다볼 때, 색관조가 다시 까르르거렸다.

[까르르르르. 주인님, 같이 가욧. 장난이야. 장난이었잖아. 풍열이 또 올까 무서워. 까르르르르르르. 주인님에겐 좋은 냄새가 나. 까르르르르르르.]

후공과 천공단이 향한 방향으로 색관조가 날아갔다.

**

색관조는 천공단의 일원이 되었다.

쉽게 녹아들었다. 과연 천공단이었다. 말이 많았다. 남궁연이 특이할 뿐, 말 많은 건 천공단의 기본 소양인 것이다.

말이 많은 덕분에 후공이 따로 묻지 않고도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왜 주인으로 따르는가? 풍열의 습격을 받고 두려움에 떨던 그 밤, 향취를 맡으며 깨어나면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주인은 내가 정한다는 오만함까지 내비치면서 까르르거렸다.

[이 사람이야!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거기엔 삼악의 향취와 무향까지 분별 가능한 놀라운 후각 능력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까르르르르르. 주인님에겐 기분 좋은 향기가 나. 너무 향긋해. 그날, 그 밤의 향기야.]

“야! 향이고 나발이고 다 좋은데, 밧줄을 끊어버리고는 그렇게 심하게 장난을 치는 경우가 어딨냐! 생각만 하면 이 형님은 화가 난다구.”

[멍청이. 소천개. 멍청이. 소천개. 아무것도 모르지. 까르르르르르.]

“이 형님이 모르긴 뭘 몰라. 틀린 말 어딨는데?”

[밧줄은 끊어지지 않았어. 밧줄은 절대 끊어지지 않아. 까르르르르르. 주인님의 밧줄은 너무 튼튼해. 계속 이어져 있어.]

“뭐래는 거야. 돌았냐?”

이 말은 후공에게조차 뜻밖이자 놀라움이었다.

색관조가 천향삼주의 무향을 인지한 것도 놀라운데, 한걸음 더 나아가 연계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선까지 인식하고 있다 싶으니 과연 영물은 영물이다 싶어 감탄하고 말았다.

색관조는 옛 주인에 대해서도 말했다.

죽었다고 했다.

한동안 주인이 머물던 동굴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땐 시무룩하니 소리가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까르르르르르. 그러다 적수를 만났어. 백년지주, 백년지주야. 실제로는 백 년은 아니야. 팔십 살도 안 될걸. 근데 그냥 그렇게 말하지. 까르르르르르르. 까불어서 내가 콱 죽였어. 까르르르르르. 근데 재수도 없지. 백년지주의 거미줄에 걸려버린 거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까르르르르르. 그러다 잡혔어. 말 못하는 척했어. 까르르르르르.]

*

기쁜 소식이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천화서고 노가주에게 없었다.

“부몽, 정말이냐?”

“네, 할아버지. 큰형님의 마차가 산을 오르고 있어요. 송화의 노랫소리가 들릴 지경이라니까요.”

“하하, 노랫소리라고?”

“네,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요.”

노가주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어느덧 큰 손자가 떠난 지 두 달이 넘어갔다. 예상보다 길어져 내심 약왕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염려하고 있었거늘, 송화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그저 너털웃음만 나온다.

*

노래는 부몽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송화는 마부석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목청도 더 높아졌다.

“천화서고여, 우리가 왔다~ 천화서고여~ 듣고 있는가. 악당들을 물리치고, 영웅들과 미녀들을 만나고, 강호를 뒤흔들고 지금 우리가 돌아왔다구~~~.”

약왕문으로 떠날 때는 강호출정가였고, 지금은 영웅의 귀환을 노래했는데 음률은 같고 가사만 달랐다. 소천개와 색관조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남궁연은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없었다. 기뻐할 수 없었다. 아니, 점점 심각해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다. 거의 도착했다고 하는데 어찌된 게 지금 질주하는 방향은 절벽인 것이다. 마차 지붕 위에 앉아있던 터라 너무 잘 보인다. 노래도 좋고, 꾀꼬리도 상관없었지만 이대로면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마부석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양소야, 이제 멈춰야 하지 않느냐?”

“괜찮습니다. 이미 신호를 받았습니다.”

“신호라니?”

이젠 진짜 절벽이 임박했다. 남궁연은 양소와는 대화가 안 되겠다 싶어,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았다.

“두목, 이대로면 절벽입니다. 당장 멈춰야 합니다!”

“크흠, 살아도, 죽어도 함께. 그것이 천공단이지요.”

“아니, 굳이 이런 식으로 죽을 것까진…….”

절벽은 이제 눈앞.

“날아간다~~~~~.”

[난다요, 납니다요. 까르르르르르르.]

색관조조차 즐거운 듯 소리쳤지만 남궁연은 동참할 수 없었다. 같은 천공단의 신입이라도 색관조는 날개가 있는 것이다. 두목을 절대적으로 믿지만 눈앞의 광경은 현실이었다.

두두두두두!

“으어어어!”

이내 마차는 절벽을 지나쳐 돌진해버렸다.

비명과 함께 남궁연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붕 떠있는 느낌. 분명 허공이다. 눈을 뜨면서 놀라 더 크게 뜨고 말았다. 여긴 어디지? 놀랍게도 전혀 다른 곳이었다. 온통 하얀 공간이었고, 꽃송이가 천천히 흩날린다. 또한 무음의 세상. 소리가 완벽히 사라졌다.

‘무, 무슨…….’

그것도 잠시,

진법의 여러 변화 중 하나를 그렇게 지나쳐,

두두두두두두…….

“와아아아!”

마차 소리가 되살아나고 동시에 환호성이 귀청을 때렸다. 새로운 풍광도 남궁연의 두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겸비한 전각들과 무릉도원인가 싶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까지.

그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퍼졌다.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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